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컬렉션을 입은 호텔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은 호텔을 상상해본 적 있는가? 호텔이 특정한 ‘페르소나’를 표현하고 이를 알릴 때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예술 작품이다. 공간의 개성을 확장하고, 호텔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주며, 방문 경험의 가치를 높이는 아트 컬렉션. 각각의 정체성과 꼭 맞아떨어지는, 독창적인 아트 컬렉션을 갖춘 호텔을 모았다.
MACAM
리스본의 알칸타라 · 벨렘 예술지구에 자리한 MACAM은 전에 없던 독특한 콘셉트의 뮤지엄 호텔이다. 호텔의 모체가 된 것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컬렉터 아르만도 마르틴스(Armando Martins)의 개인 컬렉션이다. 포르투갈 작가는 물론 토마스 슈트루트, 존 발데사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등 국제적 작가의 작품을 포함해 600여 점의 작품을 소유한 그가 18세기 궁전 건물 팔라시우 콘드스 다 히베이라 그란드(Palácio Condes da Ribeira Grande)를 매입해 64개의 객실과 2000㎡ 규모의 전시 공간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을 탄생시킨 것. 너른 정원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컬러풀한 원형 구조물은 조제 페드루 크로프트(José Pedro Croft)의 설치 작품으로, 마치 이곳이 현대미술을 포용하는 예술적 장소라는 도발적 선언처럼 우뚝 서 있다. ‘예술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만든 공간인 만큼, 호텔은 미술관과의 경계를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1층 로비 공간에는 뮤지엄 티켓 부스와 호텔 리셉션이 함께 자리하며, 층을 오르면 자연스레 객실로 연결되는 구조다. 룸은 간결하고 현대적으로 꾸몄으며, 모든 객실에 딸린 발코니는 미술을 감상하는 하나의 창 역할을 한다. 앤절라 불럭(Angela Bulloch)의 알록달록한 기둥 조각을 비롯해 정원에 설치한 대형 조각 작품 대다수를 객실에서 조망할 수 있기 때문. 기획 전시가 열리는 1층 갤러리 외에, 라이브 아트 공간 ‘아카펠라(àCapela)’ 방문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18세기 채플을 개조한 이곳에서는 뼈대를 고스란히 남긴 아름다운 건축적 디테일과 함께 카를로스 아이레스(Carlos Aires)의 몰입형 미디어 설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THE RITZ-CARLTON, CHICAGO
시카고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일리노이 공대 크라운몰과 판즈워스 주택 등 현대건축 거장들이 남긴 명작으로 유명한 도시다. 더불어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보물 창고인 시카고 현대미술관(MCA Chicago)이 자리해, 예술 여행객에게 빼놓을 수 없는 문화도시로 손꼽힌다. 미시간 애비뉴에 위치한 리츠칼튼 시카고는 2023년 약 1억 달러 규모의 대대적 레노베이션을 통해 도시의 건축과 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작품 13점을 새롭게 수집하며 한층 예술적 깊이를 더했다. 호텔 로비 중앙에 자리한 이저벨라 크루즈(Isabella Cruz)의 유리 설치 작품 ‘Flying Wave’는 미시간 호수의 잔잔한 물결을 모티브 삼아, 시카고 특유의 수직적 건축 리듬과 자연의 유려한 흐름을 동시에 포착했다. 로비 한쪽 벽면을 채운 작품은 미국 팝아트의 아이콘 로이 릭턴스타인의 대표작으로,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의 역동적인 한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새롭게 단장한 ‘프레지덴셜 스위트’는 ‘작은 미술관’을 콘셉트로 꾸며 르네 마그리트, 릭턴스타인, 제임스 로젠퀴스트 등의 명작을 감상하며 예술과 함께하는 호화로운 시간을 선사한다. 또 호텔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한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는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재스퍼 존스, 로버트 라우션버그, 도널드 저드 등 20세기 미국 현대미술을 빛낸 거장들의 작품을 마주할 수 있다. 시카고 예술 탐험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손색없다.

로즈우드 홍콩 티 라운지 공간에 걸린 데이미언 허스트의 ‘Zodiac’.
ROSEWOOD HONG KONG
로즈우드 홍콩은 오픈 5년 만인 2024년, ‘월드 베스트 호텔 50’에서 3위를 차지하며 최고의 서비스와 시설을 갖춘 월드클래스 호텔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심에는 ‘로즈우드’ 브랜드의 독특한 철학이 자리한다. ‘A Sense of Place’, 각 호텔이 위치한 도시나 지역의 고유한 역사나 예술을 호텔 디자인과 인테리어, 아트 컬렉션 등에 반영한다는 의미다. 아트 바젤 개최지일 뿐 아니라 최고급 옥션 하우스가 즐비한 컬렉터의 도시에 위치한 호텔답게, 로즈우드 홍콩은 ‘예술’을 주요한 정체성으로 삼아 꾸준히 아트 컬렉션을 넓혀가고 있다. 야외 안뜰에서 헨리 무어의 청동 조각 ‘Three Piece Reclining Figure’가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고, 로비에서는 걷는 커플을 형상화한 린 채드윅의 청동 조각 ‘Pair of Walking Figures – Jubilee’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외에도 호텔은 적재적소에 다양한 국적의 역동적인 현대미술 컬렉션을 배치했다. 엘리베이터 로비에 걸린 조 브래들리의 추상회화 ‘Da Free John‘, 리셉션 룸에서 만날 수 있는 왕커핑의 목조 조각 ‘Bird III’ 등, 무심코 눈길이 가는 공간마다 세심한 큐레이션으로 선별한 작품이 자리하고 있는 것. 카페에는 홍콩의 차찬팅 문화를 기념하는 빈티지 실버 티스푼 컬렉션 설치 작품이 놓여 있고, 티라운지 ‘버터플라이 룸’에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나비 모티브 팝아트 작품 ‘Zodiac’이 걸려 있는 등 위트 있는 작품 선택 역시 흥미롭다. ‘Artistic Journey of Discovery’라는 프로그램도 운영해 도슨트와 함께 호텔의 아트 컬렉션을 둘러보는 한편, 홍콩 예술가와 함께하는 아트 투어도 즐길 수 있다.
DE L’EUROPE AMSTERDAM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은 인상주의 대표 화가 반 고흐의 작품 세계를 가장 풍부하게 만날 수 있는 예술의 도시이자, 현대 디자인의 상징적 존재인 디자인 컬렉티브 드루그(Droog)를 낳은 아방가르드한 디자인 도시로도 명성이 높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창의적 영감을 자극하는 이 도시에서, 더 흥미로운 은신처에 머물고 싶다면 드 르 유럽 호텔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의 전통적 건축물 외관과 달리, 그 안을 채운 콘텐츠는 과연 암스테르담의 창의적 면모를 극한까지 반영한 모습이다. 2023년, 호텔은 오픈 124년 만에 진행한 레노베이션의 일환으로 네덜란드어로 ‘집’을 의미하는 ‘t Huys’ 프로젝트를 전개했다.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크리에이터 14인에게 각자 창의적 아이덴티티를 반영한 객실을 자유롭게 꾸미도록 한 것. 이렇게 탄생한 객실이 ‘Valerie Creative Agency Suite’, ‘Sisters Janssen Suite’ 등 14개에 이른다. 그중 반 고흐 뮤지엄과 협력해 탄생한 ‘Van Gogh Museum Suite’에서는 고흐의 살아생전 자필 편지, 스케치, 소장품 등을 살펴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투숙 전 반 고흐의 그림 3점 중 하나를 선택하면 머무는 동안 고품질 3D 복제품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현대사진을 주력으로 소개하는 라베스테인 갤러리가 꾸민 ‘Ravestijn Gallery Suite’에서는 륏 판베이크, 마이클 베일리-게이츠, 이네즈 & 피노트의 사진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패션 디자이너 로날트 판데르켐프가 자신의 페인팅과 콜라주 아트워크로 꾸민 ‘RVDK Suite’, 네덜란드 디자인 브랜드 KOKKE 하우스가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과 시립미술관의 전시 공간을 테마로 꾸민 ‘KOKKE House Suite’도 흥미로운 선택이 될 것이다.
THE LONDONER
더 런더너 호텔은 2021년 런던 웨스트엔드의 레스터스퀘어에 문을 열었다. 이들은 이름으로 압도하는 유명 작가의 작품을 구매하기보다, 호텔이 위치한 지역의 역사와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트 컬렉션을 세심하게 큐레이션해 공간 곳곳에 배치했다. 특히 ‘연극과 공연의 심장부’라는 레스터스퀘어의 문화유산과 런던이라는 도시의 국제적 정체성을 고려해 대부분 영국 출신 작가의 작품을 선택함으로써 컬렉션의 통일성을 꾀했다. 큐레이션의 탁월함은 호텔 전반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먼저 더 레지던스의 파우더 룸에는 넬슨 제독부터 헨리 8세의 왕비들까지, 영국의 상징적 인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초상을 한데 모아 흥미로운 내러티브를 구성했다. 6층 트래펄가 스위트에는 ‘트래펄가 해전’을 재해석한 에드 피어먼의 사진 작품을 배치했고, 조슈아스 태번 레스토랑에는 한때 레스터스퀘어에 거주한 초상화가 조슈아 레이놀즈를 주제로 벽화를 그려 넣어 위트를 더했다. 이 밖에도 ‘달’을 모티브로 제작해 로비 천장을 장식한 앤드루 레이의 조각 작품 ‘Moonhead’, 리셉션 뒤로 걸린 팀 워커의 사진, 줄리언 오피가 영국 코니시 해안을 그린 프린트 작품 등도 더 런더너 특유의 모던하면서 무심한 미감을 흥미롭게 반영하고 있다.
글 박지혜(프리랜서)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