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페어의 영민한 전략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아트 페어가 개최되고 있는 요즘, 각 주최 측은 유수의 갤러리를 유치하고 많은 컬렉터를 불러들이기 위해 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총동원하고 있다. 갤러리 역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기회인 만큼 어느 아트 페어에 나갈지 신중하게 선택하고, 그 특성에 맞는 ‘전략적 참여’를 고민하는 추세다.
아트 바젤 홍콩의 인카운터 섹션에 전시된 추룽선의 거대한 수묵화 작품
최근 돋보인 전략, 중국의 수묵화
지난 3월 개최한 아트 바젤 홍콩은 주최 측의 기획력과 갤러리의 전략이 착착 맞아떨어지며 시너지를 발휘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최 측은 비엔날레를 방불케하는 대형 프로젝트 중심의 인카운터, 한 작가의 개인전처럼 부스를 꾸미는 대신 중앙에 집중적으로 부스를 모은 인사이트,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 작품을 선보이는 디스커버리의 입체적 삼단 구성을 통해 컬렉터와 큐레이터의 입장을 두루 배려했다. 아시아에서 열린 아트 페어인 만큼 인카운터 섹션은 대부분 아시아 작가의 차지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추룽선(Xu Long-sen)의 거대한 수묵화를 선보인 한아츠 TZ 갤러리의 과감한 시도는 국제 아트 페어에 임하는 중국 갤러리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했다. 갤러리의 대표 장쑹쩡(Chang Tsong-zung)은 일찍부터 중국의 예술가를 국제 미술계에 소개해온 주역으로, 인카운터 특별전뿐 아니라 아트 페어 부스도 모두 수묵화로 채웠고, 시내 페더 빌딩에 자리한 갤러리에서도 추룽선 개인전을 개최하며 중국 수묵화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의지를 확고히 표명했다. 이 갤러리의 큐레이터 엘사 추이(Elsa Tsui)에 따르면 출품작의 반 이상을 판매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11월 아부다비 아트 페어에서도 ‘현대 문인화의 확장’을 주제로 출품작을 구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펄 램 갤러리 역시 지속적으로 중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략을 펼쳤다. 아트 페어에서는 해외 작가의 작품도 함께 선보였지만 페더 빌딩 갤러리에서는 중국 현대 추상화를 모은 이파이(Yi Pai) 전시회를 기획했다. 이 파이는 1970년대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중국의 현대미술 경향을 지칭하는 가오밍루의 이론으로, 일본의 구타이 . 모노하와 한국의 단색화처럼 중국 현대미술 경향에 이름을 붙이고 브랜드화하려는 전략의 일종이다. 갤러리들이 내세우는 중국의 수묵화 전략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수묵은 세계 미술 시장에 나서는 확고한 오리지널리티의 증명이며, 추상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 여파가 이어진다면 한국의 동양화 작가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홍콩의 쿠 갤러리는 프린지 클럽 레지던시를 통해 홍콩에 머무르던 홍지윤 작가를 픽업해 5월 런던 글로벌 아트 페어의 이머징 아티스트 특별전 출품을 결정했다. 세련된 색감의 수묵으로 완성한 화려한 동백꽃과 흑백으로 그린 매화를 통해 동양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선보이고, 시와 함께 어우러진 작품으로 문학적 토양이 단단한 런던의 컬렉터들에게 다가간다는 전략이다.
홍지윤, Life is colorful – Fistful of clear blue water slipping through each finger,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 162x130cm, 2010_런던 글로벌 아트 페어 출품작
지역과 컬렉터의 특성에 따라 작품 걸기
갤러리들이 계획을 세워 출품했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경우, 아트 페어 도중에 과감하게 작품을 교체하기도 한다. 아트 바젤 홍콩 첫날, VIP 고객의 눈길을 끌기위해 앤디 워홀의 작은 자화상 페인팅을 중앙에 내건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는 별 반응이 없자 일반 관람객이 많은 일요일엔 다른 작품으로 교체했다. 또 개장과 동시에 독일의 현대미술 작품을 다수 판매했다고 공표한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는 아트 페어의 규모와 컬렉터의 수준을 고려해 가격 중심으로 작품을 선정한다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해외 주요 갤러리의 한 담당자도 아시아의 아트 페어에 출품할 때 아직은 고가의 작품을 준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10억 원 이상의 작품을 현장에서 구매하는 컬렉터는 드물다는 평이다. 아트 바젤 홍콩에 서도호 작품을 들고 나온 리먼 머핀 갤러리는 대형 작품을 밖에 내걸고, 부스 안쪽 숨은 공간에는 작은 바느질 작품 10여 점을 걸었다. 첫 거래 고객을 만들기 좋은 2000만~3000만 원 정도의 작은 작품은 개장과 동시에 다수 팔려나갔다.
하지만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전략을 마련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는 없다. 모든 갤러리에서 비슷한 생각으로 부스를 구성할 테니 컬렉터의 눈에는 식상하고 지루하게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뉴욕의 경우 아머리쇼, 펄스, 스코프, 레드닷, 디바 뉴욕, LA 아트 등 3월에 열리는 국제 아트 페어만 6개에 이른다. 다른 갤러리 부스와 차별화할 수 있는 방법은 오히려 여러 작품을 보여주는 것보다 한 작가나 한 작품에 주목하는 마이너스 전략이 효과적이다.
ⓒMunetoshi IWASHITA
아트 페어 도쿄 2014의 전경
Courtesy of Linda Nylind/Frieze
지난 가을 개최된 프리즈 런던 2014에 참여한 가고시안 갤러리
멀리 내다보기
진짜 전략은 아트 페어 현장에서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 베이징 엘 갤러리에 근무하는 조혜정 큐레이터는 중국에 진출하는 한국 갤러리들이 사전 홍보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트 페어에서 처음 본 갤러리의 낯선 작품을 덜컥 사는 컬렉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와 같이 아트 페어의 역사가 짧고 신흥 컬렉터가 늘어나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컬렉터가 사전에 작가나 작품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아트 페어에서 최종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 면에서 올해 국제갤러리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맞춰 베니스의 전시장을 빌리고 단색화 작가들의 특별전을 기획한 것은 세계 여러 아트 페어에 진출하기 위한 포석을 마련하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이 가장 효과적인 SNS 매체로 떠올랐다. 특히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펄스 아트 페어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출품작을 구매한 것이 알려지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론 작품을 보지도 않고 결정할 정도의 식견과 확신은 이미 그가 아트 컬렉터로서 충분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지금은 아트 페어나 갤러리, 양쪽 모두 전략으로 무장하는 시대다. 관람객 역시 꾸준히 다양한 전시와 페어를 참관하고, 즐기고, 공부하며 ‘안목’이라는 무기를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
글 김영애(이안아트컨설팅 대표) 사진 제공 아트 바젤 홍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