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를 향한 오마주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밀라노 엑스포 개최를 축하하며 펼친 이벤트는 패션 브랜드가 현대미술 아티스트와 함께 선보인 새로운 형태의 예술이었다. 자연과 예술, 인간이 어우러진 퍼포먼스를 통해 아트의 영역에는 경계도, 한계도 없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밀라노 에르메네질도 제냐 본사에서 펼쳐진 ‘Fabulae Naturae’의 뮤직 퍼포먼스

왼쪽부터 안나 제냐, 다비데 올다니, 루시+호르헤 오르타 듀오
제냐아트가 들려준 ‘자연 이야기’
밀라노에 위치한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본사. 입구로 들어가기 전, 발걸음을 멈추고 작품을 감상하듯 외관을 한참 바라보았다. 쉽게 시선을 떼지 못한 건 당연한 일이다. 에르메네질도 제냐 그룹의 아트 프로젝트인 제냐아트(ZegnArt)가 이번 행사를 위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탈바꿈시켰으니까. 지난 5월 2일, 제냐아트가 밀라노 엑스포 개최를 기념해 준비한 ‘Fabulae Naturae(자연 이야기)’를 공개하는 자리에는 일찍부터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자연’이라는 주제 아래 음악, 푸드, 아트, 패션이 어떻게 하나의 퍼포먼스로 어우러질까. 사전에 접한 정보만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건물 전체가 숲으로 바뀐다’는 아이디어가 실현된 장면을 확인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건물로 들어서자마자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벽면의 플라워 패턴과 바닥에 뻗은 나뭇가지 형태의 금속 장식. 자연을 형상화한 독특한 설치 작품에 이끌려 안쪽으로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셰프 다비데 올다니(Davide Oldani)가 마련한 미식 여행이 시작된다. 특별한 숲 속에 초대된 기분으로 셰프의 노련한 손길을 지켜보며 그의 요리를 맛보는데, 문득 샴페인 글라스 부딪치는 경쾌한 소리 사이로 맑은 플루트 선율과 새소리가 들려온다. 이번 이벤트의 핵심인 뮤직 퍼포먼스가 시작된 것.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놀랍게도 다양한 생물을 형상화한 마스크를 쓴 뮤지션들이 계단으로 내려와 평화로운 자연의 소리를 연주하곤 사라진다. 숲의 비주얼과 함께 신비로운 인상을 남긴 이 짧은 공연의 제목은 ‘Symphony for Absent Wildlife’.
눈과 귀를 매료시킨 연주로 잠시 마법 같은 순간을 느꼈고, 계속해서 탐험하듯 제냐아트가 마련한 숲 속의 저녁을 누볐다. 밀라노에서 겪은 가장 특별한 순간이었다.
큐레이터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왼쪽)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CEO 질도 제냐
영감을 실현한 컬래버레이션
밀라노 엑스포의 주제 ‘Feeding the Planet, Energy for Life’에서 영감을 얻은 이번 이벤트는 에르메네질도 제냐 패밀리의 일원이자 제냐 재단의 대표인 안나 제냐(Anna Zegna)가 총지휘했다. 그리고 큐레이터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Maria Luisa Frisa)가 전시 기획을 맡았으며, 듀오 아티스트 루시+호르헤 오르타(Lucy+Jorge Orta)가 제냐 본사를 숲으로 연출하고 제냐만을 위한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의 스타 셰프 다비데 올다니가 합세해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이 완성되었다.
이탈리아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제냐아트는 제냐 그룹이 예술의 무형적 가치를 구체적인 작업을 통해 소개하고 공유하겠다는 의도로 시작한 현대미술 프로젝트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후원하거나 공공 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퍼블릭 프로젝트, 세계적 예술가의 작품을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스토어에 전시하는 글로벌 스토어 프로젝트, 주로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스페셜 프로젝트가 있다. 제냐아트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2012년 로마 국립 현대미술관(MAXXI)과 런던 패션대학의 패션센터가 후원한 ‘Fabulae Romanae(로마 이야기)’인데, 그때도 마리아 루이사 프리사가 큐레이팅을 맡았고 루시+호르헤 오르타 듀오가 설치 작업을 했다. 같은 큐레이터와 아티스트가 참여한 속편인 ‘Fabulae Naturae’는 3년 전 로마를 이야기한 방식으로 이번에는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펼쳤다.
1990년대 초반부터 함께 작업하며 현대사회의 이슈를 주제로 새로운 형태의 행위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루시+호르헤 오르타 듀오는 음식에 대해서도 다양한 탐구를 해온 아티스트 부부다. 그 출발은 파리의 한 마켓에서 버려지는 음식을 이용해 전시를 구성한 것. 이후 음식과 환경에 관한 윤리적 주제는 푸드 설치 작품으로 이어졌고, 여러 도시에서 ‘70×7 The Meal’이라는 이름으로 아트와 음식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번에 이들은 제냐 아카이브의 원단 컬렉션인 허버라인 펀드(Heberlein Fund)의 2200가지가 넘는 꽃무늬 패브릭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것을 제냐의 본사 건물에 표현했을 뿐 아니라 꽃무늬 패턴을 이용해 500개 한정판 플레이트도 제작했다. 이 플레이트의 판매 수익금은 이탈리아환경기금(Fondo Ambiente Italiano)을 통해 친퀘테레 국립공원(Cinque Terre National Park) 내에 자리한 푼타메스코(Punta Mesco) 마을의 보존 기금으로 사용한다. 아트 프로젝트가 단순히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참여 아티스트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연유산을 보호하는 데도 동참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진중한 기업 철학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다. 제냐아트의 ‘Fabulae Naturae’에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 셰프가 꿈꾼 것은 예술과 자연 그리고 푸드까지 무엇 하나 치우침 없이 평등하게 공존하는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공감이 바탕이 되어 다양한 요소가 조화를 이룬 이번 컬래버레이션을 더욱 빛나게 한 것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아트에 대한 열정과 사회 환원을 위한 노력이었다. 브랜드 고유의 DNA를 지키면서 예술적 실험을 계속해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소비자에게도, 혹은 관람객에게도 행복한 일이다.

이번 아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큐레이터와 아티스트들은 에르메네질도 제냐의 꽃무늬 패브릭 패턴에서 영감을 받아 본사 건물을 하나의 숲으로 꾸몄다.

루시+호르헤 오르타 듀오가 환경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제작한 500개 한정 플레이트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네질도 제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