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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품은 소멸하지 않는다

ARTNOW

현대미술가 백남준은 오래전 테크니션 이정성에게 편지 한 장을 남겼다. 거기엔 “나중에 부품을 바꿀 일이 생길 때 혹시 초기의 것이 없으면, 그 시대에 구할 수 있는 걸로 바꿔라. 네게 모두 일임하마”라고 쓰여 있었다.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의 좁은 작업실에서 만난 이정성은 백남준 작가 작품의 유일한 테크니션이다. 백남준 작가 생전엔 그를 쫓아다녔지만, 이젠 그의 작품만 쫓아다닌다.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백남준 작품의 모든 걸 고친다. 어떤 작품은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1 백남준 작가의 상징과도 같은 구형 컬러 TV.
2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있는 이정성의 작업실. 지금도 TV와 소형 가전제품의 부품 대부분을 갖추고 있다.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한 ‘다다익선’이 백남준 작가와 함께한 첫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두 분이 만나셨나요?
1986년 무역센터에서 열린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서 제가 삼성관의 525개짜리 비디오 월(wall)을 만드는 걸 보고 선생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 시절 삼성은 금성(현 LG)과 늘 기술 경쟁을 벌였는데, 그해엔 삼성이 우위를 점하기 위해 TV를 이용한 대형 퍼포먼스를 준비했죠. 그때 TV로 대형 벽을 쌓는 제게 선생님이 불쑥 다가와 “다다익선 할 수 있겠나?” 물었고, 겁도 없이 “예”라고 대답한 게 기억납니다. 그 전에 전 세운상가에서 가전제품 수리상을 운영했습니다. 미디어 아트나 예술 같은 건 전혀 모르고 기계만 만지며 살았죠.

백남준 작가의 유일한 테크니션으로 작품 제작에도 상당 부분 관여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어떻게 일하셨나요?
보통은 선생님이 아이디어를 냅니다. 한데 그게 아주 심플했죠. 컴퓨터로 그려주는 게 아니었거든요. 단순한 아이디어를 드로잉하거나 말로 전해주시면 그걸 구체화하는 걸 제가 했죠. 일례로 동그라미 하나 그리고 그 아래에 길쭉한 팔다리 찍찍 그리면, 사람 모양을 만들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선생님이 진짜로 뭘 원하는지 얼른 알아차리고 그걸 기술적으로 구체화하는 게 제 몫이었죠.

이따금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를 함께 짜내기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밥을 먹으면 1시간이나 길어야 1시간 30분 정도 걸리잖아요. 그런데 선생님이랑 식사하면 보통 3시간, 4시간이었어요. 가끔은 밤을 새울 때도 있었죠. 그 시간에 선생님은 ‘앞으로 뭘 하고, 뭘 할 거다’, ‘난 이런 걸 하고 싶다’, ‘이런 것도 테크닉적으로 가능할까?’ 하며 늘 작품 얘길 했어요. 척하면 척 알아들어야 했죠. 그게 안 되면 일을 못해요. 선생님과 제가 같이 한국에 살았다면 모르겠지만, 보통은 선생님이 미국에 계셨으니 말이죠.

지금은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만 전념하고 계십니다. 요즘도 백 작가님의 전시가 열리는 미술관이면 어디든 찾아가시는지요?
한 해에 두세 차례 해외에서 대규모 미술관 전시가 열릴 땐 물론이고, 개인 컬렉터들의 집에도 자주 찾아갑니다. 한국이든 해외든 선생님 작품의 컬렉터가 많아요. 그러니 어제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면 오늘은 서울시립미술관, 내일은 개인 컬렉터의 집에 가는 식이죠. 선생님 작품을 유지하는 게 사실 아주 중요한 문제예요. 컬렉터들이 걱정하는 것도 ‘오래된 TV가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거죠.

3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백남준 작가의 ‘서울랩소디’. 이정성 테크니션이 백남준 작가와 함께한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답한 작품이다. 

말씀을 듣고 보니 이런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간 해외에선 어느 누구도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고칠 수 없었나 하는 의문. 개인 컬렉터라면 이해가 되지만, 그동안 기술이 발전했는데도 그걸 할 수 없었다는 게 조금 신기해서요. 간단한 문제라면 해외에서도 수리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어떤 선을 넘기면 그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례로 현재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있는 ‘메가트론’도 9년 전쯤 신형 컴퓨터로 다시 바꾼 거예요. 1989년 작품인데 그들은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메모리 시퀀스를 모릅니다.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유지·보수할 때 가장 많이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는 무엇인가요?
고압 트랜스와 콘덴서가 죽는 문제입니다. 사실 오래된 TV가 죽는 건 예측 불허고요.

작품을 설치하거나 수리할 때 꼭 가지고 다니는 장비가 있나요?
전자 기기의 불량 유무를 육안으로 판별할 수 있게 해주는 ‘패턴 제너레이터’와 ‘누전 점검기’는 꼭 챙깁니다. 대규모 해외 전시가 열릴 땐 자주 고장 나는 부품도 꼭 가져가죠. 외국에선 일일이 데이터 북을 뒤져 부품을 주문해야 해요. 하지만 거기 나온 스펙만 보고 주문하면 맞을 수도 있고, 맞지 않는 경우도 있죠. 막상 주문을 하더라도 도착하는 데 열흘이나 걸리니 늘 제가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닙니다.

그러고 보니 현재 미술계에선 ‘다다익선’이 그 어느 때보다 이슈입니다. 잦은 고장으로 지금은 아예 전원까지 내려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버렸죠. 구형 브라운관을 구해 이전과 같이 다시 화면을 재생시키느냐, TV의 껍데기는 그대로 쓰고 화면만 LCD로 교체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큰돈을 들여 고친 것이기에 특히 보존 방안이 대두되고 있는 듯한데, 백남준 작가 작품의 유일한 테크니션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지요?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개념’입니다. 선생님은 (작품 영상을 담는) 매체는 어떤 방식이건 상관하지 않았죠. 극단적으로 말하면 스마트폰으로 보든, 빔 프로젝트로 보든 관계없단 말입니다. 선생님한테 중요한 건 오직 작품의 개념이었어요. 만약 선생님이 살아 계신다면 아마 요즘 나오는 모니터로 교체하라고 주문했을 겁니다. 제 생각도 같고요. 그것이 선생님이 주창한 우연적 요소나 상황적 요소에 의해 작품의 변용이 허용되는 플럭서스 시대 이래의 믿음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미디어 아트가 아무리 현대에 탄생한 장르라 해도 결국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 풍화할 수밖에 없는 게 자연의 이치일 텐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말도 맞습니다. 하지만 제 얘긴 ‘고장’이 났다고 그걸 그대로 방치하는 건 옳지 않다는 거죠. 미디어 아트 작품을 살 때 고장 날 수 있다는 걸 전제하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장 나는 게 당연하고, 그렇다면 고치고 더 이상 고칠 수 없다면 대책을 세우는 게 맞죠. 고치면 살아나고, 그게 ‘가치’죠. 생전에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모니터가 자꾸 고장 나거나 부품이 없으면, 삼성이든 LG든 맞는 게 있으면 그걸 쓰고 없으면 껍데기를 벗겨 새것으로 끼워라”라고요. 선생님은 관람객이 작품과 놀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현재 ‘다다익선’이 이슈의 중심에 있는 이유도 말씀하신 것과 결은 다소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보면 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작가가 아닌 기술자가 작품을 고친다는 게 논란의 이유죠. ‘원작에 손대면 안 된다’는 거요.
‘다다익선’은 그 누구도 아닌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의 주인이니 조만간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하신 미디어 아트의 특성상 백남준 작가의 작품은 앞으로도 수리를 통해 오랫동안 곳곳에서 제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그것을 관리하지 못하게 되는 날도 언젠가 오겠죠. 그때를 위해서라도 후계자를 키워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그간 몇몇 직원을 뒀지만 조금 배울 만하면 도망을 가더라고요. 그래서 한때는 아들놈을 붙잡고 기술을 알려주고 그랬죠. 그 아들놈이 지금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기술자로 근무하고 있습니다.(웃음)

4 백남준 생전엔 그를 쫓고, 백남준이 떠난 뒤엔 그의 작품을 쫓고 있는 이정성 테크니션.

 

이정성
서울 세운상가 한편에서 전파상을 운영하던 이정성은 어느 날 찾아온 백남준 작가를 만난 순간부터 20여 년간 그의 작품을 도맡아 제작하며 ‘백남준의 손’으로 불렸다. 백남준 작가가 인정한 유일한 테크니션인 그는 현재 전 세계에 있는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관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