시선 너머의 형상
임영주의 철학과 작업 방식은 시점의 전환과 시공간의 중첩을 통해 우리가 놓친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한다. 작가의 일렁이는 눈에는 그의 작품 세계와 철학의 깊이가 그대로 담겨 있다.

임영주 1982년생. 비디오, 설치, 퍼포먼스, 출판물을 매개로 우리 사회에 내재된 미신과 합리성을 탐구한다. 다큐멘터리와 극의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을 통해 개인과 집단의 서사를 역사적 맥락과 결합하며, 과학과 종교가 공유하는 ‘불확실성의 확실성’이라는 지점을 파고든다.
올해 하반기에는 두 차례 새로운 작품과 전시로 관람객을 만날 예정이죠. 그중 먼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건 8월 29일에 열리는 〈올해의 작가상〉전인데, 여기선 어떤 작품을 선보일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올해의 작가상〉전에서는 ‘고 故 The Late’라는 작품을 선보입니다. 오래되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것들, 혹은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다시 살펴보는 이야기예요. 전시 제목이기도 한 ‘고 故 The Late’는 ‘고 아무개’처럼 떠나버린 누군가의 이름 앞에 붙는 그 말이면서, 동시에 영문으로는 늦게 도착한 이의 시점을 담고 있죠. 이 단어에는 시차만큼이나 다양한 뜻이 담겨 있어요. 고향, 고물, 죽은 이 같은 것 말이죠. 전시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지 물으면서 시도한 행위에 대한 다양한 실패의 결과를 다룹니다. ‘정말로 종말이 온다면, 그때 생존하고 싶다면, 그 무수한 실패 속에서 내가 못 보고 놓친 것은 무엇일까?’ 같은 질문을 품고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다시 말해 이번 전시는 고물을 통해 공간을 보는 생존 기술에 관한 이야기죠.
〈올해의 작가상〉전에서 선보이는 작품에서 특히 힘주어 강조한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전시는 60분 간격으로 이뤄지며, 60분이 지나면 다시 영점을 맞춰 시작하는 순환 구조로 되어 있어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점의 전환’과 ‘시공간의 중첩’입니다. 여기서 ‘영점시’가 등장하는데, 이는 실패해도 다시 영점을 맞추는 시간이면서 ‘0.’, 즉 ‘없는 시간’을 뜻하기도 합니다. 입구의 ‘주마등’ 터널에는 ‘고 VR’이라는 죽은 VR을 쓰고 있는 더미가 박물관의 디오라마처럼 누워 있어요. 이 더미는 VR 작품을 보기 위해 예약했지만 오지 않은 ‘노쇼 관람객’을 대신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전시장에는 여러 채널의 영상으로 이 관람객이 원래 볼 영상이 흩어져 돌아가고 있습니다. 결국 전시장 전체가 360도 VR 공간이자, 빈 무덤이 됩니다. 전시 구성에서 관람객이 한 공간에 머물며 여러 시점을 동시다발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영상의 사운드 싱크를 정교하게 맞춰 때로는 화음을 이루고, 때로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관람객으로 하여금 몰입과 각성의 순간을 겪게 합니다. 어디에 앉아 있느냐에 따라 다른 소리를 듣게 되죠.
‘프리즈 서울’을 통해 신작을 소개할 예정이죠.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면서 많은 이가 궁금해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카밍 시그널’은 동물이 불안을 달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하는 반복 행동을 뜻해요. 강아지가 이유 없이 회전하거나, 땅이 없는데도 뭔가를 파는 행동을 보며 시작한 작업이죠. 프리즈가 제시한 ‘미래의 공유지’라는 주제를 받고, 저는 거대한 담론보다는 각자 다르게 감지하는 현재의 불안과 예민한 징후를 함께 바라보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품은 동물의 반복 행동에서 시작해 ‘강강술래’, ‘수피’ 춤처럼 인간의 회전 춤으로 연결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수피 춤이 지구의 자전축 각도로 도는 퍼포먼스라는 거예요. 최근 해수면 상승으로 지구의 자전축이 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보게 되었죠. 지구의 자전축, 축의 이동에 대한 다양한 설이 예전부터 있어왔고, 이 또한 인간의 불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대형 스크린 앞에서 관람객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화면을 마주하며, 우리가 서 있는 세계의 불안정한 축을 함께 감지하게 됩니다.

골드 버튼 장식을 더한 재킷과 터틀넥, 와이드 팬츠 모두 LORO PIANA.
작가님의 작업에선 ‘믿음’이라는 키워드가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작업에서 일종의 매개로 작용하나요, 아니면 의심의 도구인가요? 저는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것을 가만히 따라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믿게 하는지, 사람들은 왜 그 대상을 아름답게 느끼는지,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보고 싶어 하는지가 제가 던지는 질문이에요. 저에게 믿음은 매개이자 동시에 의심의 도구입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되는데, 그 믿음 자체를 끊임없이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VR 기술을 다룰 때도, 저는 이것을 최신 기술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고자 하는 열망 같은 인간의 오래된 욕망의 연장선으로 봅니다. 제3의 눈, 송과선, 명상법 같은 전통적 수련과 첨단 기술은 결국 같은 욕망에서 출발한 거죠. 사실 과학 자체도 하나의 믿음 체계예요.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관찰 가능하다’는 믿음 위에 서 있죠. 반대로, 미신도 나름의 논리와 체계를 갖추고 있고요. 둘 다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인간의 시도라는 점에서 같아요. 저는 이 둘을 대립시키기보다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로 봅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더 정교한 믿음이 생겨나고, 믿음이 깊어질수록 그것을 증명하려는 과학적 시도가 늘어나죠.
‘믿는 과정’에 관한 관심도 표현해오셨어요. 그것을 메커니즘으로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과정일 것 같습니다. 심리적 관점도 작용할 것 같고요. 지금까지 Y2K, 2012년, 코로나19 팬데믹과 같이 세상의 종말은 늘 예고됐지만, 결코 오지 않았어요. 우리는 끝을 상상하면서도 다음 날의 일정을 짜요. 이런 모순이 저에게는 인간의 믿음을 이해하는 열쇠 같아요. 리서치는 ‘헤매기’에 가까운 과정입니다. 이른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리서치를 통해 더 많이 헤매죠.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나름 길이 보입니다. 책상에서 자료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 믿음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함께 헤맵니다. 새를 쫓는 사람을 쫓아가고, 돌을 모으는 사람과 돌을 만지거나 미래를 보는 사람과 함께 앉아 앞으로 일을 생각하죠. 이렇게 헤매며 모은 조각을 늘어놓으면 시대를 뛰어넘는 패턴이 보여요. 과거에 철새를 망자의 영혼으로 본 사람과, 오늘날 GPS로 새의 이동 경로를 추적하는 과학자는 사실 같은 충동을 품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것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고, 기억하려는 거죠. 작품을 만들 때는 이런 시간적 레이어를 겹쳐놓습니다.
영상, 설치, 회화 등으로 확장해나가는 작업에서 ‘언어’는 조형 언어와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나요? 텍스트, 문장, 글자는 저에게 돌처럼 던져지기도 하고, 풍경처럼 펼쳐지기도 해요. 매체마다 고유한 시간이 있어요. 웹은 끊임없이 갱신되고, 영상은 정해진 시간 동안 흐르며, 책은 독자가 원하는 속도로 읽히죠. 저는 이런 시간 차이를 이용해 하나의 이야기를 여러 층위로 펼쳐놓습니다. 책이 가장 급진적이면서 미래적인 매체가 아닐까 생각해요. VR보다 몰입적이고, 영상보다 더 인터랙티브해요. 독자가 시간의 주인이 되니까요. 어떤 것이 먼저라기보다는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실제로 빈 무덤이 저에게 하나의 개념으로 바뀌면, 그 개념을 표현할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으러 가는 과정이 필요하죠. 제 작업은 이렇게 구체적 이미지에서 추상적 개념이 되고, 또다시 이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방법을 찾아가는, 왔다 갔다 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임영주라는 작가가 하나의 발화자이자 조율자 같다고 느낍니다.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지만 섣불리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지죠. 작품마다 서로 다른 화자로 등장하고,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결국 임영주로서 하나의 신념 체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봤어요. 이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도 궁금해요. 흥미로운 관찰이네요. 저는 발화자보다는 돌의 구멍이나 렌즈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했어요. 하지만 제가 책을 쓰기도 하고, 작품에서도 말이 적은 편은 아니어서 발화자가 되는 것도 이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제가 조율자라면, 화음보다는 불협화음을 만드는 조율자일 거예요. 저는 서로 다른 것이 만났을 때 어색한 이음매가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주로 그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이음매를 들여다보고 드러내는 방식을 택합니다.
헤어 & 메이크업 강다슬
패션 스타일링 유재영
세트 스타일링 최다예
에디터 정송(song@noblesse.com)
사진 조영훈(인물), 임영주(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