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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젤름 라일리의 관객 모독

LIFESTYLE

독일 작가 안젤름 라일리의 개인전 는 보는 이의 기대를 여러 번 배신한다. 감성 넘치는 제목과 달리 사랑에 대해서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어디서 주워왔나 싶은 거대한 쓰레기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려도 각자 알아서 느끼라며 관람객을 방치한다.

 

국제갤러리 3관 K3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한때 잘나갔으나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문을 닫은 베를린 한 클럽의 철거 현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손을 쓸 수 없이 망가진 폐자재 사이로 보이는 반짝이는 네온사인은 화려하다기보다 외롭고 공허하다. 거칠고 묵직한 소재와 가장 강렬한 컬러가 만나 전시장 전체를 일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제3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물질은 꽉 차 있지만 감정은 텅 비어 있는 듯한 전시장에서 작가는 관람객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2010년에 이어 서울에서 두 번째 개인전을 연 안젤름 라일리(Anselm Reyle)는 독일 베를린의 주류 미술계가 형상 회화를 추구하며 학파를 형성하는 것을 거부하고 서브 컬처에 눈을 돌렸다. 그는 과감한 소재와 네온 컬러를 사용해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며 명성을 얻었다.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런던 로열 아카데미와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으며 퐁피두 센터, 삼성미술관 리움, 루벨 패밀리 컬렉션 등에서 그의 작품을 영구 소장하고 있다.
전시가 시작되기 일주일 전에 안젤름 라일리 아틀리에의 스태프 아티스트가 먼저 한국을 방문, 주변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쓰레기에서 시선을 끄는 오브제로 변신할 만한 소재를 찾았다. 폐차 직전인 트럭과 소형차도 있고 건축 폐자재, ‘지직’ 소리를 내는 오래된 TV 브라운관까지 보인다. 이메일을 통해 그가 컨펌하고 독일에서 공수해온 철물, 낡은 캔버스와 철망, 전선과 함께 안젤름 라일리의 시그너처 재료라 할 수 있는 네온 튜브를 더해 작품을 완성했다. 별다른 의도 없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면밀하게 숙고해서 구성해놓은 작품이다. 소재 간 균형과 조화는 읽을 수 있는 이에게만 보일 것이다. “예술가는 작품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입니다. 예술품을 감상하는 이의 의지가 중요하죠. 감상자가 적극적으로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관람객이 작품을 보고 무엇을 느끼고 얻어가든 그건 철저히 관람객의 몫이라는 말이다. ‘Untitled’라는 작품명만큼이나 무뚝뚝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기자간담회부터 인터뷰까지 통역을 맡은 동시통역가가 말했다. “이렇게 통역가를 배려하면서 말하는 아티스트는 처음이에요. 속도 조절은 물론 통역이 부담되지 않게 자연스럽게 끊어가면서 말해요.” 관람객은 무심히 방치하지만 실제로는 배려가 익숙한 반전 매력을 지닌 사람, 안젤름 라일리와 마주 앉았다.

Untitled, 2013

프랑스 그르노블 르 마가쟁 국립 현대미술관의 전, 얼마 전 일본에서 가진 전, 그리고 서울의 전까지 제목이 흥미로운데, 각 전시의 특징을 알려주세요. 공통점은 산업쓰레기를 소재로 했다는 점이고, 차이점으론 전시 공간의 규모와 성격을 들 수 있겠죠. 그르노블은 전시 규모가 큰 공업도시고, 도쿄에서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경영하는 소규모 갤러리에서 열렸어요. 도쿄는 작품 소재를 모두 현지에서 구해 작업했습니다.

서울 인근에서 찾아낸 오래된 산업 폐기물, 폐차 부품이나 건축 폐자재를 보면서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도시의 쓰레기마다 다른 감성이 묻어날 것 같습니다. 반대로 공통점이 더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블라인드, 지붕 철골, 울타리 같은 소재는 매우 비슷합니다. 이를 보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글로벌화되어 있는지 역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모든 쓰레기가 아름다울 수는 없고, 새로 창조할 수 있는 소재가 되는 것도 아니겠죠. 소재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작품 소재로 쓰레기를 선별할 때 이것이 얼마나 전형적인지 생각합니다. 소재가 한 종류에 치우치지 않게 전자제품도 넣고 골고루 안배합니다. 만약 먼 미래의 사람이 이 작품을 본다면 어느 시대것인지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컴퓨터를 보면 컴퓨터 사회임을, 산업쓰레기를 보면 산업화 시대 후기임을 알 수 있겠죠. 그리고 저는 남자 작가의 시각으로 오토바이의 폐타이어 같은 것을 보지만 여성 예술가라면 다른 시선으로 볼 것 같아요.

1970년대 생으로 1980~1990년대 문화를 향유했으며 유럽, 특히 독일을 기반으로 예술 활동을 해왔습니다. 각 시대별로 당신이 겪은 예술적 경험이 작품에 반영되었나요? 저는 늘 예술의 시대정신과 연결 고리를 찾고, 제가 살았던 시기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려 합니다. 특히 예술 밖 시대정신, 서브 컬처에 주목하고 있어요. 1970년대 히피 문화, 1980년대 펑크는 80년대 이후에 제 작품에 드러난 네온 컬러와도 많은 관련이 있어요. 시대정신이 제 예술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입니다.

과감한 네온 컬러는 당신의 상징과도 같아요. 제가 학생일 때 지도 교수님께서 네온 컬러는 보편적인 색이 아니니 레드나 그린과 같은 보색을 써서 명시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예술 밖의 서브 컬처에서 네온 컬러를 찾아 역으로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당시에는 과감했을 네온 컬러가 지금 우리에게는 무척 익숙합니다. 20년 뒤에는 또 다르겠죠. 컬러의 생명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맞습니다. 모더니즘의 전체 발전 과정을 고찰해보면 상당히 짧은 기간에 발전한 조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등장한 큐비즘도 약 2개월 동안 어마어마하게 유행하고 그 뒤로 복제하고 흉내 내는 작가도 등장했죠. 새로운 사조가 나와서 진부한 메인 스트림이 되고 약국에 걸린 달력의 그림으로 전락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아요. 네온 컬러가 20년 후에 많은 예술가들이 시도해 더 이상 도발성과 혁신성을 담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건 예술사에서 흔한 일이니까요.

디올과 컬래버레이션한 패션 아이템과 카무플라주 패턴의 화장품을 봤을 때, 솔직히 ‘아, 이 아티스트는 여성의 메이크업에는 관심이 없는 남자구나’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작품만 보고는 과감한 패션을 보여주실 줄 알았는데 무척 점잖은 교수님처럼 보여요. 당연히 제 직업이 교수니까요! (웃음) 전 패션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평소 디올 매장엔 들어가지도 못하는 걸요. 지금 신은 슈즈가 작업할 당시에 디올에서 선물로 준 것인데 산책할 때 편하게 막 신고 있어요. (웃음)

그게 진짜 멋을 아는 거죠. 근데 럭셔리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은 개인적인 작품 활동과는 출발부터 다를 것 같아요. 디올과의 작업은 예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디자인을 의뢰한 것으로 저는 이해했습니다. 디자인은 예술과 비교해서 기능적이며 완전히 다른 목표를 추구하지만 최종 생산품이 다를 뿐, 여러 사람이 한 팀을 이뤄 일하는 과정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리처드 프린스와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아티스트는 브랜드의 의도에 잘 부합하는 아이템을 선보였지만 저는 아니었죠. 무라카미 다카시는 루이 비통과의 작업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거뒀고 또 다른 자기 세계를 개척했어요. 저도 그 점은 무척 존경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특히 스페인의 조각가 ‘호르헤 데 오테이사’에 대한 오마주인 조각 작품이 시선을 끌었어요. 이 조각 작품을 보고 ‘OO이다’라고 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면에서는 회화에 대한 비유, 은유를 담고 있습니다. 국제갤러리의 전시 공간에 거리를 두고 하나씩 따로 전시한 회화, 설치 작품이 조각 속 거울에 반영되어 독특한 오라를 발산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설명을 하면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말씀하셨는데, 결국 예술은 문제 제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저에게 예술은 예술가가 ‘이것이 예술이다’라고 제시하는 모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모더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마르셀 뒤샹의 ‘샘’은 그가 변기를 예술이라고 내놓는 순간 예술이 됐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뒤샹 본인도 그렇게 큰 영향력을 미칠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겁니다. 이후 ‘레디메이드’라는 개념이 회화나 조각 장르에서 생겨나 사라지지 않았고 그 이후로 예술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해졌습니다. 저 역시 레디메이드 질료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제가 아는 많은 동시대 작가들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결론적으로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말에 대답하기는 어렵지만 예술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통칭하며, 그다음으로 좋은 예술, 나쁜 예술, 혹은 저렴한 예술로 나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도 어디까지 예술인지, 좋은 예술과 나쁜 예술을 나누는 것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도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 예술에 대한 표준은 완전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하나로 수렴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을 봤는데 스태프들이 놀이를 하듯 즐거워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물론 당신은 시종일관 웃지 않고 진지했지만요. 저는 일주일에 닷새를 작업실에 나갑니다. 팀 리더로서 작업실에서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자유롭게 의견을 제시하도록 하고 의견을 조율하기도 합니다. 제 표정이 진지했다면 별거 아닌 예술 행위를 할 때조차 진지하게 임하는 것이 예술가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말도 안 되는 멍청이 같은 짓을 하면서도 얼마나 진지해야 하나 생각하는 것이 제 직업이지요.

에디터 고현경
사진 이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