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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연했어요? 이리 오세요

LIFESTYLE

<실연에 관한 박물관>전은 세계 각국에서 전한 실연 이야기와 그 사연이 담긴 물품을 함께 전시하는 독특한 컨셉의 스토리 전시다.

‘실연’에 관한 아이템들이 전시된 전시장

트로피를 얻는 대신 가족을 잃었다는 한 사연자의 전시품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올링카 비스티카

“스피커는 지금으로부터 약 18년 전 미술을 전공한 아들이 선물한 것입니다. 2003년에 2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아들은 서양화를 전공해 프랑스 유학을 준비 중이었습니다. 18년 전 그 아들이 제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이 스피커를 어깨에 짊어지고 오던 표정이 생생합니다. 아들이 이 선물을 건넬 때 진심으로 기뻤고, 지금까지도 나는 그림을 그리며 이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지난 5월 5일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Ⅱ에서 열린 <실연(失戀)에 관한 박물관>전의 한 전시품 앞에서 읽은 사연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없는 긴 시간 아들이 선물한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고, 올봄 이 전시를 위해 스피커를 기증했다. 몇몇 관람객은 스피커 앞을 떠나지 못했고, 한 큐레이터는 전시품 소개를 하다 복받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끝내 눈물을 흘렸다.<실연에 관한 박물관>전은 세계 각국에서 전한 실연 이야기와 그 사연이 담긴 물품을 함께 전시하는 독특한 컨셉의 스토리 전시다. 연인과 가족, 친구, 반려견, 헤어짐에 대해 각각의 얘기를 들려준다. 전시의 시작은 이렇다. 박물관의 공동 설립자는 헤어진 연인이다. 크로아티아인 미술가 올링카 비스티카와 드라젠 그루비시치는 실제로 10년 전 관계를 끝냈지만 둘의 추억이 오롯이 담긴 물건을 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추억이 담긴 물건을 정리할 아이디어로 전시를 고안해냈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빌려 연 전시는 “깨진 관계에 대한 향수의 완벽한 공간”, “사랑과 유대에 대한 갈망의 전당”이라는 평가와 함께 화제를 모았고 곳곳에 널리 알려지게 됐다. 42개의 기증품으로 출발한 전시는 현재까지 35개국을 돌았다. 각 도시에서 전시를 할 때마다 또 다른 기증품을 받았고, 지금은 그 물품이 3000여 개로 늘었다. 아라리오뮤지엄 전시를 위해 방한한 드라젠 그루비시치와 올링카 비스티카를 전시 개막 하루 전 현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헤어진 연인에서 동업자가 된 묘한 인연. 그들은 “처음 전시를 시작할 땐 자주 싸우며 힘들었지만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했고, “전시가 생명체처럼 자라나기 시작해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보내는 사연이 길고, 이별에 대해 더 슬픈 감정을 보인다”고 감상을 전했다. 한데 이들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분명 있다. 우리의 사연은 유럽의 ‘쿨한’ 이별과 궤가 다르기 때문. 제주 4·3사건 당시 끌려간 남편에게 아내가 건네준 빵 한 조각, 아픈 강아지의 꼬리를 빼내기 위해 구멍을 낸 기저귀, 갑자기 세상을 떠난 남편이 남긴 지프 등의 사연을 읽으면 자연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전시를 아시아 최초로 기획한 아리리오뮤지엄은 지난 2월 한 달간 다양한 사연과 물품을 기증받았다. “사랑과 유대에 대한 갈망의 전당”이라는 평과 함께 전 세계 50만 명이 관람한 이 전시가 본격적으로 한국에서도 열리는 것이다. 일반인의 물품 전시는 몇 번이고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슬프고 가슴 아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다. 실연한 당신을 기다리는 전시는 9월 25일까지다.

문의 | 064-720-8203
에디터 |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