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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에 따라 후원자의 모습도 조금씩 변해왔다. 과거 미술 후원이 후원자 본인과 소수의 작가를 만족시키는 데 관심을 두었다면 지금의 후원은 어떤 후원자가 미술과 대중의 벽을 허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것이 어떤 연쇄 파급 효과로 나타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대중 또한 후원자가 될 수 있는지에 집중한다.
태진문화재단을 통해 평소 예술 기관에 다양한 후원을 해온 루이까또즈가 새롭게 플랫폼-엘 컨템퍼러리아트센터를 열었다 그곳에서 전시 중인 배영환 작가 / ⓒ 플랫폼-엘 컨템퍼러리
삼성문화재단이 입주 작가를 공모한 파리국제예술공동체 ‘시테’ 전경 / ⓒ 한성필
지난 5월 초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가 생애 첫 잡지 표지 모델로 데뷔했다는 소식이 인터넷 뉴스로 올라왔다.
한 패션 잡지의 창간 기념호에 표지 사진과 함께 총 7장의 컷을 소개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왕실과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파파라치의 표적이 되는 상황에서 표지 모델로 나서기는 쉽지 않았을 터. 놀랍게도 이 프로젝트가 성사되도록 도움을 준 건 바로 런던에 위치한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이었다. 케이트 미들턴은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덕분에 평소 미술 후원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가 현재 후원자로 활동하는 단체 중 미술과 관련된 기관은 세 곳. 국립 초상화 미술관과 국립 자연사박물관(National History Museum), 그리고 미술을 통해 아이들의 자존감과 자신감을 키워주는 자선단체 아트 룸(The Art Room)이다. 그녀가 이 단체들이 주최하는 행사나 후원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많은 파파라치 컷과 해외 뉴스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에게 작업실을 마련해주거나 작품을 컬렉팅하는 것, 또는 상을 제정해 금전적 지원을 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그녀가 이 단체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만으로 전 세계 기업은 그 미술관과 작가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른바 연쇄 후원 효과다. 스포츠 마니아이기도 한 케이트 미들턴이 2014년 세계 최고 요트 대회 ‘아메리카컵’의 후원자를 자처하고 출정식에 직접 참석한 것이 세계 부유층 투자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총 1억3400만 달러에 이르는 예산을 수월하게 준비한 것과 같은 이치다. 힘 있는 후원자의 행동이 어떻게 기업과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예다.
후원자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단연 합스부르크 왕가와 메디치가다. 그들은 직접 예술품 제작을 의뢰하고 소장함으로써 예술가를 후원했다. 지금에야 유수의 미술관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의 컬렉션을 볼 수 있지만 당시 그들은 컬렉션을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대중보다는 자신의 만족을 위한 향유였다.
한 대학교수는 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에 대해 쓴 저서에서 “르네상스 미술에서 ‘후원자’라는 말이 많이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후원자이기보다 ‘주문자’라고 함이 적합하다. 미술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적극적으로 이용한 정치가, 세력가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밝히며 후원의 관계라기보다 돈과 권력에 의한 주종에 가까운 관계라고 다시금 강조했다. 후원자의 모습은 1900년대에 들어오면서 확 바뀌었다. 성공한 기업가와 그의 자녀들은 정치나 경제적 이유가 아니라 마치 하나의 유행이나 취미에 접근하듯 미술을 대했다. 후원자라는 타이틀보다는 친구로, 연인으로 불리길 바랐으며 실제로 사적인 관계가 아주 많았다. 그들은 자신의 심미안을 바탕으로 작가를 발굴하고 작업을 독려했으며, 사들인 작품을 바탕으로 미술관을 설립하고 개방해 미술과 대중의 거리를 좁혔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의 부인 애비 록펠러가 세운 뉴욕 현대미술관(MoMA),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가 설립한 휘트니 미술관, 잭슨 폴록의 연인이기도 한 페기 구겐하임의 구겐하임 미술관 등이 그렇게 세운 미술관이다. 이후 후원자와 컬렉터의 개념이 모호해지면서 예술품을 투자 목적과 기업의 세금 감면을 위한 수단 등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국내에서도 기업과 갤러리 사이에 큰 문제가 발생해 미술 컬렉션이나 후원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팽배해졌고, 그로 인해 미술 시장이 위축되기도 했다. 다행인 건 최근 몇 년간 기업을 중심으로 한 아티스트 후원과 제도적 지원, 컬래버레이션 등이 활발해져 미술 시장이 다시금 활력을 되찾고 있다는 사실.
현대자동차와 대한항공의 국립현대미술관 지원, 아모레퍼시픽의 작가 지원, 그리고 삼성미술관 리움과 금호미술관 등의 기업 페이트런 활동은 이미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다. 또한 반세기 가까이 전 세계에 걸쳐 100개가 넘는 문화 협력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BMW 그룹과 아티스트의 또 다른 캔버스가 된 루이 비통, 아티스트의 작품을 가전제품에 그대로 차용한 LG전자 등 수많은 국내외 기업이 메세나를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행보에 대해 일각에서는 아트 마케팅이니 기업 홍보 수단이니, 심하게는 ‘예술 끼워팔기’라고 말하며 비난의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기업의 미술관 지원을 통해 한국에서 만나기 힘든 세계적 작가의 전시를 관람객에게 선보이거나, 일반적 제품 패키지에서 벗어나 아이템의 소장가치를 높이는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생산하는 것 모두 결국엔 대중에게 ‘예술에 대한 끌림’을 어필한다는 점에서 후원의 의의가 크다.
최근엔 대학교에서도 후원자 독려를 통해 미술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이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지난해부터 성신여자대학교가 운정그린캠퍼스에서 선보이고 있는 ‘아트인더캠퍼스뮤지엄(Art in the Campus Museum)’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회경제적으로 예술가를 후원하는 페이트런 제도를 통해 기업이 작품을 구매한 후 그것을 성신여자대학교에 기부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이 프로젝트의 바탕에는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을 학생들이 좀 더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게 한다’, ‘예술을 통해 정신적으로 풍요로워진 학생들이 한국의 미래 인재로 성장할 수 있다’는 비전이 깔려 있다. 지난해에는 김영재, 구자승, 유휴열, 민경갑, 전뢰진, 최만린 작가 등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해 학생들이 강의실 이동 시간에 쉽게 관람할 수 있게 했다. 학교 측은 페이트런 제도를 통해 기업이 작품을 구매한 후 학교에 기부하면 기업 로고와 회사 소개 명판을 미술관처럼 만들어 운영하는 계획을 구상 중이라며 “기업과 개인의 페이트런 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 모색은 <아트나우>의 ‘스몰 토크’ 칼럼에서 한 작가가 밝힌 것처럼 “(단발적인 후원보다는) 우리의 삶에서 예술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인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예술가에 대한 가장 큰 후원”이라는 의견과 일맥상통한다. 일반 대중이 자신이 관심 있는 예술 프로젝트에 소규모로 금전, 또는 재능 기부를 통해 후원하는 크라우드 펀딩이나 미술관과 예술 재단에서 장려하는 1인 1계좌 후원 등이 모두 비슷한 맥락의 후원이다.
몇 달 전 한 식사 자리에서 만난 표미선 표갤러리 대표와 마침 열리고 있던 화랑아트페어에 대해 한참 의견을 나눴다. 또 갤러리 운영은 어떤지, 컬렉터들은 어떤 작품에 관심이 있는지, 한국 작가들의 작품 가격은 최근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도 물었다. 이야기 내내 그녀의 표정은 국내 갤러리들의 현 상황을 반영한 듯 그리 밝지 않았다. 그리고 디저트를 먹을 즈음 지난해에 시작한 서울예술재단 일은 잘되어가는지 물었다. 그녀는 현재 포트폴리오 박람회 등을 통한 양질의 예술 콘텐츠 확산과 온 국민이 페이트런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제3의 새로운 예술가 육성을 목표로 하는 서울예술재단의 수장을 맡고 있다. 그 질문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얼굴이 환해진 그녀는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대가 없이 맘껏 돕고 육성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일이 행복하다”며 컬렉터로 시작, 갤러리 대표를 거쳐 인생 말년에 미술 후원 재단 운영자로 일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과거 작가에게 작업실을 마련해주고, 물감 살 돈을 쥐여주며 작업을 독려하고, 그들의 작품을 구입해 사람들에게 선보인 후원자와 비교해 최근 양산되는 예술 후원자의 모습은 어찌 보면 너무나 쉽게 접근 가능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영국 아르놀피니 미술관 톰 트레벌 관장이 한 대담에서 언급한 것처럼 페이트런은 앞으로 예술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자산이다. 그것은 질적·양적 발전 모두를 염두에 둔 발언이다. 그렇게 될 경우, 미래의 예술 후원 방식과 더불어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대중의 예술 후원 행위에 어떤 방식으로 가치를 부여해 지금보다 지속적이고 다양한 후원자를 육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