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장품 미리 보기
소장품은 미술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아카이브이자 심미안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이기도 하다.
영남 지역의 미술관에서 만나게 될 주목할 만한 신(新)소장품에 관하여.
1 이우환, 관계항-안과 밖, 2016

2 황인학, 무제, 1978
3 박현기, 무제(TV 돌탑), 1980
4 전혁림, 무제, 1970년대
세계적 미술관을 ‘세계적’으로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소장품 목록을 살펴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공공 미술관은 대중이 미술을 향유할 수 있는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는 것은 물론, 미술관의 정체성을 이어갈 작품을 수집·보존·발굴하고 연구하는 데 존립 목적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영남 지역의 미술관 역시 소장품 수집에 각별한 정성을 쏟고 있다.
대표적 미술관인 부산시립미술관, 대구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중 2017년에 신소장품전을 기획한 곳은 부산시립미술관과 경남도립미술관 두 곳이다. 연초인 2월부터 신소장품전을 선보이는 경남도립미술관은 경남 미술을 보존하고 연구하는 경남 지역 도립 미술관의 정체성을 내세우며 2013년부터 경남을 제외한 다른 지역 출신 작가의 작품 구입을 지양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 구입한 소장품은 총 16점으로 회화 11점, 조각 1점, 드로잉 4점이다. 그중 조각과 드로잉이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오방색을 이용해 강렬한 색감으로 통영의 자연을 담아낸 전혁림 작가가 1970년대에 발표한 ‘무제’는 석고 위에 패브릭을 붙여 추상 조형을 만든 후 그 위에 색을 올려 완성한 작품. 평면 회화를 주로 선보인 작가가 남긴 입체 회화로 희소성이 남다르다. 4점의 드로잉은 마산을 거점으로 경남에서 활동한 황인학 작가가 남긴 것이다. ‘부조 조각가’로 알려진 그는 동판을 두드려 남성과 여성 혹은 아이들이 뒤엉켜 있는 모습을 표현해왔다.
가난, 알코올중독 등 굴곡진 삶 속에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은 작가는 1986년에 45세의 나이로 요절했지만 최근 들어 예술성이 재조명되며 주목할 만한 작가로 부상했다. 경남도립미술관이 소장한 4점의 드로잉은 먹과 붓으로 표현해 원작의 금속성과 대비되는 질감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부산·경남 출신 작가의 1980년대 이전 작품 외에도 신진 작가와 중견 작가의 작품, 한국 현대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 등을 수집 대상에 포함했다. 작년 한 해 동안 총 57점의 소장품을 수집했는데 그중 구입한 작품은 31점, 26점은 기증받은 것이다. 기증작 중에선 이우환 작가가 ‘이우환 공간’ 내 조각공원에 기증한 설치 작품 ‘관계항-안과 밖’이 단연 이목을 끈다. 작년 한 해 동안 위작 분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작가가 부산시립미술관을 방문해 직접 신작을 발표했을 정도로 남다른 애정을 보인 이 작품은 폭 6m의 비스듬한 호(弧)를 그리는 스테인리스스틸 판 2개가 양쪽에서 마주 보고, 두 호 사이 양쪽에서 2m 높이의 자연석이 마주 보는 설치 작품. 관람객은 거울처럼 반짝이는 판과의 거리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명상적 요소가 짙은 그간의 작품과 달리 관람객과의 소통을 시도한 이색적인 작품으로, 이우환 예술 세계의 변환점으로 해석되는 만큼 기존 작품과 비교해 감상하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한편 한국적 비디오아트의 선구자로 불리는 대구 작가 박현기는 비록 부산·경남 출신은 아니지만, 한국 미술계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목록에 추가됐다. ‘무제’는 그의 ‘TV 돌탑’ 시리즈 중 하나. 돌탑 사이에 무심히 놓인 TV 모니터에는 돌탑의 일부로 보이는 이미지가 나오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가상과 실재의 혼돈을 담아냈다. 이외에도 4월에 열리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신소장품전에선 부산 1세대 작가로 기록된 이림과 김원갑, 정상복 등 부산을 비롯한 영남 지역의 근·현대미술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선보여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주목을 받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에디터 박현정(hjpark@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