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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LIFESTYLE

작가 백미경이 이번에는 크리에이터를 자처했다. ‘드라마 작가’와 ‘드라마 제작자’ 사이에서 그녀가 현재 고민하는 몇 가지에 대하여.

반 로썸의 T-엘레멘츠 다이닝 체어 디 에디트

드라마 작가로서 스타 영어 강사라는 남다른 이력이 있습니다. 2000년 MBC 프로덕션 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당선 이후 다시 드라마 작가를 하기까지 14년이나 걸렸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우리나라 드라마 작가 중에서 공모 당선을 가장 많이 한 작가가 아마 저일 거예요. 그런데 데뷔가 쉽지 않았어요. 가수와 비교하면 [k팝스타], <슈퍼스타K>에서 우승하고 나서도 앨범을 내지 못한 케이스죠. 처음 공모에 당선되고 잘 풀리지 않아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어요. 그러다 대구에서 나름 잘나가는 영어 강사가 됐고, 먹고살 만해지니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시나리오 공모에 도전했습니다. SBS, MBC, JTBC 등 가장 큰 작가 공모전에 모두 당선됐는데, 결국 편성해준다고 한 JTBC에서 <사랑하는 은동아>로 ‘입봉’했죠.
그렇게 어렵게 작가가 됐는데, 드라마 작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시나리오를 통해 3040 여성을 만족시키는 거라고 생각해요. 영어 학원을 운영할 때도 마찬가지였죠. 보통 엄마들이 30~40대였는데, 엄마들과 상담한 것이 내 인생의 토양이자 자양분이 됐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어떻게 하면 아줌마들을 기분 좋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할 만큼요.
현재 방영 중인 <나는 대놓고 신데렐라를 꿈꾼다>의 크리에이터를 맡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와 5년간 함께해온 보조 작가를 작가로 데뷔시켜주려고 기획하게 됐어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가장 행복했던 게 제자를 만드는 거였거든요. 작가로서 제 능력과 학원 강사를 했던 능력이 합쳐져 이 드라마의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늘 작품에서 복합 장르의 미덕을 구현합니다. <품위있는 그녀>의 경우 불륜을 다루는 통속극이면서도 미스터리와 스릴러 코드가 있었죠. <힘쎈여자 도봉순>이나 <힘쎈여자 강남순>은 히어로물이자 코미디물, 로맨스물이기도 했고요. 한 드라마 안에서 이렇게 복합적 장르를 다룬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 드라마는 대부분 하이브리드예요. 그런데 저는 코미디를 좋아해서 모든 장르에 코미디를 넣곤 하죠.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정통 코미디를 폄하한다는 거예요. 미국 에미상에서도 정통 코미디 드라마에는 상을 잘 안 주거든요. 블랙코미디에만 주죠. 다들 재미있고 웃긴 코드는 좋아하면서도 전반적 톤 앤 매너가 B급인 코미디는 작품으로 쳐주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이에 대한 반항으로 코미디를 더 쓰게 됐어요.
한국 드라마 최초의 여성 슈퍼 히어로물 <힘쎈여자 도봉순>을 집필하셨잖아요. 처음에는 흥행이 보장되지 않는 여성 히어로물을 제작하려는 방송사를 찾기 어려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시나리오가 나올 땐 저도 스타 작가가 아닌 데다 히어로물인 만큼 아무래도 일반 드라마보다는 돈이 많이 드니 달가워할 제작사가 없었죠. 그래서 B급 액션으로 바꿨는데, 흥행 전력이 없는 여성 히어로물이니 어떤 여자 배우가 선뜻 이 작품을 하겠다고 나서겠어요. 그런데 박보영 배우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는 의미 있는 작품에 함께하고 싶다고 했고, 상황이 완전 달라졌죠.
<더 글로리>, <닥터 차정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많은 한국 드라마가 사회 변화를 반영해 강렬한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외신 매체들이 한국 드라마 열풍 속 여성의 인물 변화에 주목하고 있고요. 하지만 작가님은 초창기부터 늘 여자가 중심인 작품을 그려냈죠.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제가 드라마를 시작할 때는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였어요. 로맨틱 코미디를 잘 쓰는 작가가 워낙 많았죠. 남들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여성 서사를 시작하게 됐어요.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니까. 여자들 이야기는 쓸 만큼 썼으니 이제 다른 걸 해보고 싶어요. ‘힘쎈 시리즈’도 내년에는 주인공이 남자예요. <힘쎈남자 장충동>으로 선보일 예정이죠.
작가님 드라마에서 또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어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요. 사실 사회적 소수자 이야기는 좀 하고 싶었어요. <마인>에 성소수자 이야기를 넣었을 때 방송국에서도 그렇고 주변에서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이야기가 아니니 쓰지 말라고 말렸거든요. 그런데 저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힘쎈여자 강남순>에서도 강남순 할머니의 러브 스토리가 나오면 실제로 순간 시청률이 내려갔죠. 심지어 저희 엄마도 노인들 사랑 이야기는 안 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다 사랑의 한 종류인데, 작가로서 제 소신은 지킬 수 있잖아요.
한국의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그려내는 한편, 막장 서사를 특유의 문체로 유려하게 변주해 K-드라마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또 다른 장르가 있나요? ‘29금’ 파격 멜로 치정극을 해보고 싶어요. 여자들의 감춰진 욕망을 자극해 서랍 속 코르셋을 꺼내게 하는 거죠.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이 본격화되면서 드라마가 쏟아지니 스토리텔러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와 시청자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둘 다 만족시키는 게 중요하겠지요. 늘 욕심을 내죠. 지금은 또 시청률이 높아질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해요. 멋모르고 쓸 때와 달리 지금은 너무 잘 아니까 무섭죠. 내 대본에 투자가 들어오고, 100명 이상 스태프가 움직이고, 또 배우가 내 대본을 바이블처럼 연구해 캐릭터를 만드는 걸 겪다 보면 내가 쓴 대본이지만 내 것이 아닌 거예요. 많은 사람이 대본대로 움직이니 작가들이 오만해질 수 있는데, 전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냥 드라마라는 게 있고 그 안에 많은 역할이 있는데, 나는 그냥 거기서 대본을 맡았을 뿐인 거죠.

 

에디터 이정윤(julie@noblesse.com)
사진 신유나
장소 협찬 디 에디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