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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의 무용담

LIFESTYLE

영화 한 편을 제작하듯 현대무용을 창작해온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안성수가 우리 현대무용단을 튼튼히 만들 수 있었던 이야기.

평소 다양한 공연을 보러 다니지만 현대무용 공연만큼은 선뜻 가지 않게 된다는 이들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대답이 몇 가지로 모인다. 그중 하나가 ‘난해하다’는 거다. 발레공연처럼 익히 알려진 스토리도 아닌 데다 음악 또한 실험적이라 그냥 ‘음’ 하며 보고 있다가 ‘엥?’ 하고 끝나버리기 일쑤라는 것. 그런데 이러한 현대무용 공연에 반기를 든이가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단장 안성수다. “난해한 몸짓을 보면 일반 관객은 겁먹고 불안해하며 다시는 현대무용을 찾지 않아요. 관객을 내쫓지 않는 공연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나는 뭔가 잘 모르는구나’, `저게 무슨 의미일까` 라고 굳이 생각하기보단 눈과 귀로 쉽게 따라갈 수 있게끔 말이죠.”
지난해에 국립현대무용단이 선보인 <혼합>이나 <제전악-장미의 잔상> 등의 공연을 본 이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배경으로 한 그의 무용단 ‘안성수픽업그룹’`의 대표작 <장미>나 라벨의 음악으로 만든 <볼레로> 등의 영상만 찾아봐도 쉽게 감이 잡힌다. 깊이 있는 유연함이 콕콕 박힌 수려한 동작. 그러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무대. 그럼 질문 하나. 그가 연출하는 현대무용 공연은 어떻게 그간 현대예술이 추구해온 ‘난해함’과 ‘낯설게 하기’라는 굴레를 훌훌 털어버리게 된 걸까?
이 질문의 답을 찾으려면 안성수 단장의 이력부터 살펴야 한다. 무용인이면서도 무용인스럽지 않은 무엇. 긴 얘기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다. 안성수 단장은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1980년대 초반 서울의 한 대학 신문방송학과에서 1년 6개월쯤 공부하다 군대에 다녀왔고, 이후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갔다. 하지만 그가 들어간 마이애미 대학교의 영화 수업은 의외로 지루했다. 이론만 주야장천 가르쳤기 때문이다. 단, 애니메이션 수업은 흥미로웠다. 실사 애니메이션으로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한 <탱고>를 봤고 ‘나도 저 정도는 할 수 있겠다’ 여기며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그러려면 몸을 매끄럽게 움직여야 했다. 다시 말해 무용 지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그길로 무용과를 찾았고, ‘너 잘한다’는 선생의 꾐에 빠져 무용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몸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고자 한 것이 무용을 시작한 계기가 된 것.
이후 1년 6개월 만에 그는 미국에서도 최고로 치는 줄리아드 무용원에 입학, 재학 시절 안성수픽업그룹까지 결성해 미국 내 유수의 극장 무대에 올랐다. 세계를 돌며 많은 상을 받았고, 1996년엔 서울에서도 공연을 펼쳐 호평을 이끌어냈다. 그가 연출한 무용이 인기 있는 이유? 영화 같은 연출, 즉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에 물 흐르듯 유연하고 명료한 몸짓 때문이다. “이전에 영화 공부를 할 때 `2분 룰`이라는 걸 배웠어요. 2분 동안 아무 감흥이 없으면 관객은 딴짓을 시작한다는 거죠. 춤에도 이 같은 룰을 적용하려고 애씁니다. 무용 만드는 방식이 영화 작업이랑 흡사하거든요.” 2016년 12월부터 국립현대무용단의 3대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성수는 위에 적은 내력 그대로 대중을 ‘미지’로 몰지 않는 무용을 통해 관객을 끌어모았다. 지난해에 <혼합>, <제전악-장미의 잔상>, <투오넬라의 백조> 3편의 레퍼토리와 <쓰리볼레로>, <권령은과 정세영>, <맨 투 맨> 3편의 픽업 스테이지가 전 회 전 석 매진됐으며, 그 결과 평균 객석 점유율 93%, 평균 유료 매표율 81%를 기록했다. 이는 국립현대무용단 사상 최고의 흥행몰이다.

1 동서양의 춤과 음악이 혼합된 국립현대무용단의 대표 레퍼토리 <혼합>.
2 전통악기 구성의 춤곡과 섬세한 안무로 짜인 <제전악-장미의 잔상>.

한편 그는 국립현대무용단 단장이 되기 전부터 한국무용, 발레, 현대무용의 장르적 삼분법에 국한하지 않고 각각의 특징을 분리, 해체, 재구성한 작품을 연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로 재직한 2012년엔 국립발레단 창단 50주년 창작 기념작 <포이즈>를 안무, 2013년과 2014년엔 국립무용단 레퍼토리 시즌 <단>과 <토너먼트>를 안무해 한국 전통 춤의 현대화 작업을 시도했다. 한데 말이 좋아 ‘장르 구분 없이’지 쉬운 일이 아니었을터. “줄리아드 시절 벤저민 하커비(Benjamin Harkavy) 선생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를 창단한 세계적 무용수인 그가 마지막 교직 생활을 하기 위해 줄리아드에 왔는데, 그 모토가 ‘컨템퍼러리 아트를 하는 안무자는 발레, 현대무용 따지지 않고 뭐든 할 수 있어야 한다’였거든요. 그 때문인지 저도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장르 구분 없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는 무용수들을 선발해왔어요. 곧 무대에 오르는 <스윙>도 마찬가지예요. 현대무용만 해온 이력으론 상체는 한국 춤, 하체는 서양 춤처럼 믹싱된 안무를 소화할 수 없죠.”
4월 20일부터 사흘간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오르는 <스윙>은 스웨덴의 6인조 스윙재즈 밴드 ‘젠틀맨 앤 갱스터즈’와 협업한 국립현대무용단의 올해 첫 시즌 프로그램이다. 정통 뉴올리언스 음악을 추구하는 젠틀맨 앤 갱스터즈의 총 17곡에 이르는 스윙재즈 라이브 연주에 안성수 단장 특유의 ‘영화처럼 즐길 수 있는’ 현대무용이 담긴다. “이번 작품은 평소와 달리 쇼적인 측면이 있어요. 가수와 밴드가 직접 나와 노래하고 거기에 맞춰 무용수들이 춤추죠. 이 시대 ‘청춘의 향연’을 맘껏 보여주고 싶어요.”
국립현대무용단은 오는 6월에도 이전에 없던 무용 공연으로 관객을 맞는다. 내년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북유럽 현대무용을 선도하는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와의 안무 교류 프로젝트다. ‘스웨덴 커넥션Ⅰ’이란 이름의 이 프로젝트는 국립현대무용단과 스코네스 댄스시어터가 각각 안무가를 선정, 상대 나라에 파견해 각 단체의 신작 안무가로 참여하고 이렇게 완성한 작품을 양국에서 초연한 후 순회공연을 하는 형태로 진행한다. 이전에 없던 이런 파격적인 ‘안무가 교환’ 시스템은 안성수 단장의 현대무용 대중화 그리고 다중화에 대한 개념에서 나왔다. “제가 가장 중요히 여기는 건 ‘일반 관객’이에요. 일례로 발레 공연은 현대무용단 공연과 달리 늘 일반 관객이 많죠. 또 해외 투어를 다녀보면 공연장 근처에 사는 분들이 공연을 보는 경우가 많은데, 항상 관객이 가득 차더라고요. 그 극장(혹은 무용단)이 뭘 한다고 하면 무조건 믿고 보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저도 국립현대무용단이 뭔가 한다고 하면, 그걸 믿고 보러 오는 관객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은 편견 없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거든요.” 안성수 단장의 임기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3년이다. 하지만 그가 지금 같은 마음가짐으로 계속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면 분명 전보다 많은 일반 관객이 국립현대무용단을 찾지 않을까 싶다. 국립현대무용단이 뭔가를 한다 하면 ‘일단 가서 보자’는 인식이 생기는 것. 안성수 단장처럼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본다. 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J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