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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무대로 말하다

LIFESTYLE

부산 연극단 연희단거리패의 대표이자 배우인 김소희와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5대 수석지휘자 김봉미는 이제 주 무대를 부산으로 옮긴 여성 아티스트다. 여자이기에 앞서 독보적인 실력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으며, 무대 위에서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무대의 경계를 허물다
연희단거리패 대표 & 배우 김소희
인터뷰 당일,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연극배우인 김소희는 그 어느 때보다 벅찬 순간을 맞이했다. 1986년 부산에서 창단한 극단 연희단거리패가 탄생 31주년을 맞은 올해, 기장 일광면에 전용 극장인 가마골소극장을 재개관한 것이다. 광복동에서 시작해 중앙동, 광안리 극장 시대를 거쳐 거제동 극장이 폐관한 이후 5년 만이다. 개관식을 불과 몇 시간 앞둔 그녀는 대표라는 직함이 무색할 만큼 단원들과 함께 일일이 극장 곳곳을 정돈하며 손님맞이 준비에 들떠 있었다. “예술감독인 이윤택 선생님이 부산에서 처음 극단을 만들어 시작했지만 서울, 밀양, 김해 등 극단이 정착하는 곳마다 극장이나 스튜디오 형태의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우리가 선 그곳이 곧 무대가 되고 생활의 터전이 되었죠. 각 터전에서 단원들은 함께 연습하고 때론 숙식도 해결하며 공연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극단의 뿌리인 부산에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줄 공간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컸습니다. 오늘은 마침내 그 꿈이 이뤄진 날이네요.”
총 6층 규모의 가마골소극장 내부에는 목로주점 양산박과 카페 오아시스, 소극장, 도요출판사 서점과 연희단거리패 아카이브 등이 있다. 카페와 식당, 도요출판사 서점 등에서 나오는 수익은 단원들의 자생을 돕고 연극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실어줄 것이다. 각지의 소속 단원 80여 명이 오고 가며 거점으로 삼을 가마골소극장. 이곳에서 단원들은 현실적인 ‘살아가는 것’과 이상적인 ‘연기하는 것’을 공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연희단거리패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무대와 객석, 배우와 관객 간의 경계도 허물게 될 것이다. “가마골소극장은 연극과 관련된 열린 공간입니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와 관객이 주점과 카페에서 연극에 대한 얘기를 나눌 수 있고, 연극에 쓰인 음악, 원작 소설, 무대미술 등을 함께 공유하며 연극 외 다양한 예술 장르를 경험할 수도 있죠. 그런 예술적 경험을 누리고 싶었으나 기회를 찾지 못한 부산 시민들이 자주 찾아줬으면 좋겠습니다. 저희도 관객이 스스로 찾을 만큼 훌륭한 공연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연희단거리패 초창기 멤버로 합류해 오랜 역사를 함께해온 그녀는 30년 넘게 연희단거리패가 국내 연극계에 굳건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로 ‘서로가 서로의 에너지가 되어주는 특별한 공동체 의식’을 꼽았다.

1 기장 일광면에 재개관한 가마골소극장. 2 연희단거리패 창립 멤버이자 연출가 고(故) 이윤주 기념관.

“우리 극단은 공동체 성격이 짙습니다. 저희끼리는 ‘이상주의 연극 공동체’라고 해요. 이런 실험적 집단이 해외에도 있지만, 대부분 실패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공동체적 삶보다 개인이 우선하는 삶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연희단거리패는 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 시스템이 단원들을 포용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유연하게 작동하기 때문일 겁니다. 단원을 뽑을 때도 연기를 잘하느냐 못하느냐보다는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할 수 있을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무대 위에서 모두 경험했다는 그녀. <원전유서>, <하녀들>, <오구>, <고곤의 선물>, <혜경궁 홍씨> 등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으로 그녀만의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상’, ‘아름다운예술인상’, ‘김동훈연극상’ 등 명망 있는 상이 그녀의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김소희라는 이름 석 자는 연극계에 신뢰할 수 있는 이름으로 선명하게 새겨졌다. 그녀의 필모그래피에 새긴 연극 하나하나는 결코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고 깊숙한 사유의 시간을 갖게 하는 연극, 현재를 직시하고 때론 강력하게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연극, 무대에 선 배우나 그것을 지켜보는 관객 모두에게 삶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생각하게 하는 연극. 김소희의 연극은 바로 그런 것이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로, 무대 뒤에서는 연출가로, 공연이 끝난 후에는 무대 아래에서 관객과 허물없이 소통하는 극단의 대표로서 무대 전방을 경계 없이 넘나든다. 배우, 연출가, 극단 대표 등 어떤 위치에서든 그녀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소통이다.
“남의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해요. 소위 말하는 ‘리액션’이 큰 편이랄까요. 낯설면 낯선 대로, 익숙하면 익숙한 대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편입니다. 분명 연기에 도움이 되거든요. 좋은 배우란 태생적으로 남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천진난만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예전엔 우리 전통극을 ‘연희’라고 불렀다. 연희단거리패의 시작은 어떤 이야기든 연희단거리패만의 철학으로 재해석한 극을 올리자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거리패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거리 어디서든 공연을 펼쳐왔다. 부산에서 시작했지만 서울, 밀양, 김해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며 연희단거리패가 지향하는 이상주의 연극 공동체로의 정체성을 이어왔다. 특히 1999년 폐교된 월산초등학교에 대규모 연극촌을 조성해 연극을 뛰어넘는 종합예술창작촌으로 만든 것은 연희단거리패의 저력을 보여준 실례라 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밀양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7월 26일부터 12일 동안, 연희단거리패의 공연을 주축으로 매일 6~7개의 공연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연극을 위한 축제, 작정하고 벌이는 연극판인 셈.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인들과 그들을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하며 연극판에서 함께 호흡해온 관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예술적으로 마음껏 소통하는 축제다. 연희단거리패의 대표로서, 20년 넘게 무대 안팎을 넘나든 배우로서 김소희 역시 그곳에 서 있을 것이다. 실험적이고 때때로 도발적인 그녀의 경계 없는 무대는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

무대는 청춘이 꾸는 꿈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수석지휘자 김봉미
클래식계에서 보기 드문 젊은 여성 지휘자. 지휘자 김봉미를 얘기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말이다. 그녀가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 또한 이것이다. “여성 지휘자로서 느끼는 한계는 없는가?” 인터뷰 당일, 예외 없는 그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없지는 않지만, 우려한 것만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제 공연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여성 지휘자?’라며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는 있더군요. 호기심일 수도, 거부감일수도 있겠죠. 어떤 분야든 마찬가지겠지만, 지휘라는 일 역시 개인의 역량과 성향에 따라 커리어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어려움이 존재할 뿐,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지휘자로서의 입지가 좁다거나 특별히 힘들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우려한 것만큼은 아니다’라고 하지만, 국내 클래식계에서 젊은 여성 지휘자라는 조건이 결코 유리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녀의 이름 앞에 흔히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처럼 그녀가 ‘낯선’ 길을 걷게 된 데에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스무살이 되던 때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한때 부산시립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한 고(故) 김성득이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했고, 무대에 선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지휘가 어떤 것인지 체감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직접 지휘봉을 들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지휘를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교도 없었고, 여성 지휘자를 꿈꿔볼 만한 클래식계의 선례 또한 없었다. 그 길은 우연한 기회에 열렸다.
“부산대학교 피아노과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지휘에 관심이 있던 남자 선배 서너 명이 직접 지휘자 선생님을 모셔와 따로 공부했는데, 그 모임에 제가 끼어 있었어요. 피아노 연주자 역할로요. 하하.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이 불쑥 제게 지휘봉을 내미시는 거예요. 그리고 끝난 후 한마디 하시더군요. ‘굉장히 소질 있다. 한번 도전해봐라’라고. 선배들에게 꽤 엄격한 선생님이었고 칭찬 한마디에 무척 인색한 분으로 기억하는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마음 한편에 있던 뭔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어요. 그 한마디가 제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곧 그녀는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독일 에센 폴크방 음악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해 피아노과를 졸업했고, 이후 독일의 유명 음악대학인 데트몰트 국립음대에서 독일 정부와 시의 장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오케스트라 지휘과를 졸업했다. 2003년부터는 현지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으며 두각을 드러냈다. 동양 여성 최초로 독일 헬무트 릴링의 바흐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지휘했고, 2006년 쥐트베스트 팔렌 필하모니와 함께 쾰른, 프랑크푸르트, 데트몰트를 순회하며 오페라 <헨젤과 그레텔>을 지휘, 평단과 관객에게 모두 극찬을 받았다. 현지에서의 활약뿐 아니라 2007년 귀국 후 국내에서 이어온 두드러진 행보는 2008년 문화관광부 주최 제1회 신진여성문화인상 첫 수상자에 이름을 올리게 했다. 201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는 여성 최초로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지휘자로서 ‘여성 최초’란 수식어가 그녀의 이름 앞에 자주 거론될 만큼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며 클래식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어느 순간, 젊은 여성 지휘자라는 타이틀은 그녀의 강점이 되어 있었다.
“단원들의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죠. 단원들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내는 게 훌륭한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편한 지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저의 강점이라면 강점이랄까요. 섬세하게 마음을 헤아리고 독려하다 보면 어느새 관계에 신뢰를 쌓게 되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 사이에 끈끈한 신뢰가 쌓이면 이는 공연 중 반드시 관객에게도 전달됩니다.”
그녀는 특히 오페라 무대를 사랑한다. 그 안에는 음악뿐 아니라 연기와 춤, 의상, 무대미술 등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종합예술로서 오페라 무대를 완성도 있게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긴다. 국내에서 <호프만의 이야기>, <나비 부인>, <카르멘>, <투란도트>, <라트라비아타>, <마술피리>, <유쾌한 미망인> 등 유수의 오페라 공연을 통해 지휘자로서 두각을 드러내왔다. 2011년과 2012년 연이어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서 여성 지휘자로는 유일하게 참가해 2012년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지휘자상을 거머쥐었다. 오페라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열정은 2015년 제1회 대한민국창작오페라페스티벌에서도 이어져 오프닝과 파이널 무대를 모두 지휘하며 호평을 얻었다.
<라보엠>은 특히 그녀가 좋아하는 오페라다.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의 삶과 낭만으로 가득 찬 무대를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청춘의 예술과 사랑,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볼 때마다 그녀의 가슴속에 새로운 선율이 되어 흐른다. 그런 그녀가 20년 만에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와 2017년부터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를 맡게 되었다.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이제 갓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 중인 이들. 청춘의 클래식이 흐르는 그 무대 한복판에 지휘자 김봉미가 서 있다.
“이제 막 피어오르려고 비상을 준비하는 젊은 청년들의 오케스트라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 열정과 에너지를 어떻게 쏟아붓느냐에 따라 이들의 미래가 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큽니다. 미리 ‘어떤 성취를 이룰 것이다’ 정해놓은 건 없습니다. 그저 비전으로 똘똘 뭉친 이 무대에서 제 모든 열정을 쏟아부을 각오로 임하겠다는 약속만 드릴 수 있을 뿐. 58명의 단원이 부산시립청소년교향악단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끼고 그들의 삶에 클래식이 죽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랍니다.”

 

에디터 손지혜(프리랜서)
사진 공정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