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욕 심리학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라 꽤나 다루기 까다로운 식욕에 대한 이야기다. 아무리 먹어도 늘 허기진 당신을 위한 식욕 설명서.
“마음이 헛헛하고 상처받아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은 날 있잖아요. 그런 날이면 집으로 돌아와 외투도 벗지 않은 채 냉장고 문을 열어요. 그리고 며칠 굶은 사람처럼 초콜릿이나 감자칩을 입안에 꾹꾹 밀어넣죠. 전혀 배고프지 않은데도 말이에요.” 비만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는 정신과 전문의 유은정은 이런 이야기를 비만 클리닉 진료실에서 가장 빈번하게 듣는다고 한다. 그녀의 처방은 의아하게도 “그렇게 드시고 싶을 땐 드세요. 그래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면”이다. 이런 경우 비만의 원인이 ‘감정적 폭식’에 있다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서 식이 조절과 운동이 필수라는 건 이제 진부할 정도로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그보다 우선시해야 하는 것이 먹는 행위에 대한 심리. 다이어트와 심리가 불가분의 관계라는 건 심리학과 비만분야의 수많은 권위자가 입증했고, 식욕 조절법이 다이어트 인트로 코스로 조명받고 있는 추세다. 10년간 폭식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치료한 미국 심리학 박사 수전 앨버스는 우리 모두 감정과 스트레스를 다스리기 위해 음식을 이용하지만 이것이 습관이 되어선 안 된다며, 음식 없이 나를 위로하는 50가지 방법(그녀가 집필한 책 제목이기도 하다)을 제안했다. 미국의 인지 행동 치료사 캐런 쾨닝은 저서 <착한 여자는 왜 살찔까>에서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말하는 ‘착한 여자’란 성품이 착한 여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인 여자라기보다 온정에 굶주리고 소외된 어린아이에 가깝다. 가까운 사람에게 고통을 호소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완벽주의자, 그래서 외로워지고 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먹는 행위를 선택하는 아이 말이다. 독일 심리 치료 전문가 마리아 산체스는 “먹고 싶은 충동, 즉 식욕을 조절하는 데 성공하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은 살찌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감정적 섭식(emotional eating, 더 이상 몸에서 영양 섭취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먹기를 멈출 수 없는 습관)의 원인을 간파하고 식욕을 조절할 줄 알게 된다면 다이어트는 자연히 성공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대로 스스로 내면을 돌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먹는 것이 그 기능을 넘겨받는다. 그 상태로 진행하는 가혹한 다이어트는 쉬이 사라지지 않을 깊은 상처에 대충 일회용 반창고를 붙이는 셈.
사고를 전환하자.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 하는 괴로운 일이 아니라, 그냥 내 몸과 마음을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일일 뿐이라고. 무작정 먹는걸 참거나 쫓기듯 허겁지겁 먹지 말고(당신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면 먹는 것을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다. 먹는 행위 자체를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치우듯’ 먹겠는가?), 스스로 먹는 행위를 천천히 관찰하면서 먹으면 식욕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다음은 먹는 행위의 심리적 의미에 대해 생각할 차례다. 폭식 대신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립의 감정과 불안감을 떨쳐내자. 지나치게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지금 그런 건 생각할 정신이 없어. 내일 생각할 거야”라고 말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처럼 조금 단순하고 게을러질 필요가 있다. 먹고 싶은 진짜 이유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조절할 줄 아는, 애정 어린 내면의 권위자가 되고 나면 다이어트 위너로 군림하는 건 시간문제다.
계속 먹고 싶을 때 봐야 할 것
“감정적 섭식을 치료하면 삶이 사랑스러워지고 감정적으로 충만해지며 체중 조절 역시 자율적으로 변할 겁니다”라는 마리아 산체스의 조언처럼 몸은 가볍게, 삶은 풍부하게 만들어줄 위로 방법. 심리학 전문가들이 감정적 섭식을 끊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권하는 치료법과 조언을 모았다.
–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날씬해진다-더 많은 사랑을 받는다-더나은 삶을 산다’는 공식을 믿고 살아가는 삶.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허기를 안고 살아가는 건 너무 가엾지 않은가? 스스로 불행해지지 말자. 날씬하지 않은 현재의 당신도, 당신이 보내는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하다.
– 한 입씩 천천히 먹기. 한 입 먹을 때마다 수저를 내려놓고 맛을 음미한다. 그러면서 감정에 집중해 진짜 공복으로 인한 허기인지, 아니면 먹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나 불안감에 가까운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다 보면 생리적 욕구와 감정을 분리하는 데 익숙해질 것이다.
– 폭식을 참지 못하는 시간대에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혼자 영화를 보거나 긴 시간 목욕을 해도 좋고 요가를 할 수도 있다. 단, 운동을 하기 전에 좋아하는 간식을 먹어 요기를 해야 한다. 운동 후 더 먹어대는 보상 행위를 방지할 수 있다.
– 음식을 먹는 선택권은 나에게 있어야 한다. 금기 음식 리스트를 지우고 오히려 먹어도 괜찮은 ‘위로 푸드’ 리스트를 만들 것. 먹어서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지는 음식으로 구성하면 된다. 먹되, 양에 제한을 둔다. 예를 들어 라면 면발의 탄수화물은 다이어트 중에도 필요한 성분이지만, 문제가 되는 건 수프 속 염분. 수프를 덜넣고 라면을 반 개만 먹는 식이다.
– 폭식은 분풀이 도구로도 쓰인다. 분노의 감정이 솟구쳐 음식이 당길 때 가족이나 가까운 상대에게 문제를 털어놓고 기대보자.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혼자 감정을 추스르려는 마음이 감정적 폭식을 유발한다. 완벽한 모습보다 조금 서툴고 자기 감정에 솔직한 편이 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 여자들은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친밀감을 느끼므로 같이 먹자고 권유한다. 대답하기 전에 잠깐 자신의 상태를 돌아보자. 진짜 그 음식을 먹고 싶은 건지, 상대의 요구에 응하고 싶은 건지 말이다. 후자라고 판단했을 때는 단호하게 거절할 것.
– 단절되고 버림받은 느낌이 들 때 먹고 싶어지는 이유는 음식을 ‘친구’로 간주해서다. 아기가 엄마 젖을 먹으면서 일체감을 느끼며 편안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요가나 자수 클래스, 악기 동호회처럼 취미를 공유할 수 있는 모임에 참여할 것. 당장은 마음이 딱 맞는 ‘친구’를 찾기 힘들겠지만 몰두할 수 있는 취미 자체가 좋은 친구가 된다.
– 보드랍고 포근한 담요, 솔메이트에게 받은 생일 카드,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브로치, 승진 기념으로 자신에게 선물한 옷 등 기분이 좋아지는 물건을 상자에 모아두고, 입이 심심하다고 느낄 때 하나씩 꺼내 보면 식욕 해소에 도움이 된다. 늘 지닐 수 있는 주얼리 같은 소품이면 더 좋다.
에디터 성보람(프리랜서)
일러스트 황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