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앙코르! 다시 한 번

LIFESTYLE

반복되는 커튼콜과 앙코르가 때론 또 하나의 리사이틀을 만들기도 한다. 클래식 음악회에서 앙코르 연주가 가벼운 추가 선곡이 아닌 이유.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한국 오케스트라 최초로 공연한 경기필하모닉과 성시연 지휘자. 앙코르로 ‘아리랑’을 연주했다.

지금부터 3부 시작!_ “이제 뭘 연주할까요?” 이미 6곡의 앙코르를 연주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다시 피아노에 앉은 뒤 관객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질문했다. 애초에 준비한 앙코르곡은 여기까지인 모양. 객석 여기저기에서 신청곡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그중 그녀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일곱 번째 앙코르곡으로 연주하기 시작했다. 지난 2월 2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손열음 피아노 리사이틀의 앙코르는 무려 10곡까지 이어졌고, 예정된 시간보다 1시간을 훌쩍 넘겨 공연이 끝났다. 이쯤 되면 ‘제3부’ 공연이라 해도 손색없을 정도. 몇 년 전에도 서울에서 이런 특별한 앙코르 무대가 있었다. 예브게니 키신은 2006년과 2009년 두 번의 내한 공연에서 모두 10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며 ‘기록’을 세웠다. 그는 진정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닌’ 음악을 들려주는 연주자였다.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쏟아진 이 행복한 앙코르 폭탄은 클래식 관객에게 두고두고 회자되는 에피소드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개최한 독주회에서 앙코르로 관객의 신청곡을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손열음

특별한 후식, 혹은 화룡점정_ 앙코르는 물론 요청에 답하는 것이다. 단순히 ‘다시 한 번’이란 뜻이 아니던가. 공연에 만족한 관객은 박수로 연주자를 다시 한 번 무대 위로 불러낸다. 흥미로운 것은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앙코르를 연주하는 스타일도 다르다는 것. 얼마 전 1년 만에 귀국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앙코르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앙코르는 디저트라고 생각한다. 단 걸 많이 먹으면 안 되니까 보통 2~3곡만 연주하고 5곡 이상 연주한 적은 없다.” 바로 다음 날 쇼팽 콩쿠르 우승자 갈라 콘서트 무대에 오른 그는 낮 공연에서 앙코르로 쇼팽의 녹턴 20번, 저녁 공연에서 쇼팽의 폴로네이즈 ‘영웅’을 연주했다. 각각 단 한 곡의 앙코르였지만 그 순간 가장 잘 어울리는 디저트였다. 앙코르는 프로그램에 없는 플러스 알파지만 그날의 프로그램과 연결 고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매년 ‘첼로로 떠나는 여행’ 시리즈로 한 나라를 테마로 정해 독주회를 여는 첼리스트 주연선은 앙코르곡 선정 기준에 대해 “전체 연주회의 흐름에 맞는지 고려한다. ‘첼로로 떠나는 여행’ 무대에서는 그날 다루는 나라의 곡을 선정하며, 가능한 한 듣기 편하고 관객이 여운을 안고 돌아갈 수 있는 곡을 고른다”고 말했다. 사전에 앙코르를 준비하지 않은 오케스트라나 실내악 공연의 경우, 방금 연주한 곡에서 두드러지는 특정 악장을 반복하며 본 프로그램의 희열을 다시 나누기도 한다. 시기에 따라 재미있고 특별한 기억을 남기는 곡을 연주할 때도 있는데, 작년 12월 21일 노부스 콰르텟은 리사이틀에서 활 없이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스타카토로 캐럴 ‘We Wish You a Merry Christmas’를 연주했고 첫 음이 흐르자마자 객석에서는 행복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물론 본 프로그램과 무관하게 ‘단골 앙코르곡’은 존재한다. 주로 짧고 친숙한 선율에 잔잔한 곡이 많은데, 리스트의 ‘사랑의 꿈’, 슈만의 ‘헌정’과 ‘트로이메라이’,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이 관객에게 편안한 여운을 남기기 위해 연주자들이 종종 선택하는 선물 같은 곡이다.

앙코르에도 국민성이?_ 같은 연주라도 공간과 관객 등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른 음악이 탄생하니 관객의 반응에 따라 앙코르가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 유럽 관객이 잦아들지 않는 긴 박수를 보내며 연주자를 몇 번이고 불러내는 반면, 미국 관객은 대체로 짧지만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치곤 앙코르를 한 번 정도 들은 뒤 이제 연주자를 놓아주겠다는 듯 다들 자리를 떠난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은? 요즘 내한하는 연주자마다 ‘관객의 반응’에 반했다는 말을 남길 만큼 박수가 후한 것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관객이 이토록 다르니 어디서 연주하느냐에 따라 앙코르를 준비하는 모습도 다를 터. 본 프로그램에 집중하기 위해 평소 앙코르 연주를 잘 하지 않는다는 경기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성시연 지휘자는 그만큼 앙코르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에 베를린 필하모닉 홀에서 경기필을 지휘했을 때 앙코르로 연주한 ‘아리랑’이 기억에 남는다. 클래식 음악의 성지 같은 무대에 섰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었고, 그곳에서 한국 음악을 앙코르로 연주하며 나도 모르게 울컥한 순간이었다.”

지난 12월 개최한 리사이틀에서 앙코르 곡으로 특별히 크리스마스 캐럴을 연주한 노부스 콰르텟

무언의 약속_ 곡에 따라 앙코르를 절대 연주하지 않는 공연도 있다. 앙코르가 흥을 돋우기도 하지만 메인 프로그램의 스케일이 클 때는 마치 불필요한 사족을 붙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 오케스트라의 경우 말러나 바그너의 곡을 연주한 후엔 곡의 느낌을 망치지 않기 위해 앙코르 연주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고, 바흐의 마태수난곡처럼 합창단과 함께하는 압도적인 대작을 연주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실내악 공연에서도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전곡 연주처럼 연주 시간이 길고 한 무대에서 전곡을 연주한다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는 앙코르 연주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연주자들끼리도 당연히 앙코르 매너가 있다. 오케스트라 공연의 협연자가 앙코르 연주를 할 때는 한 곡 정도로 끝내는 게 보통이다. 독주회 무대가 아닌 이상, 관객의 호응에 따라 여러 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는 것은 2부에 교향곡을 연주해야 하는 오케스트라 단원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 협연자가 두 번째 앙코르를 할 때는 무대에 올라 먼저 악장에게 양해를 구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걸 볼 수 있다(물론 그때 ‘No’를 말하는 악장은 없겠지만 말이다).

소통과 화답의 시간_ 애초에 앙코르에는 감사의 뜻이 깃들어 있다. 관객은 좋은 연주에 환호하고, 그에 대한 화답으로 다시 무대에 오른 연주자는 청중에게 앙코르를 선사한다. 손열음이 10곡의 앙코르를 친 다음 날 한 말도 “본래 6곡의 앙코르를 연주하려 했는데 연주를 보러 오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어 좀 더 들려드리고 싶었다”는 것이었다. 예정된 프로그램에 없던 곡을 연주하고 연주자가 직접 관객에게 짧은 멘트로 곡에 대한 소개를 하는 등 앙코르 무대는 관객과 직접적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때론 본 공연만큼 중요하다. 기대하지 않은 음악을 감상하고 즉흥성의 매력을 더한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앙코르다.

에디터 안미영 (myah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