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면무도회
베르디의 <가면무도회> 속에 숨겨진 사랑과 정치, 그리고 근대 이탈리아의 초상 속으로.

기원후 2세기 로마 황제의 현무암 거상. 로마 팔라티노 언덕에서 발굴해 1724년 파르마로 옮겨져 1822년부터 필로타 궁전 안에 전시하고 있다.
점점 많은 이가 르네상스에서 현대에 이르는 서양미술에 눈을 밝힌다. 비단 해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런 수요를 노리는 대형 전시회가 줄을 잇는다. 그러나 르네상스 발원지인 이탈리아 미술을 향한 관심은 어쩐지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 이후로는 뜸하다. 오페라의 황금기인 베르디와 푸치니 시대에 이탈리아 미술의 주인공은 과연 누구였을까? 세 사람만 꼽으라면 아예츠, 세간티니, 미케티를 들겠다. 이들을 만나려면 ‘근대미술관(Galleria d’Arte moderna, GAM)’으로 가야 한다. 로마, 밀라노, 토리노, 베로나 등 어지간한 도시에는 모두 근대미술관이 있지만, 시간에 쫓기는 여행자에겐 유적과 고전 예술에 밀려 찬밥 신세다. 밀라노 근대미술관은 로마에 비해 규모는 작아도 내용은 매우 알차다. 아예츠로 시작해 세간티니로 끝나는 동선은 늘 ‘여기 살고 싶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란체스코 아예츠(Francesco Hayez, 1791~1882)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해 태어나 스트라빈스키가 태어난 해 죽었다. 마치 구시대와 현대를 잇는 가교 같다. 이탈리아의 많은 근대미술관이 아예츠를 내걸고 있지만, 가장 주목받는 걸작은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의 ‘입맞춤(Il Bacio)’이다. 컴컴한 어둠 속에서 부둥켜안은 두 남녀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아도 강렬한 빛을 뿜는다. 급박한 위험을 무릅쓴 듯 애틋한 만남을 담아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1859년, 당시 사람들은 이 그림이 이탈리아 상황을 비유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해 프랑스 나폴레옹 3세와 사르데냐 왕국의 카보우르 재상은 동맹을 맺고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던 오스트리아를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리소르지멘토(Risorgimento)’라 칭하는 통일 운동은 정점을 찍었다. 두 연인의 옷을 그리는 데 쓴 빨강·파랑·하양의 삼색은 곧 결정적 기여를 한 프랑스 국기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다. 아예츠는 뒷날 다시 그린 연작에서 남성의 망토를 녹색으로 바꿔 통일 이탈리아의 삼색을 표현했다. 어느 평론가가 정확히 말했다. “조국을 향한 사랑은 여인에 대한 사랑과 완벽히 일치한다. 그녀의 피부는 이탈리아 전체의 피부다. 그녀의 몸은 국가다. 그녀의 입술은 통일의 순간이다.” 아예츠는 이보다 앞서 비슷한 구도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지막 입맞춤을 그렸다. 추방당한 로미오는 줄리엣과 몰래 첫날밤을 보낸 뒤 아쉽게 작별한다. 밤을 예찬하고 낮을 저어하는 이 부분은 기사문학 <트리스탄과 이졸데>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아예츠는 ‘낭만적 사랑’의 아이콘을 리소르지멘토의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주세페 베르디(1813~1901)는 아예츠의 아들뻘이다. 그는 아예츠의 ‘도제 주세페 포스카리와 아들 자코모의 마지막 만남’을 보고 감동해 ‘포스카리 가문의 두 사람’을 작곡했다. 두 사람의 동명 작품 ‘시칠리아의 저녁기도’ 또한 그림과 음악이 어깨를 맞대는 걸작이다. 그러면 아예츠의 ‘입맞춤’이 배경이 될 만한 베르디의 작품은 무엇일까? 나는 <가면무도회(Un ballo in maschera)>를 보기 위해 베르디의 고향 마을 부세토(Busseto)를 찾았다. 파르마 베르디 페스티벌 가운데 음악원 학생들이 출연하는 무대가 이곳의 작은 오페라극장에 마련되곤 한다. 베르디 중기의 걸작 <가면무도회>는 보스턴 총독 리카르도와 그의 참모이자 친구 레나토, 그리고 레나토의 아내 아멜리아 사이의 삼각관계와 정치적 음모가 뼈대다. 리카르도는 레나토 몰래 아멜리아와 마음을 주고받았다. 점쟁이 울리카는 아멜리아에게 둘의 사랑 탓에 리카르도가 죽을 것이라고 예언하며, 사랑을 잊게 해주는 약초를 알려준다. 들판에서 약초를 구하던 아멜리아에게 리카르도가 찾아오자, 숨죽이고 있던 사랑이 불타오른다. 그때 레나토가 정적의 암살 위험을 알리기 위해 친구에게 다가온다. 리카르도는 그에게 여인의 정체를 묻지 말고 잘 바래다주라고 부탁한 뒤 몸을 피한다. 결국 아내의 부정(不貞)을 눈치챈 레나토는 곧 열릴 가면무도회에서 친구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리카르도는 걷잡을 수 없는 정치와 사랑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고자 친구 부부를 영국으로 돌려보내려 하지만, 레나토의 칼은 그를 향한다. 리카르도는 죽어가면서도 아멜리아는 명예를 더럽히지 않았다고 맹세하며 모두를 용서한다.
르네상스 이래 유럽 궁정에는 겨울의 시작부터 봄철 카니발 축제까지 무도회가 이어졌다. 이는 자연의 주기와 연결된 문화 관습에 뿌리를 둔다. 곧 겨울은 만물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봄엔 생명이 시작된다. 무도회는 암수의 ‘짝짓기’를 제도적으로 양식화한 틀이다. 오늘날에도 사교계에 첫발을 내딛는 새내기를 위한 무도회를 흔히 볼 수 있다. 향락의 베네치아는 그런 무도회에 익명성을 주려고 가면무도회를 고안했다. 가면은 아름다움과 추함, 신분의 높고 낮음을 가렸다. 심지어 공공연한 일탈과 불륜을 조장했다. 리카르도는 가면무도회를 앞두고 현실의 가면을 벗어던진 채 일상을 회복하려 했다.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무도회가 열리면 레나토와 정적들은 가면 쓴 그를 찾느라 혈안이 될 것이다. 아멜리아는 남편의 복수 계획을 리카르도에게 미리 알렸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에게 다가가 지금이라도 피하라고 부탁한다. 리카르도는 이미 그녀를 마지막 만나는 이 자리를 목숨과도 바꾸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레나토는 아내 곁에 있는 남자가 ‘그’임을 직감한다. 이런 팽팽한 긴장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도회 음악은 경쾌하다. 나는 2막 ‘연인의 밀회’에서 아예츠의 ‘입맞춤’을 떠올렸으나, 어쩌면 리소르지멘토가 한창일 때 쓴 <가면무도회>가 품은 뜻은 그보다 훨씬 복잡할지 모른다. 통일을 주도한 사르데냐 왕국은 사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완충지인 변방에 불과했다. 강력한 세속 권력을 원치 않는 교황은 통일에 부정적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는 롬바르디아와 베네치아는 앞장서 사르데냐 편에 섰다. 양시칠리아왕국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다가 가장 먼저 가리발디 장군에게 정복되었다. 역시 독립국인 토스카나 공국은 영리하게 가운데에서 판세를 살피다가 국민투표로 통일 왕국에 합류했다. 지역 이기주의의 ‘가면’을 쓴 여러 정권이 ‘이탈리아’라는 대의를 이루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베르디는 사랑(통일)을 위해선 목숨과 권력도 내려놓을 수 있고, 용서와 화해만이 마지막 과업에 도달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리려 한 것이 아닐까? 바로크음악의 대가이면서 점차 낭만주의로 영역을 넓히는 파비오 비온디가 이날 지휘자. 중요한 조역인 레나토와 울리카를 2023년 베르디 콩쿠르 우승자이기도 한 우리나라 바리톤 강해와 메조소프라노 이단비가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파르마 베르디 축제 담당자는 나를 다른 두 이탈리아 저널리스트와 한 박스석에 앉혔다. 우리는 마치 진짜 무도회의 갤러리처럼 <가면무도회>를 관람했다. 나보다 스무 살 많은 오를란도 페레라는 최근 이탈리아 공영방송(RAI)에서 정년 퇴임하고 비발디에 관한 책을 쓴 평론가다. 오를란도와 나는 쉬는 시간마다 극장 뜰에서 이탈리아 음악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 이끌려 다음 날의 축제 마지막 공연을 포기하고, 파르마 성모승천 대성당에서 열리는 비발디 콘서트에 가기로 했다. 나는 최고 비발디 전문가인 오를란도, 전날의 지휘자 비온디와 나란히 앉았다. 오를란도는 파르마의 거장 코레조의 천장화가 그려진 성당에서 비발디의 2개의 합창(여기서는 오케스트라를 말한다)이 반주하는 협주곡을 듣는 장관에 연신 흥분했다. 과연 솟구치듯 날아오르는 협주곡은 코레조의 원근법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었다. 이 곡의 작곡가가, 가면무도회의 결과로 태어난 원치 않는 생명을 맡아 기르는 베네치아 보육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파르마 대성당의 주인인 원죄 없는 성모마리아가 누구보다 반겼을 사람이 바로 ‘붉은 머리의 사제’ 비발디 아닌가! 코레조의 천장화 너머로는 전날 밤 부세토의 농가 위를 밝혔던 보름달과 별들이 비발디의 선율에 맞춰 그들만의 무도회를 펼치는 듯했다.
에디터 김수진(ji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