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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숭생숭 내 예술

ARTNOW

엔터테이너와 미술가의 경계가 사라지는 날이 올까? 일상이 완전히 예술이 되는 세상은? 음악과 예능, 미술을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가수 겸 미술가 솔비와 ‘예술’을 방패 삼아 자신의 모든 꿈을 이루려 하는 작가 구혜영의 조금은 들뜬 듯한 대담.

솔비(본명 권지안)
2006년 그룹 타이푼으로 데뷔했다. 2012년부터 치료 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음악으로 표현하지 못한 다양한 감정과 세계관을 그림으로 표현해 호응을 얻었고, 지난해와 올해 가나아트센터와 안국약품갤러리 AG 등에서 열린 개인전에선 음악과 그림 퍼포먼스를 결합한 전시를 선보였다.

구혜영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순수 미술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내에선 2014년 방영한 스토리온의 아티스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아트스타 코리아>의 독특한 퍼포먼스 작품으로 알려졌다. 런던의 살롱 컨템퍼러리, 바지하우스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고, 2013년 복합 문화 공간 에무에서 개인전 <김밥의 천국>을 개최했다.

 

자전적 경험을 예술로
구혜영(이하 구)/ 작년 전시 얘기부터 할까요? ‘셀프 컬래버레이션’이란 이름으로 열린 (솔비 씨) 첫 전시.

솔비(이하 솔)/ 제가 가수로 데뷔해 활동한 게 올해로 딱 10년째예요. 그리고 미술을 가까이한 건 5년째. ‘솔비’라는 이름으로 가수 활동을 한 5년과 ‘권지안’이라는 본명으로 미술을 마주한 5년간 내 안의 두 자아가 만나 협업한 전시였죠.

구/ 전 제목부터 마음에 들더라고요. 제목만으로도 어떤 전시인지 느낌이 왔어요. 실제로 바닥에 깐 캔버스 위에서 춤추며 퍼포먼스를 한 흔적으로 작품을 완성하는 솔비 씨를 보곤, 참 솔직한 사람이구나 싶었고요.

솔/ 정말요?(웃음) 전 사실 미술을 하기 전엔 자아의 정체성 혼란으로 오랫동안 괴로웠어요. 하지만 미술을 접한 후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죠. 근데 그러고 나니 슬쩍 내 자아의 실체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그림으로 그릴 생각을 하게 된거죠. 지금 제게 미술이란 제 내면의 자유분방함을 유형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작년 전시는 제가 그동안 해온 미술과 음악을 어떻게 함께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결정체였고요. 미술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오히려 더 솔직히 캔버스를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구/ 맞아요. 진심으로 그렇게 작업한 듯 보였어요.

솔/ 근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여기서도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저는 치유 목적으로 나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려왔는데, 전시를 할수록 주변에서 ‘메시지’가 있는 그림을 그려보라는 얘길 하는 거예요. 일기 같은 그림이 아니라, 뭔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을 그려보라고. 솔직히 전 지금도 그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돼요.

구/ 글쎄요. 꼭 그렇게 해야 할까요?

솔/ 그러니까요. 제 그림을 통해 무언가를 느끼고 또 공감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런 게 정말 필요할까요?

구/ 뭘 말하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는 이들도 결국 보고 들은 게 많아 그런 거겠죠.

솔/ 그게 뭔데요?

구/ (미술) 교육. 그게 사실 미술을 오랫동안 해온 이들에게도 걸림돌이 되거든요.

솔/ 맞아요, 교육. 실은 한편으론 그게 부럽기도 해요. 평생 자유롭게 내 맘대로 미술을 할 순 없을 테니까. 자유로운 아이디어만 가지고 미술을 하는 것에 저도 슬슬 한계를 느끼거든요.

구/ 아는 게 곧 깊이가 되기도 하니까요.

솔/ 그런 면에서 예전에 <아트스타 코리아>에서 ‘유학파’ 출신으로 유일하게 퍼포먼스 아트를 하며 자신감 있게 활동한 혜영 씨 모습이 그렇게 부럽더라고요. 그런데 혜영 씬 원래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지 않았나요?

구/ 조각을 했지만 즐기진 못했어요. 늘 그 외의 것에 빠졌죠. 학교에서도 주로 연극과 음악을 접했고요. 지금의 퍼포먼스 아트도 대학 졸업 후 영국 유학 시절 본격적으로 시작한 거예요.

솔/ 거기선 왜 갑자기 그걸 했는데요?

구/ 지도 교수가 그 길을 권하더라고요. 학교(골드스미스 대학교)에 ‘퍼포먼스 데이’라는 수업이 있어서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에 몇몇 작업을 했는데 반응이 좋았고, 저도 재미있어서 점차 흥미를 갖게 됐어요.

솔/ 처음엔 어떤 것부터 시작했는데요?

구/ 자전적 경험이었죠. 솔비 씨랑 같아요. 제 작품의 여러 꼭지 중 ‘실현하지 못한 꿈’을 표현하는 게 있어요. 예를 들어 전 여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는데, 단 한 번도 콩쿠르에 나가보지 못했죠. 이상하게 기회가 안 왔어요. 피아노를 칠 때 마음이 가장 안정되고, 그것만으로도 혼자 5시간 넘게 놀 수 있었지만 그걸 한 번도 누구 앞에서 뽐내지 못했죠. 그러다 유학 시절 학교에서 그 콩쿠르를 열어버렸어요. 검은색 쓰레기봉투 수십장으로 거대한 피아노를 만들고, 피아노 건반이 파도처럼 일렁이게 해 그 안에서 고뇌하는 제 자신을 표현했죠. 제목은 ‘질풍노도의 시기’.

솔/ 우와.

구/ 미술로 꿈을 이룬 셈이죠. 그 후 전 제가 이루지 못한 꿈을 꾸준히 작품으로 실현해왔어요. 그렇게 퍼포먼스 아트를 하다 보니 예술과 일상이 점점 하나 되는 신비한 경험도 할 수 있었고요. 그리고 제 주변인들의 반응도 재미있어졌어요. 이젠 제가 SNS에 뭐만 올리면 “아, 예술인가 봐요?”, “퍼포먼스하시는 거죠?” 같은 댓글이 달리죠. 그런데 솔비 씨는 어때요? 가수로서 무대에서 춤추는 것과 아티스트로서 전시장에서 퍼포먼스하는 것에 차이가 있나요? 지난 3월 안국약품갤러리 AG에서 연 <블랙 스완-거짓된 자아들>전에선 퍼포먼스가 끝난 후 혼자 펑펑 울었다고 들었어요.

솔/ 저는 둘이 많이 달라요.(웃음) 무대에서 노래할 땐 아무래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집중하죠. 그런데 전시장에선 아니에요. 거기선 저도 모르게 내 안의 무의식을 계속 불러일으키죠. 세트와 조명, 스테이지가 제 앞에 있는건 같지만, 타인의 요구도 나 자신을 바라보는 자의식도 다 내려놓고 무의식을 반영한 그림을 그리며 더 큰 ‘자기’로 통합되는 거죠. 무대에선 오해나 왜곡이 따라붙기도 하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퍼포먼스를 할 땐 그저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거.

구/ 전 당시 전시도 정말 멋지다고 느꼈어요. 전시장 한가운데에 엄청나게 큰 유리 큐브를 설치했잖아요.

솔/ 그 큐브가 제 ‘자아’를 상징해요. 그즈음 발표한 곡 ‘블랙 스완’에 맞춰 큐브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뮤직비디오도 찍는 퍼포먼스를 했죠. 실제로 큐브 안에 들어가면 사방이 거울이라 제 모습밖에 안 보여요. 움직일 때마다 낯선 제 얼굴을 발견하고, 그때마다 거기에 물감을 뿌렸죠. 음악과 미술이 부딪치는 파장을 경험한 게 큰 소득이었어요. 미술과 음악을 같이 하는 게 아직은 좀 낯설지만, 그 낯섦을 계속 마주하면 어떤 익숙함이 찾아올 것도 같아요.

엔터테이너와 아티스트 그 사이
구/ 방송 활동과 미술을 병행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해요? 연예인의 이미지와 미술가의 이미지는 서로 다르잖아요. 아무래도 애초에 미술인으로서 방송을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린 저와는 뭔가 느끼는 게 다를 것 같아요.

솔/ 사실 요즘 부쩍 그런 고민을 해요.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건 제가 가진 큰 무기고 또 잘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걸 함으로써 미술 활동을 하는 제 이미지가 너무 가볍게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거죠. 이전의 ‘셀프 컬래버레이션’ 시리즈도 사실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지만요.

구/ 맞아요. 그런 고민까지 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는 거잖아요.

솔/ 그럴까요?

구/ 그렇죠. 고민 자체를 작품화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솔/ 저는 예전부터 음악은 바다, 미술은 우물이라고 생각했어요. 바다는 멀리 퍼질수록 좋고, 우물은 깊게 팔수록 좋죠. 하지만 그 둘은 실제로 동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저는 방송 활동을 하는 ‘바다’와 미술 작품을 만드는 ‘우물’이 내 안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할지 늘 고민해요.

구/ 저는 사실 미술을 하기 전, 연기와 음악이 더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대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내가 정말 여길 가야 하나 갈팡질팡했죠. 하지만 결국 미술을 택했어요. 연기나 음악보다 미술이 포용할 수 있는 세계가 더 넓다고 생각했죠. 미술 안에선 사실 뭐든 할 수 있잖아요. 연극 안의 미술은 ‘무대미술’ 정도가 한계일 테지만, 미술로는 음악도 무용도 연기도 다 할 수 있죠. 미술은 정말 큰 무대예요. 그리고 전 그 미술을 통해 언젠가 배우와 가수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요.

솔/ 혜영 씨가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걸 현대미술의 일부로 여기는 걸 조금은 재미있다고 생각했죠. 어떻게 보면 그건 혜영 씨가 ‘엔터테이너’를 꿈꾸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거든요. 미술가도 이젠 유명해지고 싶은 거죠.

구/ 그렇게 되나요?(웃음)

솔/ 그렇죠. 저는 많은 아티스트가 엔터테이너처럼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들 그렇지 않은 척하죠. 현대미술은 늘 저 위 높은 곳에 고귀하게 있어야 한다고 믿고, 엔터테이너나 그런 걸 꿈꾼다고 여겨요. 하지만 솔직히 모든 창작자는 유명해지고 싶어 하지 않나요? 미술은 혼자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전 ‘자신의 의지로’ 여전히 유명해지지 ‘못한’ 이들이 앞으론 좀 더 솔직해졌으면 좋겠어요.

구/ 이야, 박수.(웃음)

솔/ 사실 지금 시대에는 어떤 것이든 다 현대미술이 될 수 있다고 하잖아요. 과감히 때려부수는 것도, 완전히 갈아엎는 것도 전부요. 전 그래서 현대미술가라면 유명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그 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작업의 일부고, 그걸 인정할 수 있는 ‘진짜 용기’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구/ 그것도 그렇지만, 전 엔터테이너와 미술가의 경계가 앞으로 점점 사라질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완전히 허물어져 사라질 날이 오겠죠.

솔/ 연예인과 아티스트의 경계가요?

구/ 네. 연예인과 아티스트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 ‘예술’자체가 사회의 전방위로 뻗어나갈 테니까요. 예술이 일상이 되는 세상.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세상.

솔/ 점점 그렇게 되고 있긴 하죠. 근데 ‘무엇이든 예술이 되는 세상’이란 말이 나온 김에 한 가지 질문. 혜영 씨, 예전 작업 중 남성의 정액 같은 걸로 뭔가 하는 게 있지 않았나요? ‘정자 장례식’이었나?

구/ ‘브라보 마이 라이프’예요.(웃음) 제 퍼포먼스 중 ‘장례식’ 시리즈가 몇 개 있어요. 저는 ‘삶 예찬론자’라 행복한 삶에 늘 관심이 많거든요. 그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얘기하기 위해 ‘죽음’이란 소재를 끌어와 작업하기도 하죠. ‘브라보 마이 라이프’는 재작년 <아트스타 코리아>에서도 보여준 적이 있어요. 실은 영국 유학 시절부터 해보고 싶은 거였는데, 당시 꼬박꼬박 학비까지 내주시는 아버지에게 ‘재료’를 부탁하기 뭐해서 포기했죠.

솔/ 듣기만 해도 재미있어요.

구/ 태어나지 못한 내 형제자매들에게 장례식을 치러주는 퍼포먼스였어요. 나와 너무 닮았지만 절대 만날 수 없는, 현재 세상에 없는 형제자매들을 위한. 퍼포먼스는 간단해요. 내가 석고로 작은 묘비 수십 개를 만들고 나름 장례식처럼 꽃과 와인을 준비해놓으면 고향(울산)에 계신 아버지가 ‘형제자매들’을 운구해주시는 거죠.

솔/ 형제자매들을 운구한다고요?

구/ 비닐과 종이로 겹겹이 포장한 아버지의 정액 묻은 휴지요. 그게 제겐 형제자매들이죠. 방송에선 그걸 아버지께 택배로 받아 미리 준비한 석고 묘비에 하나씩 붙였어요. 물론 검은색 상복을 입고. 그런 후 제가 “사랑과 정열을 위하여, 이재큘레이션(ejaculation)”이라고 외치면 등 뒤에 있던 남자들이 ‘사정’하는 것처럼 ‘빵’ ‘빵’ ‘빵’ 소리를 내며 끝나죠.

솔/ 그걸 정말 방송에서 했어요?

구/ 했어요.

솔/ 우와.

구/ 전 우리의 삶이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 것인지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것 말고도 비슷한 ‘장례식’ 퍼포먼스 시리즈가 몇 개 더 있어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먹는 김밥의 장례식을 해준 ‘김밥의 천국’도 있죠. 이건 제가 영국 유학 시절 BLT 샌드위치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 ‘Funeral Practice’의 한국 버전인데,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포장도 간편한 김밥이라는 음식의 장례식을 통해 인간의 삶을 지속하게 해주는 매개체(음식)와 그것의 죽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묘한 상황을 발견하는 작업이었죠.

진짜 아티스트의 삶이란?
구/ 앞으로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으세요? 아니, 일단 ‘예술가’로 남고 싶긴 한가요?

솔/ 그냥 ‘나’로 남고 싶어요.

구/ ‘나’가 뭔데요?

솔/ 작가의 삶도 살고, 가수의 삶도 살고, 방송도 하는 ‘나’요. 그 세 가지를 병행하며 계속 그 자리를 지키면서 살면 좋겠다고 자주 생각해요. 그랬을 때 내가 진짜 ‘나’로 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구/ 그중에 뭔가 하나라도 빠지면 ‘나’가 아닌 게 되겠네요.

솔/ 그렇죠. 아니, 진짜 하고 싶은 건 이런 거예요. 음악을 하든 그림을 그리든 퍼포먼스를 하든 <무한도전>에 나와 사람들을 웃기든 누군가에게 가슴속에 한평생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주고 싶어요. 그게 미술이든 예능이든 상관없어요. 뭐가 됐든 그렇게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게 저는 진짜 ‘예술가’라고 생각해요.

구/ 욕심도 많으시네요.(웃음)

솔/ 사실 이런 게 아티스트의 삶 아닌가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거. 그리고 왜 미술을 하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음악과 춤, 웃음을 주면 안 되는 거죠?

구/ 오래전에 그런 분이 계시긴 했어요. ‘살바도르 달리’라고.(웃음)

솔/ 그러는 혜영 씨는 어떤 예술가로 남고 싶어요?

구/ 저는 저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으면 해요. 사람들이 기존에 생각하지 못한 걸 제가 생각하고, 그래서 저를 통해, 그게 뭔진 잘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거죠. 전 그게 ‘예술’이고, 예술의 아주 중요한 기능 중 하나라고 봐요. 저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어요.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