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말할 때
오늘만 살고자 한다면 굳이 어제를 기억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명한 내일을 꿈꿀 때 과거는 가장 왜곡 없는 거울이 된다.
최근 한국 소설의 가장 뚜렷한 징후 중 하나인 역사소설의 귀환 이야기.
한 남자가 한강 다리 위에 서 있다. 금방이라도 강물에 몸을 던질 것만 같은 남자. 사실 그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투명인간이다. <투명인간>은 ‘우리 시대 최고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성석제가 2년 만에 쓴 장편소설이다. ‘큰 머리’와 ‘가느다란 몸통’, ‘토끼처 럼 커다란 앞니’를 지닌 평범한 시골 소년이 반세기가 흐른 오늘날 왜, 어떻게 투명인간이 되었는지 그 짧고도 긴 역사를 따라간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두메산골에서 출발한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거쳐 현대사의 온갖 굴곡진 흐름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일제강점기를 겪은 할아버지와 베트남전에 파병된 큰형, 그리고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노사 양쪽을 오가며 격동의 1980년대 말을 건너 온 주인공까지, 꾸준히 노력했지만 번번이 주류에서 소외되어온 평범한 일가족의 역사. 무수한 주변 인물의 입을 빌린 과거 모든 사건의 증언과 기록이 그 시대를 살아온 한 남자의 실재를 완성하고, 독자로 하여금‘주변의 누군가’ 또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한다.
<투명인간>이 한 남자의 일생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펼쳐 보였다면, <소년이 온다>는 어떤 시점 하나를 끄집어내 그 전후 역사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매번 섬세하고 치밀한 문장력을 선보여온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로 1980년 광주의 5월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조명한다. 한강은 끝내 이 작업을 피해갈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의 절실함이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열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인 소년 동호와 계엄군에 맞서 함께 싸운 형, 누나들. 그들이 겪은 광주민주화운동 전후 삶의 모습이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한강을 뛰어넘는 한강의 소설’이라며 국내 평단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이 소설은 문학평론가 백지연의 말처럼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한편, 가장 최근에 나온 <풍의 역사>는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특유의 무거움을 거부하듯 그야말로 ‘갈 데까지 간’ 유머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1930년대에 시작한 이야기가 3대에 걸쳐 진행되는데, 할아버지의 이름은 ‘풍’, 아버지의 이름은 ‘구’, 아들의 이름은 ‘언’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본래 성인 ‘이’ 대신 ‘허’를 넣어 부른다. 즉 그들은 허풍, 허구, 허언이다. 결국 <풍의 역사>는 작가 최민석의 입담에서 출발해 입담으로 끝나는 이야기다.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군사독재 정권 그리고 서태지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이들 3대가 의도치 않게 개입해 뒤바꿔놓는 모든 역사적 사건의 전모는 말 그대로 허풍, 허구, 허언인 셈이다. 소설 속 표현을 빌리면 “진실이라고 믿어야 진실이 되는 이야기”(작가는 “믿고 안 믿고는 듣는 사람이 택할 몫이다”라고도 썼다)지만, 더욱 중요한 건 문학평론가 강유정의 말처럼 이러한 허풍이 우리 삶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이 된다는 사실. 실재하는 역사를 담보로 거침없이 ‘풍’을 날리는 작가의 대담함이 잊고 있던 역사소설의 재미를 재확인시켜준다.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낀 작가의 절실함이 철저한 고증과 취재를 통해 열다섯 살 소년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났다.”
에디터 류현경
사진 김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