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티크, 경이로운 세계로의 초대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앤티크 숍으로 손꼽히는 칼턴 홉스 갤러리. 17~19세기 영국과 유럽의 귀족이 사용하던 고가구가 저마다 사연을 지닌 채 매혹적인 자태를 뽐낸다. 1970년대부터 앤티크 딜러로 활동한 이곳의 수장 칼턴 홉스는 전 세계 앤티크 마켓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오래된 사물의 기원을 추적하며 숨은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 바쁜 그의 ‘앤티크 사랑’은 오늘도 계속된다.
뉴욕 맨해튼 어퍼이스트 93번가에는 20세기 초반 미국 사교계의 명사인 버지니아 페어 밴더빌트(Virginia Fair Vanderbilt)가 자택으로 사용한 건물이 있다. 워싱턴을 대표하는 유명 건축물인 국립 미술관을 설계한 건축가 존 러셀 포프(John Russell Pope)가 지은 이 건물은 유럽 문화의 정수를 미국식으로 소화해 고전주의적 우아함이 물씬 느껴진다. 이곳에 들어온 사람은 그 누구라도 시간 여행을 하는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흡사 세상의 온갖 진귀한 물건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감상하던 유럽 귀족들의 ‘분더카머(Wunderkammer)’도 떠오른다. 박물관의 효시로 언급하는 분더카머가 지닌 ‘경이로운 방’이라는 의미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살아남은 보물과 같은 앤티크 오브제가 놀라운 풍경을 연출한다. 이곳이 바로 40년 넘게 앤티크업계에서 최고의 딜러 자리를 지켜온 칼턴 홉스(Carlton Hobbs)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영국 런던의 핌리코 가에서 명성 높은 앤티크 갤러리를 운영하던 칼턴 홉스는 2002년 뉴욕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갤러리의 컬렉션과 어울릴 만한 공간을 찾기 위해 1년여 동안 발품을 팔았다. “우리의 주요 고객이 활동하는 곳에서 그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싶었어요. 뉴욕은 저와 스테파니 린자(Stefanie Rinza)도 좋아하는 곳이죠. 우리는 뉴욕에서 정말 흥미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갤러리의 뉴욕행 ‘침공’ 프로젝트를 지휘한 인물은 그와 오랫동안 사업 파트너로 일한 디렉터 스테파니 린자. 그녀는 1984년 뒤셀도르프에서 칼턴 홉스와 만나 지금까지 호흡을 맞추고 있다.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했으며, 매킨지 앤 컴퍼니(McKinsey and Co.)의 런던 지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칼턴 홉스와 스테파니 린자는 우연히 소개받은 이 건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다. 그들은 밴더빌트 여사의 자택에 이어 2000년까지만 해도 프랑스어 수업을 펼치는 프랑스 학교로 사용한 이곳을 구입하기 위해 런던에 소유한 부동산을 다 처분했다. 18개월 동안 건축물의 옛 디자인을 최대한 복원하는 공사에 돌입했다. 모든 작업은 전통적 수작업 방식으로 진행했으며, 벽면에 8톤가량의 영국산 석고를 사용했다. 밴더빌트 여사가 살던 시절로 완벽하게 돌아가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애정을 쏟고 공들여 재탄생한 이곳은 뉴욕에서 가장 아름답고 독특하며 고급스러운 자태를 뽐내는 앤티크 갤러리다.
갤러리 내부에서 포즈를 취한 칼턴 홉스
19세기 초 토머스 펜텀(Thomas Fentham)이 제작한 나무에 금박을 입혀 만든 볼록거울. 중국의 이국적 풍경이 그려져 있다.
앤티크 마켓의 리더
칼턴 홉스는
그의 앤티크 딜러 경력은 꽤 일찍부터 시작됐다. 1973년 당시 나이 16세, 그는 부모에게 2000파운드를 빌려 런던 킹스 로드에 있는 앤티크 상점 퍼니처 케이브(Furniture Cave)에 작은 부스를 마련했다. 이곳에서 형 존 홉스와 함께 앤티크 딜러를 시작했다. 시대를 읽는 능력이 있었던 걸까? 그들은 영국에 머물지 않고 유럽과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진귀한 물건을 수집했다. 특히 19세기 중반에 만든 비더마이어(Biedermeier) 가구를 취급하면서 새로운 고객을 만났고, 큰 수익을 남겼다. 간소하고 실용적인 가구 양식으로 알려진 비더마이어는 섬나라 영국의 앤티크 마켓에서 신‘ 선한’ 유럽산 낡은 물건이었다. 행운의 여신도 그들의 편이었다. 당시 영국의 저택들에 숨어 있던 오래된 물건이 세상에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던 시기였으니, 앤티크 시장에 활력이 돌 수밖에 없었다. 사업을 확장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앤티크 업계에서 입지를 다지던 형제는 1987년 런던 핌리코 가에 갤러리를 열고 마켓을 리드하는 주요 딜러로 거듭났다. 세계적 앤티크 숍과 갤러리가 참여하는 유수의 쇼에 홉스 형제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세일즈 룸에는 스칸디나비아나 러시아의 가구처럼 영국의 가구와 다른 이색적 물품이 가득했고, 입소문을 타며 유명인사들이 단골손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디자이너 발렌티노 가라바니(Valentino Garavani), 금융 재벌 에드먼드 사프라(Edmond Safra), 가수 엘턴존(Elton John), 장식가 렌초 몬자르디노(Renzo Mongiardino)와 건축가 피터 마리노(Peter Marino) 등이 시간을 거스르는 홉스 형제의 마법사와 같은 손길을 빌렸다. 1993년 칼턴 홉스는 형에게서 독립해 자신의 이름을 딴 유한책임회사를 차렸다.
지난 1월 칼턴 홉스 갤러리에서 열린 조각 컬렉션 전시 전경
1830년경 영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추정되는 로즈우드로 만든 소파. 놋쇠에 금박을 입혔다.
1840년대 루이 필리프 시대에 제작한 캐비닛. 매우 정교한 다색화 기법으로 전면을 장식했다.
터키 곡예사와 음악가 형상의 자동인형이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19세기에 제작한 시계
칼턴 홉스 갤러리는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생산한 17~19세기의 고가구를 주로 취급한다. 건축가와 그들의 후원자가 협동해 세상에 내놓은 독특한 작업을 선호한다고. 소장 가치가 높은 700여 개의 아이템을 확보하고 있지만, 어떤 물품은 그 가치에 따라 아예 판매하지 않기도 한다. 갤러리에는 테이블, 캐비닛, 조명, 거울, 서랍장, 대리석 장식품같은 가구 외에 회화부터 오래된 굴뚝까지 다양한 제품이 까다로운 고객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다. 오늘날 칼턴 홉스 갤러리가 성취한 명성과 신뢰는 돈이 되는 낡은 물건을 그저 잘 팔았기 때문이 아니다. 칼턴 홉스가 앤티크에 접근하는 아카데믹한 태도는 업계에서도 정평이 나 있다. 갤러리의 도서관은 소장품에 관한 2500여 개의 사진 자료와 고서 등을 구비하고 있다. 칼턴 홉스 역시 자신의 갤러리와 다른 곳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아카데믹한 접근’을 꼽았다. 형과 함께 갤러리를 운영하며 앤티크 사업을 확장하던 1980년대 중반부터 컬렉션의 기원을 조사하는 리서치 부서를 갤러리 내에 따로 만들었다. 그는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으면 시간을 들여 리서치 작업에 돌입한다. “오래된 물건의 미스터리를 푸는 작업은 탐정 수사와 정말 비슷해요.” 같은 앤티크 페어에 참여한 갤러리가 작품에 관해 써놓은 설명과 칼턴 홉스의 그것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다. 칼턴 홉스 갤러리의 설명에는 이 사물이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구체적 쓰임새는 무엇인지,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등의 정보가 차고 넘친다. 텍스트만으로 재미있는 옛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갤러리 블로그(www.carltonhobbs.net)에는 소장품에 관한 정보가 수시로 업데이트되는데, 작품에 관한 설명 외에 해당 포스트가 몇 글자와 몇 장의 이미지로 구성됐는지, 글을 읽는 데 몇 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상세한 사항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다. 칼턴 홉스 갤러리는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감식안과 탁월한 취향, 앤티크를 다루는 세심함과 집요함 덕분에 개인 컬렉터는 물론 루브르 미술관, 존 폴 게티 미술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국립 스코틀랜드 미술관, 암스테르담 국립 미술관, 그리스 국립 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상대로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1785년경 독일에서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여인과 개가 있는 초상화
1885년경 영국에서 제작한, 사냥하는 모습이 그려진 거울
시대를 거스른 ‘걸작’의 안식처
자, 그럼 칼턴 홉스 갤러리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자. 사자 머리를 새긴 고리가 달린 건물의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리석으로 둘러싸인 홀이 나타난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홀의 끝에선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형식이라 칭송받는 1820년대 이탈리아에서 제작한 안티누스 흉상과 영국의 앤티크 가구 디자이너 토머스 호프(Thomas Hope, 1769~1831년)가 만든 소파가 관람객의 눈길을 잡아챈다. 1층 중앙 홀에는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대표하는 주세페 마졸리니(Giuseppe Maggiolini, 1738~1814년)가 제작한 서랍장과 인조 대리석 테이블이 놓여 있고, 천장에선 화려한 샹들리에가 빛을 내뿜는다. 1층의 북쪽 방은 공작새 모양의 반짇고리, 영국 팔라디오주의 건축을 대표하는 원스테드 하우스(Wanstead House)에 있던 벽난로 선반, 나폴레옹의 ‘틸지트 조약(Treaty of Tilsit)’ 서명을 새긴 프랑스산 로즈우드로 만든 다이닝 테이블, 토머스 뉴베리(Thomas Newberry)가 디자인한 금빛 ‘솔로몬 성전’의 모델 등 미술관이나 박물관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작품으로 채웠다.
2층으로 향하는 아르데코 스타일의 웅장한 계단 옆에는 나무를 깎아 금박을 입힌 거대한 화병이 놓여 조화를 이룬다. 2층으로 올라가면 독일의 위대한 건축가이자 화가로 꼽히는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 제작한 나무 테이블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밖에도 로봇이 변신하듯 사방으로 펼쳐지는 마호가니 테이블, 첸치 저택(Palazzo Cenci)에 있던 로만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테두리로 장식한 거울, 사방을 대리석으로 장식한 ‘대리석 방’과 그 방의 끝에 걸려 있는 율리우스 그림(Julius Grimm)의 회화 작품 ‘Mond’, 3층의 독일에서 제작한 기계식 필기용 테이블 등 진귀한 볼거리가 가득하다. 이런 세팅은 수시로 바뀐다.
칼턴 홉스 갤러리를 다 둘러보면 이런 상상에 빠질지도 모른다. ‘앤티크 오브제의 만신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 거야!’ 전문가의 손길로 최적의 컨디션을 되찾은 개별 오브제가 ‘비례란 이런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듯 각을 맞춰 대구를 이룬 모습은 옛 신전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의 잊힌 이야기와 숨은 목소리를 되찾고 ‘걸작’의 안식처에서 제2의 인생을 준비 중인 앤티크 가구를 보면서 인류 문명의 아름다움을 향한 무한한 의지를 재발견하는 것은 이곳을 찾는 또 다른 기쁨이자 학습의 기회다. 앤티크 딜러의 사회적 역할이 물건을 사고파는 데 머물지 않고 우리가 하찮게 여기던 낡은 물건에 새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것이라면, 칼턴 홉스는 그 작업을 누구보다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는 앤티크가 투자 목적으로만 소비된다는 편향된 생각에 일침을 놓는다.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작품을 통해 얻는 ‘기쁨’입니다. 이건 우표 수집하곤 달라요. 확고한 열정을 바탕으로하는 일종의 아주 특별한 발언이죠.” 아름다운 앤티크 가구를 두고 이것은 인간이 아니라 ‘신’을 위한 가구라고 주저 없이 말하는 칼턴 홉스. 그의 옛것을 향한 열렬한 애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은 그의 발걸음은 언제나 내일을 향한다는 것이다
17세기 멕시코에서 만든 서랍장. 나무 표면에 꽃이나 자연 형태를 디자인해 상감세공하는 기법으로 제작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로열 파빌리온을 위해 제작한 캐비닛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사진 제공 칼턴 홉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