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 홍콩 2025: 회복의 감각, 예술의 확장
3월 말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린 기간, 도시는 예술이 선사하는 신선한 활기로 가득했다. 일곱 가지 키워드로 알아본 올해의 아트 바젤 홍콩.
회복세를 실감하다
“Better than last year(작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아트 바젤 홍콩 VIP 프리뷰 첫날 저녁, 페어에 대한 소감으로 가장 많이 들려온 이야기다. 팬데믹 여파와 중국의 정치적 상황으로 그간 다소 침체된 이전과 비교하면, 올해 페어는 프리뷰 첫날부터 역동적 분위기가 뚜렷하게 감지되었다. 판매를 알리는 스티커가 부스 곳곳에 빠르게 붙었고, 미술 애호가들의 활발한 질문과 적극적인 반응도 눈에 띄었다. 현장에서 만난 국제갤러리 윤혜정 이사는 “팬데믹 이전 수준을 완전히 회복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글로벌 메가 갤러리의 블루칩 작가 작품이 주로 거래되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중소 규모 갤러리의 젊은 작가 작품이 활발히 거래되고 있다”고 전했다.
방문객 구성에도 변화가 있었다. 한국과 싱가포르,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온 젊은 컬렉터의 참여가 크게 늘었고, 이들은 작가의 명성보다는 자신이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과 참신한 시각언어에 반응했다. 아트 바젤 측에서 언론에 배포한 세일즈 리포트에 따르면, 고가 작품 거래 외에도 2만~5만 달러의 중간 가격대 작품이 고르게 판매되었고, 이는 컬렉팅 양상이 다층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성이 들려주는 이야기
아트 바젤 홍콩이 열리는 기간 홍콩 전역에 마련된 전시 공간에서는 여성 작가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하우저앤워스 홍콩에서 열린 루이즈 부르주아의 개인전
이 밖에 가고시안의 사라 제, 데이비드 즈워너의 에마 매킨타이어, 화이트 큐브의 린 드렉슬러 등 홍콩에 위치한 글로벌 메가 갤러리는 여성 회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일제히 조명했다. 타이쿤의 JC 컨템퍼러리 뮤지엄은 아트 바젤 홍콩 기간 여성 미술가 3인의 전시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는데, 그중에서도 알리차 크바데의 전시 [Pretopia]는 과거 감옥으로 쓰인 타이쿤의 공간적 특성을 활용해 건축적 구조물과 조형 언어를 결합한 설치로 호평받았다. 아트 바젤 홍콩의 메인 스폰서인 UBS가 마련한 UBS 라운지에서도 인슈전, 강서경, 수지트라 마타이 등 여성 작가의 텍스타일 기반 작업을 통해 젠더와 환경, 정체성 이슈를 다뤘다.
브랜드와 예술의 유기적 협업
올해 아트 바젤 홍콩은 예술과 상업의 경계가 얼마나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MGM은 올해 처음 ‘디스커버리 어워즈’를 신설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신민 작가의 ‘Usual Suspect’ 연작에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신민 작가는 여성 서비스 노동의 현실을 ‘머리망과 리본’이라는 시각언어를 통해 디스커버리 섹터의 P21 갤러리 부스 전체를 설치 작품으로 구성했다. 작가는 상금 5만 달러와 함께 MGM 호텔이 위치한 마카오에서 향후 전시 기회를 갖게 된다. 루이 비통은 무라카미 다카시와 협업한 다양한 제품을 통해 자사 부스를 전시 공간처럼 연출해 브랜드의 예술적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아트큐브’ 부스를 통해 자사 첨단 디지털 기술과 이건용 작가 등 동시대 주요 아티스트의 작품을 결합한 몰입형 예술 경험을 제공했다. 예술과 브랜드는 이제 상호작용하는 2개의 문화 플랫폼으로 기능하며, 브랜드 철학과 예술의 맥락이 만나 시너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대교체와 컬렉팅 문법의 변화
앞서 말했듯이 페어 기간 내내 아시아 지역의 젊은 컬렉터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젊은 컬렉터들과 대화를 나눈 한 갤러리스트는 이들이 전통적 감식안보다는 가치관과 감각에 반응하는 작품에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접근한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드사르트 갤러리는 작가 Mak2의 신작 회화 연작 ‘Home Sweet Home Backyard’를 중심으로 부스를 구성했다. 이 시리즈는 가정의 뒷마당을 배경으로 한 세 폭의 회화 작업과 연계된 비디오게임을 함께 전시했다. 관람객은 회화 속 세계를 모티브로 한 게임 속에서 금을 채굴하며, 현실과 가상이 교차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또 많은 갤러리가 QR코드를 활용해 작품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디지털 기반 작업을 통해 관람객과 쌍방향 소통을 유도했다. 젊은 수집가들은 메시지의 명확성, 사회적 연관성, 온라인 공유 가능성 등을 중시하며, 그들의 선택은 미술 시장의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컬렉팅 문법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 기반 예술의 확장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예술은 더 이상 특정 장르에 머물지 않고, 동시대 미술의 핵심 언어로 자리 잡았다. 올해 인카운터 섹터에서 화제를 불러 모은 루양의 설치 작품 ‘DOKU, The Flow’가 대표적 사례다. 불교 철학, 사이버 세계, 3D 게임 환경을 결합한 이 작업은 관람객을 디지털 우주로 안내했으며, 대형 LED 스크린, 인공지능(AI) 아바타, 환상적 사운드 연출을 통해 몰입도 높은 체험을 제공했다. 루양의 작업은 시각적 화려함을 넘어 존재와 정체성, 자아의 비물질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많은 관람객이 긴 시간 작품 앞에 머물며 이에 응답했다. 이 외에도 여러 갤러리 부스에서 AI,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 다양한 기술을 결합한 작품을 전시했다. 이는 디지털 기술이 예술적 표현의 핵심 수단이자 감각적 경험을 확장하는 도구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몰입형 전시 현장이 된 갤러리 부스
최근 아트 페어 현장에서 주목을 끄는 흐름 중 하나는 갤러리 부스 자체를 하나의 몰입형 전시 공간으로 구성하려는 시도다. 관람객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공간 속으로 들어가 작품을 체험하게 하는 방식으로, 아트 페어의 전시 언어를 다층화하는 흐름이다. LA 기반의 애넛 엡기 갤러리는 앨릭 이건의 회화 연작을 중심으로 실제 작품 속 배경에 등장하는 꽃무늬 벽지를 부스 전체에 적용해 몰입형 공간을 연출했다. 이 벽지는 캘리포니아 화재로 전소된 작가의 스튜디오에 실제 붙어 있던 것으로, 작업에 정서적 깊이를 더했다. 관람객은 그림 속 공간에 들어선 듯한 감각을 통해 작가의 기억과 감정에 직접적으로 감응했다. 이 밖에도 인카운터 섹터에 전시된 프랭크 왕 예펑의 ‘Desert Garden’은 LED 스크린과 유리, 금속, 맞춤형 바닥 매트를 활용해 고비사막에서 영감받은 유목적 풍경을 통해 존재의 이동성과 시적 전환을 사유하도록 했다.
홍콩을 새롭게 주목하다
“문화적 서사를 재정의하고, 창의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글로벌 문화의 중심지로서 홍콩의 역할을 재확인했다”는 아트 바젤 홍콩 디렉터 앙젤 시앙-리의 말처럼, 아트 바젤 홍콩은 페어가 열리는 홍콩이라는 도시를 재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M+ 미술관 외벽에 상영된 호추니엔의 영상 작업 ‘Night Charades’는 홍콩 영화 황금기의 명장면을 AI로 재조합한 작업으로, 도시의 기억과 정체성을 시적으로 회고할 수 있었다. 비영리 기관 파라사이트가 큐레이팅한 필름 섹션 또한 홍콩 작가들의 작업을 전면에 내세우며 홍콩이 단순한 글로벌 아트 허브가 아닌, 문화 생산지로 기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아트 바젤 홍콩은 도시의 과거와 미래, 예술과 사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동시대 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에디터 정규영(ky.chung@noblesse.com)
사진 아트 바젤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