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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CEO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LIFESTYLE

남녀 차별이라는 단어가 무색한 세상이지만 여전히 국내 기업의 여성 임직원 비율은 저조한 수준이다. 여성에겐 조금 터프한 사업 분야에서 한 조직의 수장으로서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여성 CEO 3명을 만났다. 그들의 속내에서 우러난 말은 그 어느 때보다 현실적이고 단단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졌다
메디포스트 양윤선 대표

우리에게 제대혈이라는 개념을 알리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기업은 누가 뭐래도 메디포스트다. 제대혈 보관 사업은커녕 제대혈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할 때 양윤선 대표는 과감하게 병원을 그만두고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종합병원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며 12년을 근무한 그녀가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했다. 지금은 메디포스트의 플랫폼 사업으로 단단히 자리를 잡았지만 사업 초창기 산부인과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의사를 설득하고 산모들에게 제대혈의 개념을 알린 시절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아이도 적게 낳고, 골수 기증자도 외국에 비해 적어서 조혈모 세포 이식만 받으면 완치율이 60~70%나 되는 소아암, 소아 백혈병 치료가 어려운 걸 봐왔어요. 당시 벤처 붐이 불면서 시기상 여러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컸죠.”

사업을 시작한 동시에 그녀가 깨달은 것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구나’ 하는 자기 확인이었다. “병원을 그만 두고 나오는 순간부터 내가 상상한 것과는 다르다는 말이 절로 나왔어요. 전문직은 각 개인의 역할에 충실하면 되지만 사업은 사회 구석구석과 엮여서 돌아가는 조직이죠. 혼자만 잘나고 똑똑하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좀 가졌구나, 잘되는구나’ 하는 순간 모든 걸 잃을 수 있어요. 물론 그래서 더 재미있죠.” 안정된 직장을 바라고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터프했다. 지난 10여 년간 그녀는 잘 유지한다고 해도 한순간에 기업이 넘어갈 수 있다는 걸 늘 염두에 두면서, 어려움이 찾아와도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버텨왔다. 제대혈 보관 사업이 주목받으면서 후발 업체가 갑자기 우후죽순으로 생겨나 시장 질서가 어지러워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정적인 공격성 홍보와 가격 덤핑에도 흔들림 없이 버티며 천천히 회복세를 되찾았다. “저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사회를 보는 눈이 훨씬 넓어졌어요. 저도 불평이 많은 조직의 일원이었는데 사업을 한 후로 다른 입장에서 보게 된 거죠. 의사만 했다면 지금도 몰랐을 수 있어요.” 대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의 입장에서 자녀들에게 하는 조언도 스스로 사업을 하며 얻은 경험에서 나온다. 세상을 넓게 보고, 먼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늘을 즐겁고 뿌듯하게 사는 것. 하지만 그것도 간접적으로 전할 뿐, 뭐가 돼라, 어떻게 살라고 직접 말하진 않는다. 아이들은 각자 타고난 그릇과 성향이 있기 때문에 굳이 스트레스를 더할 필요 없다는 것이 양윤선 대표의 생각이다.

현재 메디포스트는 여성 직원과 임원진의 비율이 절반이 넘는다. “회사에서 여자 직원에게 기대하는 몫은 똑같은데, 가정에서 할 일은 여성에게 편중되어 있어요. 사회가 밸런스를 못 맞춰주는 거죠.” 분명 어려운 상황이지만 여성이 더 돋보일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진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다.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걸 변화시킬 수는 없어요. 아들만 대학 보내던 시절을 지나 지금은 교육의 기회가 똑같이 주어지는데 그 뒤가 전혀 보장이 안 되니 더 답답할 거예요. 그래도 세상이 꾸준히 변하고 있다는 걸 믿으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아야 해요.” 양윤선 대표는 작은 일이 주어져도 남달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일 때는 전화를 받고 전달하는 톤과 매너에도 차이가 나고, 지시를 받을 때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그리고 조직에서 인정받고 싶으면 조직이 원하는 인물이 되어야 한다. 조직은 희생을 강요할 순 없지만 먼저 희생을 감수해주는 사람을 반길 수밖에 없다는 것. 오랜 시간 사업을 이끌어온 여성 대표답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을 남겼다. 메디포스트는 10년이 넘는 지난 세월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기업이다. 사업이 성장한 만큼 세상을 보는 눈도 넓어졌다고 말하는 양윤선 대표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가깝게는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현재 임상시험 중인 치매 치료제, 폐 질환 치료제 출시에도 박차를 가할 예정이에요. 제대혈 사업과 달리 줄기세포를 이용한 신약 개발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메디포스트는 아픈 사람을 돕기 위해 노력하는 혁신적 기업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기업의 철학을 잃지 않고 사회와 공유하고 싶어요.”

 

의미와 재미의 앙상블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코리아 윤선주 지사장

갈 지(之) 자 모양으로 꿈을 찾아 걸어왔다고 말하는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코리아 윤선주 지사장. 20대에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치열하게 부딪히며 깨달았고,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30대에도 과감하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그녀가 보스턴컨설팅 그룹 컨설턴트, SBS 방송국 PD, 변호사, 소셜 커머스 쿠팡 창업을 거쳐 글로벌 어학 교육 회사인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코리아 지사장이 되기까지 무모해 보일 정도로 움직여온 이유는 하나다. “저는 직접경험 신봉자예요. 세상의 기준에 맞춰 만족하고 안주하면 죽을 때 후회가 남아 웃을 수도 없겠죠. 도전하면서 비겁하게 살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삶이 꿈이에요.” 이처럼 윤선주 지사장에게 꿈은 가치관을 지키며 인생의 궁극적 목표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다.

그녀는 클라이언트의 수익 구조 개편을 위해 비정규직 여직원을 정리해야 했을 때 느낀 불편한 마음을 잊지 못해 컨설턴트를 그만뒀다. 방송국 PD로 입사해 예능 프로그램 <야심만만>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마음 한구석의 헛헛함을 떨칠 수 없었다. 무언가 공적으로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윤선주 지사장이 사회 공헌에 관심을 둔 것은 그녀가 자라온 집안 환경과 관련이 있다. “장관을 지낸 아버지 덕분에 사람들 입에 오를 일은 애초에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어요. 그래서 공무원 공 자만 들어도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있었는데, 보고 자란 분위기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사람들을 돕고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유학을 떠나 국제법을 배우고 UN 같은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바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윤선주 지사장은 이처럼 뚝심 있게 자신의 가치관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여성이라 가능했다고 말한다. “만약 가장으로서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남자였다면 과감히 버리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여자고, 아직 싱글이니까 실천에 옮길 수 있었죠.”

그녀는 요즘 가장 즐겁게 일하고 있다. “앞으로 3가지 목표가 있어요.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코리아처럼 수평적 관계 속에서 격의 없이 지내며 창의적으로 일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기업 문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두 번째로 사람들의 꿈의 지평을 넓혀주고 싶어요.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라 글로벌하게 다양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그러려면 어학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EF 에듀케이션 퍼스트 한국 캠퍼스를 설립해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한글과 한국어를 배우고 문화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요.” 갈 지 자로 걸었어도 결국 본인이 가장 행복한 곳으로 찾아온 윤선주 지사장의 앞으로 행보가 더욱 궁금해진다.

 

축구에 인생을 올인하다,
강원FC 임은주 대표

“대학 때까지 필드하키를 전공했지만 대학원 진학을 앞둔 1990년 우연한 기회에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어요. 그해 가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기 위해 각 대학에서 선수들을 급조해 팀을 꾸렸어요. 100m를 12초대에 주파하는 뛰어난 운동신경 덕에 5개월간 공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죠. 세계 대회에서 그라운드를 밟은 첫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도 그 짜릿한 도전이 축구 인생을 사는 원동력이 됩니다.” 170cm를 넘는 큰 키에 짧은 커트 머리, 축구 선수 유니폼이 잘 어울릴 것 같은 강렬한 포스의 강원FC 임은주 대표가 녹색 잔디 위에 환하게 미소 지으며 서 있다. 그녀가 축구에 발을 들인 건 우연한 기회 덕이었지만 그 후 지도자, 국제 심판, 프로 축구 해설 등 축구에 관한 한 FM 코스를 탄탄히 밟아나갔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여자 축구 국가대표를 시작으로 1992년 이화여자대학교 축구팀 코치, 1999년 K리그 전임 주심을 거쳐 1999년과 2003년 FIFA 여자 월드컵 주심,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 주심에 이어 같은 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최우수 심판으로 선정돼 한국 축구계에 큰 족적을 남겨왔다. 그 결과 국내 최초의 여자 축구 국가대표, 한국인 첫 여성 FIFA 심판, FIFA 주관 남자 국제 대회 첫 여성 주심 등 남자도 따내기 힘든 쟁쟁한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이렇듯 이름 석 자 앞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임은주 대표가 이번에도 보란 듯이 금녀의 문을 깨고 지난 6월 K리그 최초의 프로 구단 첫 여성 수장이 되어 한국 축구계에 또 한 번 파란을 몰고 왔다. 23년간 축구와 함께해온 그녀는 국내 14개 구단주 중 누구보다 축구에 대한 기본기가 탄탄하고 오랜 시간 축구에 몸 바쳐 일해온 인물로, 한마디로 ‘준비된 구단주’가 아닐 수 없다.

그녀가 처음 강원FC 수장에 취임했을 때 선수들의 임금 체불 문제 등 팀 내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다. 게다가 성적은 리그 최하위권. 가장 어려운 시기에 구단을 떠맡은 임 대표는 마케팅 회사에서 13년간 쌓은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현재의 고질적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중이다. 그녀는 취임하자마자 46명의 대규모 선수단 중 옥석 가리기를 통해 17명을 구조 조정했고, 성적 부진에 대한 해결책으로 감독 교체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나 단순히 임금 지출을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선수들을 2부 리그로 보내는 등 최소한 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살 길을 열어줬다. 부드러우면서 강단 있는 여성 특유의 리더십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강등권 탈출’을 목표로 지금도 강원도 곳곳을 발로 뛰며 일대일로 스폰서를 만나고 있는 임은주 대표는 ‘불가능을 두려워했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말을 좌우명 삼아 오늘도 새로운 도전을 즐기고 있다.

“요즘 밀려드는 책임감 때문인지 하루 4시간밖에 잠을 못 이룹니다. 3개월 새 체중이 7kg이나 빠졌죠. 하지만 앞으로 남은 14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1부 리그인 ‘K리그 클래식’에 잔류하기 위해선 선수도, 저도 몇 배로 바빠질 것입니다. 그래도 꿈이 있고 목표가 있어 행복합니다.” 현재 성적 최하위권, 그러나 열정 넘치는 그녀가 있기에 강원FC의 미래가 기대된다.

에디터 심민아 고현경
사진 김춘호,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