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에 대하여
샌디에이고 미술관 100주년을 맞아 선보이는 전시이자 서양미술사 600년을 아우르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한국에서 열린다. 샌디에이고 미술관 관장 록사나 벨라스케즈가 직접 전하는 예술과 사람, 시대를 잇는 미술관의 역할과 방향성, 그리고 예술 본연의 가치에 대하여.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모더니즘에 이르기까지 서양미술사 600년에 걸친 거장들의 작품이 서울에 모인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샌디에이고 미술관(San Diego Museum of Art)의 개관 100주년을 맞아 마련됐다.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제2차 세계대전 전후 모더니즘까지 서양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아우르는 거장 60인의 대표 작품 65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례 없는 예술의 장이 열리는 것. 특히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개관 이래 단 한 번도 해외로 반출하지 않은 상설 컬렉션 25점을 한국에서 최초로 공개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깊이감을 엿볼 수 있다.
이듬해 2월까지 진행될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샌디에이고 미술관 관장 록사나 벨라스케즈(Roxana Velasquez)는 “한국에서 우리의 소중한 상설 컬렉션을 최초로 공개할 수 있어 기쁘다.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닌 시대와 사조를 넘나드는 예술가들의 대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감회를 전했다. 남미에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의 주요 미술 기관에서 경력을 쌓은 벨라스케즈는 현대미술과 고전미술을 아우르는 전시 기획 경험과 학술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미술관의 정체성을 단순한 소장 기관 이상의 ‘문화적 대화’의 장으로 확장해왔다. 수백 년의 흔적이 쌓인 미술사에 대한 존경을 기반으로 역사를 만들어가는 미술관의 비전을 그리는 동시에 예술의 힘을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를 만나 시대와 예술, 예술과 사람을 잇는 미술관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Amedeo Modigliani, Blue-eyed Boy, 1916.

샌디에이고 미술관.
샌디에이고 미술관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이 서울에 상륙했습니다. 한국에서 미술관의 100주년을 함께 기념하게 되어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예술은 문화 간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강력한 언어이며, 이번 협업은 단순한 전시를 넘어 ‘예술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는 경험’을 제공하는 자리입니다. 서울 관람객과 우리 이야기를 나누고, 두 문화가 예술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을 수 있어 더욱 각별한 시간이고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라는 제목처럼, 600년에 이르는 서양미술의 흐름을 하나의 전시에 담아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서양미술 컬렉션은 기관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귀중한 자산입니다. 샌디에이고가 아닌 새로운 국가, 지역에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전시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죠. 오랜 시간 관람객의 사랑을 받아온 명작으로 구성했으며, 큐레이터 마이클 브라운(Michele Brown) 박사가 오랜 연구와 통찰로 전시의 서사를 완성했습니다. 그의 깊이 있는 해석과 균형 잡힌 시선이 이번 전시의 뼈대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부관장 어니타 펠드먼(Anita Feldman)을 비롯한 전문팀이 전시 준비 과정을 총괄했습니다. 작품 포장, 상태 점검, 보험, 온습도, 조명 관리 등 모든 단계가 철저한 프로토콜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작품을 안전하게 이동하고, 동시에 관람객에게 최상의 상태로 선보이는 것이 핵심 목표였죠.
말씀하셨듯, 이번 전시에는 개관 이래 한 번도 해외로 반출된 적 없는 주요 상설 컬렉션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어떤 신념이 있었을까요?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과 소중한 컬렉션을 나누는 것. 이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신념이자 존재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올해는 도쿄, 교토 그리고 서울을 잇는 특별한 아시아 투어를 기획했습니다. 특히 한국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력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였고, 이에 모든 과정을 신중하게 준비했어요. 여러 기관과 팀이 세심하게 협력해 이 전시가 실현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예술이 국경을 넘어 연결되는 의미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더없이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도쿄와 교토를 거쳐 서울로 이어지는 이번 아시아 투어는 각 도시마다 조금씩 다른 구성을 선보였다는 점 역시 흥미롭습니다. 특히 서울 전시에서는 인상주의 이후 시기의 작품이 새로 추가되었는데, 어떤 서사가 더해졌다고 보시나요? 서울 관람객을 위해 마련한, 미술사의 600년을 한눈에 조명할 수 있는 이 예술 여정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술이 어떻게 발전하고 서로 영향을 주었는지 이야기하는 시도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작품은 언제나 관람객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시대의 상징이자 예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한국을 겨냥해 추가한 구성은 그 흐름을 확장하며, 샌디에이고 컬렉션의 서사를 더욱 풍성하게 완성해주는 대미인 셈이죠.

Anthony van Dyck, Queen Henrietta Maria of England, 1636-1638.

Suzanne Valadon, Young Girl in Front of a Window, 1930.
전시는 단순히 시대별 대표작을 나열하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대와 작가가 대화를 나누듯 구성되어 있습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스페인 컬렉션 역시 이번 전시 구성에서 중요한 축을 차지하더군요. 특히 주목해야 할 섹션이나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어느 한 작품에 집중하기보다는 전체를 하나의 큰 서사로 감상할 것을 권합니다. 각 섹션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시선으로 유럽 미술의 발전 과정을 정교하게 엮어낸 결실이니까요. 섹션마다 다양한 시대의 미학과 사상이 공존하도록 각 작품을 배치했다는 뜻입니다. 특히 바로크 섹션에서는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 바르톨로메 무리요, 후세페 데 리베라의 작품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중앙에 자리한 엘 그레코의 ‘성 베드로의 눈물(The Tears of Saint Peter)’은 반드시 감상해야 할 걸작이죠. 참회의 감정을 눈빛과 색채, 붓 터치로 풀어내며 그가 왜 ‘최초의 현대 화가’라 불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고야의 ‘마르케스 데 라 로카 이 두케 데 소프라가(Marques de la Roca y Duque de Sofraga)’는 인물 내면을 꿰뚫는 통찰력을, 17세기 여성 화가 라헬 뤼시의 ‘정물화(Still Life)’는 생명력과 섬세함이 공존하는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베르나르도 벨로토의 ‘베두티(Vedutti)’에서는 건축적 정밀함과 절제된 색채가 어우러져 18세기 베네치아의 빛과 공기를 고요하게 담아냈고, 호아킨 소로야의 ‘마리아 엔 라 그란하(Maria en la Granja)’는 햇살과 색채의 교향곡처럼 생동감이 넘칩니다. 이 밖에도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 메리 카사트,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작가 작품으로 다채로운 감상의 지점은 이어집니다. 단순한 명화의 나열이 아닌 시대와 감정, 인간 정신의 진화를 보여주는 장대한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한 거죠.
올해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100년 여정을 돌아보는 해이기도 합니다. 지난 세기를 통틀어 미술관의 역사를 결정지은 가장 큰 전환점은 무엇일까요? 첫 기증품이던 소로야의 ‘마리아 엔 라 그란하’를 비롯해 퍼트넘(Putnam)의 유럽 거장 컬렉션과 툴루즈 로트레크 및 에드윈 비니 3세 컬렉션의 편입은 미술관의 차기 방향성을 결정짓는 중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에 리베라, 수르바란, 헨리 무어, 세르히오 에르난데스, 페르난도 카사셈페레 등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을 들이며 소장품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왔습니다. 최근에는 국제적 존재감을 강화하기 위해 캐나다, 멕시코, 스페인, 아시아로 교류를 확대하고 있죠. 그리고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다음 100년을 향한 새로운 도약이 시작점이 될 사진 미술관(MOPA)과의 통합,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신관 프로젝트도 진행했습니다.
미술관의 다음 100년을 준비하는 상징적 변화가 바로 사진 미술관과의 통합 그리고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신관 프로젝트 공개였습니다. 이러한 변화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과거 유산’과 ‘미래 방향성’을 어떤 방식으로 이어준다고 생각하시나요? 사진 미술관과의 통합은 단순한 기관 병합이 아니라 예술 매체가 확장되는 시대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진화의 수순으로 이뤄졌습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꾸준히 사진전을 마련하며 해당 장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이번 통합으로 약 1만1000점의 작품이 미술관 컬렉션에 추가됐죠. 동시에 전시 공간 4개를 마련해 관람객에게 더욱 다층적이고 풍부한 예술 경험을 선사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러한 변화는 미술관의 정체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예술의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상징적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또 하나의 대형 신관 프로젝트로 공개된 서관은 미술관 커뮤니티를 더 폭넓게 지원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컬렉션과 교육, 아웃리치 프로그램, 그리고 국내외 파트너십 등 여러 활동을 전개함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안전하고 효율적인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동시에 노먼 포스터의 감각적 설계를 바탕으로 미술관의 다음 세기를 상징하는 상징적 건축이 추가되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전시장 내부 모습.

El Greco(Domenikos Theotokopoulos), The Adoration of the Shepherds, 1576-1577.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사명은 ‘위대한 예술로 영감을 주고, 교육하며, 문화를 육성한다’로 요약됩니다. 100년 전 설립 정신이 오늘의 관람객 경험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있나요? 예술을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하는 이 모든 과정이 결국 관람객에게 호기심과 깨달음을 선사하는 길이라는 점을 유념하고자 하는 태도는 변함없습니다. 다만, 기술 발전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결합해 관람객의 성향과 필요를 더 깊이 이해하고, 그에 맞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하죠. 설립 당시의 정신을 이어가되, 시대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해석을 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디지털 시대임에도 여전히 관람객은 ‘현장에서 마주하는 예술’의 힘을 갈망합니다. 100년의 유산을 지닌 샌디에이고 미술관이 지켜야 할 가치는 무엇이라 보시나요? 기술과 인공지능(AI)의 발전은 미술관에도, 관람객에게도 분명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의미일 때죠. 실제 작품과 직접 만나거나 작품을 통해 느끼는 감동과 몰입은 그 어떤 디지털 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체험하는 예술의 힘은 작품 감상의 핵심이며, 미술관이 지켜가야 할 막중한 가치라고 봅니다.
디지털화와 글로벌 네트워킹이 빠르게 확장되는 시대에도 여전히 ‘현장성’을 지닌 미술관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미술관은 단순히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가 아니라 방문객이 영감을 얻고 환대받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예술적 탁월함이 일상에서도 느껴지고, 배움과 즐거움이 함께하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현장성을 지닌 미술관의 핵심 역할입니다.
이번 아시아 투어는 SDMA와 한국 미술계의 새로운 교류의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앞으로 구상 중인 협력이나 프로젝트가 있나요? 2023년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예술은 시대를 초월해 인간에게 감정과 통찰을 전달합니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미술관이 관람객에게 줄 수 있는 ‘위로’가 있을까요? 예술은 기쁨과 슬픔, 축하와 반성을 모두 담아내며, 이를 통해 관람객은 자신과 세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경험을 얻습니다. 지금처럼 불확실한 시대에 미술관은 이러한 경험을 안전하게 제공하고, 더 많은 사람이 예술과 마주할 수 있도록 문을 여는 역할을 합니다. 예술이 주는 통찰과 감정의 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100년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지금,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다음 챕터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지난 100년이 미술관의 기반을 다지는 시기였다면, 향후 100년은 전시 및 예술 체험이 이뤄지는 공간과 프로그램 확장, 글로벌 협력, 그리고 디지털과 현장의 예술 경험을 통합하며 지역사회와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유대를 강화하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관람객과 함께 이러한 변화와 성장을 공유할 예정이고요.
에디터 이호준(hojun@nobles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