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애순 단장의 현대무용법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단장’과 ‘현대무용가 안애순’ 사이엔 어딘가 같은 듯 다른 구석이 있다.
3월의 어느 밤, 국립현대무용단의 연습실은 조금 더웠다. 한 무리의 무용수가 뛰어다니고, 한 무리의 무용수가 바닥에서 굴렀으며, 또 한 무리의 무용수는 온갖 복잡한 심경을 몸으로 표현하며 마루 위에서 펄쩍 뛰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움직임은 저편에 앉은 안애순 단장의 작은 손짓에서 시작됐다. 그녀는 똑 부러지는 목소리로 수십 명에 달하는 무용수를 움직이게 하거나 멈춰 세웠다. 때론 고함을 지르며 무용수들을 잘근잘근 씹어먹을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대부분 농담(弄談) 같은 온화한 얼굴을 보였다.
안애순 단장은 2013년 7월부터 국립현대무용단을 맡고 있다. 여전히 무대 뒤에서 단원들과 씨름하며 좋은 그림을 만들어낸다. 주요 공연의 연습이 있을 때면 꼭 반나절 이상 단원들과 부대끼며 땀에 젖었고, 영화감독이나 작곡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무대로 불러 그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공연을 선보였다. 물론 그렇다고 그녀의 역량이 예술 창작에 국한된 건 아니었다. 그녀는 전문 프로그래밍과 제작 방식을 아울러 국립현대무용단이 예술 창작 작업을 원활히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완성했다. 특히 젊은 무용가가 리서치를 통해 창작자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 ‘여전히 안무다: LAB 리서치 퍼포먼스’나 해외 유명 안무가를 초청해 창작 작품을 의뢰하는 ‘해외 안무가 레지던시’ 등이 각광받았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국립현대무용단을 맡은 첫해에 무용단의 프로그램 운영 횟수는 전년에 비해 2배 이상 증가했다. 또 너무 난해해 꺼리던 현대무용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을 찾자 자연스레 객석 점유율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신작 제작 발표 때마다 기자들 앞에서 늘 “더 적극적이고 역동적으로 작업하려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좀 더 다양한 형식으로 보여줘야” 관객이 호응한다고도 말했다. “다른 예술 장르나 관객에게 소외된 현대무용이 더 밝은 곳으로 나왔으면 했어요. 그러기 위해선 현대무용의 저변 확대가 관건이죠. 국립현대무용단을 찾는 관객이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하고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다양성에 대해선 지금도 늘 고민해요.”
그럼 이제 현장 무용가 안애순을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 그녀의 화려한 이력을 한번 살펴보자. ‘국립현대무용단 안애순 단장’이 아닌 ‘현대무용가 안애순’의 그것 말이다. 먼저 안애순은 지난 30년간 우리 현대무용계에서 가장 돋보이는 무용가를 부르는 이름 중 하나였다. 한국에 현대무용이란 말 자체가 낯설던 1985년 ‘안애순무용단’을 창단했고, 1980년대 중반부터 <불쌍>과 <여백>, <열한 번째 그림자>, <온 타임>, <백색 소음> 등의 작품을 발표해 한국 고유의 아름다운 춤사위와 극적 표현이 깃든 한국식 컨템퍼러리 댄스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그녀는 ‘안무가’라는 개념을 국내 관객에게 각인시킨 선구자이기도 하다. <씻김>으로 1992년 세계적 무용 대회인 프랑스 바뇰레 국제 안무 대회 본선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해 이슈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1994년엔 <여백>으로 같은 대회에서 최고무용수상을, 1998년엔 <열한 번째 그림자>로 같은 대회 대상을 수상해 한국 현대무용계는 물론 유럽 현대무용계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러나 무용가로서 이런 화려한 이력과 달리, 젊은 시절 그녀는 현대무용이 훗날 자기 인생의 전부가 될 거라고는 단 한 번도 진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실제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우연히’ 혹은 ‘친구에게 떠밀려’ 현대무용을 배워왔다. 또 ‘얼떨결에’ 성적에 떠밀려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 진학한 뒤에도 자신이 현대무용가의 길을 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긴긴 밤을 지새웠다. 그런 고민의 중심엔 우선 150cm를 겨우 넘는 작은 키에서 오는 콤플렉스가 있었다. 또 뭐든 완벽히 준비해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도 한몫했다. “사실 젊은 시절엔 장래에 대한 고민의 골이 깊었어요. 하지만 생각보다 답은 쉽게 나왔죠. ‘콤플렉스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 이게 해결책이었어요. 그리고 고민 끝에 무용 작품을 하나 만들었어요. 몸을 15분 동안 바닥에 밀착해 최대한 절제된 동작으로 춤을 추는 <뿌리>라는 작품이었죠. 생명의 끊임없는 항상성을 표현한 춤인데, 남보다 키가 작은 제가 표현하기에도 그럭저럭 편했고, 훗날 작품이 유명해져 일본에서도 초청 공연을 했어요. 제가 제 신체를 제대로 이해하고 만든 첫 번째 작품이라 지금도 애정이 깊어요.”
그녀는 이후에도 신체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다양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안애순무용단’을 운영하며 현대무용 작품을 꾸준히 발표한 것 외에 2000년대부터는 뮤지컬 안무로 저변을 넓혀 춤에 관한 그만의 철학을 이어갔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코러스라인>, <레미제라블>, <대장금>, <바람의 나라> 등의 격정적 안무가 전부 그녀의 몸짓에서 나온 것인데, 특히 <바람의 나라>(2006년)와 <대장금>(2007년)은 각각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 안무가상과 제1회 더뮤지컬어워즈 안무상을 받으며 뮤지컬에서 안무의 중요성을 관객에게 인식시켰다.
그럼 이쯤에서 지난 30여 년간 그녀가 어떻게 ‘현대적’ 감각을 무용과 뮤지컬 등에 버무려 대중과 소통해왔는지 알아보자. 이 질문의 본질은 사실 ‘현대무용은 과연 어려울 수밖에 없는가?’다. “사실 백이면 백, 현대무용이 난해하고 추상적이라고 말해요. 어떤 춤인지 행위 자체를 헷갈려하는 이도 많고요. 물론 저도 그건 공감해요. 하지만 그렇다고 현대무용이라는 게 꼭 이러이러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건 아니죠. 전 ‘컨템퍼러리’라는 것 자체가 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그들이 접하는 자극과 형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현대무용 또한 그게 무엇이든 변형이 가능하다고 봐요. 따라서 전 현대무용을 ‘아예 없는 것’이라고도 하고, ‘전부’라고도 하죠.”
한편 국립현대무용단은 올해 그간의 주요 공연의 ‘레퍼토리화’를 위해 더욱 힘을 쏟을 예정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탐색한 <이미아직>(4월 1일), 이 시대 진정한 영웅의 의미를 묻는 <공일차원>(5월 13일~15일)에 이어 <춤이 말하다>(10월), <어린왕자>(12월) 등 기존 레퍼토리를 업그레이드해 선보인다. 특히 <이미아직>의 경우 오는 6월 프랑스 파리 샤요 국립극장 무대에 올린다. 안애순 단장이 부임 초부터 특별히 신경 써온 ‘공연 유통’이 찬찬히 결실을 맺는 순간이다. 또 이들은 이 시대의 화두인 융.복합을 받아들여 기존에 없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오는 8월부터 11월 사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다원 예술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11월에는 국립국악원 연주단원들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현대무용과 국악을 결합한 공연도 올린다. “국립현대무용단에 속하기 전이나 지금이나 제가 하는 말은 하나예요. ‘시대의 창작물을 만들자’는 거죠. 그거야말로 현대무용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으니까요. 융.복합 공연의 경우 장르적 확장을 다각화한다는 의미에서 저도 기대가 큽니다.” 국립 단체로서의 대표성과 현대무용의 대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있는 안애순 단장의 올 한 해 행보가 기대된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상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