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든 음악과 함께라면
클래식 음악계가 주목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가 올봄 한국을 찾는다. 3월 17일과 18일, LA 필하모닉과 서울 공연을 앞둔 그녀를 <노블레스>가 먼저 만났다.

지난해 가을 개봉한 영화 <체실 비치에서>에서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Esther Yoo)가 OST 전곡을 연주해 화제가 됐다. 체실 비치의 풍경 속에 절묘하게 스며든 바이올린 선율은 잔잔한 플롯에 감성을 덧입혔고, 에스더 유는 영화음악계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그녀는 일찍이 세계적 지휘자 故 로린 마젤과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등 거장이 인정한 영재 바이올리니스트다. 타고난 재능에 남다른 노력파인 그녀는 영국 BBC 뉴 제너레이션 아티스트로 선정된 이후 젊고 개성 있는 연주자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로열 필하모닉 최초의 상주 음악가라는 영예로운 자격으로 세계 투어를 소화했고, 덕분에 작년부터 내한 공연 횟수도 늘어났다. 미국 국적이지만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정도로 오래전부터 국내 무대를 꿈꿔온 에스더 유에게 2018년은 특별한 해였을 터.
“개인적으로 한국 공연이 많아져서 좋아요. 한국어도 많이 늘었고요.(웃음) 클래식과 더불어 영화음악 팬을 만날 기회까지 생겼죠. 공연마다 찾아와주는 분들께 정말 감사드려요.” 인터뷰한 날도 유럽에서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시차 적응이 힘들 법도 한데, 그는 시차보다는 연습 시간 걱정부터 했다. “투어 횟수가 점점 늘고 있어요. 길게는 2주 정도 연주와 여행을 반복하는 일정인데, 연습량을 맞추려면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기에 스케줄 컨트롤이 관건이죠. 그래도 해외 연주자들과 함께하는 공연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네 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시작한 에스더 유는 4년 만인 2006년 협주곡 데뷔 무대에 설 정도로 신동이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완벽한 곡 해석과 성숙한 연주로 인정받게 된 동력은 바로 풍부한 호기심. 뭐든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꼼꼼히 뜯어보고 분석하는 성격은 악보를 세세히 분해한 뒤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하는 클래식 음악의 성질과 꼭 닮았다. “시간을 들여 음악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건 음악인에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책과 영화가 그렇듯, 음악도 여러 번 들으면 그 안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거든요.” 이렇듯 곡을 깊게 이해하고 다채로운 시도를 더하는 작업에 즐겁게 임할 수 있는 건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어릴 때 부터 부모님을 따라 뉴욕 링컨 센터, 카네기홀 공연 등 거장의 무대를 보며 자신도 언젠가 같은 무대에 서기를 꿈꿔왔다고.
2012년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 4위, 2010년 시벨리우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3위에 입상하고 세계를 무대로 활발히 활동 중인 그녀지만, 행보를 보면 여느 연주자들과는 조금 다르다. 클래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의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은 것이 특징. 어린 나이에 또래 피아니스트 주오 장(Zuo Zhang), 첼리스트 나렉 하크네자리안(Narek Hakhnazaryan)과 실내악을 위한 ‘젠 트리오(The Z.E.N. Trio)’를 결성한 것이나, 일찍부터 영화음악과 팝을 즐겨 들은 덕분에 클래식 외길만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렇다.
“최근엔 쇼스타코비치에 빠져 있어요. 굉장히 특이하고 생각에 잠기게 하는 음악이죠. 어둡고 진지한 분위기가 마치 시간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러시아 작곡가 겸 뛰어난 피아니스트로 이름을 남긴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영화음악을 비롯해 작품 스펙트럼이 넓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영향으로 여러 장르의 음악을 탐닉하게 된 에스더 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샤이니, BTS 등 K-팝도 담겨 있다.
평소 SNS를 즐기는 것, 마인드 컨트롤을 위한 요가부터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패러글라이딩, 모터사이클 등 취미가 다양한 것도 여느 20대와 같다. 패션과 뷰티에 유독 관심이 많아 무대의상과 메이크업도 대부분 직접 준비할 정도라고. 한데 이런 그녀에게 한 가지 반전이 있으니, 바로 ‘young grandma(젊은 할머니)’라는 별명이다. 평소 쉴 때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조용히 사색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붙은 애칭이다. 생각이 깊다 보니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도 많다. “처음에는 전 세계를 누비는 연주자가 되는 걸 꿈꿨지만 점차 연주에 대한 욕심이 커졌고, 지금은 음악인으로서 할 수 있는 여러 활동에 관심이 많아요. 지난번 제가 참여하기도 했던, 어린이를 위한 사회 공헌 활동이 좋은 예죠. 클래식 음악이 더 많은 사람에게 친근해질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소통하고 싶은 게 바람이에요.”
에스더 유는 오는 3월 17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LA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존 윌리엄스의 <쉰들러 리스트> 주제가를 협연할 예정이다. 다음 날인 18일에도 롯데콘서트홀에서 LA 필하모닉의 체임버 앙상블과 피아니스트 유자왕(Yuja Wang)과 함께
마지막으로 향후 계획을 물으니 “언제나 지금처럼 열심히, 계속해서 새로운 무대에 도전하고 싶다”는 희망찬 포부가 돌아온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계 무대에 서는 그녀지만 아직 베를린, 빈 등 꿈의 무대는 별처럼 무수히 남아 있다. 지금의 이름 앞에 놓인 어떤 수식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 무대 위 그녀의 시간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글 황은비(프리랜서)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