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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재킷의 오트 쿠튀르

ARTNOW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은 앨범 재킷이 예쁘면 음악이 나쁠 리 없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앨범 재킷은 음악이 마지막으로 걸치는 옷이니까. 음악 잘 만드는 센스로 그저 그런 옷을 선택할 리 없다. 그러니까 아티스트가 만든 앨범 재킷은 레디투웨어가 아니라 오트 쿠튀르 같은 거다.

1 무명 밴드였던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앤디 워홀이 작업한 앨범 재킷
2 아티스트 권오상은 영국에서 열린 개인전을 계기로 밴드 킨과 인연이 닿았다.
3 앤디 워홀은 케니 버렐, 롤링 스톤스 등 평소 좋아했던 여러 뮤지션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다.

10초면 노래 한 곡을 다운받을 수 있고 애플리케이션으로 언제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요즘, 앨범을 사는 건 특정 뮤지션의 열혈 팬임을 인증하는 방법으로 전락(?)했다. 디지털 싱글이라고 해서 앨범을 아예 제작하지 않고 음원만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CD 판매율이 현저히 떨어진 최근, 반대로 앨범 재킷과 패키지의 아트워크에 공을 들이는 경우도 늘었다. ‘소장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앨범 재킷 제작은 한정된 범위 안에서 서체, 사진, 일러스트, 종이, 패키지까지 크리에이티브한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좋은 음악은 앨범 재킷도 근사할 확률이 높지만 종종 노래보다 예술성이 뛰어난 앨범 재킷이 화제가 될 때도 있다.

앨범 재킷을 예술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은 첫 번째 아티스트는 슈퍼스타 앤디 워홀(Andy Warhol)이다. 현대미술계 미다스의 손, 그의 손이 닿은 모든 것은 가치가 급등하고 보물이 됐다. 스티커로 만든 샛노란 바나나 옆에 ‘천천히 벗겨보시오(Peel slowly and see)’라는 섹시한 멘트가 적힌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 앨범 재킷이 가장 유명하다. 앨범 재킷에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이름 없이 앤디 워홀의 이름만 적혀 있는데, 하나의 작품임을 어필하는 동시에 무명 밴드였던 이들을 위한 극적인 홍보 전략이다. 하지만 발매 당시 이 앨범은 그리 인기를 얻지 못했고, 시간이 꽤 흐른 후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현재 오리지널 디자인은 더 이상 판매하지 않아 앤디 워홀의 팬이나 컬렉터에게 고가의 수집 대상이 됐다. 앤디 워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 외에도 케니 버렐의 LP 커버 드로잉, 롤링 스톤스의 라이브 앨범 < Love You >, 다이애나 로스의 < Silk Electric > 앨범에 실크스크린 작업 등을 선보였다.

한국에서 유독 높은 인기를 자랑하는 줄리언 오피(Julian Opie)의 커리어에 날개를 달아준 것도 다름 아닌 뮤지션의 앨범 재킷이다. 브릿팝의 대표주자 블러(Blur)의 앨범 < The Best Of >는 멤버 4명의 얼굴을 심플하고 톡톡 튀는 컬러의 그만의 스타일로 표현해 팝아트 작품을 만들었다. 블러의 멤버 중 3명이 줄리언 오피와 같은 런던 골드 스미스 대학교 출신이라 그 인연이 이어진 것. 이 작품은 2001년 최고의 음반 디자인으로 손꼽혔으며 현재 원본은 런던 내셔널 포트레이트 갤러리에 소장돼 있다.

1 영국 밴드 킨은 핀란드 아티스트 산나 아누카와도 앨범 재킷을 만들었다.
2 블러의 런던 골드 스미스 대학교 동창생인 줄리언 오피는 이들의 앨범 재킷을 작업한 후 유명세를 얻었다.
3 영국 최고의 밴드로 불리는 블러. 런던 올림픽 폐막식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해외 뮤지션의 앨범 제작에 참여한 한국 아티스트도 있다. 조각가 권오상은 2008년 영국 뮤지션 킨(Keane)의 앨범 < Perfect Simmetry > 작업에 참여했다. 영국 맨체스터 아트 갤러리에서 권오상의 작품을 본 킨 측에서 먼저 연락을 한 것. 멤버 3명을 각각 촬영한 다음, 그 이미지를 출력해 실물과 흡사한 조각을 완성하는 ‘디오더런트 타입’ 작업이었다. 킨의 앨범 재킷을 본 힙합 뮤지션 카니예 웨스트가 본인의 블로그에서 멋지다고 극찬하면서 더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핀란드의 유명 일러스트레이터 산나 아누카(Sanna Annukka)도 킨의 앨범 재킷을 작업해 유명세를 얻었다. 그녀는 평소 작은 디자인 스토어에서 작품을 판매했는데 손님 중에 킨의 친구가 있었던 것. 산나 아누카의 작품을 선물 받은 킨이 두 번째 앨범 재킷 작업을 의뢰했고,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몽환적인 커버가 완성됐다. 그녀는 이후 막스 앤 스펜서, 마리메꼬 등과 협업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광고, 아트 북 등 선보이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는 천재 디자이너 스테판 사그마이스터(Stefan Sagmeister)가 작업한 롤링 스톤스, 팻 메스니, 루 리드, 데이비드 번의 앨범 재킷도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을 너무나 사랑한 그는 앨범 재킷과 패키지를 만들 때 소재와 컨셉의 제한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2005년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 Once in a Lifetime > 앨범으로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스페셜 리미티드 에디션 앨범 패키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3장의 CD와 1장의 DVD로 구성한 한정판 앨범은 러시아 팝아티스트 블라디미르 두보사르스키의 작품과 100장이 넘는 토킹 헤즈의 희귀 사진이 들어 있어 소장가치가 높다는 평. 루 리드의 < Set the Twilight Reeling > 앨범 커버는 흑백 포트레이트에 마치 문신을 새긴 듯 가사를 가득 적어놓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스테판 사그마이스터가 1990년대 중반과 2000년대 초반에 작업한 앨범 재킷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시대를 앞선 디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뮤지션과 아티스트의 조우를 통해 탄생한 앨범 재킷은 그 자체만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작품으로 존재한다. 앨범 재킷을 앨범 컨셉과 가사, 참여 스태프를 전하는 기능적 측면만 고려해 봤다면, 혹은 관심 있게 살펴보지 않았다면 과장을 조금 보태 음악을 제대로 감상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지금 집에 먼지가 쌓여 있는 CD를 다시 꺼내 앨범 재킷을 찬찬히 살펴보자. 그 안에 당시의 트렌드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은 물론, 어쩌면 희귀 음반이어서 구입 가격의 몇 배를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음악은 들어보지 않았는데 앨범 커버가 예뻐서 구입했어요”라는 말이 앨범을 선택하는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다.

에디터 고현경
사진 제공 유니버설뮤직, 워너 뮤직, 아라리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