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낙천주의자와의 대화
팝 지니어스 미카를 만났다. 서울 콘서트가 끝난 다음 날이었다. 미카는 돌이켜보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장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였다고 했다.
슈트 Valentino, 셔츠와 타이는 본인 소장품.
미안하다. 어제 막 서울 공연을 마쳤는데, 이렇게 일찍 불러내서. 괜찮다. 공연은 내 일이고 삶이니까. 익숙해졌다.
이번 한국 투어 공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게 있나? 스튜디오 욥(Studio Job)이라는 네덜란드 아티스트 그룹이 이번 투어의 무대 디자인을 맡아줬다. 한국에도 준비한 장비와 세트를 다 가져왔는데, 공연장 문이 너무 작아서 결국 들이지 못했다. 준비한 것보다 작은 쇼가 됐지만, 그래서 음악과 관객의 소통만 온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어제 공연의 분위기? 관객들의 긴장감이 너무 팽팽해서 ‘가위로 자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쉽게도, 당신의 공연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공연을 본 친구는 미카의 음악을 몰라도 자연스레 빠져들게 된다고 하던데. 내가 공연을 통해 추구하는 바가 그거다. 내 노래를 몰라도 내 세계 안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공연을 준비한다. 그래서 음악은 물론이고 세트와 무대 디자인에도 굉장히 신경 쓰는 편이다. 스튜디오 욥같이 특출한 아티스트와 협업하기도 하고, 공연장에서 입는 의상도 늘 발렌티노의 오트 쿠튀르를 고집한다. 재능이 넘치는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미카 시그너처(Mika Signature)’라 할 수 있을 만한 공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당신은 언젠가 “내가 서는 무대를 매번 새롭게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난 공연마다 곡의 순서를 바꾼다거나, 다르게 편곡한 버전으로 플레이한다. 다양한 샘플을 가져가 관객의 반응을 살피고, 현장의 분위기에 맞춰 바꾼다.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한다.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고유한 공연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여느 가수들과 달리 무대장치로 영상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이유가 있나? 무대 뒤로 영상을 틀면 관객의 시선이 분산되고, 음악에 집중하기 힘들다. 관객과 나 사이에 작은 벽이 생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영상을 준비하지 않는다.
지난해에 발매한 앨범 <No Place in Heaven>은 다른 지역에 집을 빌려 작업했다고 들었다. 어디였나? LA의 작은 주택이었다. 집을 빌리는 사람이 누군지, 뭘 하는 건지 등을 굉장히 까다롭게 물으며 허락해줬는데, 알고 보니 올랜도 블룸의 집이었다. LA에는 ‘스타 버스’라고 유명 스타들의 집을 돌아보는 관광 상품이 있는데, 블룸의 팬들이 (블룸의 집인 줄 알고) 내가 임대한 집을 들여다보거나 집에 뭔가를 던지기도 했다.
창의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 당신이 선호하는 풍경이 있나? 확실한 것 하나는 LA는 아니라는 거다.(웃음) LA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지만 사람들이 망쳐놓은 곳이 아닐까. LA에 있는 레코딩 스튜디오도 뭐랄까, 너무 단절된 분위기였다. 그곳에서 작업하며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더 외로움을 느꼈다. 사람이 적은 곳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아, 얼마 전에 책 집필을 위해 그리스 북부에 있는 작은 섬의 집을 빌렸다. 섬 전체 인구가 160명 정도고, 창밖으로는 바다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훨씬 좋았다.
재킷 Valentino, 셔츠와 팬츠는 본인 소장품.
지난 2014년부터 책을 낸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출간되지 않았다. 아직 준비 중인가? 그렇다. 원래 내가 쓴 짧은 글 모음을 책으로 낼 생각이었는데, 그 글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됐다. 제목은 ‘어느 낙천주의자의 일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내 삶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가장 혼란스러운 시점에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일종의 여행 에세이 같은 느낌인데 곧 완성될 것 같다.
지난해에 앨범을 발표하며 당신은 “더 이상 유치하지 않다. 좀 더 진지해졌다”는 표현을 썼다. 어른이 됐다는 뜻인가? 아마도. 어른이 된 증거 중 하나는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이다. 난 이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무감하고, 성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더 이상 물리적 나이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촌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 건 전혀 문제가 안 되니까. 그런 걸 보면 나도 어른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웃음)
스타일이나 음악을 논할 때 ‘Timeless’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그것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말하자면 장인정신이다. 시골마을의 조그만 공방에 모여 바느질하는 모습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세세한 부분에도 신경 쓰고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만드는 태도 말이다. 그런 것이 모여 아트가되고 스타일이 된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에 대해 좀 더 얘기한다면? 패션이 소비라면, 스타일은 개성이다. 예전에 나를 만나러 온 인터뷰어가 있었다. 그녀는 끔찍한 메이크업을 했고, 코도 너무 컸고, 목에는 온갖 보석을 치렁치렁 달고 있었으며, 담배 때문에 이도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픽사 영화에 나올 것 같은 끔찍한 여자였지만(웃음),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어떤가. 난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에게는 분명한 스타일이 있었고, 그래서 아이콘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타임리스한 음악’은 줄어들고 있지 않나? 비틀스나 퀸의 시대와 비교하면 열광적인 관객도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음악에 대한 필요성은 존재하지만 소비의 형태나 방식이 바뀐 거라고 본다. 중요한 건 아티스트의 신비감이 많이 사라졌다는 거다. SNS나 블로그가 등장하면서 과거 아티스트와 팬 사이에 존재하던 신비로운 긴장감이랄까, 빈 공간 같은 것이 사라졌다. 예컨대 과거엔 비틀스에 대한 소식을 한 달에 한 번 들을까 말까 했다면, 이제는 좋아하는 아티스트에 대한 포스팅이 하루에 10개도 올라오는 시대다. 물론 장점도 있을 거다. 레이디 가가는 마돈나가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고작 2년 동안 이룬 것처럼 보이니까. 하지만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내 또래의 아티스트들은 일종의 과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처럼 신비감을 유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많이 노출되면 대중이 금방 지루함을 느낀다. 이걸 잘 조절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물론 미래에는 또 한 번 광적인 팬덤을 거느린 누군가가 나올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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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첫 음반을 내고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으로 첼시에 집을 샀다.
행복한 사람은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몇 년 뒤 알게 됐다. 내가 나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놓은 행복을 좇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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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이 돋보이는 슈트는 Valentino가 미카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제품이다.
당신은 유럽의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와 <X Factor>의 심사위원이기도 했다. 참가자들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봤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좀 어설퍼도 진짜 자기 얘기를 하는 사람. 아마 한국에도 이런 오디션 지원자가 많을 텐데,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내가 지금 부르는 노래가 어떻게 보일까’ 고민하는 순간, 정말 형편없는 게 나온다고.
당신은 영어뿐 아니라 프랑스어로도 가사를 쓴다. 다양한 언어로 곡을 쓰는 이유는? 재미있으니까. 영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프랑스어 특유의 언어유희가 있다. 그 미묘한 뉘앙스를 가사로 표현하는 게 좋다.
콘서트에서 당신의 한국 팬들이 영어 가사뿐 아니라 프랑스어 가사도 따라 부르는 영상을 봤다. 경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랬다.(웃음) 정말 말도 안 되지만 환상적인 일이라고.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놀랍고 자랑스러웠다.
당신의 멜로디만큼 당신의 가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가사를 쓰는 당신만의 방법이 있나? 가사를 쓰는 건 책을 쓰는 것과 같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솜사탕처럼 커다랗게 만드는 것이다. 여러 번 수정하지는 않는다. 한 번에 모든 가사를 쏟아내는 편이다.
당신이 쓴 가사의 내용은 대체로 비애에 가깝다. 하지만 멜로디나 비트는 신난다. 왜일까? 그게 인생이니까. 삶은 기본적으로 슬픈 것이지만 우리 모두 더 행복해지기 위해 애쓰지 않나? 슬픈 가사를 슬프게 부르면 그거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우울한 일일 것 같다.(웃음)
당신은 언제 제일 행복한가?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때 행복하다. 예전에 첫 음반을 내고 돈이 생겼을 때, 그 돈으로 첼시에 집을 샀다. 행복한 사람은 집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후 돈을 모아 그 집을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쳤다. 하지만 몇 년 뒤 집에 가보니 ‘내게 왜 집이 필요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나의 행복이 아니라 타인이 만들어놓은 행복을 좇고 있었다는 걸.
패션에 대한 얘기를 좀 할까? 당신은 공연에서 늘 발렌티노의 오트쿠튀르 의상을 입는다. 왜인가? 그들은 최고니까.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피엘파올로 피 리는 현재 오트 쿠튀르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나는 로맨틱한 옷을 좋아하는데, 그들은 로맨틱이 뭔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
‘로맨틱’에 대해 좀 더 설명해준다면? 사람들에게 꿈을 줄 수 있는 옷이랄까. 열다섯 살짜리가 절대 살 수 없는 비싼 옷이라고 해도, 억만장자지만 너무 뚱뚱해서 그 옷을 입을 수 없다 해도, 그 옷을 통해 꿈을 꿀 수 있다면 그게 로맨틱한 옷이라고 생각한다. 1980~1990년대에는 물론 대단한 디자이너가 많았다. 후세인 살라얀이나 릭 오웬스 등은 정말 대단한 디자이너다. 하지만 오트 쿠튀르라는 맥락 안에선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걸 발렌티노가 제대로 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트 쿠튀르 의상을 입고 공연하면 불편하지 않은가? 전혀 불편하지 않다. 재단선 밑으로 신축성 있는 소재가 들어가기 때문에. 물론 땀은 많이 나지만.
직접 패션 사업에 뛰어들 생각은 없나? 전혀 없다.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을 존경하기 때문에 내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웃음)
당신이 최근 선보인 뮤직비디오의 디렉터는 사진가 피터 린드버그였다. 당신과는 썩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데, 왜 그와 작업했나? 피터 린드버그는 옷을 싫어한다.(웃음) 헤어와 메이크업도 끔찍해한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스타일을 잡아내는 능력이 있다. 그와 작업한 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스타일링’ 없이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옷장에서 가장 사랑하는 한 가지 아이템을 꼽을 수 있겠나? 굳이 꼽자면 화이트 티셔츠와 컨버스, 블루진이다. 그 이상 더 좋은 게 있을까? 제일 완벽한 패션이라고 생각한다. 동네 슈퍼에 갈 때도 공연 때처럼 입는 건 아니니까.(웃음)
2007년에 첫 앨범이 나왔다. 내년이면 데뷔 10주년이 된다. 근사한 뭔가를 준비하고 있나? 내년이 벌써 데뷔 10주년인가? 정말? 믿을 수 없다. 지금부터 뭔가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계획하고 있는 게 있나? 아쉽게도 시간이 너무 없다. 대구 공연이 끝나면 바로 일본에 가야 하고, 중국과 프랑스 공연도 남았다. 그 모든 게 끝나면 아까 말한 그리스의 마을에 가서 책을 완성할 생각이다. 데뷔 10주년이 되는 내년에 뭘 할지도 거기서 좀 고민해봐야겠다.(웃음)
에디터 서재희 (jay@noblesse.com) 이기원 (lkw@noblesse.com)
사진 장호 헤어 이지혜 메이크업 김범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