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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자카르타’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ARTNOW

세계 인구 순위 4위인 인도네시아는 작가와 컬렉터 역시 많아 21세기 현대미술의 중심축을 이룰 만큼 커다란 미술 시장이다. 올해 새롭게 단장한 ‘아트 자카르타’를 더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 세나얀 입구.

지난 8월 30일부터 9월 1일까지 자카르타 컨벤션 센터 세나얀(Jakarta Convention Centre Senayan)에서 열린 ‘아트 자카르타(Art Jakarta)’는 호평 일색이었다. 처음 연 행사가 좋은 평가를 받기란 좀처럼 쉽지 않음에도 호평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규모는 크지 않았다. 총 70개의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이 중 40개가 14개국에서 온 해외 갤러리다. 우리나라에서는 로스앤젤레스 갤러리와 함께한 백 아트를 포함해 아라리오갤러리, 갤러리 선 컨템포러리, 예화랑, 아틀리에 아키, 컬럼스 갤러리 등 총 여섯 곳이 참가했다.
원래 인도네시아에는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와 ‘바자 아트 자카르타’가 있었다. 아트 바젤 디렉터 출신 로렌초 루돌프가 주도한 아트 스테이지 자카르타는 서구 갤러리를 초청하는 등 아트 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의 장점을 벤치마킹하며 2016년 화려하게 시작했다. 하지만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갑자기 취소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 한편 2009년 론칭한 바자 아트 자카르타는 국내 갤러리 중심으로 해외 갤러리 초대도 노력하던 평이한 아트 페어였으나 전 운영진을 바꾸고 쇄신을 꾀해 올해 ‘아트 자카르타’로 이름을 바꿔 다시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11년의 역사를 가진 바자 아트 자카르타가 새 단장을 한 셈. 기존 페어가 유명 페어의 장점을 취하려 노력한 반면, 현재 아트 자카르타는 철저히 ‘아시아’에 포커스를 맞췄다. 서구 유명 갤러리보다는 배짱 든든하게 자국과 아시아의 대표 갤러리를 중심으로 초대했고, 아시아 컬렉터에 집중했다.

1 앨버트 요너선 세트야완(Albert Yonathan Setyawan)의 세라믹 작품. ‘태양 숭배(Solar Worship)’ (2015~2019)의 표면.
2 아트 자카르타 전경.

주연화 아라리오갤러리 디렉터는 아트 자카르타가 동남아시아에 초점을 맞춘 아트 페어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아시아 유명 국제 페어인 아트 바젤 홍콩과 상하이 웨스트번드 아트 앤 디자인(West Bund Art & Design)을 모방하지 않고 동남아시아에 집중한 점이 놀라웠습니다. 국제적 페어면서도 지역성을 갖추고 있으니 ‘글로컬(glocal)’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글로컬’은 세계를 의미하는 글로벌(global)과 지역을 의미하는 로컬(local)을 조합한 신조어로, 새로운 아트 자카르타를 표현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단어다.
인도네시아는 총 1만7509개의 섬과 2억7000여 명의 인구를 가진 나라이니만큼 사회적·문화적으로 매우 다채롭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 중국 등 이웃 나라와의 교류도 자유롭고 그만큼 포용력을 지니고 있다.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 10개국 연합) 최대 경제 대국답다.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신봉하지만, 이것이 소통 문제를 야기하는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사회적으로는 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분위기다. 그러기에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실험적 작품을 좋아하며, 뚜렷한 메시지를 담은 작품에 관심을 갖는다.

필리핀 작가 로널드 벤투라 (Ronald Ventura)의 작품으로 꾸민 야부즈 갤러리 부스 입구.

“인도네시아 2~3세대 컬렉터들은 작품을 투자 개념으로만 보지 않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신진 작가를 발굴하려는 이가 많죠. 젊은 컬렉터들은 서로 정보를 교류하고, 자국뿐 아니라 해외 작가에게도 관심이 많습니다.” LA에서 활동하는 김기범 교수(소더비 인스티튜트 아트 비즈니스, 커먼웰스 앤 카운실 대표)는 인도네시아 컬렉터의 수준이 높다는 걸 실감했다고 설명한다. 많은 컬렉터가 유명 작가의 작품에만 관심을 갖지만, 인도네시아는 부모 대부터 수집해온 젊은 컬렉터가 많아 도전을 즐기고 배우려는 자세를 지니고 있다고. 실제로 예화랑의 부스를 방문한 인도네시아 젊은 부부는 노준 작가의 작품에 대해 설명을 듣고 즉석에서 4만 달러(약 4700만 원)의 스테인리스스틸 조형물을 구입했다. 그들은 처음 본 작가의 작품에도 거부감이 없었고,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이동욱, 이진주 등 우리나라 젊은 작가와 인도네시아 작가의 작품을 출품한 아라리오갤러리도 실험적 작품 위주로 판매됐다.
30개의 인도네시아 갤러리 부스 중에서는 로 프로젝트(ROH Projects), 에드윈 갤러리(Edwin’s Gallery), 루치 아트 스페이스(RUCI Art Space)를 주목할 만하다. 로 프로젝트는 ‘로 프로젝트 프로젝트(ROH Projects Projects)’라는 건너편의 또 다른 부스에 도무지 팔릴 것 같지 않은 깨진 유리로 만든 난해한 작품을 전시했다. 루치 아트 스페이스는 재기 발랄한 인도네시아 작가 6명의 작품을 선보였다. NASA의 탐사 로봇 큐리오시티가 촬영한 사진과 인도네시아 자연주의 화가의 그림을 결합해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 라디날 인드라(Radhinal Indra)의 아크릴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가 중 한 명인 에코 누그로호(Eko Nugroho) 역시 맹활약했다. 그의 작품 ‘Moving Landscape’와 ‘Happy to be Alienated’는 컨벤션 센터 중심에 우뚝 서서 관람객의 포토 스폿이 되었다. 그의 작품은 자수, 만화, 그림자 인형극에서 영감을 받아 한 번 보기만 해도 기억에 남을 만큼 강렬했다. 그는 또한 어린이를 위한 미술 강좌와 자선 경매 행사에도 적극 참여했다.

3 한국의 아라리오 갤러리는 이진주, 이동욱, 좀펫 쿠스버다난토, 에코 누그로호 작가 등과 참여했다.
4 로 프로젝트 부스에 전시된 팝아트 작품.

요즘 중국 경제가 흔들리고, 홍콩에서는 연일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 분쟁 때문에 세금이 더 오르고, 작품 대금을 달러로 지불하기 어려워졌다. 이에 아시아에 진출한 서구 갤러리들은 불안감을 약간 느끼고 있지만, 아시아 작가와 컬렉터의 힘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작가 대부분 욕야카르타(Yogyakarta), 반둥(Bandung)에 거주하고 있다. 욕야카르타와 반둥에 미술대학이 있고, 물가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성향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대개 욕야카르타 작가는 손재주가 뛰어나고, 반둥 작가는 개념 미술을 한다고들 말한다. 인도네시아는 작품 매체와 사이즈에 따라 다르지만 세금이 7~9%로 높지 않은 편이고(아시아에서는 한국, 홍콩만 미술품 거래가 면세다), 영어도 통하기 때문에 더없이 매력적인 나라다.
누가 자카르타를 교통 체증과 공기 오염이 심각한 도시라고만 말했는가? 흥미로운 작품, 선량한 사람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자카르타에서는 약간의 교통 체증조차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화제가 되었던 할리우드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이 떠올랐다. 백인 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싱가포르 부호와 얽힌 아시아인의 삶에 집중해 이목을 집중시킨 영화다. 부유하면서 취향이 뚜렷한 진정한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이곳에 있는 게 아닐까? 젊은 작가와 컬렉터가 만들어내는 활기가 가득한 아트 자카르타의 내년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에디터 김미한(purple@noblesse.com)
이소영(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