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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집착

LIFESTYLE

수집가는 물건을 모으는 데만 치중하지 않는다. 오래된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해 삶 속으로 끌어들인다. 옛 카메라를 통해 창의적 영감을 얻는 남자와 낡은 컴퓨터를 모아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남자. 그들을 통해 본 수집의 가치.

사진 발명 초기의 카메라와 사진을 수집하는 이주용 교수.

시간의 기록을 찾는 일
부슬부슬 여름비가 내리던 날 평창동에 갔다. 북한산 남쪽 기슭에 위치해 서울에서 보기 드문 자연경관을 간직한 동네. 군데군데 자리한 갤러리와 담장 높은 주택이 이어지는 언덕길을 천천히 올라 연화정사에 다다랐다. 북한산 보현봉에서 뻗어 내리는 사자능선과 그 안에 소복이 들어앉은 집들이 한눈에 보인다. 평창동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손꼽히는 연화정사 바로 옆에 이주용 교수의 작업실이 자리한다. 비가 내린 탓인지 소슬한 기운을 머금은 작업실에 들어서자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사진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박물관에서 볼 법한 나무로 만든 오래된 앤티크 카메라와 빛바랜 사진들. 빈티지 카메라를 모으는 사람은 많지만 사진 발명 초기의 카메라와 사진을 수집하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이주용 교수는 국가기관이나 박물관에서 진행하기도 버거운 일을 묵묵히 이어왔다. 그 시작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대학 사진학과에 다니던 20대 초반,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라 미국의 브룩스 사진대학교에 진학했다. “첫 수업이 학교 안에 있는 사진 박물관을 관람하는 것이었어요. 당시 국내에서 배운 사진은 사람들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곳에서 사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어요. 사진이 지닌 다양한 관점, 일상뿐 아니라 보다 넓은 범주의 이야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쳤죠.”

1 앤토니 스튜디오 카메라.  2 루이스형 다게레오타입 풀 플레이트 카메라.

새로운 사진 세계에 눈뜬 그는 우연히 들른 벼룩시장에서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구입했다. 그 사진이 그의 컬렉션 인생을 열어주었다고 했다. “옷차림이나 표정, 자세 등을 보고 추정한 결과 백작처럼 보이는 남자의 초상 사진이었어요. 사진 한 장에서 역사와 문화, 사람 등에 관한 무수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죠. 제 생애 첫 수집품인 다게레오타입 사진이에요.” 다게레오타입은 1839년 프랑스의 루이 자크 망데 다게르(Louis Jacques Mande´ Daguerre)가 발명한 초기의 사진 기법을 말한다. 은판사진술이라 불리는 이 방식은 은도금한 동판을 거울처럼 광을 낸 후 요오드와 브로마이드 증기로 채운 상자 속에 넣어 감광성을 띠는 필름을 만들고, 이를 카메라에 넣어 촬영하는 방식이다. 복제가 불가능하며 현상에도 손이 많이 간다. 수은 증기로 현상하고 식염수로 감광되지 않은 요오드화은을 제거해야 선명한 은회색 사진이 완성된다. 이 사진은 그림 같은 묘한 빛깔과 질감으로 흑백사진과는 다른 매력을 전한다. 그렇게 사진 한 장에 마음을 빼앗겨 지난 30여 년간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비롯해 콜로디온(습판 방식) 프로세스의 카메라, 키가 큰 스튜디오 카메라까지, 400여 종의 앤티크 카메라와 수천 점의 사진을 모았다. “루이스형 다게레오타입 풀 플레이트 카메라와 브루노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를 가장 아끼죠. 제가 가지고 있는 루이스형 카메라는 미국에서 1850년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무브먼트(왜곡을 보정하는 기능)가 완벽하게 작동하는 최초의 카메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이 카메라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워싱턴DC로 날아가 공수해왔어요. 브루노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는 프랑스에서 발명한 첫 다게레오타입 카메라로 소장 가치가 있고요.” 수집가들을 보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지만 이러한 옛 카메라는 인터넷으로 찾기 어렵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지에서 활동하는 지인들이 제품을 발견하면 그와 정보를 공유하는 식이다. 세계 곳곳에 뻗어 있는 정보력을 동원해 최근 발견한 카메라가 또 하나 있다. 팬 로즈 프레스 카메라가 그것. 레일이 달려 밀 수 있는 집채만 한 카메라라고 설명한다. “디지털카메라는 사진을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옛날 카메라는 확대가 불가능하죠. 필름 포맷이 곧 사진 사이즈가 되니까요. 이 카메라는 30×60(inch) 크기의 거대한 필름이 들어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카메라예요. 이 정도면 실제로 큰 사물이나 풍경을 선명하게 담을 수 있죠. 그 감동은 어떨지 궁금해요. 지금 이 카메라는 영국에 있어요. 팔겠다는 사람은 있지만 천문학적 금액이라 망설이고 있죠.”

1 앤토니 스튜디오 카메라.  2 초상 사진 스튜디오 카메라.  3 브루노 다게레오타입 카메라.

그는 수집에 그치지 않고 옛 사진술로 자신의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다게레오타입으로 촬영하는 국내에 유일한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저에겐 사진을 찍는 과정이 중요해요. 결과는 그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최소치일 뿐이죠. 다게레오타입이나 앰브로타입, 신타입 등 옛 사진술은 한 번에 한 장밖에 찍을 수 없기 때문에 피사체를 더 깊이 있게 연구해야 해요. 만약 인물 사진이라면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탐구한 후 셔터를 누르죠.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진 하나의 인격체를 찾아가는 과정은 힘들고 고되지만 제게는 큰 의미가 있어요.” 현재 국내외를 돌며 ‘천연당사진관’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는 이주용 교수. 1907년에 문을 연, 한국 사진사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 천연당사진관을 매개로 전통 방식으로 기록한 사진을 전시하고 관람객에게 사진도 찍어준다. “사진관은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혼재하는 판타지 세계가 아닐까요?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특별한 순간을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진 한 장에 깃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라죠.”

국내외 빈티지 컴퓨터를 모으는 김권태 대표.

IT 시대를 연 유물
컴퓨터를 좋아한 한 남자가 있다. 컴퓨터와 기계를 제외한 삶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는 어릴 적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를 꿈꿨고, 기계공학을 전공해 국내 굴지의 자동차 회사에서 경험을 쌓았다. 현재 홈페이지 개발 업체를 운영하며 빈티지 컴퓨터를 수집하고 있는 김권태 대표. “10년 전쯤일 거예요. 일본 가정을 소개하는 TV 프로그램을 봤는데, 아빠와 아이가 함께 기차 모형을 수집하더라고요. 일본은 피겨나 프라모델만큼 기차 모형을 모으는 사람이 많잖아요. 아들과 함께 무언가 수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죠. 나중에 아들에게 물려줄 취미로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컴퓨터를 모으자고 생각했어요.” 수집가의 길을 결심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그가 처음 사용한 컴퓨터. 1983년에 구매한 금성의 FC-30이라는 8비트 컴퓨터가 그 주인공이다. 생애 첫 컴퓨터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걸 통해 베이식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처음 배웠다. 게임을 위한 수단이자 학습 도구였던 그 시절의 향수가 짙게 배어 있는 제품. 그는 인터넷에서 그 모델에 대한 글을 발견하고 수소문 끝에 손에 넣었다. “수집 초기에는 어릴 적 제가 사용해본 모델 위주로 구했어요. 1980년대에 퍼스널 컴퓨터 시대가 개화했고, 그 시기에 국내에서 생산된 제품이 주 타깃이었죠. 삼보컴퓨터를 비롯해 금성, 삼성, 대우 등 초창기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을 이끈 회사의 제품이에요.” 국내에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때라 생산 대수도 적고 대부분 폐기되어 구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반면 해외 브랜드의 경우 이베이를 통해 찾거나 직접 해외로 나가 구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컴퓨터 판매량이 많아 원하는 모델을 구하기 쉬운 환경이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용산이나 청계천에 가면 옛날 컴퓨터를 진열해두곤 했어요. 일본은 아직도 그런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도쿄의 아키하바라 같은 전자 상가에 가면 쓸 만한 옛날 컴퓨터가 꽤 많아요.”


1 텐디 TRS-80 모델   2 애플 IIC와 9인치 모노크롬.  3 IBM PC 컨버터블  4 코모도어 128.  5 애플 IIC 플러스와 플랫 패널 디스플레이.

이렇게 부지런히 모은 컴퓨터는 1920년대에 생산된 컴프토미터(기계식 계산기)부터 슈퍼컴퓨터까지 400여 대. 프린터나 디스플레이 같은 부속 제품을 합치면 450대가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숫자다. 더 놀라운 건 그중 절반이 애플 제품이란 사실이다. 지난해에 자신의 소장품을 모아 <스티브 잡스 5주기 추모전>을 열었을 정도로 애플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그. “스티브 잡스의 독창성을 존경해요. 과거 컴퓨터는 천편일률적이었어요. 철판으로 만든 박스 형태였고, 베이식 컬러 한 색상이었죠. 그런데 그는 다른 노선을 걸었어요. 1983년에 출시한 애플의 리사는 마우스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채용한 최초의 컴퓨터예요. 1984년에 나온 매킨토시는 오늘날과 같은 윈도 운영체제의 시대를 이끌었고요.” 디자인도 컴퓨터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신선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파워맥 큐브(2000년), 모니터 일체형 컴퓨터로 디스플레이를 상하좌우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아이맥 G4(2002년) 등 산업디자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제품도 애플 출신이다. 투명하거나 컬러풀하거나 또는 독특한 모양의 디자인을 통해 기존 컴퓨터의 틀을 과감하게 깬 애플 제품은 애착을 갖고 모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인다. 그렇다고 애플에만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는 애플과 IBM 등이 잘 알려져 있지만, 1970년대 후반은 미국과 유럽에서 많은 PC 브랜드가 태동한 시기다. 그 당시 애플과 견줄 만큼 유명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브랜드가 있다. 미국의 코모도어(Commodore), 아타리(Atari) 같은 생소한 이름. 코모도어는 1970~1980년대에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유명한 브랜드였고, 아타리는 ‘퐁(Pong)’이라는 1세대 비디오게임을 만들어 히트시킨 회사다. 8비트 컴퓨터 중 가장 많이 팔린 제품으로 기록될 만큼 인기를 끈 코모도어 64를 비롯해 아타리 400, 아타리 800XL 등 흔히 볼 수 없는 모델도 그의 귀한 소장품 리스트에 속해 있다.
기계는 오래되면 작동을 멈춘다. 부품이 없으면 수리도 어렵다. “전원을 켰을 때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실행하는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죠. 하지만 고장이 났다고 무리하게 고쳐 작동시키는 게 꼭 의미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는 제품이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수시로 전기밥(전원을 켜는 일)을 주고 상태를 체크한다고. 단, 만약을 대비해 똑같은 모델을 여러 대 구비해 고장이 나면 같은 부품으로 교체한다.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간직하는 것도 하나의 관리 방법이라고 강조하는 그의 컴퓨터는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듯 자연스럽게 빛이 바랬다. ‘대한컴퓨터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구리에 있는 창고에 가면 이러한 국내외 컴퓨터의 역사를 영접할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하면 누구나 무료로 방문 가능하다. “아직은 창고 형태에 가깝지만, 언젠가 제대로 된 컴퓨터 박물관을 여는 게 목표예요. 컴퓨터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테마별로 나눠 컴퓨터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과거의 컴퓨터를 전시해 현재 IT 시대가 어떤 과정을 거쳐 열렸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김권태 대표. 꿈꾸면 이뤄진다고 믿는 그는 아이들이 컴퓨터 박물관을 통해 훗날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줄지 상상해보고 새로운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에디터 문지영(jymoon@noblesse.com)
사진 선민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