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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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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도시 남자의 집에 향기롭게 피어난 초록의 기운. 추운 계절에 마음을 단단히 채워줄 식물 친구를 만난 ‘그’의 이야기.

자택의 거실에서 싱그러운 그린 인테리어를 만끽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마인 최임식 대표

이 집에서는 그릇도 장식 오브제로 쓰인다. ‘디스키디아’를 담은 사발을 함께 두었다. 습기를 좋아하는 착생식물로 4~5일에 한 번 뿌리 부분의 수태가 말랐을 때 물을 흠뻑 뿌려주면 된다.

허달재의 벚꽃 그림 아래 전통 반닫이 위에서 은은한 기품을 발하고 있는 식물은 서양란 ‘판타지아’.

크리에이티브 마인 최임식 대표는 한강과 남산, 멀리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강북의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나 홀로 산다. 아니, 애묘 명월이가 있으니 두 식구라 해야 할까. 적지 않은 나이에 혼자 사는 남자라, 그렇지만 측은지심을 느낄 필요는 없다. 헤어와 수염을 다듬은 모양새나 그만의 개성이 묻어나는 패션 감각을 보면 이 남자 멋을 좀 아는 듯싶고, 지인을 초대해 음식과 와인을 즐기며 여가를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분명 꽤 괜찮은(여유로운) 싱글 라이프를 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직업은 공간 디자이너다.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환경 디스플레이를 전공했다. 사회 초년생 시절에는 조명 프로젝트를 주로 했지만, 지금은 상업 공간에 치중하고 있다. 8년간 준오헤어의 신규점 오픈과 리모델링을 담당했으며 SM엔터테인먼트의 신사옥 설계에도 참여했다. 그 밖에도 이태원의 카페와 청담동의 뷰티기기 숍까지 많은 곳이 그의 손을 거쳤다. 실력으로 업계에서 제법 소문이 났다.
인테리어 전문가의 집은 어떨까. 일단 전망이 끝내준다. 근데 이건 딱히 디자인과 연결 짓기 힘들다. 공간 배치와 동선, 마감재 등은 사실 여느 집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3년 전 입주할 때 갓 지은 새집이었기에 하드웨어는 거의 손대지 않았다. 대신 빈 공간을 적절히 채운 가구와 소품에서 범상치 않은 안목을 발견할 수 있다. 경매를 통해 구입한 오리지널 스칸디나비안 빈티지 가구와 조명, 모던 가구의 대명사인 플렉스폼의 빅터 소파와 테이블, 벼룩시장을 뒤져서 찾아낸 만든 지 족히 70~80년은 돼 보이는 앤티크 벽난로…. 강지만, 허달재, 구성수 등 한국 작가의 그림 컬렉션도 보이고 오성기의 도예 작품과 돔 페리뇽 앤디 워홀 에디션, 소년의 감성을 실은 아톰 인형까지, 다양한 국적과 스타일의 아이템을 총망라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취향을 반영한 믹스 매치 인테리어다. 그리고 그것이 조금도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다는 점,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데에서 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다. 손때 묻은 것이 많은데, 그 덕분에 시간을 품은 사물 특유의 깊이 있는 편안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처음 방문해도 이곳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흰색 소파 옆에 있는 것은 다육식물의 일종인 ‘아가베 아테누아타’. 유리 소재의 모던한 소파 테이블 위에는 ‘모난테스’를 올렸다. 반그늘 건조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로 겨울 실내 환경에도 적응을 잘한다. 창가 쪽에 놓은 북유럽 스타일의 작은 테이블에는 ‘피어리스’를, 그 옆에는 식용 허브를 심은 화분을 배치했다.

그의 집에 새로운 친구가 합류했다. 초록빛 몸체, 본래 식물을 좋아해서 원예학자를 꿈꿨을 정도라는 그에게 블레스가든의 백선미 대표가 선물한 살아 숨 쉬는 친구다. “식물처럼 공간에 자연스러운 ‘녹색 효과’를 주는 것은 없죠.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적절한 식물 장식을 염두에 둬야 해요. 그런데 식물은 살아 있다는 점에서 사물에 불과한 일반 장식품과는 완벽히 차별화되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시간이 흐른 만큼 성장해 있어요. 싹이 트고 잎이 나고 키가 자라요. 생명의 경이로움이죠. 이 친구를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다면 애정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일명 ‘관리’라고 하죠. 제때에 물을 주고 잎도 닦아줘야 해요. 잦은 눈빛 교환과 스킨십을 통해 정을 나누면 이 친구는 더욱 선명한 초록빛 오라를 발산하는 것으로 우정에 답해줍니다.” 식물과의 교감은 사람들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반려식물이라는 말이 생겨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모든 우연이 인연이 되는 것은 아니듯 특정한 사람, 혹은 공간에 어울리는 식물이 따로 있다. 백선미 대표는 이 집에 잘 어울리는, 꼭 필요한 식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찰했고, 특유의 심미안을 발휘해 한기를 달래줄 싱그러운 그린 인테리어를 연출했다. “최임식 대표의 집을 둘러보고 나서 상당히 포용력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다른 시대, 스타일의 사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모습 덕분이죠. 대표님이 추구하는 ‘실용적이며 절충적인 미학’이 집 안 곳곳에 배어 있었어요. 그에 맞게 주변의 소품과 편안한 조화를 이루며, 온기와 감성을 불어넣을 수 있는 식물 장식을 생각했습니다.”
식물의 수종을 복잡하지 않게 선택하고, 간결하게 디자인해 식물만 너무 도드라지지 않고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공간 속에 녹아든 모습을 표현했다. 집 안에 있던 그릇(중국 여행길에 구입한 것이다)과 실제 전골을 끓여 먹던 내화 토기, 사이즈가 커서 장식용으로 바닥에 내려놓은 도자기 등을 화기로 활용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진다. 꽃꽂이하듯 여러 식물을 한데 모아 담거나 적재적소에 화분을 두는 것뿐 아니라 식물을 소재로 한 오브제를 만들어 특별함을 더했다. 최임식 대표는 늦은 시간까지 작업하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는 날이 많다. 거실 소파에 누워 숨 가쁜 하루를 잠시 정리하는데, 화분을 베이스로 한 조명을 거실 한편에 두어 휴식을 위한 분위기를 완성했다.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서는 민트와 로즈메리 등 식용 허브를 만날 수 있다. “아낌없이 주는 것들입니다. 아름답고, 향기롭고, 맛도 좋고. 싱글 남자의 식탁을 채워줄 든든한 존재죠.”
그의 집을 보며 배운다. 일상에 생기를 불어넣어줄 기운 센 초록빛! 나 홀로 살더라도, 이런 벗이 있으면 조금도 외롭지 않으리.

거실에서 바라본 복도. 오른쪽이 서재로 문을 열어두면 햇살이 복도에까지 들어온다. 세월의 깊이를 품은 고가구 한 점을 두었고, 만화책을 오려 만든 그림 액자를 걸었다. 고가구 위 백색 화기에는 길게 뻗은 멋들어진 가지는 없지만 낮은 자리에서 소박하고 포근한 멋을 전해주는 이끼를 담았다. 이끼는 직사광선을 피해 통풍이 잘되는 곳에 두고 2~3일에 한 번씩 표면이 약간 말랐을 때 스프레이로 물을 뿌리면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앤티크 난로 위를 꾸민 묘이 고사리 화분. 이름처럼 이파리는 고양이 귀를 닮았으며, 중간중간 보이는 뿌리는 고양이 발톱을 연상시킨다. 최임식 대표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점에서 착안해 선택했다.

작업 중인 블레스가든 백선미 대표

복도에 있는 벤치 위 내화 토기에 연출한 ‘틸란드시아’. 공기 속 수분과 먼지의 유기물을 흡수하며 살아가는 에어 플랜트다.

센터피스가 따로 필요 없는, 나무 식탁을 장식한 ‘떡갈나무’ 화분. 중국식 면기를 화기로 활용했는데 물 빠짐 구멍이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150ml 정도의 물을 주면 오래도록 탄력 있는 푸른 잎사귀를 만날 수 있다.

식물을 활용한 조명 연출 아이디어. 화분이 그대로 조명의 베이스가 된 점이 이색적이다. 은은한 조명을 받는 식물을 밤새 볼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다.

욕실 창가 왼편에는 ‘틸란드시아 플렉수오사’를 두었다. 온도가 높고 습기가 많은 환경을 좋아하므로 욕실과 잘 맞는다. 물은 5~7일에 한 번, 잎 전체가 젖도록 충분히 준 후 썩지 않도록 물기를 털어낸다. 오른편에는 습지에서 잘 자라는 다년생 관엽식물 ‘시페루스’를 놓았다. 욕조 앞쪽에 놓인 화분은 산세비에리아의 한 종류인 ‘스투키 산세비에리아’.

에디터 이재연 (jyeon@noblesse.com)
사진 박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