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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무얼 읽을 것인가

LIFESTYLE

믿기 어렵겠지만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책의 시대였다. 버스 안 대부분의 승객은 손에 책을 들고 있었고 젊은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토론했다. 아이러니하지만 출판계 전반에 걸쳐 정부의 검열과 제약이 가장 심한 시절이었고, 바꿔 말하면 사회 전반에 책의 가치와 출판의 파급력이 그만큼 컸다는 의미다. 지금, 우리는 원하는 책을 1분 만에 장바구니에 담아 당일 저녁에 받아볼 수 있는 시대에 산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출판사와 책방들은 소리 소문 없이 간판을 내린다. 물질만능이 책의 갈급함을 대신하는 이때, 한길사 김언호 대표는 “그래도 종이책은 다시 부활하고 있다”고 말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파주출판단지 근처에 조성한 헤이리예술마을을 자주 방문한다. 화가, 조각가, 음악가, 작가, 건축가 등 약 300명의 예술가가 모여 예술인 마을을 만든 그곳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많기도 하거니와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부터 ‘북뮤지엄’, ‘타임앤블레이드박물관’, ‘한향림옹기박물관’, ‘아트센터 화이트블럭’ 등 개성 넘치는 미술관과 박물관, 공연장과 맛집까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과 경기 도민 등 연간 120만 명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로 자리 잡은 이곳을 구상하고 건설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국내 대표 출판사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다.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나도 상대방도 함께 일어서서 건강하게 동행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새롭고 건강한 창조정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온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파주출판도시 건설에 앞장서며 작은 회사들이 손잡고 세계적 출판단지를 만드는 데 키맨 역할을 했고, 그것은 헤이리 문화·예술인 프로젝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1968년부터 1975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일하다 1976년 한길사를 창립한 그는 리영희 저작집, 차기벽 저작집, 송건호 전집, 함석헌 저작집 등 대형 기획과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이오덕의 <우리글 바로 쓰기> 같은 스테디셀러를 탄생시키며 지금껏 3000권 이상의 책을 펴냈다. 1980년대부터 출판인들과 함께 출판문화와 출판의 자유에 대한 운동을 펼친 그는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를 창설했고 2005년부터는 한국, 중국, 일본, 타이완, 홍콩의 인문학 출판인들과 함께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조직, 현재 책 축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과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아 출판 운동과 독서 운동에 나서며 문학과 출판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렇게 분주한 삶을 살면서도 <책의 탄생>, <헤이리, 꿈꾸는 풍경>, <책의 공화국에서>, <한 권의 책을 위하여>, <세계 서점 기행> 등의 집필을 통해 출판인의 희망을 노래하는 그는 지난 5월 중구 순화동에 ‘순화동천’이라는 인문 예술 복합 공간을 새롭게 열며 다시 한번 문화 예술에 대한 담론의 불씨를 당겼다. 윌리엄 모리스의 전시를 열고 있는 그곳에서 만난 그에게 “책이 이렇게 홀대받던 시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종이책이 수난입니다”라고 푸념하자 그는 디지털 시대에 종이책의 가치를 다시 한번 설파하며 종이책의 귀환을 자신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중고 서점 ‘미드타운 스콜라(Midtown Scholar)’. 폐허로 방치된 극장이 서점으로 재탄생해 이 지역을 새롭게 일으켜 세우고 있다.

순화동에 이런 인문 예술 공간이 숨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책도 사고, 공연과 전시도 보고, 토론의 장도 열리는 새로운 개념의 다목적 문화 공간인 것 같아요. 이미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북하우스와 책 박물관을 운영하고 계신데 이곳에 순화동천(巡和洞天)을 연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주에서 서울로 다시 독자를 만나러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아무래도 파주까지는 거리가 있다 보니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아요. 독자가 책 쪽으로 오지 않으니 책이 다시 독자에게 가야 하지 않겠어요? 독자와 만나 새롭고 재미난 걸 해보고 싶었어요. 300평 정도의 공간인데, 너무 넓어서 우리가 기획하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외부에 회의나 강의, 전시 공간을 임대하기도 합니다.

진행하는 여러 프로그램 중 ‘한나 아렌트 학교’가 눈에 띕니다. 독일의 정치 이론가 한나 아렌트에 대한 강의인가요? 한국아렌트학회와 공동 기획으로 지난 8월 말부터 오는 2월 1일까지 총 22회 강의를 진행하는 거예요. 2시간 30분에서 3시간씩 진행하는 강의로 아주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청중이 꽤 많이 모이는 편이죠.

헤이리에 있는 북하우스나 책박물관은 여전히 연인의 데이트 장소와 가족 나들이 장소로 인기가 높습니다. 특히 서점과 카페가 함께 있는 북하우스는 아름다운 건축으로도 유명하죠. 초기 헤이리예술마을을 계획하셨을 때 그곳들이 어떤 장소가 되길 바라셨나요? 북한의 확성기 소리가 들릴 정도라 저는 그곳을 변방이라고 부릅니다.(웃음) 저는 어릴 적부터 책방이 너무 좋더라고요. 제주도 동남쪽 바닷가에 외로이 서 있는 책방, 한적한 숲속의 책방, 그렇게 힐링이 되고 자기 성찰이 되는 책방을 하고 싶었어요. 헤이리의 북하우스도 그 연장선이었죠. 그곳에서 다양한 강좌와 독자와의 대화 등을 열었어요.

한길사는 앞서 언급한 북하우스와 책박물관, 순화동천 같은 복합 문화 공간을 통해 종이책의 필요성과 그 가치를 계속 알리고 있습니다. 사실 요즘 잡지계와 출판계 모두 종이책의 지속성에 대한 고민이 깊습니다. 디지털 문명이 급성장하면서 그 균형을 완전히 잃은 상태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대표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책과 독서의 가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요. 책을 읽지 않고서는 나라와 사회를 바로 세울 수 없고 도덕적인 사회,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 수 없습니다. 더 강하게 말하면, 책을 읽은 사람만이 민주주의를 할 수 있어요.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를 인정하는 겁니다. 관용, 용인의 정신이죠. 책을 읽지 않는 사람, 그리고 잘못된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자기만 옳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들을 보면 제대로 된 독서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책이 지닌 가치는 사실 ‘사상’ 이상의 것이죠. 맞습니다. 그리고 책은 우리에게 상상력을 줍니다. 창조는 어느 날 ‘우리 창조 좀 하자’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책을 통해 우리는 전 시대 사람들, 우리의 선대는 무엇을 공부했고 무엇을 이루어냈는지 알 수 있고 독서라는 행위가 있어야만 그것을 다시 내 것으로 만들고 비로소 새로운 것을 구현해낼 수 있어요. 저는 상상력을 발휘하는 가장 중요한 지름길이 독서라고 봅니다.

그런데 지금 미디어의 발전으로 젊은 세대가 손에서 책을 놓아버린 게 큰 문제예요. 가뜩이나 사회가 점점 심한 경쟁을 요구하는 이때에 말이죠. 경쟁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경쟁의 목표는 바로 세워야 해요. 서로를 짓밟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강퍅한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정서 함양에 필요한 것이 바로 문학과 고전인데, 그걸 읽지 않으니 어떻게 온전한 성품을 기를 수 있겠어요.

스마트폰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에 몇 시간씩 스마트폰에 시간을 쏟고 있는 것 같아요. 아주 큰 문제예요. 과연 거기에 들어 있는 지식과 정보가 다 유익하냐는 거죠.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지식 정보, 예를 들면 길 찾기, 사전 찾기 같은 건 좋은 기능이지만 그 외의 99%는 필요 없는 것이에요. 심하게 말하면 쓰레기 같은 정보에 사람들이 너무 함몰되어 있어요. 그래서 최근 서양에서는 종이책으로 되돌아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요. 사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전자책도 정점을 찍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다시 종이책으로 귀환하고 있는 거죠.

아직 한국에서는 제대로 분위기도 타지 못한 전자책이 서양에서는 벌써 정점을 찍고 감소 추세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2016년에 <세계 서점 기행>이란 책을 내면서 유럽의 오래된 서점을 취재했어요. 단순한 서점 가이드북이 아니라 우리 책에 바치는 한 출판인의 헌사와 같은 마음으로 취재하고 쓴 책인데, 영국의 돈트 북스(Daunt Books) 대표도 그러더라고요. 서점 안에 굴러다니는 것이 킨들이라고. 사람들이 잃어버리고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큰 매력이 없다는 거죠. 제가 <세계 서점 기행>의 양장본을 만든 이유도 그거예요. 스마트폰이나 전자책이 흉내 낼 수 없는 걸 종이책이 만들어야 해요.

1 독일의 뒤셀도르프의 대형 서점 ‘마이에르셰 드로스테(Mayersche Droste)’.
2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도미니카넌 서점(Boekhandel Dominicanen)’. 1294년에 지은 도미니크파의 고딕 교회가 서점이 되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찬란한 햇빛이 쏟아지는 게 환상적이다.
3 읽기와 함께 먹기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벨기에 브뤼셀의 ‘쿡 앤 북(Cook & Book)’. 문학 섹션 공간에는 약 800권의 책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대표님은 중앙대학교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1968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종이, 활자, 매체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나는 신문기자가 꿈이었어요. 고등학교 때도 ‘어떻게 하면 신문기자가 될 수 있을까’만 생각했으니까. 결국 되긴 됐는데, 제대로 못하고 그만두게 됐죠.

1975년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 해직되셨으니 10년을 채 못하고 기자를 그만두신 건데, 어린 시절 기자가 꿈이었던 만큼 더욱 아쉬웠을 것 같아요. 너무 짧게 했죠. 당시엔 당연히 복직할 줄 알았어요. 130여 명이 회사를 그만둘 정도로 굉장한 사건이었어요. 지금도 동아일보에서는 그 일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죠. 동아일보를 그만두고 <주간시민>이라는 곳에서 1년간 더 취재하고 글을 썼는데, 여전히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 사회 분위기다 보니 그만두고 출판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976년 12월에 불광동 자택에서 한길사를 창립, 1977년 ‘오늘의 사상신서’ 제1권으로 <한국 민족주의 탐구>를 펴내셨습니다. 당시 송건호 선생과 자주 인사동 고서점에서 만나 현대사와 시국 이야기를 나누셨다고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길사의 초기 출판물은 사회과학·인문 출판물에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히 방향을 그쪽으로 정하신 건가요? 고등학교 때 <사상계>라는 잡지를 열독했어요. <사상계>는 그 당시 최고의 인문학 잡지였습니다. 역사, 문학, 사회과학을 모두 망라했죠. 그 책을 고1 때부터 읽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읽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런 배경이 책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쳤을 수는 있겠죠.

<우상과 이성>,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은 출간되면서 바로 판금되고 필화 사건에 휘말리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대표님이 직접 계엄사령부를 찾아가 검열반원을 설득하고 책의 내용을 고쳐 검열필을 받아내신 적도 있는데, 1970~1980년대의 사회 분위기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도 순조로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우리 책은 배우에 비유하면 굉장한 개성을 가진 배우라고 할 수 있어요. 사실 그럴만한 내용도 아닌데, 출간하는 책들이 판금되다 보니 오히려 독자들 입장에서는 더욱 강하게 각인이 되었나 봐요. 그 당시만 해도 ‘판금된 책은 지식인이 보는 책이다’라는 인식이 있었으니 그럴 만도 했죠. 가만히 있었으면 적게 팔렸을 책을 신문에서 ’00 책을 압수해 갔다. 00책을 보다 감옥에 끌려갔다’고 맨날 광고를 해줘요.(웃음) 그래서 우리 책은 오히려 더 잘 팔렸습니다.

책 좀 읽었다고 감옥에 가는 시대였으니, 거꾸로 생각해보면 그때만큼 책의 힘이 컸던 시절도 없는 것 같습니다. 책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달리 힘을 발휘해요. 그런 의미에서 시대가 사상가를 만드는 것 같아요. 판금 서적이던 송건호의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지금은 상식이 되었습니다. 만약 송건호 선생이 지금 그 책을 냈다면, 그분은 언론인으로 남았겠지만 1970~1980년대에 활동하셨기 때문에 언론가이자 사회운동가로 기억되고 있죠.

한국출판인회의 창설, 동아시아출판인회 조직 등의 활동을 통해 출판 운동, 독서 운동에 앞장서고 계십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이 한국 출판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1980년대는 학생들이 많이 읽는다 싶으면 이유 없이 판금시켰어요. 우리 책도 꽤 되었고요. 그래서 우리가 모여 출판의 자유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하자 했죠. 지금은 그런 투쟁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어요. 대신 책을 맘껏 읽을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고 많은 양서를 비치하는 등 다른 차원에서 책의 영역과 영향을 신장시키는 정책을 펼 수 있도록 힘쓰고 있죠. 서점은 한밤의 어둠을 밝히는 별빛 같은 거예요. 책방이 있으면 거리의 분위기, 도시의 모습이 달라지잖아요.

1980년대는 사회과학의 시대였습니다. 한길사도 세계 문학, 시집을 냈지만 크게 보면 문학 세계도 실천적 리얼리즘의 성격을 지닌 책이 많습니다. 음식처럼 책도 골고루 읽어야 내면의 조화를 이룰 수 있을 텐데, 독자 입장에서 책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책은 두루두루 읽어야 합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열려 있는 사유를 가르쳐야 해요. 책의 세계는 본래 다원의 세계예요. 앞서도 말했지만 난 민주주의의 근간이 독서에 있다고 생각해요.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나와 당신은 생각이 다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는 당신의 권리를 인정한다’. 이게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기초란 말이에요. 서로를 인정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한 시대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해 열린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1인 출판사 등의 형태로 누구나 쉽게 출판사를 차리고 책을 내는 등 출판이라는 장르가 대중에게 꽤 가까워졌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의 출판계는 성장보다는 답보 상태에 있는 듯 보여요. 한국 사회에서 책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인구가 많지 않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사회가 아니거든요. 예전에 <세계 서점 기행> 취재를 위해 노르웨이에 갔는데, 거기선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17권의 책을 읽는대요. 아기와 노인을 빼면 한 사람이 30권 이상 읽는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노르웨이 문학이 세계에 우뚝 서는 경지로 가고 있는 거예요. 핀란드인도 독서량이 많습니다. 북유럽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도 다 독서와 관련이 있다고 봐요.

그래도 한길사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함석헌 저작집 등 스테디셀러가 많아 든든할 것 같아요. 우리는 단행본도 많지만 대형 기획 서적을 많이 냅니다. 예를 들어 함석헌 저작집은 30권이고, 이이화의 <한국사 이야기>는 22권, 리영희 저작집은 12권이에요. 나는 베스트셀러를 내기보다는 의미 있는 대형 기획 출판이 가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베스트셀러를 비판하는 건 아닙니다. 한 시대의 사회적 현상이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베스트셀러만 가지고 한 시대의 출판문화를 저울질할 수는 없어요. 비록 1년에 500권씩 판매되더라도 정말 중요한 책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런 책을 잘 살펴봐야 해요. 그것이 우리의 문화적 역량이고 자산이니까요.

4 중구 순화동의 인물 예술 공간 ‘순화동천(巡和洞天)’에서 만난 한길사의 김언호 대표.
5 영국의 북단 노섬벌랜드주의 작은 도시 애닉에 자리한 ‘배터 북스(Batter Books)’. 유럽에서 가장 큰 중고 서점 중 하나로, 1968년 폐쇄된 기차역을 서점으로 레노베이션했다.

매년 연말이면 각 언론사에서 올해의 책을 선정합니다. 선정 도서 리스트에 대해 대표님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네요? 지난해에도 각 신문사에서 올해의 책을 뽑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책만 올해의 책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인기 있다고 올해의 책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외의 수많은 학술적인 책, 개성 있는 책을 어떻게 만들어요. 그래서 나는 좀 더 체계적이고 총체적인 대형 기획을 거친 책이 나와야 한다고 봐요. 출판사에서 그런 책을 만들면 국공립 도서관, 대학 도서관 등에서 구매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러 사람이 더불어 읽을 수 있도록 그런 공공 기관이 기능을 해야 해요. 한 국가와 사회 공동체의 문화 예술 수준을 보여주는 게 뭐예요? 하나는 도서관이고, 하나는 미술관이잖아요. 국내 도서관들도 좀 더 수준 높은 양서를 구비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온라인 서점이 그야말로 큰 성장세를 이루었습니다. 초기에는 가격 때문에 출판사와도 문제가 많았지만 2003년에는 도서 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대략 오프라인 서점과 균형을 맞추는 모양새입니다. 온라인 서점의 발전이 출판사와는 어떤 성장 그래프를 이루었나요?우선 온라인 서점의 성장은 불가피한 것 같아요. 주문해서 바로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독자에게는 꼭 필요한 기능일 것이고, 그것 또한 책을 읽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계가 어려운 국면으로 가고는 있지만 기능적 효율성 차원에서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은 병존할 필요가 있어요.

온라인 서점은 아니지만 코엑스에 문을 연 ‘별마당도서관’도 쇼핑과 독서, 미식과 독서 등을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독서 문화입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보세요? 과연 바람직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양상 같아요. 하지만 정통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독서 문화의 발전상이긴 하지만 고민이기도 하죠. 일본의 쓰타야 서점에서는 책과 음반, 액세서리를 함께 판매하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일본에서도 정통의 길을 고집하는 출판사는 책을 다른 상품과 함께 판매하는 것에 대해 “책이 오히려 장식이 되고 있지 않느냐”며 비판하기도 합니다. 사실 그런 복합 문화 공간에서 판매하는 책들의 콘텐츠는 썩 좋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종이책으로 귀환하는 데에 가장 방해가 되는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스마트폰이 가장 문제예요. 스마트폰의 빛은 동공을 확장시키기 때문에 그 화면에선 문장을 제대로 읽어내기 힘들어요. 당연히 깊은 성찰이나 사유도 할 수 없습니다. 언론도 문제예요. 온갖 신문에서 삼성전자가 올해 휴대폰을 몇 대 팔아서 몇조 원의 수익을 냈다는 것만 대서특필합니다. 돈 번 이야기만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정신적 가치를 뒤로하고 물질만능시대로 사람들을 이끄는 가장 큰 견인차가 바로 스마트폰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삼성이 좋은 기업이 되려면 스마트폰을 많이 판매하는 만큼 그로 인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독서를 못하게 하는 장본인이잖아요. 그러니 사람들이 다시 책을 읽게 하는 기능을 보완해야죠. 기업의 이익이 발생시키는 사회적 문제점을 보완하는 작업 말입니다. 그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에요.

우리 사회의 지적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개개인이 해야 할 일은 없을까요? 내가 지금 펼치는 운동이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책방을 가자는 겁니다. 책방에 가는 건 영화관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오락이지만 책은 그렇지 않아요. 일주일에 한 번 책방에 가서 책을 읽고, 나오면서 책을 하나 사자는 거예요. 책방에 가면 책을 사줘야 합니다. 실컷 책만 읽고 나오면 책방을 어떻게 유지하나요? 그러면 책방이 무너집니다. 동네 책방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는 이때, 그럴수록 시민이 성원해야 합니다. 영화를 봐주니까 영화 시장이 성장하고, 미술관에 가서 전시를 관람해주니까 그다음에 좋은 전시를 유치할 수 있는 거예요. 책방에 간다고 입장료를 내진 않잖아요. 그럼 책을 사줘야죠.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에요. 출판사, 저자, 독자가 같이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책 디자이너, 책 연출가 등 대표님을 수식하는 표현이 많습니다. 대표님 스스로는 어떤 타이틀을 붙이고 싶으세요? 출판인이죠. 책 만드는 사람! 그러나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책의 가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진작시킬 것인가에 대해 늘 토론하고 담론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출판 운동가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에디터 김이신(christmas@noblesse.com)
사진 김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