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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당연히, 구자혜

LIFESTYLE

지금 가장 주목받는 젊은 연극 연출가 구자혜가 오는 4월 신작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를 선보인다. 새 작품 발표에 앞서 독특한 연극 세계를 만들어온 그녀와 ‘연극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했다.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대표이자 연출가다. 자신과 극단의 소개를 부탁한다. 2010년 신작희곡페스티벌에서 <먼지섬>으로 등단했고, 이후 국립극단에서 <3월의 눈> 등 굵직한 작품에 조연출로 참여했다. 국립극단에 있을 땐 유명 연출들의 작업을 보며 나도 저런 ‘웰메이드 연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게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그러다 ‘연극은 관습적으로 이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여기는 당연히, 극장>(2012년)이란 작품을 써서 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너무도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공연을 한 후 그 이름으로 자연스레 극단을 만들게 됐고, 그게 벌써 6년쯤 됐다.

연극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 연극 연출 전공자가 아닌 것으로 안다.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거길 들어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특별히 연극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니 말이다. 단, 고등학교 때 ‘야자’를 빼먹고 LG아트센터에서 장진 연출가의 연극 <박수칠 때 떠나라>를 본 기억은 있다. 공연 자체를 특별히 좋아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고, 혹시 그것 때문에 내가 지금도 연극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해봤다.

그게 뭔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배우 정재영 씨가 커다란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모습이다. 천장에서 조명이 그의 얼굴을 비추고, 그가 작은 목소리로 툭 하고 뭐라고 내뱉는 연기다. 그 모습이 어떻게 좋았는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떤 특정 공간에 사람이 있고, 그를 위해 조명이 움직이고, 그가 무대 중앙에서 조용히 자신의 얘길 하는 걸 본 게, 내 연극 인생에서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당시 정확히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큰 무대에 배우를 세우고 싶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맞다. 단순히 연극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보다 ‘아, 이런 게 연극이구나. 이렇게 한 사람이 얘기하는 걸 듣는 게 연극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 이상은 그게 정확히 뭐였는지 설명하기 어렵다.

그럼 학교 얘길 해보자. 대학에선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수업을 더 열심히 들은 것으로 안다. 국문학을 공부하며 어떤 ‘자아 탐구’의 시간이라도 필요했나? 나는 내 자아에 조금도 관심이 없다. 철학 수업을 들은 건 ‘자아 탐구’보다는 세계와 사회가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한 친구들에게 이 얘길 하니 무슨 헛소리냐고 비웃었는데, 내게 철학은 불가해한 세상에서 그게 무엇인지 조금은 논리적으로 알게 해주는 학문이었다.

철학 수업에서 당시 배운 것이 훗날 작품에도 영향을 줬나? 당시 공부한 게 지금 작업의 토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현장에 있다 보면 정말 공부를 소홀히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시엔 친구들과 모여 인문학이나 미학 공부도 열심히 했다. 사실 공부는 그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때 한 ‘공부발’로 지금까지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부터 <연극실험실 혜화동 1번지>, <킬링 타임>, <코끼리>까지 지난해에만 4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작품을 올릴 수 있나?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절대 할 수 없는 이야기. 다른 연출가들에 비해 내가 작업량이 많은 건 그 때문이다.

지난해 말 두산연강예술상(공연 부문)부터 올 초 동아연극상(새개념연극상)까지 큰 상을 2개나 받았다. 2010년 이후 데뷔한 신인 연출가가 받기엔 다소 큰 상이란 생각이 드는데 실제론 어땠나? 두산연강예술상을 받을 때만 해도 ‘이거 어떡하지’라는 기분이었는데, 동아연극상까지 받게 되자 ‘정말 큰일이구나’ 싶었다. 여행하느라 동아연극상 시상식엔 못 갔지만, 이번에도 심사평에서 ‘풍자’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왔다고 들었다. 사실 내 작품에 풍자에 대한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의도적으로 뭔가를 풍자해보겠다고 쓴 건 아니다.

1 불합리한 세계에 저항하는 한 인간을 그린 <모래의 여자>   2 풍자와 도발이 돋보이는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구자혜표’ 연극을 아는 이라면 풍자라는 단어를 애써 지우진 못할 것 같다. 〈commercial, definitely-마카다미아, 검열, 사과 그리고 맨스플레인〉같은 작품은 제목부터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 사실 풍자가 있고 없고를 생각하기보다 내 공연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을 가졌는지 고민하는 데에 더 시간을 쓴다. 누군가 이런 얘기도 하더라. 구자혜의 작품은 풍자의 대상만 무대에 놓고 총을 쏘는 게 아니라, 풍자하는 자신도 무대에 올라가 그 총을 함께 맞는다고. 그런데 이 말대로라면, 이건 더는 풍자가 아닌 ‘시스템’에 대한 얘기일 수도 있다.

그건 풍자라는 게 원래 풍자 대상보다 낮은 차원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풍자가 성립된다는, 그런 이치에서 한 말 아닌가? 아니, 나 또한 너무 별 볼일 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어 그 대상에 포함한 것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풍자의 대상이 특정 개인이 아니라 그들이 속한 ‘시스템’에 맞춰져 있으므로, 그렇다면 나 또한 거기에 속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풍자의 대상이 늘 외부에 머물러 있으란 법은 없다.

조금 아까 작품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시선인지 고민한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가? 내가 올린 연극에 ‘폭력적 시선’은 없는지, 혹은 그것이 인간으로서 가져야 좋은 관점인지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이다. 이를테면 풍자라는 명목으로 여성을 비하하진 않는지, 물론 극에서 누군가를 비하할 순 있지만 그게 원래 의도대로 잘 표현되었는지, 또 별 생각 없이 넣은 장면에서 어떤 폭력성이 느껴지진 않는지 따져본다는 얘기다. 하나의 예를 들면 2014년에 올린 <모래의 여자> 공연엔 남녀 배우의 베드신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남자 배우가 “이런 베드신은 너무 제국주의적인 게 아니냐”고 묻더라. 그가 왜 당시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을 하대한다는 의미에서 쓴 말인 걸 알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떤 특정 장면을 만들다 누구도 감지하지 못한 부분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정치적 혹은 폭력적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늘 자기 검열을 엄격하게 하는 편이다.

그럼 <모래의 여자>의 해당 장면은 수정했나? 그랬다. 다른 움직임으로 바꿨다.

한 평론가가 구자혜의 연출 스타일이 ‘민주적’이라고 한 말이 이해된다. (웃음)

한데 모든 디테일을 그렇게 고민하며 한 편의 연극을 만드는 게 힘들진 않나? 매번 그렇게 자기 검열을 거친다. 나는 무대 위에서 폭력 그 자체를 보여주는 걸 싫어한다. ‘이 장면 세지?’라고 묻는 듯한 연극 작품이 내겐 맞지 않는다. 폭력적인 걸 관객에게 보여줘야 할 때 그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고민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연극을 하면서 이전과 세계관이 바뀐 걸 느끼나? 연극을 하며 스스로 많이 성장했다고 느낀다. 언젠가 배우 한 명이 “네가 연극이라도 하니까 이러고 있지, 아니면 노숙자가 됐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아까 사진 촬영을 할 때도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연극을 하니까 이렇게 사람들도 와주고 사진도 찍어주는구나’ 같은. 연극이 내 안의 뭔가를 바꿨다기보다는 연극으로 인해 사람들이 이렇게 내게 관심을 둔다는 걸 계속 인식해야 하는 것 같다.

삶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어색한 표정으로 사진이 찍히는 찰나에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는 동안에도 순간순간 계속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 그렇다.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는 ‘구자혜표’ 공연은 무엇인가? 2월 말에 세월호에 대한 공연을 올린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올린 공연인데, 이번엔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저항하기 위해 연극인들이 광화문 광장에 세운 ‘블랙텐트’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이 독특한 건 세월호의 가해자들을 무대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이다. 그간 만든 작품 중 가장 ‘단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4월에도 신작을 올린다. 4월 21일부터 30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가해자 탐구_부록: 사과문 작성 가이드>라는 작품을 올린다. 이건 가해자 전반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공연이다. 지난해에 SNS를 통해 전해진 ‘문화계 성폭력’ 문제를 가시화해 무대에서 다룬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가해자의 물리적 성폭력뿐 아니라, 예술이 여성을 어떻게 다뤄왔는지 바라보는 작품이다. 우리 주변에 있지만 실체를 잡을 수 없는 가해자들의 존재에 통시적 시점으로 접근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연극이 ‘체제’에 대해 말하는 데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연극을 하다 보니 그쪽에 관심이 생긴 건가? 후자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연극이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대단한’ 것이기 때문에 연극을 하지만, 다른 어떤 예술보다 훌륭하다고 믿진 않는다. 그래서 연극의 힘으로 어떤 체제를 돌파하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차라리 연극을 하다 보니 오히려 그런 것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하는 게 맞다.

마지막으로 왜 연극을 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묻고 싶다. 진짜 내 속내는 말하기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연극을 하면 더 많은 걸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디터 이영균(youngkyoon@noblesse.com)
사진 김제원(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