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웅의 세계 여행기
한국 연극을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것이 꿈이던 양정웅. 벌써 10여 년째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진득이 노력하고 있다.
연극 연출가 양정웅은 현재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연극 연출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다. 한국에서 지금 그만큼 관객과 평론가를 동시다발적으로 흥분시키는 연출가도 없다. 연극을 만들 때의 집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지난 10여 년간 그가 올린 연극은 세계 무대에서도 통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보자. 그의 나이 고작 40대 중반이다. 어쩌면 그는 아직 무르익지 않은 풋사과 같은 연출가일지도 모른다. 아직 가능성을 남겨둔 동시대의 젊은 연출가일지도 모른다. 아직 가능성이 남아 있다니, 후배 연출가 몇몇이 절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양정웅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쓰며 그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부터 문화 예술에 대한 자양분을 섭취했다. 그의 아버지는 소설가였고, 어머니도 소설가 출신으로 연극 연출과 함께 방송 대본을 썼다. 특히 어머니는 크리스마스에 성극을 연출하다 양정웅을 낳았다. 이 정도면 그가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학과 공연, 클래식 음악을 어려서부터 접했어요. 당연히 작품을 창작하고 연출하는 걸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10대 시절 그는 미술을 하겠다며 동양화가 김병종 선생을 찾기도 했다. 이후 영화배우를 하겠다고 생떼를 부려 어머니 ‘백’으로 영화 <젊은 밤 후회 없다>에 출연하기도 했다. 극단 동랑레퍼토리의 청소년 연극 아카데미에서 연극을 한 건 고3 때였다. 동기 대부분이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에 합격했지만, 영화 한 편 찍었다고 잘난 척하며 영화과에 지원했다가 떨어졌다. 이듬해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진학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그에게 연극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래 순수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지만 제 연극이 시적이고 감각적이라는 얘길 듣는 건 제가 영상 세대여서 그런 것 같아요. 만화 같은 장면을 연극에 녹이는 것에도 관심이 많고요. 제가 사실 ‘우뇌적’ 인간이거든요.(웃음)”
자, 그럼 이번엔 그가 만든 대표 작품을 살펴보자. 그는 1997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극단 여행자를 창단하며 연기보다 연출에 매진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1998년), <리어 왕>(1999년), <십이야>(2008년), <햄릿>(2009년), <페르귄트>(2010년)를 비롯해 발레 <비애모>(2012년), 오페라 <처용>(2013년), <카르멘>(2013년) 등 장르와 국적을 넘나드는 다양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셰익스피어의 텍스트에 요정 대신 한국의 도깨비를 등장시킨 <한여름 밤의 꿈>(2002년)은 그의 대표 레퍼토리가 되었다. 2012년엔 외국 극단은 좀처럼 서기 어렵다는 런던의 글로브 시어터 무대에서 한국 극단 최초로 <한여름 밤의 꿈>을 공연해 관객 1400명을 불러모았다. 그보다 전인 2006년엔 같은 연극을 유럽 최대 공연장인 런던 바비칸 센터에서 한국인 최초로 공연했다. 2001년 이후 극단 여행자가 ‘여행’한 곳만 100개 도시에 이른다. 오브제와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본보다 큰 ‘양정웅표’ 연극은 해외 무대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 해외 공연 시 객석에 젊은 관객이 많은 날엔 연극 공연이 아닌 콘서트 분위기가 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20대 시절 다국적 극단 라센칸 단원으로 수년간 스페인, 인도, 일본 등지에서 활동한 경험 덕에 제 연극이 해외 무대에서도 통하는 것 같아요. 처음 극단을 만들 때도 한국 연극을 들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게 꿈이었거든요. 그래서 극단 이름도 여행자라고 지었고요. 당시 제가 이름을 잘 지은 덕에 이렇게 세계 곳곳을 여행하나 봐요.(웃음)”
1 극단 여행자의 대표 레퍼토리 <한여름 밤의 꿈>
2 11명의 모든 배역이 남자로 이루어진 양정웅표 <십이야>
3 양정웅 스스로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이라고 밝힌 <페르귄트>
양정웅은 연극 연출가이기 이전에 진짜 여행자 같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단지 촉으로 ‘그곳’이 끌리면 훌쩍 떠나는 사람 말이다. 여행이든 작품이든 ‘찰나’를 즐기는 그에게 연극에 대한 신념을 묻는 건 어쩌면 실례인지도 모른다. “신념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늘 일이 바빠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요. 그래도 굳이 얘기하라면,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 같아요. 빛, 에너지, 색 등 눈으로 보는 아름다움이든 귀로 듣는 아름다움이든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 같아요. 물론 아름다움엔 비극성, 희극성, 청각적·시각적 아름다움 같은 게 있을 거고요. 신념까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거죠.”
그가 지금껏 연출한 작품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 건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을 재해석한 <페르귄트>다. 그는 허풍쟁이 시인 페르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전부 풀어헤쳐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2009년 대한민국연극대상도 받았다. “이 작품을 만들 때 제가 정확히 마흔이었어요. 질풍노도의 끝을 겪고 있었죠. 재미있는 건 입센도 그 나이에 이 작품을 썼다는 거예요! 물론 입센과 저를 비교하자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페르귄트>는 극단 여행자와도 닮았어요.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난다는 철학적 측면도 비슷하고, 그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죠.”
요즘 양정웅은 이전과 달리 어떤 작품으로 관객을 만날지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몇 해 전에만 해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고민했는데, 지금은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불혹을 넘기면서 작품을 통해 관객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를 연출의 최우선순위로 두게 됐어요. 제게 연극은 곧 삶이거든요. 늘 연극 생각뿐이죠. 쉽게 말해 이런 거예요. 나는 어떤 연극을 할 것인가, 연극을 왜 하고 있나, 관객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같은 걸 생각하는 거죠. 즉 요새 전 ‘내가 이 인생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20~30대 시절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지만, 지금은 뒤도 한번 돌아보고 거울도 보게 된 거죠.(웃음)”
인터뷰 말미에 문득 그가 연출가로서 평소 누구와 가장 많이 싸우는지 궁금했다. 그는 “지구 상에서 적어도 한 사람하고는 싸워야 하지 않겠어요? 작품 잘 만들기 위해 긴장을 유지해야죠”라고 대답했지만, 끝내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양정웅에게 연극은 지나간 것을 찾아 나서는 길이자, 긴 여행의 기록이다. 그가 누구와 싸우든, 그것이 비록 자기 자신일지라도 그는 그 싸움에서 지지 않을 것이다. 연극으로 집시처럼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양정웅은 지금도 어딘가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연극 <내 아내의 모든 것>
5월 5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무대에 오른다. 양정웅이 연출한 이 작품은 원작의 유쾌하고 탄탄한 이야기를 무대로 옮긴 것은 물론, 생생한 라이브 음악까지 어우러진 뮤직 시어터로 연극과 영화 팬을 모두 끌어들일 예정이다.
문의 514-3666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