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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한 김중혁의 완벽한 물건들

LIFESTYLE

소설가 김중혁은 어딘지 모르게 엉성하다. 그가 지향하는 예술적 목표 지점도 사실 그곳에 있다. 지난 몇 년, 아니 십수 년간 그가 자신의 엉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써온 물건들을 소개한다. 그는 이 물건들로 오늘도 ‘엉성한 예술가’를 꿈꾼다.

김중혁
1971년 김천에서 태어난 김중혁은 웹 디자이너와 몇몇 잡지에서 짧은 기자 생활을 하다 2000년 <펭귄뉴스>로 데뷔했다. 지금껏 장편과 소설집, 산문집을 포함해 10권 정도의 책을 냈고, 그림과 만화에 관심이 많아 카투니스트로 활동하는가 하면, CD나 인형 등 오래되고 사소한 물건을 수집하는 수집가이기도 하다. 소설 쓰기 외에 20여 곡의 노래도 작곡했(다고 알려지)지만, 단 한 곡도 공개하지 않았다. 기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잡았다고 한다.

 

1 킨크스(Kinks)의 <The Singles Collectionㅍ 비틀스와 킨크스. 둘 다 동시대의 위대한 영국 밴드다. 하지만 내겐 늘 비틀스 위에 킨크스가 있었다. 엉성함 때문이다. 완벽한 비틀스에 비하면 느슨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끌리는 매력이 있는 것. 은 내가 가장 아끼는 킨크스 앨범이다. 특히 13번 트랙 ‘Sunny Afternoon’과 23번 트랙 ‘Victoria’를 즐겨 듣는데, 레이 데이비스(Ray Davies)의 어딘지 모르게 아마추어 같은 보컬과 기타 연주는 ‘엉성한 예술가’를 꿈꾸는 내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

2 <우주 다큐> 우주와 관련한 장편소설을 구상하고 있다. 그래서 메리 로치가 쓴 이 책을 또 집어 들고 말았다. 2010년 내 첫 장편 <좀비들>을 발표하기 전에도 이 작가의 <스티프(Stiff)>를 읽고 깔깔거리며 영감을 받은 경험이 있는데, 이번에도 어떤 ‘우연적 필연’에 의해 이 작가의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우주선에 오르는 과학자들의 어이없고도 사소한 에피소드를 꽤 ‘진지한’ 세계관으로 그린다. 작품 전체에 다소 느슨한 세계관이 깔렸지만, 이따금 나오는 어떤 예리한 분석은 무릎을 탁 치게 한다.

3 물안경 2년째 집 앞 수영장에 다니고 있다. 내 특기는 잠수해 물속에서 나아가는 ‘잠영’. 자유형이나 배영이 특기가 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물안경을 통해 보는 물속 세계가 어떤 영법보다도 흥미롭기 때문. 물속 기포가 ‘몸짓처럼’ 움직이거나, 어떤 형태가 잠시 눈앞에 아른거리다 사라질 때 그 신비로운 경험은 나 같은 잠영 마니아가 아니면 겪기 힘들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 치 글쓰기를 끝내고 2시간가량 쉬지 않고 하는 수영은 내 생활의 활력소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헤밍웨이도 하루 치 글쓰기를 마치면 꼭 800m씩 수영을 했다고 한다.

4 몰스킨 에버노트 몰스킨이 모바일 기록 앱 ‘에버노트’와 함께 만든 신개념 노트. 뭔가 노트에 적고 그 옆에 에버노트 스티커(여행, 음식, 업무 등)를 붙이면 에버노트 카메라가 스티커를 인식해 앱의 지정된 분류에 자동 저장된다. 요즘 같은 소설 구상 기간엔 하루에도 수십 개의 메모가 생겨 ‘처치 곤란’을 겪는데, 이 몰스킨 에버노트에선 당최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 가장 최근 노트에 남긴 건 내년에 발표할 새 소설의 커버 그림. 무언가를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노트는 때때로 PC보다 우월하다.

5 무인양품 손톱깎이 손톱이 길면 글을 잘 못 쓴다. 그래서 손톱깎이는 내게 속옷만큼 밀접한, 늘 소지하고 다니는 중요한 물건이다. 특히 이 무인양품 손톱깎이는 집에 있는 다른 몇 개의 손톱깎이와 달리 부드럽게 손톱을 정리해준다. 손톱을 절대 억지로 ‘물어뜯는’ 일이 없고, ‘탁탁’ 소리를 내며 얼굴에 손톱을 뱉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무인양품이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 그대로 멋 부리지 않고, 기복 없으며, 얌전하게 손톱을 깎는 것. 오늘도 집에서 나오기 전 이걸 사용했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  장소협찬 카페 화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