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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낭만적 순례

LIFESTYLE

스위스에서 시대를 초월한 음악의 발자국을 마주하다.

‘산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의 정상 전망대.

스위스를 여행하다 보면 작은 동산 위에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종종 보게 된다. 순전히 전원의 아름다움을 위해 의도된 식목이다. 스위스 친구 베르너에게 들은 유머가 재미있다. 땅이 너무 작다는 사람들의 불평을 들은 하느님이 들판에 있던 나무를 하나씩 들어 올려 나무뿌리와 함께 땅이 솟아 동산이 되었단다. 그러고 보면 스위스는 4000m 이상 봉우리만 48개, 3000m 이상은 수백 개가 넘는다. 지표 면적으로 따져볼 때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닌 것이다. 그 안에서는 자체 헌법을 가진 칸톤 스물여섯이 모여 연방을 이뤘다. 그중 가장 오래된 칸톤은 ‘우리(Uri)’. 빙하 특급열차의 중간 기착지 안데르마트의 고장으로,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영웅 빌헬름 텔의 활동 무대다. 스위스 건국 초기인 14세기에 합스부르크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데 큰 역할을 한 그는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명중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1804년에는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가 텔의 전설을 희곡으로 써 널리 알리기도 했다. 빌헬름이라는 흔한 이름은 나라마다 윌리엄(영국), 기욤(프랑스), 굴리엘모(이탈리아), 기예르모(스페인) 등으로 바꿔 불리지만, 자유를 향한 그의 저항 정신은 변함이 없다.

로잔 오페라극장 전경.

영웅의 여정
지난겨울, 스위스 로잔 오페라는 조아키노 로시니의 오페라 <기욤 텔>을 무대에 올렸다. 원작이 파리를 위해 쓴 것이니, 프랑스어권 로잔에 적합한 레퍼토리다. 그 유명한 ‘기병대의 행진곡’이 들어 있는 서곡이 끝나고 막이 오르자, 배경에 알프스와 호수가 보였다. 스위스를 대표하는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화풍이었다. 호들러는 주로 스위스 자연과 그 안의 사람을 수평과 수직 구도로 그렸기에 ‘평행파’라 자칭했다. 어느 스위스 사람이 한글로 적은 자기 나라 이름을 보고 ‘산’(ㅅ)과 ‘호수’(ㅡ) 둘 사이에 ‘사람’(우)이 ‘창’(ㅣ)을 든 상형으로 풀이하며 좋아했다는 일화는 호들러의 그림에도 들어맞는다. 천생 스위스일 수밖에 없어 보이는 그의 풍경화는 <기욤 텔>의 배경으로 더없이 잘 어울렸다. 로잔처럼 작은 도시의 오페라극장도 이런 참신한 무대로 돋보일 수 있다니. 반면 맥락 없이 화려하기만 한 무대의 천문학적 제작비를 터무니없는 푯값으로 채우려는 허세는 남부끄럽다.
칸톤 우리의 북단은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에 면해 있다. 흔히 루체른 호수라고 하지만, 원래 뜻은 ‘4개의 숲을 가진 호수’이고, 그 넷 중 셋이 스위스 연방의 첫 결성을 이끈 칸톤이다. 종단하는 데 거의 반나절이 걸리는 거대한 호수 끝에는 ‘텔 예배당(Tellskapelle)’이 있다. 배 안에 감금된 텔이 탈출해 뭍에 오른 자리에 지은 작은 예배당이자 프란츠 리스트가 쓴 ‘순례의 해, 첫 번째 해–스위스(Annees de pelerinage, Premiere Annee–Suisse)’의 마지막 곡 제목이기도 하다. 리스트는 낭만주의 음악가 중 뒷날 사위가 되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더불어 가장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고 두 연인과 차례로 동거했다. 첫째가 마리 다구 백작부인이고, 둘째가 카롤리네 추 자인 비트겐슈타인 공작부인이다. 작위에서 보듯 둘 다 기혼이었으나 리스트와 만났을 때는 이미 다른 사유로 별거 중이었다. 리스트는 마리 다구와 세 자녀를 낳았다. 첫째 딸 블랑딘은 나중에 프랑스 총리의 아내가 되었고, 둘째 딸 코지마는 당대 제일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와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바그너와 재혼했다. 리스트는 마리 다구와 함께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차례로 여행했는데, 이후 카롤리네와 동거할 때 당시 여행의 인상을 피아노곡으로 썼다. 베토벤과 슈베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로시니가 은퇴한 당대 음악계는 엑토르 베를리오즈와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과 프레데리크 쇼팽, 그리고 리스트와 바그너가 군웅할거(群雄割據)할 때였다. 바야흐로 낭만주의, 곧 ‘천재 예술가가 세상의 주인을 자칭하던 시대’였다.
음악은 추상적 예술이기에 종종 설계자와 밑그림에 의지한다. 낭만주의 설계자로는 당시 새롭게 발굴된 윌리엄 셰익스피어, 당대 시대정신을 대변하던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그리고 영국의 총아 조지 고든 바이런이 대표적이었다. 그들의 언어에 외젠 들라크루아,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등이 색을 입혔다. 이제 음악만 흐르면 ‘종합예술(오페라, 영화, 무엇이라 부르건)’이 숨을 쉴 터. ‘순례의 해’가 바로 그런 곡이다. 작곡가는 악보에 바이런의 장시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Childe Harold’s Pilgrimage)’에서 가져온 구절을 적었다. ‘너는 내가 살던 혼돈의 세상과 아주 대조적이구나. 네 고요한 수면은 세상의 성난 파도를 버리고 보다 맑은 샘으로 오라고 나를 이끄는구나(제2곡 발렌슈타트 호수)’, ‘폭풍이여, 네 목적지는 어디인가? 너는 인간의 가슴속에 있는 것과 같으냐? 아니면 독수리처럼 높은 보금자리를 찾느냐?(제5곡 폭풍)’, ‘나는 나 자신으로 살지 않는다. 나는 나를 둘러싼 것의 일부가 된다(제9곡 제네바의 종)’. 마지막 인용은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의 한 구절과 판박이다.
피어발트슈테터 호수에서는 ‘순례의 해’가 주문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만끽할 수 있다. 루체른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니 얼마 지나지 않아 트리프센에 자리한 바그너 빌라가 보인다. 바그너가 코지마의 생일 다음 날인 크리스마스에 선물로 ‘지크프리트 목가’를 연주했던 집이다.

로시니의 오페라 <기욤 텔> 무대. © Carole Parodi

페르디난트 호들러의 ‘자화상’.

고독한 라흐마니노프
나는 ‘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지닌 리기(Rigi)를 여러 차례 오르려고 시도했다가 매번 중턱에서 내려왔다. 호수에서 배를 타고 내려 산악열차와 케이블카를 갈아타는 코스는 관광객에게 매우 인기지만, 문제는 날씨. 정상에 올라 화창한 날씨를 만나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다. 중턱까지 갔다가 짙은 구름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그냥 내려오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글렀다”며 내려가려는데, 저 멀리 하늘색이 언뜻언뜻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오르는 동안 열차 안은 함성으로 가득 찼다. “맙소사! 이곳이 천국인가?” 구름바다 위를 걷는 이, 스마트폰을 들고 한없이 맴도는 이, 아예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이 모두 ‘이보다 좋을 순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바그너 ‘파르지팔’의 선율을 절로 흥얼거렸다. 이곳은 ‘시간이 곧 공간인 곳’이다. 끝없이 뻗은 봉우리마다 종소리가 가득 울리는 듯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인공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가 했던 내면의 순례가 바로 이런 것이다.
루체른으로 돌아오는 뱃길에 나는 아무도 타지도 내리지도 않는 헤르텐슈타인의 적막한 선착장에 내렸다. 서유럽 낭만주의가 황혼을 향해 치달을 때,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막차에 올랐다. 가장 연장자인 라흐마니노프는 1932년 헤르텐슈타인에 땅을 사 집을 지었다. 세르게이와 아내 나탈리아의 머리글자에 라흐마니노프의 아르(r)를 붙여 ‘빌라 세나르’라고 불렀다. 그는 1939년 미국으로 완전히 떠날 때까지 매년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며 ‘파가니니 주제에 붙인 광시곡’과 ‘교향곡 제3번’ 등을 썼다. 이후로는 러시아의 첫 노벨 문학상 수상자 이반 부닌과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가 이 집에 살았다. 지도로 볼 때 빌라는 선착장과 가까워 보였는데, 오솔길로 한참을 돌아 왕복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더욱이 일요일에만 문을 열기에 담장 밖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집보다는 어떤 경치를 보았길래 그런 곡이 나왔는지 느끼고 싶었다. 오가는 동안 만난 사람이라고는 비탈의 건초를 베어 사료로 만들 참인 농부, 애완견 ‘쥬쥬’와 산책하는 인근 아주머니 단 두 사람이었다. 그녀는 “어디서 왔느냐”, “경치가 좋으냐”, “심심하지 않으냐” 연신 물어보다 쥬쥬를 돌아보지도 않고 집으로 향했다. 강아지가 총총 뒤따른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창작의 동력은 이런 고독감에서 왔나 보다. 힘차게 물길을 헤치는 붉은 터빈을 보며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의 맥동을 떠올린다. 호숫가에는 노란 빌라 세나르가 보였다.

루체른 인근 바그너 빌라 박물관.

몽트뢰의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동상.

취리히 쿤스트하우스 내 호들러의 방.

 

에디터 김혜원(haewon@noblesse.com)
글·사진 정준호(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