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 워홀, 미래를 본 사나이
위대한 작가란 누구인가? 인류 문명의 유산으로 남을 아름다운 무엇을 창조했거나, 일반인이 범접할 수 없는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거나, 남들보다 일찍 세상의 보이지 않는 질서를 간파해 미래를 예견한 사람일 것이다. 앤디 워홀은 이 모든 면에서 우리를 자극한다. 우리가 알고 있거나 아직도 모르는 그를 둘러싼 어떤 현상에 관하여.
DDP에서 열린 <앤디 워홀 라이브> 전시장엔 <맨 인 블랙>, <혹성탈출> 등 유명 할리우드 영화의 특수분장사로 참여한 카즈히로 츠지가 제작한 앤디 워홀 조각상과 ‘타임 캡슐’ 이미지가 전시 벽면에 부착돼 있다.
지난 6월 6일부터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앤디 워홀의 전시 <앤디 워홀 라이브>(9월 27일까지)가 열리고 있다. 전날 열린 개막식 행사장은 유명 연예인과 정치인, 미술계 인사 등 소위 한국의 ‘셀레브러티’라 할 만한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아인슈타인, 프란츠 카프카, 메릴린 먼로, 마이클잭슨, 무하마드 알리, 믹 재거 등 워홀 작품 속 ‘슈퍼스타’를 먼 이국의 ‘스타’가 보고 있는 풍경이 흥미로웠다. 피츠버그에 있는 앤디 워홀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꾸린 전시는 앤디 워홀이라는 문제적 인간의 인생과 작품 경향에 따라 크고 작은 챕터로 나뉘어 있었다.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그의 어린 시절로 시작해 상업 디자이너로 성공, 마침내 팝아트를 대표하는 ‘예술가’로 아트 신에서 인정받으며 펼친 남다른 행보가 파노라마처럼 이어졌다. 전시는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도) 그의 작품 이미지로 뒤덮인 각종 아트 상품을 판매하는 숍으로 마무리됐다.
동대문 한복판에 불시착한 거대한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자하 하디드의 건축을 빠져나오는데 문득 SF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외계인과 지구인이 사투를 벌이는 <맨 인 블랙> 3편에는 1960년대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앤디 워홀이 등장한다. 1969년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 주인공 윌 스미스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동료 요원과 함께 워홀의 ‘팩토리(factory)’를 방문한다. 1964년 워홀은 뉴욕 맨해튼 47번지 빌딩 꼭대기에 스튜디오를 오픈하면서 ‘팩토리’라 명명했다. 모자 공장으로 사용하던 빌딩의 이력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워홀의 진두지휘 아래 그의 패거리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공장의 ‘기계’처럼 작품을 찍어내는 곳이었다. 그의 유명세가 커지자 팩토리는 뉴욕의 가장 ‘핫’한 인물이 모여 어울리는 사교의 무대가 됐다. 유명 연예인 이외에 워홀의 눈에 들어 ‘뮤즈’로서 작품의 주인공 자리를 꿰차려는 불타는 청춘도 포함돼 있었다. 암호를 말하고 문이 열리자 온통 은빛으로 도배한 팩토리의 전경이 펼쳐진다. 미래주의 스타일 옷을 입은 모델들이 런어웨이를 걷고 칵테일 잔을 든 셀렙들로 떠들썩한 스튜디오 중앙에서 워홀이 카메라를 들고 모델을 촬영하고 있다. 영화에서 그는 ‘맨 인 블랙’ 요원으로 설정돼 있었다. 분장실에 들어와 워홀 하면 떠오르는 흰 더벅머리 가발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지는 배우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앤디 워홀 라이브> 전경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
1987년 2월 22일, 담낭 수술을 받고 세상을 떠난 앤디 워홀의 삶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자신을 알고 싶은 사람은 작품의 겉만 보면 된다고 즐겨 말했지만, 그의 행적을 추적하면 영화 속 요원이 아니라 미지의 존재인 외계인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는 앨런 미드젯(Allen Midgette)을 자신과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시켜 뉴욕의 밤을 밝힌 각종 오프닝 행사나 파티에 참석하게 했다. 한편으로 그는 <맨 인 블랙>의 윌 스미스처럼 시간 여행을 통해 누구보다 먼저 미래를 본 선각자가 아닐까 싶다. 모순으로 가득차 있지만, 시대를 꿰뚫는 통찰력이 반짝이는 그의 작품과 말과 전략은 오늘의 예술·문화·사회·경제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 누릴 ‘창조자’의 위대함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돈과 명성을 향해 전전긍긍하는 셀렙의 경박함 사이를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오간 작가는 일찍이 없었다. 그도 자신의 입지 조건을 잘 알고 있었다. 오히려 그렇게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수다 떨기를 좋아한 그가 자신의 일상을 ‘철학’이라 명명하며 엮은 자전 에세이 <앤디 워홀의 철학>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나는 안맞는 장소에 맞는 물건으로, 그리고 맞는 장소에 안 맞는 물건으로 있기를 좋아한다. 당신이 이 둘 중 하나가 될 때 사람들은 당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거나, 침을 뱉거나, 당신에 관해 나쁜 기사를 쓰거나, 당신을 두들겨 패거나, 사진을 찍거나, 당신이 ‘뜨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안맞는 장소에 맞는 사람으로 있거나, 맞는 장소에 안 맞는 사람으로 있는것은 항상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게 하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나를 믿어라. 나는 맞지 않는 공간에 맞는 인간으로 있고, 맞는 공간에 안 맞는 인간으로 있다가 지금의 내 지위를 얻은 사람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앤디 워홀, Untitled from Marilyn Monroe, 1967_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앤디 워홀: 캠벨 수프캔과 다른 작품들 1953~1967>전의 출품작
©2015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제프 쿤스, 무라카미 다카시, 데이미언 허스트 등 오늘날 많은 작가가 앤디 워홀의 후계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시대의 ‘슈퍼스타’ 작가는 ‘공장’형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워홀이 구축한 ‘사업가로서 작가’라는 모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들의 작업장에 비하면 워홀의 ‘팩토리’는 가내수공업장 정도로 보일 정도. 수십 명의 전문가가 포진한 그곳에서 작품은 세계 각지의 컬렉터를 위해 명품 가방처럼 ‘생산’된다. 재벌과 어깨동무하며 호형호제하는 그들의 태도는 “돈을 버는 것도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다”라는 워홀의 말에 딱 들어맞는다. 그들의 작품에 주로 등장하는 보석, 돈, 꽃, 해골, 대량생산한 일상용품 같은 아이코닉한 소재와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화려한 색채는 워홀의 작품에서 충분히 예시한 것이다. 워홀이 상업 디자이너에서 예술로 진입하는 돌파구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끔찍한 사건 사고를 캔버스에 무심히 옮겨 그린 것처럼, 그들도 죽음이라는 영원불멸의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동시에 쿨하게 제시한다. 나 홀로 창작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낭만주의적 작가의 모습은 점차 희귀해지고 있다. 보스 슈트를 말끔히 차려입고 두 팔 벌리며 이를 드러낸 채 웃는 제프쿤스나 ‘카이카이키키’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장난꾸러기 같은 과장된 몸짓, 카메라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거침없이 올리고 아랫도리를 털썩 내리는 데이미언 허스트의 도발적인 모습에 우리는 열광한다.
앤디 워홀, Double Elvis, 1963
© 2015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제프 쿤스, Hulk(Organ), 2004~2014_제프 쿤스는 앤디 워홀의 앨비스 프레슬리처럼 헐크 이미지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했다.
© Jeff Koons
“누구나 15분이면 유명해질 수 있다”
동시대 작가뿐 아니다. 요제프 보이스의 “누구나 예술가다”에 버금가는 허황한 소리처럼 들리는 워홀의 “누구나 15분이면 유명해 질 수 있다”는 말은 이제 너무나 리얼한 현실이 됐다. 춤, 노래, 모델, 의상 디자인, 미술까지 소위 ‘장사’가 될 만한 전 영역을 포섭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흥행은 전 세계적 현상이자 현재진행형이다. 단 몇 분에 걸친 ‘악마의 편집’에 따라 참가자는 지옥과 천국을 오가고 대중은 그 순간에 환호한다. 또한 일반인과 방송에 익숙한 연예인 할 것 없이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온 가족이 총출동해 비밀스러운 사생활을 세상에 공개하기 바쁘다. 방송계에서는 자식이 없거나 이혼 경력이 없으면 출연하기 힘들다는 웃지 못할 소리도 떠돌 지경이다. 앤디 워홀은 이런 대중 매체의 속성과 파급력을 간파했다. 그는 출생 날짜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거나 이민자 출신으로 대공황 시기를 견뎌낸 가정 환경을 강조하면서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 속 영웅으로 자신을 포장했다. 또한 영화 제작이나 잡지 <인터뷰> 발간은 물론 유명 스타부터 재력가나 관장급 미술인, 갤러리 소유주 등의 초상을 그려주는 데 특별히 공을 들였다. 부와 명성이 그와 동일한 값어치의 무엇을 가져다준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충실한 것이다(그의 생전 마지막 연작이 레닌의 초상화라는 점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심지어 그는 1968년 발생한 자신의 저격 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막후에서 조정했다. 앤디 워홀의 일기를 대필한 팻 해켓은 그가 감탄한 단 한 가지가 바로 ‘명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것이 오래되거나 새롭거나, 심지어 꺼져가는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아름다움, 지속적이고 혁신적인 재능, ‘최초’로 시도한 어떤 것, 훌륭한 성품, 말솜씨가 뛰어난 사람, 그리고 돈…. 앤디는 절대로 그의 성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지만 성공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워홀의 작품은 끊임없이 대중매체에 노출됐고, 현대 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아, 저것은 워홀 스타일!”이라고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게 됐다.
앤디 워홀의 ‘진짜’ 모습이 궁금한 독자라면 이번 서울 전시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전시물 중 하나가 ‘타임 캡슐(Time Capsules)’이다. 워홀은 일상을 기록하고 수집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매일 전화를 걸어 대필 작가에게 시시콜콜한 사항을 받아 적게했다. ‘타임 캡슐’은 그가 ‘흥미롭다’는 기준으로 평생 수집한 거의 모든 물품을 보관한 상자로 워홀의 수집광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집한 물건을 상자에 넣는 작업은 1974년 스튜디오를 브로드웨이 860번지로 이전할 때 한 직원이 권유하면서 시작했다고 한다. 그 안에는 옷, 장난감, 장식품, 비닐 음반, 테이프 오디오 녹음기, 여행 기념품, 유명인 수집품, 공문서, 편지, 책, 신문, 잡지, 담배, 사진, 향수, 초대장 등 워홀의 삶을 둘러싼 모든 요소를 총망라했다. 앤디 워홀 미술관은 612개의 컨테이너(큰 트렁크 하나, 40개의 금속 캐비닛 서랍, 571개의 소포 박스)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 전시에선 그중 237번 타임 캡슐을 선보인다. 현재 미술관에서 3명의 편집자가 ‘타임 캡슐’의 물건을 목록화하는 중으로 향후 6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 한다. 전시에서 워홀 자체를 물신화한 것 같은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예술가의 사적 기록을 엿보는 일은 시간 여행을 떠난 듯 기묘한 기분을 선사한다. 그는 언젠가 이 상자마저 하나의 작품으로 유리관에 넣어 대중에게 공개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찌감치 예견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지금까지 신선한 에너지를 내뿜는 이유는 시대를 앞서간 동물적 감각이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워홀은 말했다. “나는 진정으로 미래를 위해 살았다. 사탕 한 봉지를 먹을 때도 마지막 조각의 맛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다른 어떤 조각들은 맛도 보지 않았다. 단지 다 먹고 나서 그 봉지를 버리길 원했다. 그리고 마음속에 더 이상 그것을 담아놓지 않았다.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뉴욕 현대미술관,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