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오페라여!
오페라를 사랑하는 이여, 오페라가 낯선 이여, 여름 더위에 온 정신을 빼앗겨버린 이여, 다 같이 한국 오페라의 본고장 대구로 향하자.

1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 포스터.
2 로비에서 열린 생생한 프레 콘서트 현장.
3 대구오페라하우스 백스테이지 투어에 참여한 관객들.
대한민국 오페라 탄생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오페라 공연과 행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그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9월 14일부터 10월 21일까지 펼쳐지는 제16회 대구국제오페라축제다. 대한민국 오페라의 자긍심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Opera and Human’이라는 주제로 오페라 축제를 마련했다. ‘영원한 오페라, 꿈꾸는 사람’을 부제로 오페라의 과거·현재·미래와 관객을 잇는다. <돈 카를로>, <윤심덕, 사의 찬미>, <유쾌한 미망인>, <라 트라비아타> 등 메인 오페라 4편을 주축으로 오페라 콘체르탄테 <살로메>, 대구 곳곳의 소공연장에서 선보이는 소극장 오페라 등 굵직한 공연이 축제를 빛낸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선보이는 광장 오페라에 주목하자. 대구 삼성창조캠퍼스 광장과 이시아폴리스 쇼핑몰 근처 광장에 오페라 <라 보엠> 2막의 배경인 모무스 카페를 재현, 관객이 작품 속으로 직접 들어가 오페라를 감상할 수 있다. 수성못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미리 보는 오페라 축제’, 대구미술관에서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개최하는 ‘신여성이 사랑한 예술’, 무료 강연 ‘오페라 오디세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함께한다. “예년과 달리 9월에 대구국제오페라축제를 연다. 9월이 해외 극장의 비시즌인 만큼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역량 있는 아티스트를 대거 초청했다.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수준을 한껏 끌어올렸다”는 배선주 대구오페라하우스 대표의 자신감이 응축된 올해 축제의 면면을 살핀다.

오른쪽_2013년 <돈 카를로> 공연 장면.
개막작의 영광은, <돈 카를로(Don Carlo)>
일시 9월 14일(금요일) 19:30, 16일(일요일) 17:0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대구오페라하우스에서 자체 제작한 베르디의 중기 대작 오페라 <돈 카를로>가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포문을 연다. 베르디가 사랑, 배신, 오해로 인한 비극과 인간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걸작 <돈 카를로>는 16세기 스페인 궁정 실화에 기반해 펼쳐진다.
스페인 국왕 필리포 2세는 프랑스와 국가 간 화합을 위해 아들인 카를로 왕자의 약혼녀 엘리자베타와 결혼한다. 절망한 카를로를 위로하던 로드리고는 슬픔을 덜어주고자 플랑드르의 독립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권유하고, 이에 그는 왕에게 플랑드르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간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결국 카를로는 칼을 뽑아 왕을 위협하다 반역죄로 체포된다. 아들의 신뢰도, 어린 아내의 사랑도 받지 못해 낙심한 필리포 2세 앞에 종교재판관이 나타나 카를로를 부추기는 로드리고를 없애라는 제안을 한다. 하지만 그는 충실한 신하인 로드리고마저 잃을 수밖에 없는 지독한 현실이 괴롭기만 한데…. 감옥에 갇힌 카를로를 찾아간 로드리고는 자신이 반역죄를 짊어질 것이라고 말한 뒤 곧바로 자객에게 살해당한다. 로드리고 덕분에 무죄를 인정받은 카를로는 할아버지인 카를로 5세의 무덤이 있는 수도원으로 가 엘리자베타와 이별의 인사를 나누지만 왕에게 그 장면을 들키고, 아들을 체포하려는 왕의 눈앞에 카를로 5세가 나타나 카를로를 데리고 무덤 속으로 사라진다.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흥미진진한 스토리는 베이스 연광철,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권재희, 바리톤 이응광이 그려낸다. 그중에서도 특히 연광철을 놓치지 말 것. 1993년 도밍고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1994년부터 10년에 걸쳐 독일 슈타츠오퍼 정단원으로 활동한 그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과 잘츠부르크, 미국 메트로폴리탄 등 최고의 무대에 섰다. 지난 7월 독일 정부가 수여하는 궁중 가수의 칭호 ‘카머젱거(Kammersanger)’를 받은 그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의 가치는 충분하다.

왼쪽_2017년 오페라 콘체르탄테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공연 장면.
콘서트 같은 오페라, <살로메(Salome)>
일시 9월 18일(화요일) 19:3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하는 오페라를 일컬어 ‘오페라 콘체르탄테’라고 한다.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오페라 <살로메>가 대구오페라하우스와 독일 베를린 도이체 오페라극장의 합작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관객을 만난다.
기원전 3세기경, 헤롯 왕은 자신의 형을 죽이고 형수와 결혼한 것으로 모자라 의붓딸 살로메까지 차지하려 한다. 하지만 살로메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왕과 왕비를 비난한 죄로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다 요한의 목소리를 듣고 사랑에 빠진 살로메는 경비대장 나라보트를 유혹해 요한을 감옥에서 빼낸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 요한에게 강한 증오심을 느낀다. 헤롯 왕은 연회장으로 돌아온 살로메에게 자신을 위해 춤을 추면 원하는 바를 전부 들어주겠다 약속하고, 살로메는 ‘일곱 베일의 춤’으로 왕을 매혹시킨다. 살로메가 원한 것은 요한의 머리였고, 헤롯 왕은 병사에게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한다. 죽은 요한의 머리에 입을 맞추는 살로메를 본 헤롯 왕은 그 광기를 비난하며 그녀를 죽인다.
이렇게 충격적인 내용으로 유명한 <살로메>지만, 이번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선 시각적 충격보다는 작곡가 슈트라우스의 현란하고 실험적인 관현악을 주목한다. 독일을 대표하는 베를린 도이체 오페라극장과 한국 성악가의 기가 막힌 협연을 기대해도 좋다.

4 대구오페라하우스 외부 전경. 대구오페라하우스 5 내부 객석 모습.
빈 오페레타의 결정체, <유쾌한 미망인(Die Lustige Witwe)>
일시 10월 4일(목요일) 19:30, 6일(토요일) 15:0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작곡가 레하르는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의 성공으로 백만장자 반열에 올라 부와 명성을 동시에 안았다. 대구오페라하우스와 오스트리아 뫼르비슈 오페레타 페스티벌이 합작해 빈 오페레타의 절정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초창기 미국 뮤지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작품을 선보인다.
프랑스에 있는 상상의 나라 폰테베드로에서 은행가인 남편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부유한 미망인 한나가 주인공이다. 재산 때문에 수많은 남자의 구애가 빗발치자, 한나의 재산이 해외로 빠져나갈까 봐 걱정하던 체타 대사는 그녀의 옛 연인 다닐로 백작을 끌어들인다. 헤어진 후에도 여전히 서로를 그리워하던 두 사람은 무도회에서 재회하고 다시 사랑을 꿈꾼다. 다닐로는 여전히 한나를 좋아하면서도 그녀의 재산이 부담스러워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러던 찰나, 한나는 체타 대사의 청혼을 거절하기 위해 “재혼을 하면 재산이 사라진다”는 거짓말을 남기고, 이에 다닐로는 한나에게 속마음을 고백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은 끝내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흥미진진한 스토리도 매력이지만, 귀를 사로잡는 왈츠의 경쾌한 선율로 가득한 오페레타 <유쾌한 미망인>에서 놓쳐서는 안 될 곡을 추천한다.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아리아 ‘빌랴의 노래’와 관현악 연주가 매력적인 이중창 ‘입술은 침묵하고’를 기억해두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극, <윤심덕, 사의 찬미(Yun Simdeok, The Praise of Death)>
일시 9월 28일(금요일) 19:30, 29일(토요일) 15:0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올해 대구국제오페라축제에서 가장 관심을 모으는 작품은 창작 오페라 <윤심덕, 사의 찬미>가 아닐까. 영남오페라단과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합작한 이 창작 오페라는 1920년대 초·중반 조선과 일본을 배경으로, 비운의 한국 최초 소프라노 윤심덕의 짧지만 찬란한 생애와 일제강점기 나라와 예술을 위해 헌신한 김우진, 홍난파, 홍해성, 채동선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1921년 일제강점기, 도쿄로 유학을 떠난 윤심덕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한 순회공연을 준비하는 비밀 파티장에서 희곡인 김우진을 만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순식간에 운명적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국가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하고 순회공연지인 대구약령시장에서 공연을 선보인다. 하지만 행복은 잠시뿐, 일본군 대장 다케시가 윤심덕에게 반해 둘 사이를 강제로 갈라놓는다. 게다가 윤심덕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거짓 소문을 퍼뜨려 그녀를 무너뜨린다. 결국 세상에 버림받은 윤심덕은 홍난파의 도움으로 김우진과 다시 만난다. 조선으로 향하는 배에서 유작 ‘사의 찬미’를 남긴 두 사람은 고통 없는 세상에서 이별 없는 사랑을 맹세하고 깊은 바다에 몸을 던진다.
윤심덕을 맡은 소프라노 이화영과 조지영의 열연과 작곡가 진영민이 만든 다채로운 음악이 심금을 울린다. 그뿐 아니라 극 중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구 순회공연 장면은 대구국제오페라축제가 열리는 도시 대구의 근대 모습을 충실히 고증,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왼쪽_ 2014년 <라 트라비아타> 공연 장면.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
일시 10월 19일(금요일) 19:30, 20일(토요일) 15:0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1948년, 대한민국 오페라의 역사적 순간이 탄생한다. 대한민국 오페라의 시작을 알린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춘희’라는 제목으로 국내 최초로 공연된 것. 그날 이후 대한민국 오페라 탄생 70주년을 맞은 올해까지 공연할 때마다 많은 사랑을 받은 <라 트라비아타>가 대구오페라하우스 제작 공연으로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다.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를 짝사랑한 알프레도는 그녀의 파티에 참석해 열렬한 사랑을 전한다. 그동안 환락에 찌든 삶 때문에 건강까지 나빠진 비올레타는 처음엔 그의 구애를 거절하나 결국 그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교외로 떠나 삶을 꾸린 두 사람은 비올레타의 재산에 의지해 살아가지만 점점 가세가 기운다. 알프레도는 돈을 벌기 위해 파리로 떠나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이 비올레타를 방문한다. 제르몽은 그녀에게 가족의 행복을 위해 아들과 헤어져달라고 부탁하고, 비올레타는 거짓 편지를 남긴 채 사교계로 돌아간다. 이에 배신감에 사로잡힌 알프레도는 파티장에 찾아가 돈을 던지며 그녀를 모욕한다. 뒤늦게 사실을 알고 찾아간 알프레도의 눈앞에서 이미 기력이 다한 비올레타는 죽고 만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연극 <동백꽃 부인>을 원작으로 베르디가 남긴 걸작이자 비극 <라 트라비아타>는 ‘축배의 노래’와 ‘언제나 자유롭게’ 등 유명 아리아로 여전히 대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이번 공연은 중국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장 리신차오가 지휘를, 이탈리아 연출가 스테파니아 파니기니가 연출을 맡아 대구오페라하우스가 자체 프로덕션을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렸음을 증명한다.

6 2017년 소극장 오페라 <이화 부부> 공연 장면. 7 이상화 고택.
<버섯피자(La Pizza Con Funghi)>
일시 9월 19일(수요일), 20일(목요일) 19:30
장소 대구오페라하우스 별관 카메라타
독특한 제목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버섯피자>는 20세기 현대 희극 오페라의 대가인 미국 작곡가 시모어 베래브가 만든 코믹 오페라다. 적절한 유머를 뽐내면서도 극 중 인물의 감정을 진지하게 표현해 가볍지만은 않은 공연이다. 특히 인간의 만남, 사랑, 배신, 질투, 증오, 죽음 등 무거운 소재를 이야기하는 블랙코미디로, 여느 오페라와 달리 한국어로 공연하기 때문에 오페라가 익숙하지 않은 관객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 시모어 베래브가 작곡과 대본을 모두 소화해냈고, 연출은 김태웅이 맡는다.
<놀부전(Nolbujeon)>
일시 10월 2일(화요일), 3일(수요일) 19:30
장소 어울아트센터
누구에게나 익숙한 이야기이자 <춘향가>, <심청가>와 함께 3대 판소리 소설로 꼽히는 <흥부전>이 유철우의 감각적인 연출에 의해 창작 오페라로 재탄생한다. 제목마저 ‘놀부전’으로 바꾸면서 고전을 신명 나게 재해석한 것. 현대적 시각으로 조선시대 권선징악을 담아내 관객과 공감대를 형성, 극 전반에 풍자와 해학을 적절히 녹여냈다. 어린아이에게 교육적 효과를 제공할 뿐 아니라 남녀노소가 함께 신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오페라로, 대구에서 활동 중인 뉴오페라컴퍼니와 합작해 더욱 의미가 깊다.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
일시 10월 10일(수요일), 11일(목요일) 19:30
장소 웃는얼굴아트센터
오페라에서도 슬랩스틱 코미디를 볼 수 있다면? 코미디와 연극적 요소를 가미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페라 <마님이 된 하녀>가 그 주인공이다. 오페라의 한 장르로 이탈리아의 희극 오페라를 일컫는 오페라부파의 효시인 이 작품은 출발점 또한 흥미롭다. 오페라 <세리아> 초연 당시 쉬어가는 막간 오페라로 선보였다가 본공연보다 높은 인기를 얻은 것. 귀족 문화를 코믹하게 풍자해 관객의 혼을 쏙 빼놓는 소극장 오페라는 조반니 바티스타 페르골레시가 작곡을, 젠나로 안토니오 페데리코가 대본을 맡았다.
<빼앗긴 들에도(In the Fields Taken Away)>
일시 10월 16일(화요일), 17일(수요일) 19:30
장소 이상화 고택
독립운동가이자 시인 이상화는 대구 근대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 그의 삶을 진솔하게 담아낸 김동명 작곡의 <빼앗긴 들에도>를 보통 공연장이 아닌 이상화의 고택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다. 나라를 잃은 슬픔과 함께 독립을 향한 굳센 의지를 그만의 시각으로 담아낸 이상화의 문학작품을 모놀로그 형식의 대화와 구슬픈 아리아로 꽉 채운 소극장 오페라다. 오페라는 비쌀 것이라는 편견을 깨는 무료 공연으로 관객과의 거리감을 좁히려 노력한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에디터 백아영(xiaxia@noblesse.com)
사진 제공 대구오페라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