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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그 아름다운 함정

LIFESTYLE

레일라 멘샤리(Leila Menchari)라는 이름이 생소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파리를 방문해본 이라면 이미 한 번쯤 그녀의 작품 앞에서 발길을 멈춘 적이 있을 것이다. 1966년부터 2010년대 초까지 포부르생토노레(Faubourg Saint Honore´) 거리에 자리한 에르메스 부티크의 윈도 디스플레이가 바로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에르메스의 새로운 테이블웨어 컬렉션 ‘보야쥐 엉 이카트(Voyage en Ikat)’의 런칭을 위해 파리에 또 하나의 몽환적 공간을 연출한 이 노장 아티스트를 만났다. 그리고 에르메스와 함께한 50여 년의 세월을 반추했다.

 

지난 1월 파리의 팔레 드 도쿄에서 선보인 ‘보야쥐 엉 이카트’ 런칭 현장

동양과 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만난 듯한 컬러 팔레트와 추상적 모티브가 조화를 이룬 고대의 방조 기법 이카트(Ikat). 인도네시아어로 ‘연결하다’를 의미하는 이카트에는 숭고한 장인정신과 끝없는 창의력으로 대표되는 패션 하우스 에르메스를 매혹하기 위한 모든 요소가 담겨 있다. 수천 년간 이어온 오랜 전통, 가는 선 하나에도 정성을 담는 세밀한 수작업 그리고 시선보다 마음을 먼저 움직이는 독특한 미감 같은 것 말이다. 컬러 스톤을 닮은 멀티 컬러가 자아내는 극도의 화려함에 메종 특유의 섬세함을 더한 에르메스의 새로운 테이블웨어 컬렉션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자체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런칭 행사장의 디스플레이를 완성한 레일라 멘샤리 여사의 집무실은 에르메스 본사에 자리해 있다. 셰에라 자드가 눈앞에 나타나도 전혀 놀랍지 않을 듯한 환상적 공간을 창조해낸 그녀는 기선을 제압하는 카리스마와 따스한 눈빛을 동시에 갖춘, 기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사람이다. 변호사 아버지와 무슬림 베일을 거부한 최초의 튀니지 여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레일라 멘샤리 여사의 인생이 터닝포인트를 맞은 것은 1927년. 튀니지의 휴양도시 함마메트(Hammamet)를 산책하다 우연히 발견한 정원은 <아라비안나이트>의 한 챕터를 차지해도 좋을만큼 아름다웠고, 고작 열한 살이던 그녀를 경이로운 세계로 인도했다. 정원의 주인인 핸슨(Henson) 부부를 통해 장 콕토나 디에고 자코메니 같은 당대 최고의 예술가를 만났고, 그들과 함께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특유의 미감을 표현하는 방식을 배웠다. “아이에 불과한 저의 어떤 면이 핸슨 부부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평생을 마음속에서 내려놓지 않은 그 아름다운 정원에 이끌리듯 들어선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는진 몰라도 그곳에서 너무나 값진 가치를 배웠지요.”

2월 재빠르게 국내에 런칭한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2월 재빠르게 국내에 런칭한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2월 재빠르게 국내에 런칭한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2월 재빠르게 국내에 런칭한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2월 재빠르게 국내에 런칭한 보야쥐 엉 이카트 컬렉션

에르메스 윈도 디스플레이의 산증인 레일라 멘샤리

레일라 멘샤리가 완성한 포부르생토노레 매장의 디스플레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에르메스의 고매한 감성은 여전하다.

레일라 멘샤리가 완성한 포부르생토노레 매장의 디스플레이.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에르메스의 고매한 감성은 여전하다.

함마메트의 정원에서 처음 마주한 운명적 마법이 다시 한 번 레일라 멘샤리 여사를 찾은 것은 파리의 국립 예술학교 보자르를 졸업하던 즈음. 무대 설치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품은 그녀는 1961년, 우아함을 본능적으로 알아보던 어머니 덕분에 하이 퀄리티와 동의어처럼 여기던 패션하우스 에르메스의 문을 무작정 두드린다. “어렵게 마주한 당시의 아트 디렉터 아니 보멜(Annie Beaumel)은 제가 가져간 그림을 보고 본‘ 인의 꿈을 그려서 다시 오실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순간그녀가 굉장히 예의 바른 방식으로 저와의 미팅을 서둘러 마무리하려는 거라고 생각했어요.(웃음)”그렇게 시작된 에르메스와의 동행을 레일라 멘샤리 여사는 ‘가장 아름다운 함정’이라고 부른다.1966년부터 40여 년간 에르메스 포부르 부티크의 윈도 디스플레이 작업을 통해 이토록 저명한 메종의 이야기를 행인들에게 들려주는 작업은 가슴 뛰는 흥미로움과 막중한 책임감이 동시에 뒤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윈도 디스플레이는 대사나 음악 혹은 움직임처럼 무대 위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요소 없이 연출하는 일종의 연극입니다. 화면 한편에 겨우 보일 테이블보 하나도 조심스레 고르던 감독 루치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나 열정적인 장인의 손길에서 태어나는 오트 쿠튀르 드레스처럼, 에르메스의 윈도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는 소소한 부분에도 정성과 시간을 투자해 완성합니다. 정상적 세상에서 비현실, 즉 이상적 꿈으로 떠나는 여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상력과 ‘광기’와 함께 말이죠.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에르메스가 그녀의 인생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물었을 때, 레일라 멘샤리 여사는 농담과 진담을 적절히 섞어 이렇게 반문했다. “그렇게 심오한 질문에 짧은 몇 마디 문장만으로 제가 어떻게 대답할 수 있겠어요?(웃음) 단순한 라이프스타일 대신 ‘Better Lifestyle’을 추구하며 오랜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진화해온 메종 에르메스는 제 인생 그 자체인데요.”그 마지막 대답은 보‘ 야쥐 엉 이카트’ 런칭 현장이 제품 그 이상의 철학을 보여주는 포부르의 윈도만큼이나 감동적으로 다가온 이유를 함께 들려주는 듯했다. 함마메트의 정원에서 시작된 레일라 멘샤리 여사의 기억은 50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한 에르메스라는 필터를 통해 여전히, 이토록 우아한 방식으로 기록되고 있었다.

에디터 이현상 (ryan.lee@noblesse.com)
현지 취재 배우리(파리 통신원)  사진 제공 에르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