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를 합시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맛있는 음식을 나누며 함께 식사하는 것만큼 정겨운 풍경은 없다. 거장이 포착해낸 식사 시간에는 당시 살았던 이들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Norman Rockwell, Freedom from Want, Oil on canvas, 116.2×90.2cm, 1943, War bond poster. Story illustration for The Saturday Evening Post, March 6, 1943
노먼 록웰 Norman Rockwell(1894~1978년) 뉴욕에서 태어나 잭슨 폴록이 미술을 배운 The Art Students League of New York에서 공부했다. 록웰은 화가이자 삽화가로, 미국 중산층의 생활상을 친근하고 인상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평생 동안 4000점이 넘는 일러스트를 그렸고, 1916년부터 그린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잡지의 표지 삽화만 해도 321점이나 된다. 록웰은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한 번쯤 경험한 일을 그림을 통해 쉽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1977년에는 ‘가장 생동감 넘치고 매력적인 미국 인물’로 선정돼 ‘대통령의 자유 메달(Presidential Medal of Freedom)’을 받았으며, 이듬해인 1978년 84세를 일기로 스톡브리지 자택에서 평화롭게 생을 마감했다.
결핍으로부터의 자유_ 노먼 록웰
왜 칠면조일까?
추수감사절은 기독교 휴일로,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직후 생존을 위협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신이 돌봐줄 것을 믿고 감사한 전통과 자신들의 정착을 도와준 인디언과 음식을 나눠 먹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추수감사절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나라의 송편처럼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관습이 있는데, 칠면조구이와 함께 오븐에 구워 으깬 감자나 고구마, 콘브레드, 호박파이, 제철 채소와 그레이비, 크랜베리 소스를 곁들여 냅니다. 실제로 초기 추수감사절부터 먹어온 음식으로 미국의 전통 명절 상차림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칠면조구이를 먹는 풍습은 첫 추수감사절에 새 사냥을 나간 사람이 칠면조를 잡아와 먹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추수감사절에 햇곡식으로 만든 전통 음식을 이웃과 나누어 먹으며, 대부분 가정에서 온 가족이 모인 저녁식사 전후로 한 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안녕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올립니다.
감상 포인트
화폭 중앙의 거대한 칠면조를 보면, 추수감사절을 맞아 온 가족이 모인 자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저기 흩어져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던 자녀들이 부모님을 찾아 막 함께 식사를 하려는 참일 테지요. 모든 가족 구성원이 서로 눈인사를 나누며 유쾌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작품의 오른쪽 맨 아래 인물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작품 바깥쪽을 익살스럽게 바라보며 눈길을 끕니다. 언뜻 매우 즐겁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가족의 식사 장면을 그린 시점은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입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전쟁과 거리를 두던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받고 본격적으로 전쟁에 가담한 지 1년이 됐을 때죠. 추수감사절은 우리나라의 추석과 유사한 미국 최대의 명절로, 매년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로 지정되어 있으며 3일 동안 이어집니다. 원래는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이 지켜온 명절인데 종교적·역사적·정치적 상황에 따라 제정과 폐지를 반복하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링컨 대통령이 국경일로 선포한 이후 지금까지 국경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미국인은 풍족할 때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착 초기나 남북전쟁처럼 오히려 혹독하고 어려운 시절에 풍요를 꿈꾸며 신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지요. 이 작품은 그런 미국의 역사와 종교적 신념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며, 전쟁 중 가정의 안녕과 풍요를 소망하는 일종의 계몽적 아이콘인 셈입니다. 특히 미국인에게 추수감사절 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칠면조구이를 정면에 부각시킴으로써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평화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도 전시(戰時)의 결핍을 벗어나 풍족한 일상을 꿈꾸며 ‘결핍으로부터의 자유’로 붙인 것이지요.
미국 중산층 풍경의 대가, 노먼 록웰
회화 작가 록웰은 1943년에 발생한 화재로 수많은 작품을 잃었지만, 같은 해에 그의 작품 중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자유’ 시리즈 4점을 완성합니다. 이 시리즈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 국회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 연설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으로 ‘연설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종교의 자유’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록웰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7개월 만에 이 작품을 완성했으며, 이 기간 동안 거의 7kg이나 살이 빠졌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 전쟁정보부(The Office of War Information)에서는 이 그림들을 포스터로 제작해 미국 전역에 배포했고, 1억3200만 달러나 되는 전쟁 채권의 판매 수익을 얻었습니다. 록웰은 미국인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조지 루커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어린 시절에 록웰의 삽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록웰의 작품만 57점이나 되는데, 노먼 록웰이 담아낸 미국 중산층과 그들의 생활상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영화로 <청년 인디애나 존스 연대기>, <태양의 제국>, <포레스트 검프> 등이 있습니다.
글. 장원(미술평론가)
Pierre-Auguste Renoir, Luncheon of Boating Party(Le Dejeuner des canotiers), Oil on canvas, 129.9×172.7cm, 1880~1881, The Phillips Collection, Washington DC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Pierre-Auguste Renoir(1841~1919년) 프랑스 리모 주에서 재단사와 세탁부의 아들로 태어나 네 살 때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도자기에 그림 그리는 도제 생활을 하다 글레르 아카데미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미술 수업을 받았고 그곳에서 만난 모네, 바지유, 시슬레 등과 더불어 인상주의 운동을 이끌었다. 하지만 밝고 풍부한 색채와 섬세한 붓 터치로 동시대 삶과 초상화를 그린 르누아르는 이탈리아 여행 이후 고전주의 회화 양식으로 전향하면서 인상주의와 거리를 두기도 했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은 르누아르가 인상주의에서 고전주의로 옮아간 전환점인 40세에 그린 작품이다. 르누아르는 1900년 무렵부터 류머티즘으로 고생했으나 세상을 뜨기 사흘 전까지 붓을 손에 묶고 작업할 정도로 그림에 대한 열정을 불태웠다. 뛰어난 미장센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Jean Renoir, 1894~1979년)가 그의 둘째 아들이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_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즐거운 식사, 삶의 빛나는 한순간
좋은 이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은 즐겁습니다. 굳이 산해진미로 가득한 상차림이 아니어도 됩니다. 서로에 대한 관심과 따뜻한 눈빛, 대화만으로 식탁을 풍성하게 채울 수 있으니까요. 여기 화사한 색조의 르누아르 작품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에서도 유쾌한 식사 장면이 펼쳐집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커다란 차양이 있는 강변 테라스 풍경입니다. 식탁 위에 놓인 과일과 와인병, 거의 비운 유리잔으로 보아 아마도 이미 식사를 마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 속 사람들의 대화가 시원한 강바람을 타고 들려올 듯합니다.
감상 포인트
르누아르는 비교적 큰 작품인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을 1880년에 그리기 시작해 이듬해인 1881년에 완성했습니다. 그가 이 작품을 오랜 시간 공들여 매우 치밀하게 그렸다는 사실은 구도나 채색, 다양한 인물의 개성을 표현한 방식에서 잘 드러납니다. 화폭에 비스듬히 난간과 식탁 2개가 놓여 있는 가운데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한 사람들은 둘 혹은 셋씩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집중하는 몇몇이 있는가 하면, 여인의 환심을 사려고 애쓰는 남자,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는 이들도 보입니다. 전체적으로 밝은 색(백색, 황색, 주홍색)과 어두운 색(군청색, 갈색)이 고루 배치되어 있으며, 한껏 멋을 낸 여성들이 쓴 모자며 대부분의 남성들이 쓰고 있는 모자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또한 식탁 위 과일과 접시, 유리잔은 르누아르가 정물 묘사에도 탁월한 화가였음을 보여줍니다. ‘뱃놀이하는 사람들의 점심’에는 14명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모두 르누아르의 친구이자 지인입니다. 스냅사진처럼 인생의 한순간을 포착한 이미지 같지만 실제로 화가는 이 그림을 위해 작업실에서 각 인물의 초상을 따로 그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르누아르가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사진 자료가 남아 있어 등장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화폭 왼쪽에 귀여운 강아지와 눈을 맞추고 있는 젊은 여성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나요? 그녀는 나중에 르누아르의 부인이 되는 재봉사 알린 샤리고(Aline Charigot)입니다. 맞은편 의자 등받이에 두 손을 올린 채 앉아 있는 남성은 르누아르의 절친한 친구인 인상주의 화가이자 컬렉터 구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고요. 그와 비슷한 옷차림으로 테라스 난간에 기대서 있는 남성은 식당 주인의 아들 알퐁스 푸르네즈(Alphonse Fournaise Jr.), 난간에 팔을 걸치고 사람들 쪽을 바라보는 여성은 푸르네즈의 여동생 알퐁신(Alphonsine)입니다. 그 밖에 시인 쥘 라포르그(Jules Laforgue)를 비롯해 배우 잔 사마리(Jeanne Samary), 저널리스트 마졸로(Maggiolo) 등이 그려져 있습니다. 화가는 뱃놀이 후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한가로운 순간을 이처럼 따스한 색채와 부드럽고 섬세한 붓 터치로 작품에 담아냈습니다. 작품 속 공간은 프랑스 파리 서쪽 샤투 섬의 ‘메종 푸르네즈(Maison Fournaise)’ 레스토랑입니다. 펜션을 겸한 이곳에서 르누아르는 1872년부터 10여 년간 머물렀다고 합니다. 화폭 왼쪽 상단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줄무늬 차양과 수풀 사이로 강 위에 떠 있는 하얀 돛단배 몇 척이 보이지요. 레스토랑이 위치한 샤투 섬의 센 강변은 주말이면 뱃놀이를 즐기는 파리지앵들이 모여드는 장소였습니다. 메종 푸르네즈 옛 건물은 현재 문화 유적으로 지정되어 르누아르의 그림 속 과거의 모습을 재현한 레스토랑이자 문화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르누아르의 행복한 그림
인상주의 화가들은 모던한 삶과 야외의 빛을 포착했다는 공통점을 보이면서도 각자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견지했습니다. 이를테면 주로 자연풍경을 그린 친구 모네와 달리 르누아르는 무엇보다 인물을 그리는 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초상화가로서 큰 인기를 누린 그는 “그림은 사랑스럽고 유쾌하고 예뻐야 한다. 우리 삶에는 이미 골치 아픈 일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그림에서까지 그런 것을 볼 필요는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확고한 회화관 때문이었을까요. 르누아르는 한 번도 어두운 그림을 그린 적이 없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보다 화려하게 빛나는 일상의 순간을 아름다운 색조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르누아르의 그림은 녹록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편안한 휴식을 선사합니다. 그리고 삶의 무게에 눌린 우리에게 넌지시 묻습니다. 그럼에도 분명 살아 있다는 행복감으로 충만한 인생의 한순간이 있지 않느냐고.
글. 김보라(미술평론가)
김홍도 풍속화첩 중에서 ‘점심’, 종이에 담채, 27×22.7cm,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단원 김홍도(1745년~?) 조선시대 화가로 스승 강세화의 추천으로 도화서 화원이 되었다. 정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당대 최고 화가로 활약했다. 산수화, 풍속화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길쌈, 타작, 고기잡이, 씨름, 윷놀이 등 조선시대 서민의 삶을 익살맞으면서 따뜻하게 그려냈다. 정조의 초상을 그리기도 했으며 <을묘년화첩>, <병진년화첩>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수와 풍경을 완벽하게 기록한 명작이다. ‘점심’은 <단원풍속도첩>에 실린 작품으로 18세기 후반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점심_ 김홍도
한갓진 농촌의 식사 시간
그림 보기에 앞서 시 한 수부터 꺼냅니다. 되도록 소리 내어 읽어보면 좋겠네요. “광주리에 수북, 향긋한 보리밥 내음/ 아욱국 단맛이 숟가락에 미끄러지네/ 어른 아이 차례차례 둘러앉아/ 배불리 먹으면 목구멍이 든든/ 배 두드리며 걷자니 이것이 참 기쁨일세” 지은이는 세조 때 문신 강희맹입니다. 그는 ‘농사꾼의 노래’ 여러 수를 읊었는데, 이 시는 그중 한 토막입니다. 그 시절이 그랬지요. ‘쌀밥에 고깃국’은 농촌 살림에 언감생심입니다. 고봉으로 쌓은 보리밥 정도면 족했지요. 바삐 먹고 나서 볼록해진 아랫배를 두드리며 팔자 좋게 늘어진 농사꾼들을 떠올려보세요. 농촌 풍경에 이보다 더한 평화로움이 있을까요.
감상 포인트
저는 이 그림을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조선 회화의 ‘먹방’ 시리즈 중 최고의 미장센! 옛 그림에 먹방이 꽤 있습니다. 그중 풍속화가 김득신의 작품이 볼만하죠. 제목이 ‘강상회음(江上會飮)’인데, 왜가리 노니는 갯가에서 뱃사람 여럿이 숭어찜 놓고 막걸리를 반주 삼아 회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선비 화가 조영석이 그린 ‘새참’도 알려졌죠. 시골 일꾼들이 일렬횡대로 앉아 멋쩍게 끼니를 때우는 스케치풍의 작품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느 작품을 갖다 댄들 단원 김홍도의 이것을 능가하기는, 장담컨대 어려울 겁니다. 이토록 맛있고, 즐겁고, 정겹고, 뿌듯하고, 활기 넘치는 오찬을 어디서 찾는단 말입니까. 단원은 김득신과 조영석이 눈치채지 못한 기미를 포착한 화가입니다. 먹는 일을 통해 살아 있음의 복받치는 기쁨을 드러냈죠. 이 그림의 제목을 ‘새참’ 또는 ‘들밥’이라고, 달리 부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옛날 점심(點心)은 요즘 점심과 달랐습니다. 문자 그대로 ‘마음에 점 하나 찍는’ 소식(素食)에 불과했습니다. 옛 어른들이 아랫사람을 만나면 입버릇처럼 묻는 말이 있었지요. “조석은 챙겼느냐?”고 합니다. ‘조석’은 아침 조(朝), 저녁 석(夕)자입니다. 곧 아침밥과 저녁밥을 말합니다. 그즈음엔 하루에 두 끼 먹는 게 상례였거든요. 하지만 제대로 된 점심을 꼭 챙겨 먹는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름철 농번기입니다. 농사꾼들은 이때 비로소 세끼를 먹는 셈인데, 들에서 먹는 아침(들밥)과 저녁 사이의 요기(새참)가 다디달았던 모양입니다. 돌이켜보면 알 일입니다. ‘여름에 하루 놀면 겨울에 열흘 굶는다’는 속담이 있지요. 논일 밭일 가릴 것 없이 모내기에서 김매기까지, 물 대고 흙 들이는 그야말로 뼈빠지는 노동이 여름에 다 몰려 있습니다. 엄청나게 수고로운 반나절이 지나면 반가운 시간이 마침내 다가옵니다. 잠깐 호미, 괭이 놓고 끼리끼리 모여 앉는 들판의 점심시간이죠. 이러니 꿀맛 같을 수밖에요. 6명의 장정이 먹는 꼴을 좀 구경해볼까요. 웃통을 벗은 이가 넷, 반쯤 걸친 이가 하나, 다 차려입은 이가 하나로군요. 들었다 놨다, 수저 놀리느라 엄청 바쁩니다. 왼쪽 맨 위의 사내는 귀찮게 하는 하루살이라도 쫓는 듯 왼손으로 부채질을 하면서도 밥그릇을 바짝 끌어당깁니다. 저고리를 입은 사내와 반쯤 벗은 사내 앞에만 반찬 그릇이 보이네요. 저고리 차림의 사내는 그릇에 남은 한 톨의 밥알마저 긁어 먹을 기세입니다. 눈여겨보니 단원의 실수가 들통 나네요. 이 사내의 오른발을 마치 왼발처럼 그렸습니다. 화가의 농지거리려니 하고 눈감아주죠, 뭐. 오른쪽 위 두 사람이 마시는 건 뭘까요? 숭늉 아닙니다. 물으나 마나, 막걸리입니다. 떠꺼머리 사내아이가 술 단지 들고 두 사람에게 한 잔씩 따랐습니다. 바가지같이 큰 잔이건 종지처럼 작은 잔이건 서로 양껏 마시는 술자리가 보기에 참 정답습니다. 아무래도 눈길이 오래 머물기는 아낙네 모습입니다. 세상에 아기에게 젖 물리는 어미만큼 다정한, 아니 다정함을 넘어 성스럽기까지 한 존재가 있을까요. 젖이 제법 불었는지 아기는 엄마의 통통한 젖가슴을 부여잡으려 하고, 엄마는 지그시 내려다보며 아기의 엉덩이와 등을 편하게 받쳐줍니다. 그 곁의 벌거숭이 녀석은 제 머리통보다 큰 밥그릇에 숟가락을 꽂았습니다. 벌린 입을 보니 씹던 밥도 채 넘기기 전에 밥술 한 번 더 뜨기 급한 꼬락서니입니다. 광주리가 튼실하군요. 행여 먼지라도 앉을까 봐 보자기로 살짝 덮어놓았네요. 들밥 나르는 시골 아낙네들이 다 그랬답니다. 오죽하면 시에도 나오겠습니까. 시골 물정에 밝은 조선 후기 문인 이용후가 읊조린 시를 볼까요. “개 앞세우고 가는 시골 아낙/ 광주리에는 점심밥이 가득/ 국에 행여나 벌레 들어갈까/ 살짝 덮어놓았네, 호박잎으로”
단원 김홍도, 먹고 사는 즐거움을 포착하다
사철 내내 농사일은 끝이 없습니다. 다만 동네 사람들 서로 힘을 보태 논밭을 가다루니, 이게 두레와 품앗이와 놉의 풍습이지요. 봄날의 보릿고개와 가을날의 피고개도 그런 지혜로 넘깁니다. 단원 김홍도는 일을 놀이로 바꿀 줄 아는 넉넉한 농사꾼의 너름새를 기 막히게 표현합니다. 일의 마땅한 대가가 음식일진대, 밥을 먹는 것이야말로 일을 치러낸 내 몸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복받치는 생의 즐거움이 먹는 가운데 있지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흥겨움을 검둥개 한 마리가 멀뚱히 지켜봅니다.
글. 손철주(미술평론가)
에디터 고현경
글 미술평론가 장원, 김보라, 손철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