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LETTER

노블레스 매거진의 뉴스레터를 신청해보세요.
트렌드 뉴스와 이벤트 소식을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닫기

어제는 없던 스포츠

LIFESTYLE

스포츠 산업과 IT 신기술이 만난 새로운 스포츠가 우리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그것에서 감동 또한 필요로 한다.

IBM의 인공지능 왓슨이 만든 올해 윔블던 테니스 대회의 하이라이트.

바둑에서 인간은 상대가 안 된다며 은퇴를 선언한 알파고와 쌍벽을 이루는 것으로 평가받는 미국 IBM의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최근 놀라운 일을 벌였다. 지난 7월 3일부터 16일까지 열린 ‘2017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서 주요 경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스스로 편집해 보여준 것이다. 왓슨은 윔블던 대회를 모니터링하며 어디서 어떻게 득점한 점수가 중요한지 판단하고 관중의 반응, SNS에 올라오는 관련 포스트와 선수들의 얼굴 표정 분석 등을 추려 하이라이트 장면을 만들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작업을 하는 데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 이는 사람이 직접 편집하는 것보다 절반가량 단축된 시간이다.
이번엔 지난 1월, 50돌을 맞은 세계 최대의 전자 박람회 ‘CES 2017’ 현장. 작년 박람회와 달리 CES 2017에선 비(非)IT 기업 CEO들의 기조연설이 큰 관심을 모았다. 스포츠와 패션, 헬스 등 생활과 밀접한 제품을 IT 기술과 결합해 이전에 없던 새 제품을 내놓은 기업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히 주목받은 건 창업 20년 만에 나이키와 견줄 만한 스포츠용품 기업으로 성장한 언더아머의 CEO 케빈 플랭크의 연설. 그는 연단에서 “세계가 혁신을 거듭하는데, 스포츠 브랜드는 100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옷과 신발을 만든다”며 “앞으로 기술 기업의 범주에서 스포츠용품을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은 ‘스포츠용품 회사’ 언더아머를 ‘디지털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덧붙여 현장에서 그는 사용자의 컨디션을 분석해 운동 강도를 제안하는 ‘스마트 러닝화’, 적외선을 방출하는 소재로 만들어 수면을 돕는 ‘스마트 잠옷’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는 땀 흡수나 통풍성 등의 기술을 강조하던 기존 스포츠용품 기업의 변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화제를 모았다.

1 언더아머의 케빈 플랭크 CEO의 기조 연설에 출연해 스마트 러닝화를 착용하고 점프를 선보이는 수영 선수 마이클 펠프스.   2 센서가 달린 스마트 배트로 훈련하는 LA 에인절스의 마이크 트라우트.

사실 스포츠 산업이 기술의 발달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야구와 배구 같은 종목에선 고성능 카메라를 통해 비디오 판독을 한 지 벌써 몇해가 됐고,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1초에 1만 장의 사진을 찍는 카메라를 도입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내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더 대단한 기술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텔이 500여 대의 드론을 동시에 하늘에 띄워 불꽃놀이를 연상시키는 라이트 쇼를 벌인다고. 드론끼리 서로 충돌하지 않게 알고리즘을 주입하는 이 프로젝트는 기술적 측면에서 기존 올림픽이 선보인 수많은 퍼포먼스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현재 스포츠를 둘러싼 제조, 통신, 도소매, 서비스, 건설업 등의 전 세계 시장 규모는 1조5000억 달러(약 1580조 원)로, 2011년 이후 매년 3.7%가량 성장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스포츠 산업은 자동차 산업의 2배 이상, 영화 산업의 7배에 육박할 정도로 그 규모가 방대하다. 물론 이 순간에도 다양한 스포츠 산업이 각각의 수요에 따라 신기술과 융합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시간 안에 슈퍼히어로 영화에나 나올 법한 고공 점프가 가능한 운동화나 웨어러블 컴퓨터 기술을 적용한 운동복 등이 현실에 등장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변화는 쓰나미처럼 밀려와 모든 시스템을 바꾼다. 한데 여기서 당신은 질문을 던지고 싶을 것이다. 대체 언제?
자세히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미 첨단 IT 기술은 스포츠 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례로 미국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의 괴물 타자 마이크 트라우트(Mike Trout)만 봐도 그렇다. 남들은 마이너리그에서 빅리그 진입을 위해 목숨을 거는 20세 때부터 메이저리그를 거의 폭격하고 있는 그는 오프시즌에 배트 끝 노브에 센서가 달린 스마트 배트로 훈련한다. 미국의 스포츠 테크 회사 제프에서 만든 그의 배트는 사용자의 타구 속도와 궤적, 각도 등을 분석해 타격 자세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교정한다. 트라우트는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큰 효과를 본 경우. 2011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는 지난해 159경기에 출장해 타율 0.315, 29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MVP에 올랐다. 제대로 따지면 데뷔 6년 만에 두 차례나 리그 MVP를 차지한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성과인가.
물론 이런 예는 기업과 산업 분야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 전자 회사 파나소닉은 스포츠 본연의 가치인 라이브에 주목한다. 가전과 배터리 자동차 전장 외에 헬스케어 사업을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하는 이들은 기존 스포츠 산업에 첨단 기술을 접목해 스포츠 팬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다. TV 스포츠 중계를 보며 실시간으로 선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스포츠 스크린 ‘커넥티드 스타디움’을 선보인 것. 이는 TV 앞에 특수 필름을 끼워 그 위에 영상을 투사할 수 있는 유리창을 설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의 신상과 각종 통계 자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치다. TV 경기 중계를 보며 선수들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건 사실 이전까진 플레이스테이션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내년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선보일 인텔의 드론 라이트 쇼.

스포츠 산업은 요즘 뜨거운 가상현실(VR)과도 조우했다. 현재 루지(썰매에 누워 얼음 트랙을 활주하는 스포츠) 한국 국가 대표 선수들은 가상현실 시뮬레이션을 활용해 훈련한다. 가상현실은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를 360도 입체 화면으로 구현하고 실제 트랙을 달리는 듯한 풍광과 바닥 충격, 썰매 날 소리까지 생생하게 재현한다. 덧붙여 스포츠에 가상현실을 접목한 기술에 대해 얘기한다면 국내 기업 ‘ESM연구소’를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순간적 동작을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주는 타임슬라이스(Time Slice) 기술을 이용해 스포츠 중계 영상을 제작한다. 말하자면 선수들을 원거리에서 여러 동영상 카메라를 이용, 다양한 시점으로 촬영해 재현하는 것. 방금 도루를 시도한 주자가 세이프인지 아닌지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 기술은 지난해 국내 프로야구 시즌부터 국내 방송국에 공급됐고, 현재 미국과 유럽, 중국, 일본의 기업들과 구체적 비즈니스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후문이다.
위에 열거한 몇몇 예로도 알 수 있듯, 지금 세계 스포츠 산업계는 과학과 기술의 또 다른 격전지로 변모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은 스포츠 산업도 이렇게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스포츠 산업과 결합한 IT 혁명을 사리분별 없이 와락 끌어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첨단 기술과의 돌연변이 교배로 자칫 스포츠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어서다. 모름지기 스포츠의 매력은 의외성과 불확실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등장할, 우리 눈이 휘둥그레질 스포츠 산업계의 신기술은 부디 스포츠의 몇 가지 본질적 질문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면 좋겠다. 스포츠에서 승리의 쾌감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그것이 주는 인간적 감동이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