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 메종을 비추다
에르메스의 홈 컬렉션에 조명이 추가되었다. 에르메스의 조명은 어떨까? 상상한 모습 그대로 미려하며 기능적이고, 무엇보다 사용하는 사람을 빛나고 행복하게 만든다.
조명 컬렉션을 전시한 밀라노 세르벨로니 궁전 내부
에르메스만큼 신제품 출시를 기다리게 하는 브랜드가 있을까?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고 브랜드의 고집을 이어가면서도 혁신적이고 완성도 높은 제품을 내놓는다는 믿음이 목을 빼고 신제품을 기다리게 하는 이유다. 에르메스가 조명 컬렉션을 소개한다고 하니 벌써부터 팬들의 마음은 부푼다. 당연하게도 2014년 밀라노 가구 전시회에서 선보인 조명은 그 꿈을 더욱 키워놓았다.
아직도 에르메스 하면 버킨 백과 켈리 백, 스카프를 떠올리는가? 그렇다면 에르메스에 대해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에르메스는 패션부터 향수, 은식기, 테이블웨어, 비치 타월, 문구류에 이르기까지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진정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에르메스의 제품을 판매하는 몇 곳은 ‘메종(maison, 집)’이라고 불린다. 그중 하나가 서울에 위치한 메종 도산 파크다. 메종은 플래그십 스토어와 다르다. 플래그십 스토어가 브랜드의 모든 아이템을 여봐란듯이 전시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다면 메종은 말 그대로 집이다. 아이템으로 가득 채운 ‘공간’이 아니라 그 브랜드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표현하는 ‘집’이라는 의미다. 입구에 늘어선 꽃의 환대를 받으며 들어서는 파리 세브르 메종에서 우아하고 세련되면서도 아늑한 지인의 집을 방문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브랜드 초기부터 특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해온 에르메스는 지난 2011년 컨템퍼러리 가구, 패브릭, 벽지, 카펫 아이템을 망라하는 홈 라인 컬렉션을 밀라노 가구 전시회를 통해 처음 선보였다. 이미 1920년대부터 사무용품과 레저용품을 디자인해왔고, 저명한 장식미술가 장-미셸 프랑크와 협업해 가구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 후 테이블웨어와 텍스타일을 추가하며 홈 라인을 늘려왔다. 올해 에르메스는 2명의 디자이너가 만든 조명 컬렉션을 추가하면서 진정한 메종을 구현하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1 세르벨로니 궁전 한편에 전시한 얀 케르살레의 램프 2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알렉시 뒤마
1 퀴리오지테 컬렉션 중 드레수아 아 테 2 퀴리오지테 컬렉션 중 코프르 아 쇼수르
4월 8일 밀라노의 세르벨로니 궁전 안, 이탈리아 디자이너 미켈레 데 루키(Michele de Lucchi)가 진두지휘해 완성한 공간에서 에르메스 조명 컬렉션을 소개했다. 미켈레 데 루키와 프랑스 비주얼 아티스트 얀 케르살레(Yann Kersale´)가 디자인한 2개의 조명 켈렉션은 ‘에르메스의 조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켈레 데 루키가 선보인 조명은 ‘팡토그라프(Pantographe)’와 ‘아르네(Harnais)’ 컬렉션. 그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그간 테이블, 의자, 화병 등을 통해 명성을 떨쳐왔다. “조명을 디자인하는 것은 환상적인 작업이다. 조명은 테크놀로지이며 조각 예술이자 장인정신에 관한 것이다. 에르메스와 함께 작업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전통과 현대를 조합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제품의 모든 부분을 장인의 손을 빌려 가죽 소재로 제작했고(심지어 전선과 콘센트 케이스까지 가죽으로 감쌌다), LED 시스템을 도입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점도 고려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미켈레 데 루키는 스탠드 램프, 테이블 램프, 침실 램프를 소개했는데 각각의 램프는 하나의 오브제로서 빛이 날 정도로 장식적인 면도 강했다.
“에르메스의 장인정신은 함께 작업할 때 특히 마음에 든 부분이다.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작업자의 가슴과 눈 그리고 정신으로 만든다는 개념이 아닌가. 수작업으로 만든 오브제지만 나중에 수선이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은 앞으로 개인 작업을 할 때도 꼭 적용하고 싶은 부분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동식 모듈 형태의 에르메스 램프(La Lanterne d’Herme‵s)를 선보인 얀 케르살레는 에르메스와 함께한 작업을 이렇게 말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햇빛이 없는 시간, 즉 자연광이 없는 시간에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오브제를 만들고 싶었다. 에르메스의 유목성을 표현하고도 싶었다. 에르메스는 마차와 함께 시작한 브랜드다. 여행가방도 있다. 에르메스가 여행을 꾸준히 이야기해온 것처럼 선원들이 사용하던 랜턴에서 영감을 받아 육지와 바다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얀 케르살레가 만든 램프는 각각 충전 가능한 독립적 배터리로 구동되는 4개의 램프로 나뉘며, 따로 또는 같이 원하는 곳에 두고 사용할 수 있다. 그는 인터뷰 도중 램프를 4개로 나누어 탁자 위에 올려놓기도 바닥에 내려놓기도 하며 친절한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이동성은 에르메스가 꾸준히 추구해온 특성이기도 하다.
1 미켈레 데 루키 2 미켈레 데 루키가 디자인한 아르네 컬렉션의 랑파데르 3 미켈레 데 루키가 디자인한 팡토그라프 컬렉션의 랑파데르 아르쉬
1 얀 케르살레 2 4개로 분리 가능한 얀 케르살레의 램프
에르메스의 총괄 아티스틱 디렉터 피에르-알렉시 뒤마(Pierre-Alexis Dumas)는 인터뷰 장소 한편에 놓인 의자를 들고 오며 “내 어머니 르나 뒤마는 1980년대 중반에 피파(Pipa, 접이식 가구 컬렉션)를 출시했다. 우아하면서 이동 가능한 이 가구에는 에르메스 홈 컬렉션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이 조명을 선보일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저명한 디자이너 2명을 ‘초대’해(에르메스에 ‘협업’이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하다) 조명 컬렉션을 내놓았다. 개인적으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불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빛이 없는 세상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여전히 빛에 매료되어 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조명에 현대적 감각을 입히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영혼이 담긴 오브제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나는 존재감 있는 오브제, 개성 있는 오브제, 친구 같은 오브제에 관심이 많다. 같이 생활하고 어느 날 내가 없더라도 내 자녀가, 가족이, 친구들이 오브제를 보며 나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다. 오브제가 인생의 일부가 되는 것, 이것이 에르메스가 추구하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인공조명으로 햇빛을 복제하는 것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얀 케르살레는 ‘이 건물에는 이런 조명’이라는 판에 박힌 듯한 조명의 조합을 거부한다. 빛은 다양한 방법으로 다룰 수 있고, 다양한 광원으로 비출 수 있다는 다소 철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조명에 대한 의견을 밝힌다.
전시장에는 장-미셸 프랑크 리에디션 바이 에르메스(Jean-Michel Frank re-editions by Herme‵s) 가구와 퀴리오지테 데르메스(the Curiosite´s d’Herme‵s) 컬렉션도 전시해 이목을 끌었다. 절제되고 엄격한 라인이 돋보이는 그의 가구는 올해 단철과 말굴레용 가죽으로 만든 한정 수량의 벤치, 암체어, 콘솔을 선보였다. 한 장의 가죽으로 만든 체어는 내구성은 물론이거니와 존재 자체가 목적인 오브제처럼 미려하다.
1 패브릭과 벽지 컬렉션을 선보인 밀라노 메종 컬렉션 쇼룸 2 가구와 어우러진 미켈레 데 루키의 조명 3 장-미셸 프랑크의 리에디션 가구
섬세한 재료의 디자인이 어우러진 벽지와 패브릭 컬렉션
퀴리오지테 데르메스는 에르메스의 상상력과 실용성이 날개를 편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술병과 디캔터, 크리스털 잔과 샴페인병, 시가 박스 등을 수납하는 캐비닛인 클럽 바(Club Bar), 최대 18켤레의 구두와 긴 부츠 한 켤레를 수납할 수 있는 코프르 아 쇼수르(Coffre a‵ Chaussures), 차를 보관하고 서빙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진열하는 캐비닛 드레수아 아 테(Dressoir a‵ The´s)는 에르메스 장인정신과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의 정점을 보여준다. 퀴리오지테 컬렉션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필리프 니그로(Philippe Nigro)는 “모듈형 구조로 만든 퀴리오지테 컬렉션은 크기와 기능, 부속품과 가죽, 캔버스 등을 모두 의뢰인의 요구에 따라 변경할 수 있다”고 전한다.
최근 인테리어에 신경 쓴다고 하는 이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에르메스 벽지와 패브릭도 새로운 디자인으로 눈길을 모았다. 밀라노 메종 컬렉션 쇼룸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보인 벽지와 패브릭은 특유의 절제된 색감과 화려하지만 품격 있는 디자인이 단연 돋보였다.
피에르-알렉시 뒤마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는 오브제를 제작할 때 편하고 아름답고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고집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오브제를 통해 얻는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매출 관련 수치에 일희일비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찬탄해 마지않는 제품을 소개하는 에르메스의 비결은 바로 이것이다. 사용하는 사람이 행복해지는 제품을 만드는 것. 에르메스의 홈 컬렉션에 아직 익숙지 않은 사람이라면 찬찬히 제품을 살펴보길 권한다. 만드는 사람의 욕망이나 과시 대신 사용자를 배려한 섬세한 터치가 자연스레 홈 컬렉션으로 인도할 것이다.
에디터이윤정 (yoonjunglee@noblesse.com)
사진 제공 에르메스(Hermè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