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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피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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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10년째 체류 중인 레이는 일본에서 자란 중국계 연기자다. 그의 탄생화 꽃말은 ‘비밀스러운 애정’. 하지만 그는 비밀스럽긴커녕 맑은 웃음과 재치로 주변을 환히 밝힌다. 마치 여름 햇살에 피어나는 꽃처럼.

니트 상의 YCH 반지 D.Blume

화보 컨셉이 ‘탄생화’다. ‘비밀스러운 애정’이란 에린지움의 꽃말과 실제 성격이 비슷한가? 전혀. 내 성격은 비밀이란 단어와 거리가 멀다. 기분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고 티가 많이 난다. 눈이 좀 큰 편이라 더 그렇다. 원래 성격이 밝고 긍정적이고 씩씩한 편이기도 하고. 나도 좀 비밀스러워지고 싶다.(웃음)
얼마 전에 두산 홈경기에서 시구를 했다고 들었다.시구는 난생처음 해봤는데 너무 떨렸다. 연습할 때는 잘됐는데 실전에서 긴장하는 바람에 상대편 선수의 다리에 공을 맞혀버렸다. 그것도 당시에는 알아채지 못하다가 집에서 모니터링할 때 알았다. 그래도 시구한 홈팀이 이겨서 기분이 좋았다. 행운의 여신이 된 느낌이랄까.
겉보기엔 가냘퍼서 운동을 싫어할 것 같은데 시구라니 의외다. 스포츠를 좋아한다. 여름에는 수상스키, 겨울에는 볼링과 골프, 스노보드를 즐긴다. 특정 공간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보단 아웃도어 스포츠를 좋아한다. 패러글라이딩까지 즐기니 이 정도면 스포츠 마니아 아닐까?
레이라는 이름은 본명인가? 레이가 ‘고을 려(麗)’ 자의 일본어 음가다. 여자로 태어났으면 화려하고 아름답게 살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셨다.
어머니가 중국인, 아버지가 일본인이고 중국과 일본에서 자랐다고 들었다. 어쩌다 한국에 오게 됐나?중국에서 태어나 현지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러다 일본으로 이민 가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거기서 나왔다. 연기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걸 너무 좋아해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활동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할 즈음 한국 걸 그룹 오디션 제의를 받았다. 평소 보아를 무척 좋아했기 때문에 오디션을 보고 합격해 5년 동안 걸 그룹 연습생으로 지냈다. ‘아이엠’이란 이름으로 일본에서 쇼케이스를 하며 데뷔하려 했는데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로 데뷔가 무산됐다.
그럼 일본에 돌아갈 수도 있었을 텐데? 다른 멤버들은 소속사를 떠났지만 나는 한국 TV에 나오는 사람이 될 거라고 부모님께 큰소리치고 나온지라 절대 그냥은 못 돌아가겠더라. 그래서 MBN이 개국할 때 생긴 프로그램에 리포터로 방송 데뷔를 했다. 연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레슨을 받다가 영화 단역이라도 출연하려고 영화 오디션을 봤는데 감독님이 공동 주연으로 뽑았다. <마지막 위안부>라는 영화에서 중국인 위안부 역을 맡았는데 장편영화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한번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갑자기 영화 주연을 맡았으니 마음가짐이 달라졌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연기를 접한 것을 후회했다. 아쉬움도 컸다. 연기는 물론 발음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지금 이런 열정으로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그때부터 아예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연기에 임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공중파에는 예능 프로로 데뷔했으니 섭섭했겠다.예능 프로로 시작하니 계속 비슷한 일만 들어오더라. 계속 단발성으로 들어와 프로필에도 도움이 되지 않고. 그래서 눈길을 돌려 한국에서 만들고 중국으로 송출하는 뷰티 프로그램에 계속 출연했다. 2~3년간 진행했는데 얼마 전 시즌 4가 끝났다. 중국인은 한국의 뷰티 콘텐츠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지금 10년째 한국에 머물고 있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 같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평생 살고 싶을 만큼 한국을 좋아한다. 음식도 좋고 메뉴판에 한국어가 쓰여 있는 것도, 길을 지나다 한국말이 들리는 것도 좋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 자체가 좋다. 단역부터 천천히 시작해 평생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도 나이를 계속 먹으니 불안해져서 요즘은 긍정적인 책을 읽고 있다. <미움 받을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가 특히 좋았다.

화이트 재킷 Debb, 이어링과 반지 D.Blume, 화이트 삭스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책을 읽어보니 어땠나? 책에 따르면 우울함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보다 큰 걸 원하는 상황에서 그게 불가능할 때 찾아온다. 아마 내가 우울했던 것도 나보다 연기를 잘하고 한국어도 능숙한 어린 친구들이 계속 등장하고, 위로는 쟁쟁한 연기자들이 많아 그 사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지금은 우울할 때 차근차근 수업을 듣고 책을 읽으며 내면의 양식을 쌓고 운동을 한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단어를 많이 익혀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이 좋으니 한국말을 더 잘하고 싶고, 또 잘해야 한국에 오래 살 수 있으니까 말이다.(웃음)
간만에 일본어로 쓰인 책을 읽으니 기분이 묘했겠다. 아니다. 책은 교보문고를 지나가다 한국어판으로 샀다.
원서가 일본어 아닌가? 대체 왜?나도 모르겠다. 그냥 자연스럽게 한국어판으로 사버렸다. 하하.
요즘 한국인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말하며 탈출을 꿈꾸는데 한국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은가? 뭔가를 싫어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지 몰라도 좋아하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한국에서 살 거다. 외국인을 만나도 말이다. 아마 미국 사람이랑 결혼하면 이태원에서 살겠지.(웃음) 나는 명동처럼 외국인이 많은 곳에서 운전할 때면 늘 그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린다.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서다.
레이라는 사람이 궁극적으로 완성하고 싶은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좋아하는 연기를 계속하면서 가늘고 길게 가고 싶다. 반짝이는 스타보다 친근한 연기를 펼치는 편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에디터 전종현(harry.jun@noblesse.com)
사진 김제원 스타일링 이윤정 헤어 이지혜 메이크업 유혜수 플로리스트 김경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