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아트나우>가 한국 동시대 미술을 이끄는 10명의 작가를 만났다. 전시장을 찾은 우리의 눈과 귀를 번쩍 뜨이게 했던 작품의 주인공이다.

이원우 Wonwoo Lee
이원우의 작품을 마주하면 어릴 때 공부만 알던 동네 착한 형이 어른이 돼 갑자기 나쁜 마음을 먹고 엉큼한 것들을 만들어놓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람객을 온실 안에 가둬놓고 뿌연 스모그를 뿌려 갑자기 세상이(혹은 관람객이) 사라져버린 듯한 요상한 경험을 하게 하는 ‘세상에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2013년)가 그렇고, 콜라는 마시고 싶지만 살찔까 봐 다이어트 콜라를 찾는 이들을 비웃는 듯한 ‘Fat Coke’(2009년)가 그렇다. 그의 작업엔 늘 유머가 빠지지 않으며, 시종일관 아이러니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2000년대 후반부터 여러 단체전을 통해 작품을 선보여온 그에게서 사실 어떤 작업적 일관성을 찾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세상엔 그가 흥미를 보이며 달려들 만한 블랙유머와 아이러니의 순간이 아직 너무나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는 이번 인터뷰 중에도 기어코 스모그 머신을 대령해 작업실을(혹은 자신을) 사라지게 하려 했다). 너무 무겁거나 위엄이 있는 작품은 때로 관람객을 피곤하게 한다. 하지만 유의미하게 가벼워지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이원우는 그 부분에 관해선 고단수다. 이래도 그를 잘 모르겠거든, 그의 작품 이름들을 한번 모아놓고 보시길.
1981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와 영국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에서 조각 전공으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대안 공간 루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프로젝트 팀 ‘…좋겠다 프로젝트’에서의 활동을 비롯해 조각, 설치, 회화, 사진, 퍼포먼스, 영상 등으로 점점 작품을 발전시켰다. 현재 PKM갤러리 전속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올 하반기에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이완 Wan Lee
언젠가 이완 작가의 영상 작품 ‘메이드 인’ 시리즈에 대한 글을 보고 <체험 삶의 현장>인가 했다. 그는 ‘한 끼의 아침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건설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타이완과 캄보디아, 태국, 미얀마, 중국 등을 직접 돌아다녔다. 타이완에선 설탕을, 캄보디아에선 쌀을, 태국에선 실크를, 미얀마에선 수백만 원을 들여 순도 99.9%의 금 3g을 3주에 걸쳐 채취했다. 총 12개 나라를 찾아가 스스로 노동자가 되는 이 프로젝트는 2016년 어느 날 평범한 아침을 해 먹는 덧없는 퍼포먼스로 끝날 예정. 미련하다 못해 기이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프로젝트는 생산의 기능을 완전히 잃어버린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유의미한 질문을 던진다. 이완은 이처럼 이전엔 볼 수 없던 새로운 유형의 작가다. 그는 예술을 매개로 개인과 사회 시스템의 관계에 주목해왔고, 자신만의 확고한 세계관을 무기로 영상·설치·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지난 몇 년간 그처럼 다양한 퍼포먼스가 가능한 젊은 작가는 없었다. 이 문장에 의문을 품고 지금의 한국 작가를 한 명씩 떠올려보는 사람이 있을 줄로 안다. 이름을 대봐라. 머리를 쥐어짜도 생각나지 않을 거다.
1979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조소과 졸업 후 2005년 ‘중앙미술대전’을 통해 등단했다. 그간 7회의 개인전을 열며 이름을 알렸고, 지난해에 삼성미술관 리움이 신설한 ‘제1회 아트스펙트럼 작가상’을 받아 크게 주목받았다. 내년 초 완성을 목표로 현재 영상 작품 ‘메이드 인’을 작업 중이며, 오는 4월 313아트프로젝트에서 개인전을 열 계획이다.

김영나 Na Kim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영나의 작품과 전시는 ‘디자인이냐, 미술이냐’라는 해묵은 경계 짓기로 규정하기 어렵다. 그녀는 디자인과 미술의 접점을 찾기보다 그 차이를 극대화하고, 두 영역에서 흥미로운 요소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영리함을 구사한다. 2014년 두산갤러리에서 열린 세 번째 개인전 <선택 표본>에서는 3차원의 세계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흩어진 요소를 조합해 새로운 추상적 규칙을 만드는 그녀의 디자인 과정을 전시 공간과 관람 환경으로 확장한 것. 작가는 건물의 지하 주차장에서 전시장으로 이동하며 마주친 시각 기호를 선택해 표본으로 삼고, 그것을 다시 가짜 광고판과 주차장, 차양 등으로 제작했다. 다양하게 변주한 색색의 선과 점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마치 추상회화를 감상하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전시 환경을 문제 삼는 방식은 2012년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인생 사용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랜 유학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서 본격적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에 열린 이 전시에서 아예 디자인 사무실을 차렸다. 그 역전된 사례는 2011년 갤러리팩토리에서 열린 개인전 < Found Abstracts >. 그녀는 작품을 실제로 전시하지 않고 지금까지 발표한 자신의 작품으로 공간을 연출하고 촬영한 사진을 벽면 전체에 붙여놓았다.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디자인; 또 다른 언어>에 출품한 A0부터 A4까지 각 종이 사이즈에 맞게 제작한 테이블과 아트 숍 UUL에서 선보인 선물 상자 같은 ‘더 쇼-룸(The Show-Room)’은 한 작가의 작품과 상품의 관계가 얼마나 복잡미묘한지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1979년 광주 출생.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홍익대학교 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네덜란드 베르크플라츠 타이포그래피를 졸업했다. 2009년부터 2012년 초까지 <그래픽>의 아트 디렉터로 활동했으며 < fragile >(2006년), < Found Abstracts >(2011년), <선택 표본>(2014년)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테이블 유니언(Table Union) 멤버와 커먼센터의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차세대 디자인 리더(2008년), 두산연강예술상(2013년),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14년) 등을 수상했다.

김인배 Inbai Kim
김인배는 일반 상식에 불을 지르는 흥미로운 조각을 만든다. 그의 작품엔 컬트 공포 영화와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식 기괴함이 공존한다. 많은 평론가가 그의 작품은 미술의 기본 요소인 점·선·면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된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단 한 번도 그것들을 부정한 적이 없다. 대신 그의 작품엔 어떤 시(詩) 같은 것이 있다.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핵심은 의미의 어떤 절대적 객관성보다는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현대사회의 시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그의 작업실에 흩어져 있다. 그의 망원동 작업실 한편에 서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는 천재 물리학자의 뺨을 여러 번 때리고도 남을 무수한 숫자와 메모로 도배돼 있다. 얼핏 보면 뭔가를 만들기 위한 공식처럼 보이지만 실은 눈, 코, 입을 생략해도 멋진 턱이 있어(‘정면은 없다’, 2012년) 아름답다고 말하는 시어이자, 다리가 6개 달려 불편하기는커녕(‘지리디슨 밤비니’, 2005년) 더 빨리 달릴 수 있다며 좋아하는 선량한 자기 주문이다. 그건 그렇고, 그는 ‘이런 조각을 만드는 사람은 분명 이상하게 생겼을 거야’라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고 의외로 평범하게 생겨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1978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갤러리스케이프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금까지 총 5회 개인전을 개최했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전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는 9월 제주 아라리오뮤지엄 동문모텔Ⅱ에서 음악가 그리고 안무가와 함께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진 그룹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경우 Kyoungwoo Han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한경우의 작품을 마주하면 일단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의 작품엔 늘 질소 과자에 버금가는 ‘눈속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의자나 성조기, 몬드리안의 추상화같이 친숙한 이미지를 가져와 큰 힘 들이지 않고 관람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그 뒤 ‘고정관념’의 트릭을 이용해 관람객을 매몰차게 속인다. <어린 왕자>의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이미지를 스크린에 띄우고 실제 스크린 뒤엔 모자를 올려놓는다거나(Reclaiming a Hat, 2013년), 손그림자 놀이로 만든 듯한 동물 형상을 스크린에 띄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손그림자처럼 왜곡해 만든 박제 동물(Projected Specimen, 2014년)이었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는 우리가 보는 걸 그대로 말할 권리가 관습과 보편화된 이야기에 의해 침해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물이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인식되는지에 대해 작품으로 표현한다. 이렇듯 너무도 당연해 더는 눈이 가지 않는 것에 다양한 방법으로 관심을 두게 하는 그를 그저 단순히 현대미술가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1979년 서울 출생. 서울대학교 조소과와 시카고 예술대학 대학원, 스코히건 회화조각학교에서 수학했다. 2006년 시카고의 LG 스페이스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2011년 송은미술대상 대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로 작품 활동과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오는 10월 갤러리 살롱 드 에이치에서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장민승 Minseung Jang
“장민승은 과잉 압축의 자극에 중독된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우리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방식을 소개하는 안내자다.” 올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3인 후보로 장민승을 추천한 배영환 작가의 말이다. 맞다. 장민승은 우리를 여기저기로 안내해왔다. 그곳은 곧 철거할 시민아파트의 폐허(‘수성십경’, 2009~2010년), 쉽게 가볼 수 없는 20개국 주한 대사의 비밀스러운 집무실(‘A Multi-Culture’, 2008~2010년)이었다. 또는 쇠 냄새 진동하는 서울 문래동의 골목길, 경남 함양의 울창한 숲, 제주도의 고요한 차밭이었다. 장소를 옮겨가며 그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지금 이곳에서 당신이 경험한 공간과 사물, 감각의 관계는 어떤 ‘형식’으로 전환될 것인가? 그의 대답은 음악, 사진, 영상, 테이블, 휴대폰의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몸을 바꿔가며 이어졌다. 그의 행보엔 예상할 수 없어 매력적인 지점이 있다. 김포의 작업실에는 언젠가 세상에 선보일, 전혀 예상 밖의 새 작품이 진열돼 있었다.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은 작품도 마찬가지. 세월호 참사에서 출발한 작품 ‘검은 나무여’는 일본 하이쿠에 내재한 애도의 정서와 텍스트 문학의 음악적 요소를 ‘소리 없는 언어’ 수화로 재현한 아름다운 흑백 영상이다. 암흑의 전시장에 침묵의 메시지와 그 침묵을 뒤엎는 팽목항의 파도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말을 아껴온 그의 작품은 힘을 빼고 몇 단어로만 조합한 한 편의 시와 닮았다.
1978년 서울 출생. 중앙대학교에서 조각을 전공했으며, 인디 록 밴드의 베이시스트와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테이블 가구 ‘T1’을 발표하며 가구 디자이너로도 명성을 쌓았다. 2006년엔 ‘올해의 영 디자이너’로 선정됐으며, 2015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을 받았다. <수성십경>(2011년), < The Moments >(2012년), <가구 팔자>(2014년)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음악가 정재일과 < Spheres Part I >(2011년), <상림(上林)>(2013년) 등의 공동 작업을 진행했다.
사진. 요제프 레만(Josef Lehmann)
남화연 Hwayeon Nam
남화연은 작품의 소재로 연관성 없는 역사적 인물, 사실, 공간을 다뤄왔다. 군사작전용 암호, 무용가 최승희의 아카이브, 이케아의 가구 조립 매뉴얼 이미지, 옛 서울역사의 레스토랑이나 개관 시간이 지난 미술관,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마니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시간, 기억, 소리, 냄새 등 비가시적이며 비물질적인 것에 쏠려 있다. 작품의 출발점은 텍스트. 그는 뇌리에 박힌 익숙하거나 낯선 단어로 일련의 동작을 실행하는 문장을 조합해낸다. 영상, 퍼포먼스, 무대 위 퍼포머들은 작가가 쓴 문장에 따라 상상하고 몸을 움직인다. 그러니까 텍스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드러내는 작품의 악보고 대본이며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매뉴얼인 셈이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서로 다른 버전으로 몇 차례 공연한 퍼포먼스 ‘가변 크기’는 시간을 가변적으로 배열한 작품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으면, 동명의 이름으로 출판한 책에 적힌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행동으로 옮겨보자. “벽에서부터 다른 벽을 향해 걷는 동안 걸음의 수를 센다, 도착하는 벽에 걸음의 수를 쓴다, 원의 지름은 양팔을 벌린 길이와 같다, 낙하, Here와 Wait 사이를 다음의 단어들로 채운다” 등. 퍼포머의 신체 구조와 주어진 공간의 형태는 물론 수학 공식 같은 지시문을 어떤 순서로 실행하느냐에 따라 작품 속 시간의 ‘크기’는 달라진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딱딱한 모양새로 다듬어지는 걸 히스테리컬하게 피해가면서 우리의 불완전한 기억에 남는다.
1979년 광주 출생. 코넬 대학교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광주비엔날레(2008년), < now jump >(2008년),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2009년), <우회전략>(2010년), <무브 위크엔드: 온 더 스팟>(2012년), <플레이타임>(2012년) 등의 기획전에 참여했다. 페스티벌 봄에 ‘오퍼레이셔널 플레이’(2010년), ‘이태리의 정원’(2012년), ‘가변 크기’(2014년) 등을 발표했다. 올 4월 아르코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독일과 한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정희승 Heeseung Chung
정희승에게 사진은 “부적절한 은유”다. 이 말에는 사진의 본질과 한계에 접근하는 작가의 태도가 담겨 있다. 그는 2014년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린 아트스펙트럼에서 ‘회전문이 있는 방’이라는 제목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사진의 실체를 탐색하기 위해 각을 맞춰 그린 도면을 보는 것 같았다. 명확한 연결 고리를 찾을 수 없는 두 장의 사진을 꺾쇠 모양 여백에 맞춰 인쇄한 액자들, 이 여백을 3차원으로 만든 구조물과 층층의 사진 더미, 서로 다른 사진 다섯 장을 쌓아 만든 사진의 오색 옆면, 다리가 하나 없거나 하나만 원형인 기형의 테이블 등은 사진이라는 매체의 앞, 뒤, 옆을 ‘회전’하며 물고 늘어졌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한 도구로 카메라를 사용해왔다. 이 때문인지 초기 연작 ‘Persona’(2007년), ‘Reading’(2010년), ‘Still Life’(2009~2012년) 등에는 사진이라는 기계-예술이 구현하는 ‘재현성’이라는 이슈가 두드러졌다. 우리는 대본을 읽는 배우의 얼굴에서 어떤 기호로 추상적 감정의 상태를 읽을 수 있을까? 사진에 남은 사물의 흔적은 대상의 본질을 제대로 포착한 것일까?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기록이나 재현에 국한하지 않는다. 그는 공들여 관찰한 대상과 상황을 어떻게 하면 사진 이미지로 남길 수 있을지 골몰한다. 텅 비어 있어서 꽉 찬, 혹은 명확하게 규정할 수 없어서 순수한 무엇으로.
1974년 서울 출생. 홍익대학교 회화과와 영국 런던 칼리지 오브 커뮤니케이션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 persona >(2008년), < unphotographable >(2011년), <부적절한 은유들>(2013년)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스프록스턴 메모리얼 어워드(2007년), 다음작가상(2012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2012년) 등을 수상했다.

강서경 Seokyeong Kang
강서경은 지난 몇 년간 누군가 버린 물건을 모았다. 그리고 그걸로 탑을 쌓았다. 거기엔 그릇 건조대나 빛바랜 가죽 조각같이 ‘대체 이걸 왜?’라는 질문이 절로 튀어나올 법한 물건이 끼어 있었고, 각 물건을 엮은 이음매엔 어릴 적 아랫목에 누워 읽던 전래동화 같은 구수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사연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우연히 벼룩시장에서 산 부엉이 조각을 중국의 옛 시집에서 본 어미 몸을 쪼아 먹는 불효의 새로 둔갑시킨다거나(‘치효’, 2013년), 돌아가신 할머니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비틀비틀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탑(‘그랜마더 타워’, 2012~2013년)을 쌓는 것. 그녀는 이렇게 본래 기능을 잃었거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는 오브제를 조형적으로 재구성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는데, 그 수준과 보여주는 방식이 가히 <가위손> 시절의 팀 버턴급이라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현재 국내의 젊은 작가 중 이러한 그녀의 이야기꾼 캐릭터를 대체할 인물은 없는 것 같다. 그녀에 대한 미술계의 주목도는 지난 한 해 그녀가 참여한 수많은 전시 리스트가 보장해준다. 저 치기와 야심이 적절히 믹스된 그녀의 동글동글한 눈망울을 보라. 누가 이런 그녀를 감당할 수 있을까?
1977년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영국 왕립 예술학교에서 회화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2012년 영국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작가를 대상으로 하는 중요 공모전 Bloomberg New Contemporaries 선정 작가를 비롯해 2013년 제13회 송은미술대상 우수상을 받았다. 오는 9월 시청각에서 개인전이 잡혀 있다.

문성식 Sungsic Moon
면목동에 있는 문성식의 스튜디오에는 한창 제작 중인 폭 4m의 풍경화가 걸려 있었다.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 중 가장 큰 규모다. 고향 경북 김해에서 촬영한 숲 속 사진이 벽에 여러 장 붙어 있었다. 그에게 숲은 “생의 드라마가 교차하는 신비하고 아름답고 징그러운 곳”이다. 한때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최연소 작가’라는 수식은 달콤한 독과 같았다. 가상의 무대에 세운 을씨년스러운 인공 정원 풍경은 그의 ‘시그너처’로 알려졌고, 그 이미지만 빠르게 소비됐다. 정제된 화면 구성과 페티시즘에 가까운 세밀한 붓 터치가 특징이었다. 오랜 침묵 끝에 2011년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풍경의 초상>전은 그가 작가로서 목표로 한 과업이 무엇인지 확인하는 자리였다. 캔버스에 연필과 수채 물감으로 덤덤하게 담아낸 장면은 관람객의 감정을 동요시키는 힘이 있었다. 문턱에 앉아 먼 산을 보는 과부, 닭을 잡는 사내의 뒷모습,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세 장님, 올무에 걸려 몸부림치는 고라니, 거대한 먹빛 저수지에서 아무 말도 없이 낚시하는 두 형제, 무더운 여름밤 동네 잔치처럼 치른 할머니의 장례식, 교미하는 어미와 새끼 개, 영정 사진을 찍는 할아버지, 중년 남녀의 악다구니와 같은 야유회, 플라스틱병에 뱀을 넣고 구경하는 아이들 등. 한 편의 단편소설 같은 그의 작품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 욕망을 둘러싼 무수한 시선과 아이러니가 교차한다. 그에게 그림은 자신이 경험하고 이해한 ‘단 하나뿐인 세계’를 그리는 것이다.
1980년 경북 김천 출생.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와 예술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바람 없는 풍경>(2006년), <풍경의 초상>(2011년), < Sungsic Moon’s Drawing >(2013년) 등의 개인전을 개최했다. 몽인아트스페이스, 창동미술창작스튜디오의 입주 작가였다. 베니스 비엔날레(2005년), 프라하 비엔날레(2010년), 몬차 조바니 비엔날레(2011년) 등의 국제 기획전에 참여했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LESS(김태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