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의 파트너
시가, 시계, 자동차, 와인, 제트기, 패션 그리고 미술. 아트 바젤은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최고급 문화를 즐기고 만드는 현장으로 떠나보자.
아트 바젤의 외부 전경

아트 바젤 기간에는 시내 곳곳에서 메인 파트너인 ‘UBS’의 로고를 볼 수 있다.

‘UBS Art Collection’의 큐레이터 스테반 맥코브리

롤스로이스 모터 카의 후원으로 제작한 아이작 줄리언의 신작 ‘Stone Against Diamonds’를 바젤의 한 성당에서 공개했다.
“억만장자와 어울리고 싶으세요? 최고의 방법은 슈퍼리치가 매년 떼로 모이는 문화, 스포츠, 비즈니스 이벤트 중 하나에 참여하는 겁니다.” 광고 카피와 같은 이 문장은 2015년 1월 스위스의 글로벌 금융 기업 UBS와 싱가포르의 자산 관리 컨설팅 회사 웰스-X(Wealth-X)가 발표한 ‘억만장자 소셜 캘린더(Billionaires’ Social Calendar)’의 소개 멘트다. 억만장자의 현황을 분석하고 전 세계 최고 부자들이 필수적으로 참여하는 빅 이벤트를 모아놓은 보고서로 스위스 다보스 포럼, 스노 폴로 월드컵, 칸·베니스·베를린 영화제, 유럽과 미국의 패션 위크, US 마스터스 골프, 싱가포르와 모나코에서 열리는 요트 쇼, G8 서밋, 윔블던 테니스 대회, 스위스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APEC 정상회의 등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미술계 행사로는 아트 바젤이 포함됐다.
매년 홍콩(3월), 바젤(6월), 마이애미(12월)에서 열리는 아트 바젤은 세계 최대, 최고의 미술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억만장자 소셜 캘린더’에서 언급한 다른 이벤트와 비교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누구나 관람할 수 있는 퍼블릭 행사지만, 전시장 곳곳에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관람 시간에 따라 VIP 카드도 몇 단계로 나뉘며, 일반 관람객은 들어갈 수 없는 VIP와 VVIP만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VIP 라운지는 아트 바젤이 단순한 아트 페어가 아니라 하나의 고급 브랜드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전 세계에서 모인 부자들은 값비싼 인테리어 가구와 소품으로 세련되게 꾸민 이곳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자신의 라이프스타일과 예술 취향을 과시하는 동시에 쉽게 접할 수 없는 귀한 정보를 얻는다. 1·2층 전시장과 VIP 라운지까지 관람을 마치면, 아트 바젤이 세계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것을 모아놓은 거대한 유리 장식장처럼 느껴질 정도.
바젤은 행사를 후원하는 기업을 스폰서가 아니라 ‘파트너’라는 좀 더 친근한 이름으로 부른다. 이 파트너들은 바젤의 명성과 역사를 함께 써나가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앞서 언급한 보고서를 만든 UBS는 1994년부터 아트 바젤의 메인 파트너로 활동했다. 업계에서는 UBS가 아트 바젤 후원에 대해 은행 이사회의 승인조차 받지 않을 정도로 큰 이득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아트 바젤과의 공생 관계로 그만큼 많은 새로운 부자를 고객으로 끌어모았다는 얘기일 터.
UBS뿐 아니라 금융 기업과 아트 페어는 매우 돈독한 사이다. 아트 바젤 홍콩의 전신인 홍콩 아트 페어의 후원자였던 도이체방크는 프리즈 아트 페어와 쾰른 아트 페어를, ING 은행은 브뤼셀 아트 페어를 후원한다. 폭발적으로 팽창하던 미술 시장이 정점에 오른 2006년에는 매년 미술 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Power 100’에 UBS와 도이체방크가 각각 49위와 50위로 사이좋게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그해의 1위는 기업가이자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차지했다).
아트 바젤의 파트너로 선정된 금융을 포함한 시계, 시가, 자동차, 와인과 위스키, 제트기 등 최고급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기업은 VIP 라운지에 기업의 컨셉에 맞는 우아한 부스를 꾸린다. 보통 행사장의 가장 높은 층에 자리 잡는 이곳은 VIP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재확인하는 자리고, 기업 입장에서는 그들의 고객이 누구인지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하는 유용한 플랫폼 역할을 한다. 파트너들은 회사의 컬렉션으로 작은 전시를 열거나 작가나 디자이너, 건축가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부스를 장식해 자사 제품을 소개하는 창구로 활용한다.
만약 당신의 손에 아트 바젤의 VIP 카드가 쥐여져 있다면, 각 기업에서 제공하는 다음과 같은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다. BMW의 최신 리무진을 타고 공항에서 호텔로, 호텔에서 전시장으로 편안하게 이동한다. 물론 체크인한 호텔 방에서 VIP를 위해 준비한 특별 선물을 받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전시를 관람하다 피곤하면 3층의 VIP 라운지 소파에 앉아 루이 샴페인 한잔을 마시며 뭉친 근육을 풀거나, 다비도프 시가 한 대를 곁들일 수도 있다. 오데마 피게 부스에서 장인이 솜씨 좋게 시계를 다루는 장면은 미술 감상과는 또 다른 좋은 볼거리다. 전시장 주변에서 열리는 다른 전시와 이벤트가 궁금하다면 UBS가 제작한 미술 정보 애플리케이션 ‘UBS Planet Art’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기업이 문화 예술계에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 공을 들이는 것은 이제 낯설지 않다. 그러나 투자 대비 효율성을 따지며 계산기를 두드리는 기업 운영의 특성상 무엇을 어떤 방식으로 후원해 얼마만큼 성과를 낼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일 터. 아트 바젤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값비싼 ‘상품’인 미술품을 거래한다는 점에서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승부를 거는 명품 시장의 꼭대기에 있다. 게다가 페어에 오는 사람들은 그 시장을 움직이는 주역 아닌가. 아트 바젤에 입성하려 발을 동동 구르는 내로라하는 갤러리들처럼 많은 글로벌 기업은 아트 바젤에서 억 소리 나는 작품을 구매할 힘과 부를 지닌 고객을 융숭하게 대접하면서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 아트 바젤 파트너들의 후원 활동을 통해 오늘날 국제 미술계의 시스템과 글로벌 기업이 그려가는 ‘윈윈’ 전략의 지도를 살펴보자.
UBS의 컬렉션 중에서 회화만 선별한 전시 전경

스마트 기기를 활용해 글로벌 아트 신의 생생한 뉴스를 체크할 수 있는 ‘UBS Planet Art’
UBS, 아트 바젤의 오랜 파트너
UBS는 1994년부터 아트 바젤을 후원해왔다. 페어의 공식 로고만큼 크게 새긴 UBS의 로고는 행사 기간 내내 어디서나 쉽게 눈에 띈다. UBS 그룹의 최고경영자 세르지오 P. 에르모티는 아트 바젤 탄생 45주년을 기념하는 도록에서 UBS가 왜 바젤을 후원하게 됐는지 간략하게 언급한다. 고객의 동시대 미술을 향한 열정과 관심 때문이라고. UBS는 ‘당신의 미술은 우리의 능력이다’를 모토로 ‘Art Competence Center’라는 컨설팅 부서를 따로 두고 있다. 미술 작품을 컬렉션하려는 고객을 대상으로 작품에 관한 리서치부터 작품의 보관, 보험, 운송, 전시회 출품, 감정 등에 대해 상담하고 그에 맞는 알토란 같은 정보를 제공한다. 1994년부터 아트 바젤을 후원해온 UBS는 3만5000여 점에 이르는 ‘UBS Art Colleciton’으로 명성이 높다. 컬렉션 범위는 1950년대부터 동시대까지 방대하고 다양하다. 소장품은 미술관에 대여하거나 특별전 형식으로 세계 곳곳에 소개한다. 6월 17일부터 10월 4일까지 밀라노 근대미술관에서 프란체스코 보나미가 UBS의 소장품 중에서 회화만 모아 기획한 대규모 기획전 가 열렸다. 지난 3월 아트 바젤 홍콩에서는 소장품 중 하나인 로이 릭턴스타인의 ‘The Melody Haunts My Reverie’를 테마로 페어장을 찾는 부모의 자녀를 위한 미술 학습 공간 ‘UBS Junior Art Hub’를 마련했다. 또한 세계적 요리사 피에르 가니에르가 UBS의 소장품 중에서 이우환, 시그마르 폴케, 사이 트웜블리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신메뉴를 만다린 오리엔탈의 레스토랑에서 공개했다. VIP 라운지 부스는 데이비드 호크니, 앤디 워홀, 양혜규, 길버트 & 조지, 크리스틴 아이 추 등의 작품으로 채웠다. 6월 바젤에서는 덴마크의 루이지애나 미술관과 협력해 소장품 중에서 루치안 프로이트의 에칭 30여 점을 대거 선보였다. 올해 UBS는 미술 애플리케이션 ‘UBS Planet Art’를 런칭했다. 2014년 12월 마이애미에서 베타 버전으로 선보였다가 3월 아트 바젤 홍콩에서 공식 프로모션 행사를 열었다. 국제 미술계의 주요 전시 소식과 뉴스를 한데 모아 스냅샷으로 제공하는 유용한 앱으로 UBS의 오랜 후원 활동 노하우가 집약돼 있다. UBS는 구겐하임, 테이트 모던, 뉴욕 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과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구겐하임과는 2012년부터 ‘Guggenheim UBS MAP Global Art Initiative’를 실시해 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미술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오데마 피게의 VIP 라운지 전경

오데마 피게의 후원으로 제작한 로빈 마이어의 ‘동시성’ 내부 전경
오데마 피게, 예술의 경지에 이른 워치메이킹
2012년부터 아트 바젤의 파트너로 활약한 오데마 피게는 1875년 스위스 시계 제조업의 본고장 르브라쉬에서 시작한 기업이다. 오데마 피게는 그 역사만큼이나 최고의 테크닉과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시계를 생산한다. 럭셔리 라이프스타일의 상징물인 시계 회사가 아트 바젤을 후원하는 일은 무척 자연스러워 보인다. 신비로운 동굴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아트 바젤 VIP 라운지에서 만난 마케팅 이사 팀 세일러는 미술과 시계 제작에 깃든 공통점으로 ‘장인정신’을 꼽았다. 오데마 피게는 아트 바젤 이외에도 조나 마코(Zona Maco)와 아르코마드리드(ARCOmadrid) 등의 아트 페어를 후원했으며, 2012년 대표 제품 ‘로열 오크’의 출시 40주년을 기념해 전 세계 6개 도시에서 <아방가르드부터 아이콘으로>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기도 했다. 6월 바젤에서는 ‘오데마 피게 아트 커미션’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한 로빈 마이어의 작품 ‘동시성(Synchronicity)’을 공개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작가는 음악, 반딧불이, 생물발광 박테리아와 귀뚜라미 등 이질적인 요소를 결합한 거대한 설치 작품을 선보였는데, 오데마 피게 워치메이킹의 찬란한 유산과 잘 어울린다는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냈다.
‘BMW Tate Live’ 프로그램으로 열린 보리스 샤르마츠의 공연 모습

듀오 디자이너 슬기와 민이 제작한 ‘BMW Guggenheim Lab’의 로고
BMW, 미술 여정의 동반자
바젤을 찾는 VIP는 BMW가 제공하는 픽업 서비스에 감동한다. 지난 3월 홍콩에서 BMW와 아트 바젤이 협업한 새 프로젝트 ‘BMW Art Journey’를 발표했다. 자동차를 제조하는 기업의 특성을 살려 ‘여정’이라는 개념을 부각시켰다. 여기서 여정은 신진 예술가들의 작품 제작 지원과 그들의 해외 활동을 위한 프로모션을 의미한다.
마이애미와 홍콩에서 열린 아트 바젤에 참가한 작가 중 최종 후보자 3인을 선정하고, 그들에게 작품 제안서를 받은 뒤 최후의 1인을 가린다.
홍콩에서는 ‘디스커버리 섹터’에 출품한 타지마 미카(Mika Tajima)와 트레버 양(Trevor Yeung), 샘슨 영(Samson Young)이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심사를 맡은 구겐하임 미술관 디렉터 리처드 암스트롱, 아시아 아트 아카이브 디렉터 클레어 수, 뮌헨 렌바흐 미술관 디렉터 마티아스 뮐링 등은 샘슨 영을 최종 우승자로 지목했다. 홍콩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제목을 따온 ‘For Whom the Bell Tolls: A Journey into the Sonic History of Conflict’라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작곡을 공부한 그는 사운드 아트와 군사 기술의 관계를 접목한 독창적인 작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BMW는 아트 바젤 이외에도 40여 년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 등의 분야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1975년 알렉산더 콜더가 BMW 3.0 CSL로 제작한 ‘BMW 아트 카 프로젝트’는 프랭크 스텔라, 로이 릭턴스타인, 앤디 워홀, 로버트 라우션버그, 제니 홀저, 올라푸어 엘리아손, 제프 쿤스 등으로 이어지며 대중적 볼거리로 큰 화제를 모았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는 구겐하임 미술관과 협업한 ‘BMW Guggenheim Lab’을 진행했다. 뉴욕, 베를린, 뭄바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한 이 프로젝트는 미술, 건축, 디자인, 교육 등을 통해 도시 삶의 변화를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슬기와 민이 시각디자인을 맡아 한국에서도 관심을 모았다. 최근에는 테이트와 함께 ‘BMW Tate Live’를 선보이고 있다. 지난 5월 프랑스 안무가 보리스 샤르마츠(Boris Charmatz)가 터빈 홀을 댄스장으로 바꾼 퍼포먼스로 출발한 프로그램은 라이브 퍼포먼스와 라이브 웹 방송 이벤트를 중심으로 각종 공연과 세미나, 워크숍 등을 이어갈 예정이다. BMW는 아트 바젤뿐 아니라 프리즈 아트 페어에도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아트 바젤에서 만난 다비도프의 CEO 한스 크리스티안 회이스가르트

2014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공개한 다비도프의 리미티드 에디션. 작가 다니엘 클레망(Daniel Clement)이 제작했다.
다비도프, 지역 예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다
프리미엄 시가로 유명한 다비도프는 191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지노 다비도프가 연 타바코 숍으로 출발했다. 1970년 스위스의 외팅거와 합병해 외팅거-다비도프 그룹을 만들었고, 이후 시가뿐 아니라 코냑, 커피, 향수, 펜, 남성 정장, 가죽 제품 등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난 6월 아트 바젤의 VIP 라운지에서 만난 다비도프의 CEO 한스 크리스티안 회이스가르트는 페어의 VIP가 회사의 주요 고객과 많은 부분 겹친다고 설명했다. 현재 다비도프의 주된 예술 후원은 ‘Davidoff Art Initiative(DAI)’를 통해 이뤄진다. 아트 바젤의 공식 파트너로 합류한 2012년에 출범한 DAI는 도미니카공화국과 캐리비언 지역의 미술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다비도프는 도미니카공화국에 가장 넓은 농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DAI는 지역 경제와 밀접한 글로벌 기업의 모범적 사회 공헌 활동으로 꼽힌다. 다비도프는 올해 아트 바젤에서 ‘Davidoff Art Residency’ 프로그램을 공식 발표했다. FHNW 미술 디자인 아카데미와 협업해 아틀리에 몬디알(Atelier Mondial)에서 캐리비언 지역의 작가와 큐레이터가 창작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한 것. 슈퍼리치를 위한 작가와의 컬래버레이션도 특별하다. 지난 3월 홍콩에서는 프랑스 작가 리종 드 콘(Lison de Caunes)이 전통 수공예 기법으로 제작한 다비도프의 최고급 시가 케이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