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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세르베

ARTNOW

알랭 세르베는 오랫동안 금융업계에서 경력을 쌓고 지금은 투자 자문 프리랜서로 일하는 벨기에 출신 컬렉터다. 미술 관련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특히 아티스트 토크나 인터뷰 등을 통해 현대미술계에서 대중이 꼭 필요로 하는 담론을 끌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다. 그는 이제껏 만난 컬렉터들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아실현의 욕구를 위해 컬렉팅을 한다. 또 ‘동시대 컬렉터들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늘 깊이 생각한다. 프랭크 스텔라부터 미칼린 토머스, 그레고리 크루드슨 같은 유명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유난히 별난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그에게 현대미술 컬렉션은 삶의 한 방법이자 사고방식이다.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자아실현을 위해 컬렉팅하는 알랭 세르베

알랭 세르베는 벨기에 브뤼셀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동네로 꼽히는 위클(Uccle)의 우아한 3층 집에 살고 있었다 .그의 집에 들어서는 순간 거실과 복도, 침실, 욕실 등에 그냥 ‘툭’ 놓인, 조금 과장해 말하면 어지럽게 설치된 작품을들 보고 잠시 당황했다. 그러는 사이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한마디 건넨다. “미술품들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있습니다. 예술은 삶의 일부니까요.”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알랭 세르베가 문득 자신의 집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다.)
솔직히 조금 어지러워요.
그런 반응, 충분히 이해합니다. 미술관처럼 잘 정돈된 집을 상상하고 오셨을 테니까요.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컬렉팅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잘 정돈하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미술품과 조화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사는 거죠.

작품을 마음에 드는 적재적소에 설치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떤 원칙 같은 게 있나요?
물론이죠. 이 집에 설치한 작품은 사실 한 큐레이터의 큐레이팅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매년 한차례 특정 큐레이터에게 이 집에 전시를 기획해달라고 부탁합니다. 그에게 건물의 열쇠만 건네고 일절 관여하지 않죠. 그럼 그는 제 컬렉션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곳곳에 작품을 들여놓습니다. 그 덕분에 매년 한차례 이 집에서 ‘전시’를 오픈할 때면 저도 어떤 작품이 어디에 어떻게 설치됐는지 발견하며 전시를 즐기게 되죠. 이건 아주 경이운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전시’를 통해 저는 하나의 작품이 그것이 설치된 환경에 따라 이전에 없던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정말 소중한 인식의 전환이죠. 사실 제 컬렉션을 전시하는 또 다른 공간도 있습니다. ‘로프트’라고 하는데, 브뤼셀 북동부에 있죠.

그러려면 큐레이터에 대한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할 듯한데, 큐레이터와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보시는지요?
제가 그들에게 유일하게 요청하는 것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제 컬렉션을 연구하고 이해하라는 겁니다. 또 제 컬렉션 이제 것이 아님을 강조하죠. 간혹 어떤 사람들은 예술 작품에 종교적 신성함(sacredness)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예술 작품은 결코 종교가 아닙니다. 고로 제가 소장한 작품 또한 제게 속한 게 아니죠. 제 컬렉션과 함께 살아가는게 기쁘긴 하지만, 그것이 어느 누구에게든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독립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질적으로 한 작품을 소유하려면 돈이 들고, 또 그 작품을 통해 물질적 부가가치를 소유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말씀도 맞지만, 그것과 반대되는 상황으로 생기는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여길 좀 보세요. (벽에 걸린 프랭크 스텔라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가리킨 후 이어서 금속 부품이 가득한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이 집채만 한 작품을 집에 들이고 얼마 후 작품 아래 떨어져 있던 것들입니다. 이것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난감해요. 이뿐만이 아니죠. 작품 보존 문제는 또 어떻고요. 예전에 한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가 만든 카펫 작품을 산 적이 있는데, 습도에 민감한 작품의 특성상 엄청 고생하기도 했어요. 다시 말해 예술품을 소유하면 재정적 이익을 얻지만, 반대로 다양한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는 말이죠.

그럼 조금 근본적인 질문을 드리죠. 왜 미술품을 수집하세요?
무엇보다도 내 안에, 내가 컬렉터가 될 수밖에 없는 무엇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열여섯 살 때부터 ‘수집’이란걸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미술관에서 본 작품을 사진으로 하나둘 모으는 일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저 말고도 많은 이가 수집을 즐기죠. 그건 우리 안에 뭔가를 수집하게 하는 어떤 요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요. 또 저는 어려서부터 미술관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금융 쪽 일로 바쁠 때도 작품 앞에선 늘 평온함을 느꼈죠. 그건 아마도 음악을 들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 겁니다. 나 자신을 반사해볼 수 있는 즐거움을 주고, 생각을 확장할 수 있게 돕는 예술품과 함께하는 삶이 제겐 무척 중요합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예술에 대한 지식을 쌓을 때 좀 더 특별해질(particular)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누군가 제 컬션렉을 본다면 아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가진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보이진 않을 테니까요. 남보다 조금 별난(oddness) 시각을 발전시키다 보면, 저처럼 다수가 주목하지 않는 작품을 주목하게 됩니다. 나아가 그걸 보존해야 할 필요성까지 느끼죠. ‘내가 이걸 사지 않으면 곧 사라질 거야’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마르셀 뒤샹의 예를 들어보죠. 그의 유명한 변기 작품 ‘샘’의 오리지널은 이제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게 처음 나왔을 때 누구도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사람들은 1960년대에 들어서야 ‘샘’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이미 늦은 후였죠. 종종 이런 일도 일어납니다. 어떤 작가는 힘들게 만든 작품들을 보존하다 지쳐 결국 모두 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나 자신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컬렉팅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일상적 모티브와 상징적 모티브를 복합적으로 구사하는 양혜규의 2012년 작품 ‘Nosy Clown-Mangrove Swamped’
2 태국 출신으로 태국의 전통 공예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하는 산티 왕추안(Santi Wangchuan)의 ‘Weaving Work: Gift No. 2’
3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조율을 실험하는 듀오 아티스트 알로라 앤 칼사디야(Allora & Calzadilla)의 ‘Petrified Petrol Pump’
4 파키스탄 출신으로 동서양의 역사와 전통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하는 알리 카딤(Ali Khadim)의 ‘Transition / Evacuation 3’

다른 무언가가 또 있나요?
열정 아닐까요? 전 앞으로 지난 5개월간 눈여겨본 많은 작품을 재검토해 25점 정도를 추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25점을 다 살 순 없고, 그중 절반인 12점 정도를 구입하게 될 듯합니다. 저는 여럿 중 그걸 선택해야 하고, 그게 바로 인생입니다. 어려운 선택이 될 수 있겠지만 어쩔 수 없죠. 그 모든 요소가 모여 작품 수집의 이유를 설명하게 되까니요.

금융인의 삶과 컬렉터의 삶, 두 가지 상이한 세계를 살고 있습니다. 이 두 세계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가장 쉽게 ‘돈’이라는 링크를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금 2000년도를 살고 있다고 가정해보세요. 우리가 훌륭한 금융인이라면 ‘애플’이나 ‘페이스북’의 주식을 사두겠죠. 하지만 주변에선 애플이나 페이스북은 애들이나 관심을 갖는 거라며 차라리 삼성 같은 대기업 주식을 사라고 할 겁니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페이스북의 주식을 삽니다. 페이스북의 주식을 산 사람은 앞으로 이 세상에서 무엇이 중요해질지 아는 이일 테죠. 인간의 삶은 갈수록 단순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이는 점점 무형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소비하게 되는 인간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누군가는 이를 미리 읽을 수 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금융계에서 성공한 이들은 인간의 삶이 어떻게 진화할지 누구도 감지하지 못할 때 미리 이를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나 좋은 컬렉터가 되긴 어려운 법이군요.
맞아요. 좋은 컬렉터라면 어떤 작품이 새로운 흐름으로 부각할지 미리 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인터넷은 우리의 삶 뿐 아니라 인간의 문화와 사고, 행동 방식까지 바꿨습니다. 어떤 작가 그룹은 자신들의 작업을 PDF 파일로 만들어 아트시(www.artsy.net) 같은 사이트에 올립니다. 그 작품을 산 이들은 PDF 파일에 첨부된 설명서를 토대로 준비물을 챙기고 직접 작품을 제작합니다. 이런 유형의 작품은 인터넷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지 설명해주죠. 제겐 이런 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이건 하나의 오브제에 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식의 전환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예술품이기 때문입니다. 전 컴퓨터 앞에 앉아 매일 금융 정보를 수집합니다. 그렇게 수집한 정보는 곧 투자 결정으로 전환되죠. 그럼 좋은 컬렉터란 어떤 사람일까요? 그들은 앞으로 세상을 이끌 새로운 것이 무엇일지 알아내기 위해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일 겁니다.

작품 소장을 결정하기 전 고려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작가가 작품을 만든 동기나 목적이 중요합니다. 작가가 세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아이디어는 새로운 것인지, 시대의 흐름을 논하는 문제에서 오리지널리티를 지니는지 등을 보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작품이 내포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전 제게 작품을 소개하는 갤러리스트에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정중히 묻습니다. 만약 그 주제가 마음에 든다면 그때부터 그 작품이 어떻게 제 컬렉션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지 생각하죠. 마지막으론 작품의 가격을 고려합니다. 가격을 따지는 건 단순히 투자가치를 고려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언젠가 제가 죽었을 때 혹시라도 그 작품을 처분하고 싶어질지 모르는 제 자식들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죠. 전 그 작품이 먼 훗날 어떤 식으로든 제 자식들에게 보상이 되길 바라니까요.

지난해에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후원으로 한국에 오셨고 토크 프로그램에도 참가하셨는데, 당시 한국 미술계를 돌아보며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광주비엔날레와 서울시립미술관의 미디어시티비엔날레, 국립현대미술관과 아트선재센터의 전시가 특히 좋았습니다. 그때 발견한 이들 중 특히 인상 깊은 작가는 일민미술관의 개인전을 통해 만난 김용익 작가였어요. 그의 작품에 담긴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흥미로웠죠. 저는 세상의 중요한 작품은 국가와 연관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컬렉터들은 한 작가를 이해하기에 앞서, 그 작가가 속한 사회와 문화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전에 한 인터뷰에서 베니스 비엔날레를 ‘세계에서 가장 큰 아트 페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미술 행사로 꼽히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업성에 대한 비판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자신이 작가든 갤러리스트든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면 최고의 작품을 들고 가는 게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최근엔 최고의 작품 창작을 돕는 공공 기금이 계속 줄고 있어요. 대신 거기에 프라이빗 자금이 개입하고 있죠. 베니스 비엔날레는 작가들을 초대할 형편이 안 되니 작품 제작을 지원할 리 만무합니다. 그러니 작품 제작을 가능하케는 건 갤러리나 해당 작품의 투자가치를 본 개인이 될 테죠. 결국 이로 인해 작품을 무조건 팔아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는 말이에요. 어느 해부터인가 베니스 비엔날레는 아트 페어와 아주 유사한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 어떤 특정 작품 옆에 그걸 완성한 작가가 속한 갤러리 관계자가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진풍경도 목격할 수 있죠.

미술관 전시도 점점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하나의 갤러리가 미술관 한 곳의 전시를 모두 기획하고, 재정적 지원을 통해 해당 갤러리에서 미술관에 전시한 것과 유사한 작품을 파는 세상 말입니다.
맞아요. 그런데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그건 작가나 갤러리, 미술관의 잘못은 아닐 거예요. 미술관에 공공 자금이 충분히 지원된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겠죠.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최선희(초이앤라거갤러리 대표)  사진 Mathieu Bauwens(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