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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잘하는 또 다른 하나

LIFESTYLE

오랫동안 국내외의 문화 예술을 후원해온 에르메스가 오는 10월 2일,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과정과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컨덴세이션>전을 연다.

 

예술품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고, 엄격한 품질관리를 위해 고된 작업을 이어가며 늘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들을 우리는 장인이라 부른다. 그런데 이러한 장인과 젊고 자유분방한 현대미술 작가가 만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에르메스 재단은 일견 부조화한, 동시에 흥미로운 ‘랑데부’를 구상해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각 분야의 유능한 장인과 현대미술 작가가 함께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만든 작품을 모아 전시를 개최한다. 이른바 <컨덴세이션(Condensation)>전. 물론 에르메스 재단은 단순히 장인과 작가의 묘한 조합에 대한 호기심만으로 이 전시를 기획하지 않았다. 재단은 대다수의 젊은 작가가 매체와 재료에 대한 실험으로 예술 세계를 넓히고 확고히 다져야 할 중요한 시기에 경제적 궁핍으로 재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다는 것에 착안했다. 그 때문에 <컨덴세이 션>전은 젊은 작가들의 딜레마에 대한 이해에서 싹튼, 에르메스 재단의 4년에 걸친 성실한 프로젝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에르메스 재단은 지난 4년간 매해 4명의 젊은 작가에게 에르메스 제품을 생산하는 프랑스 전역의 수십 개 공방에서 악어, 타조 등 에르메스의 진귀한 가죽뿐 아니라 실버, 크리스털 등의 재료를 마음껏 실험해볼 수 있게 했다. 그뿐 아니라 각 공방의 숙련된 장인의 전문 기술을 끌어내 함께 신작을 만들며 공유한 경험과 비전 그리고 테크닉까지 표현할 수 있게 장려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쥔 작가는 저명한 현대미술가 리처드 디콘과 수잔나 프릿셔, 주세페 페노네, 엠마뉴엘 소니에가 직접 추천해 후원했다. 그렇게 완성한 작품은 지난해 여름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처음 공개했고, 올해 초 도쿄 긴자 메종 에르메스의 ‘르포럼’을 거쳐 마침내 서울의 아‘ 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대단원의 막을 올리게 된다(10월 2일~11월 30일).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가엘 샤르보(Gael Charbau)는 이들의 여정을 지켜본 후 “여러 작가가 각 공방의 수준 높은 기술과 광적인 수준의 정확성을 배우며, 가장 현대적인 예술적 고민과 원재료의 변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을 것”이라 말했다. 작가들의 마지막 종착지가 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전시한 총 16점의 작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예술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할 것이다.

<컨덴세이션>전
젊은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넓히기 위해 기획한 에르메스 재단의 야심찬 전시. 10월 2일부터 11월 30일까지(오전 11시~오후 7시, 수요일 휴관),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선 각 분야의 장인과 젊은 작가의 독특한 만남과 여정으로 이어진 아티스트 레지던시의 특별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문의 | 544-7722

에르메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한 작가들과 공방

 

엘리자베스 S. 클라크 & 사야 가죽 공방(Maroquinerie de Sayat)
사야 가죽 공방은 1997년 메종 에르메스에 인수된 최고 수준의 가죽 공방이다. 2005년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현대적 건물로 재탄생한 이 공간에서 엘리자베스 S. 클라크(Elisabeth S. Clark)는 장인이 새들 스티치(말안장을 꿰매는 방식)를 할 때 원을 그리는 동작을 눈여겨본 후, 곡예적 동작과 원의 개념을 주제로 한 대형 설치 작품을 완성했다. 엘리자베스는 둘레가 12.8m(30사이즈의 버킨 백을 만드는 데 드는 가죽의 총길이가 12.8m다)에 이르는 원형 테두리에 온통 흰 가죽을 입혀, 자신의 작품을 마치 무대(공방)의 입구처럼 보이게 했다.

 

가브리엘레 키아리 & 텍스타일 공방(Atelier AS)
오랜 시간 실크 원단을 만들어온 텍스타일 공방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에서 프린트, 컬러리스트 작업까지 실크에 관한 다양하고 세밀한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가브리엘레 키 아리(Gabriele Chiari)는 멘토인 수잔나 프릿셔(Susanna Fritscher)와 함께한 ‘날실’ 프로젝트에서, 하나의 색채와 포맷 그리고 하나의 단순한 제스처라는 명확하고 제한된 조건에 기반해 뒤셰스 새틴의 고급 공단 위에 날실 날염 기법을 적용한 작품을 완성했다. 직물을 풀어 다시 고급 공단으로 직조하는 기술은 장인과의 협업으로 이루어졌다.

 

올리버 비어 & 생루이 크리스털 공방(Cristalleries de Saint-Louis)
생루이 크리스털 공방은 1586년부터 크리스털을 만들어온 역사적 공방으로, 1767년 루이15세가 왕실 유리 작업장으로 격상시킨 곳이기도 하다. 영국 출신의 올리버 비어(Olivier Beer)는 이곳에서 ‘침묵은 금이다’라는 이름으로 바깥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만든 크리스털 소재의 나팔형 조각과 생루이 크리스털 공방의 대표작 문진을 재해석한 작품을 내놓았다. 특히 올리버의 크리스털 조각 작품은 건물 안에는 물론 밖에도 설치할 수 있어 건물 밖 지나가는 사람들도 내부의 소리를 듣는 것이 가능하다.

 

오유경 & 퓌포카 실버 공방(Puiforcat)
1820년부터 고품질의 실버 제품을 생산해 온 퓌포카 실버 공방은 목재나 상어 가죽 같은 독특한 소재에 실버 조각을 결합하는 스타일로 현대 은세공업의 토대가 된 곳이다. 한국 출신의 오유경 작가는 이곳 에서 ‘달파고다’라는 작품을 완성했다. 공방에서 3주 동안 이어진 트레이닝 기간에 그녀는 금속 박편, 철망, 버프 연마 기술 등을 습득해 은도금 금속을 각기 다른 크기로 제작한 뒤, 그것을 서로 조합해 1m 높이의 육각형 받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탑 쌓기 방식과 유사한 그녀의 설치 작품은 동양의 석조 파고다에서 착안한 것이 라고 한다.

 

에밀리 피투아제 & 피에르-베니트 가죽 공방(Maroquinerie de Pierre-Bénite)
리옹 근교에 위치한 피에르-베니트 가죽 공방은 350명의 장인이 몸담은 메종 에르메스의 가장 중요한 공방 중 하나다. 프랑스 출신의 에밀리 피투아제(Emilie Pitoiset)는 이곳에서 멘토인 수잔나 프릿셔의 지도를 받아 가죽 작업의 한계에 대한 의문을 토대로 고전 발레 <지젤>에서 영감을 받은 동명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녀는 크기가 일정한 양가죽에 V자 모양의 무늬가 보이도록 판지를 잘라 붙여 가로 183cm, 세로 283cm의 무대 커튼을 만들었는데, 이 커튼은 방금 닫힌 건지, 아니면 곧 열릴 건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에디터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