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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의 진심

LIFESTYLE

에르메스 그룹 부회장 올리비에 푸르니에와 나눈 에르메스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이야기.

에르메스의 기업 가치 개발 및 사회 부문을 총괄하고 계시죠. 그런 부회장님의 눈에 한국이 어떤 나라로 비치는지 궁금합니다. 프로덕트를 담당하는 분들과 관점이 조금 다를 듯해요. 한국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두드러진 역동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개방과 자유의 움직임은 시각예술, 음악, 건축 등 모든 분야의 창작물로 나타나고요. 이러한 관점을 잘 드러내는 것이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입니다.
부회장님은 에르메스 재단 이사장도 맡고 계십니다. 브랜드의 명성에 비해 재단의 활동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터라 시작점을 묻고 싶습니다. 2000년대 초까지 에르메스를 지휘한 장-루이 뒤마(Jean-Louis Dumas) 회장님이 재단 설립을 희망하셨습니다. 설립 전 타계해 그 모습을 지켜보지는 못했지만, 유지를 이어받은 아들이자 예술 부문 총괄인 피에르-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의 주도로 지난 2008년 재단이 설립되었습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를 정의하며 우리가 누구인지 보여준다(Our gestures define us and show who we are)’라는 이념에 따라 재단이 지원하는 이들이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습니다. 에르메스는 장인들로 이루어진 메종입니다. 장인을 정의하는 것은 행동의 정확성, 노하우의 습득과 영속이고 이는 에르메스를 이루는 정수이기도 합니다. 행동은 본질적인 것으로, 무용수의 춤부터 희극 배우의 공연, 연대 단체에서 타인을 돕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제20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최종 수상자인 김희천 작가에게 직접 시상하기 위해 내한하셨죠. 에르메스는 1997년 한국에 공식 진출했고, 2000년 외국 기업 최초로 국내 미술계를 지원하는 미술상을 제정했습니다. 영화, 음악이 아닌 미술 영역의 지원을 우선한 까닭은 무엇인가요? 한국 현대미술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전부터 가능성을 알아보고 미술상 제정을 추진한 회장님의 통찰력 덕분입니다. 회장님은 창작의 자유를 핵심 가치로 여겼고, 그런 측면에서 젊은 한국 작가의 창작 지원을 바라셨지요. 미술상이 한국에만 있는 건 한국에서 논의된 후 시작된 상이기 때문입니다. 에르메스는 톱다운 방식의 의사결정을 선호하지 않아요. 브랜드가 진출한 모든 국가의 아이디어를 장려하는 것이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간 대담한 작업을 이어온 작가들이 수상자로 여럿 선정되었죠. 에르메스의 우아한 이미지와 대비되어 파격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에르메스는 187년째 재창조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미술은 지속적 쇄신을 위한 최고 동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미술은 종종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삶에 필요한 재탄생을 끌어냅니다. 현대미술을 중시하는 문화는 브랜드에 끊임없는 영감을 불어넣으며, 이를 통해 현대적 장인정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30주년 전시에 참여한 36명 중 11명이 에르메스 재단과 인연이 있는 작가들입니다. 미술상 제정 20여 년 만에 이러한 역동성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위쪽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 수상자 김희천 작가의 개인전 <스터디>. © 에르메스 재단 사진 김상태 
아래쪽 지난 5월 서울에서 개최한 ‘에르메스 인 더 메이킹’ 행사. © 에르메스 사진 신경섭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한다는 점에서 미술상 운영은 에르메스 코리아의 신영균예술문화재단 필름게이트 후원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반면 에르메스 코리아가 국가유산청,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진행하는 궁궐 집기 재현 프로젝트는 성격이 다르지요. 다양한 프로젝트는 과거와 미래, 전통과 현대에 관한 브랜드의 시각과 연결될 듯합니다. 전통과 현대는 하나로 연결된 다른 면일 뿐 대치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에르메스가 두 개념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했다면 지금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했을 거예요. 한국 최고 가구 장인, 옻칠 장인, 다회 장인과 함께 진행하는 궁궐 집기 재현 프로젝트는 전통과 현대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하는 에르메스의 정신이기도 합니다.
해외로 시야를 넓히면 에르메스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은 한층 다채롭습니다. 에르메스 재단의 경우 예술 지원(Create), 기술 전수(Transmit), 환경보호(Protect), 사회 공헌(Encourage) 네 파트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더군요. 이 중 기술 전수는 보편적 CSR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앞서 말한 ‘행동’을 논할 때 기술 전수는 필수입니다. 전수되지 않으면 그 행동은 결국 사라지니까요. 에르메스가 오랜 전통을 바탕으로 현대적 장인 기술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도 행동이 전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재단은 공공 이익을 위한 기술 전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대표적 예로 2년에 한 번 장인, 디자이너, 엔지니어를 에르메스 재단 기술 아카데미(Acade´mie des savoir-faire)에 초청해 하나의 소재에 대한 지식을 함께 발전시키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간 유리·나무·금속·섬유 등을 다뤘고, 내년에는 종이를 다룰 예정이에요.
부회장님에게 큰 감동으로 다가온 재단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학생들에게 장인 기술을 체험하게 하는 매뉴팩토 프로그램입니다. 김희천 작가의 신작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살고 있죠. 아이들을 실제 세계,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세계로 초대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오래 간직할 물건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랑스러워하는 아이들의 미소는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그 미소는 에르메스에 최고 선물입니다.
방금 답변에서 CSR 활동에 관한 에르메스의 진심이 느껴집니다. 에르메스가 나아갈 곳을 물으며 인터뷰를 마칩니다. 1837년 창립 당시부터 이어온 기조에 충실한 채 앞으로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첫 번째 요소는 창조와 혁신입니다. 에르메스가 과감하고 독특한 스타일의 오브제를 만들 수 있는 이유이자 모든 일의 시작점이죠. 두 번째 요소는 지속 가능한 품질입니다. 에르메스 오브제는 수선할 수 있고, 또 자주 수선됩니다. 악셀 뒤마(Axel Dumas) 현 회장님의 조부 로베르 뒤마(Robert Dumas) 전 회장님은 “럭셔리란 수선 가능한 것”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지요. 세 번째 요소는 수직적 통합 유지, 즉 장인 기술의 힘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장인의 시그너처 기술이 담긴 에르메스 오브제는 그 자체로 브랜드의 강력한 정체성입니다.

궁궐 집기 재현 프로젝트로 재현한 덕수궁 함녕전 내부. © 재단법인 아름지기 사진 그루비주얼

 

에디터 황제웅(jewoong@noblesse.com)
사진 배준선(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