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맛, 단맛, 커피 맛
커피는 혀보다 마음이 먼저 그 맛을 느낀다고 한다. 마음 가는 대로 맛도 따라간다. 그래서 커피는 쓴맛도 아니고 단맛도 아니다. 그냥 커피 맛이다.
베이징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갈 때처럼 커피 한 잔이 식사의 전부였다. 새로운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했다고는 하는데 코앞까지 젖힌 야속한 앞좌석 등받이는 무릎 대신 가슴을 짓눌렀고 엄마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앉은 뒷좌석 쌍둥이 남매는 비행기의 움직임을 실시간 보도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다. 비행 거리가 아무리 짧다 한들 단거리 기내식은 학교 급식보다 나을 것이 없었고 식판에서 오로지 손이 가는 건 생수뿐이었다. 열심히 식사를 나르던 승무원에게 “(밥 됐고) 커피 주세요”라고 말하며 순간 미안했지만, 아마 그녀가 식사 나르던 일을 멈추고 조르르 달려가 미지근해진 커피라도 대령하지 않았다면 ‘당분간 결코 비행기 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소심한 보이콧을 하며 아무도 모르게 혼자 분을 삭였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마크 펜더그라스크가 <매혹과 잔혹의 커피사>에 쓴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점유율 높은 향정신성 마약의 최대 원천이다”라는 문장은 꽤 설득력이 있다. 딱히 어디가 아프거나 무엇이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아리송한 상황에서, 한 알의 약으로도, 그 어떤 훌륭한 종교 지도자의 말씀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원인 불명의 불안과 분노, 초조함 또는 나태함이 밀려드는 상태에서 커피는 때에 따라 큰 역할을 한다. 그래서인지 스마트폰을 쥔 반대 손에 가장 많이 든 것이 커피라 할 정도로 커피 산업은 크고 빠르게 발전했다. 저자 마크 펜더그라스크는 “커피 산업의 역사를 안다면 커피를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커피 생산국인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내전 상황을 알려주고, 노동자의 인권은 생각하지 않은 채 커피값을 낮게 유지하는 데만 힘을 기울이는 미국의 행태를 고발한다.
커피 마녀사냥, 커피와 냉전 등 계속되는 커피의 역동적 역사에 머리가 아파진다면 신이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전국의 22개 로스팅 하우스를 총망라한 <커피 비경>과 함께 커피 여행을 떠나볼 것. 3평짜리 커피 하우스에서 번 돈으로 새 로스터를 한 대 사고 또 커피를 팔아 더 좋은 로스터를 사서 손님에게 최상의 커피를 대접하는 것이 인생의 낙인 22명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호사를 나도 누리러 떠나겠다고 번쩍 손들게 된다. 이쯤에서 전해주고 싶은 건 이거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아, 원두를 분쇄할 때나 핸드드립을 할 때 공기 중에 퍼지는 그 찰나의 커피 향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공간이 좁은 커피집을 찾으라는 것!
그런 커피집에 앉아 일본 여류 작가 4명의 단편 소설집 <사랑은 아메리카노 어쩌면 민트초코>를 읽다 보면 어느 쪽이 실재인지 구분하기 힘들 것이다. 한잔의 커피와 관련한 5가지 이야기는 비극과 희극이 섞여 있지만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끝맛은 달콤쌉싸래한 맛. 그중 찻집 ‘바토’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단편 ‘제비꽃 커피와 연꽃 젤리’에서 카페 주인 할머니 스미레 씨와 단골손님 하루카의 대화가 긴 잔향을 남긴다. “당신처럼 젊은 사람은 몸에 아직 쓴맛이 배지 않아서 몸이 쓴맛을 찾는 거겠죠.” “스미레 씨 몸에는 쓴맛이 많이 배었나요?” “그럼요. 긴 세월에 걸쳐 조금씩 배었지요. 날마다 잠자리에 들어 모로 누워 있노라면 쓴맛이 목까지 차올라요. 그럴 땐 달짝지근한 걸 마셔줘야 한답니다.” 당신이 원하는 건 어떤 맛인가? 쓴맛, 단맛, 아니면 커피 맛?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