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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을 말할 때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LIFESTYLE

문화를 이해한다는 건 그 나라에 대해, 그 나라의 뿌리에 대해 알게 된다는 것. 그 나라에 대해 자세히 안다는 건 또 하나의 세계관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달 캐나다, 스리랑카, 터키의 대사 부인을 만나 본국의 연말 풍경에 대해 들어봤다. 어떤 나라는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고, 어떤 나라는 이미 손에 잡힌 듯 곰살궂게 느껴졌다.

1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답게 다양한 문화를 결합한 요리가 많다. 이민자들이 기존의 요리 방법과 개념에 문화적 다양성을 더해 새로운 음식을 만들었고, 그것이 캐나다 요리로 자리 잡게 된 것. 그 대표적인 요리가 칠면조구이와 토르티예. 칠면조구이는 아이스와인과 크랜베리 소스나 채소 등을 곁들여 먹고, 퀘벡 주에서 유래 되었다는 고기 파이 토르티예는 달콤한 메이플 시럽이나 그레이비 소스와 함께 즐긴다.
2 둘이 함께한 지 올해로 벌써 26년째라는 채터슨 부부는 주말이면 곧잘 여행을 떠난다. 어디서든 잘 웃고 남편을 잘 따르는 그녀는 올 초 다녀온 남해를 한국 최고의 여행지로 꼽았다.

겨울 풍광이 더 아름다운 캐나다, 미즈호 채터슨 주한 캐나다 대사 부인
발갛게 물든 단풍나무 사이로 오래된 2층 양옥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양옥은 커다란 마당을 하나 끼고 있고, 마당의 담벼락 뒤론 어질고 고요한 초겨울의 서울 풍경이 펼쳐진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 관저가 자리한 곳은 서울 성북구의 북악스카이웨이 꼭대기. 이제 막 붉은빛을 머금은 단풍잎과 슬슬 붉은빛을 기다리는 나뭇잎 수십 장이 캐나다의 국기처럼 담박하게 누워 있다.

관저에 들어서자마자 붉은색 코트를 차려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반갑게 맞이한다. 그녀의 이름은 미즈호 채터슨(Mizuho Chatterson). 1980년대 중반 지금의 주한 캐나다 대사 데이비드 채터슨이 도쿄에서 근무할 당시 두 사람은 처음 만났고, 금세 사랑에 빠져 결혼했다. “친구 생일 모임에 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어요. 그땐 지금과 달리 얼굴에 덕지덕지 수염을 기르고 있었죠.” 두 사람은 결혼 직후 외국 생활을 시작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 등을 거쳐 2011년 9월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의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1990년대 초반 여행으로 처음 서울을 찾았을 당시 퀴퀴한 매연과 낡은 잿빛 건물에 놀라기도 했지만, 대사 부인으로 다시 서울에 왔을 땐 멋진 레스토랑이 크게 늘어 깜짝 놀랐다고. 서울 사람도 잘 모르는 그녀의 서울 생활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어갈 즈음, 관저의 전속 요리사가 만든 커다란 요리 두 점이 그녀의 등 뒤로 등장했다.

그녀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캐나다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즐긴다고 소개한 요리는 칠면조와 토르티예. 특히 닭 가슴살과 비슷하지만 분명 어딘가 모를 오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는 칠면조는 속까지 완전히 익히는 데 무려 4시간이 걸린단다. “크리스마스엔 거의 모든 캐나다 가정에서 칠면조를 구워요. 그날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뜻깊은 날이니까요. 세계 3대 아이스와인 중 하나인 캐나다산 아이스와인을 마시며 밤새도록 배를 채우죠. 실은 크리스마스 이후 닷새간 사용할 에너지를 비축해놓는 의미도 있어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엔 그때 모은 에너지로 밤새 불꽃놀이를 하거든요.” 그녀는 매년 마지막 날엔 평소 잘 마시지 않는 독한 술도 슬쩍 입에 댄다고 고백한다.

올 연말 캐나다를 처음 찾는 한국인들이 어디로 여행을 가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여지없이 휘슬러나 밴쿠버 같은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도시를 꼽는다. “캐나다의 겨울은 추위에 꽤 단련된 한국인도 놀랄 만큼 찬 바람이 강해요. 하지만 자연경관만큼은 정말 끝내주죠. 옷만 단단히 껴입고 떠난다면 광활한 대자연 속에서 분명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캐나다의 겨울 풍광에 대한 그녀의 자랑이 계속되는데, 갑자기 난데없이 ‘히메’라는 커다란 시바견 한 마리가 달려와 그녀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10년 지기라는 히메의 재롱에 그녀의 얼굴이 조금 더 화사하게 빛난다. 마침 올해는 1963년 1월 한국과 캐나다가 외교 관계를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다. 지난 50년간 한국과 캐나다가 쌓아온 돈독한 우정을 과시할 겸 올겨울 캐나다로 훌쩍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물론 그녀의 조언처럼 단단히 옷을 껴입고.

1 키리바트와 캐움은 스리랑카의 2가지 핵심 요리다. 캐움은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디저트로 종 모양의 콘다 캐움(Konda Kavum)이 가장 대중적이며, 오렌지와 라임의 중간 정도로 신맛이 나는 과일 나란으로 만든 나란 캐움(Naran Kavum) 등 다양한 종류와 형태가 있다. 사진 속 우리의 약과처럼 생긴 건 웰리탈라파(Walitalapa). 스리랑카의 전통 디저트는 대부분 코코넛 밀크와 코코넛 파우더, 라이스 파우더, 꿀 또는 설탕 등을 이용해 만든다.
2 1984년 결혼해 낳은 두 딸은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큰딸은 텍사스 휴스턴의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 딸은 보스턴 대학교에서 퍼블리케이션을 전공한 후 보스턴 어린이 병원에서 근무 중이다.

태양의 길을 밝히는 스리랑카, 수메다 위제라트네 주한 스리랑카 대사 부인
인도 남부의 타밀 지역에서 고작 30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스리랑카는 18세기 말 영국 식민지로 지내다 1972년 영국연방에서 완전히 독립한 후 1978년부터 ‘스리랑카민주사회주의공화국(Democratic Socialist Republic of Sri Lanka)’이란 국명을 사용하고 있다. 올해 수교 34주년을 맞은 한국과 스리랑카의 우호적 발전을 위해 2011년 봄 주한 스리랑카 대사로 부임한 티샤 위제라트네(Tissa Wijeratne) 대사를 따라 한국에 온 수메다 위제라트네(Sumedha Wijeratne) 대사 부인에게선 여유롭고 친절한 스리랑카인의 면모가 그대로 느껴졌다. 1984년 남편을 만나 30년 가까이 중국, 영국, 미국, 이스라엘 등지를 옮겨다니며 자국의 문화대사 역할을 수행한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한 스리랑카의 새해맞이 전통 음식을 자랑스럽게 펼쳐 보였다.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로 국민의 70%가 불교도입니다. 마을 곳곳에 사찰이 있고, 학교에서도 불교에 대한 교육을 해요. 힌두교와 회교, 기독교 등 다종교 국가이기 때문에 종교에 대한 차별은 없지만 불교가 생활화된 나라라 크리스마스보다는 신년 행사를 뜻깊게 여깁니다.” 신정보다 구정을 챙기는 우리처럼 스리랑카인도 신할리 월력에 따라 매년 4월 중순을 ‘진짜’ 새해로 기념한다. 새해를 맞이하며 스리랑카인이 가장 많이 먹는 건 키리바트(Kiribath)다. 우리나라 백설기처럼 생겼지만 쌀과 코코넛 밀크를 섞어 만든 ‘우유밥’으로 달콤한 우유 맛이 나 백설기와는 차이가 있다. 새해 첫날 TV에서 대통령이 가족과 함께 먹는 모습을 보여줄 정도로 키리바트는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전통 음식. “학교나 사원,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도 키리바트를 만들어 손님에게 돌립니다. 키리바트에 곁들일 루누미리스(Lunu Miris, 칠리 플레이크에 소금과 빨간 양파, 레몬을 넣어 만든 레드 소스)도 준비했어요. 김치보다 훨씬 매우니 조심하세요. 입안에서 다이너마이트처럼 폭발할지도 모르니까요.(웃음)”

수메다 위제라트네 대사 부인은 스리랑카의 전통 디저트를 종류별로 가득 차린 테이블을 가리킨다. “마들렌과 모양이 비슷한 저것은 캐움(Kavum)이에요. 쉽게 말해 케이크 같은 건데 꿀이나 설탕, 곡물을 넣어 만들죠. 녹두가 들어간 뭉 캐움(Mung Kavum) 등 캐움 종류도 아주 다양해요.” 야키만두처럼 생긴 뭉 캐움을 한 입 베어 무니 달콤하면서 고소한 게 많이 먹어도 전혀 질릴 것 같지 않다. 캐움 외에 별 모양으로 찍어낸 튀김 과자 코키스(Kokis), 연둣빛을 띠는 부드러운 도넛 운두왈(Undwal)을 실론티와 함께 먹으니 더욱 찰떡궁합이다. “스리랑카에서는 커피를 마시지 않아요. 국민의 99%가 실론티를 마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론티의 맛이 너무 강하다 싶으면 밀크 파우더와 설탕을 넣어 마시면 돼요.”

새해 첫날 각 가정에서 치르는 전통 의식도 독특하다. 새해 아침상 앞에서 첫술을 뜨기 전 단지에 우유를 넣고 끓여 거품이 넘치게 하면 1년 동안 큰 사고 없이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는다. 오일 램프를 켜는 것도 그렇다. 새해 첫 식사 전 테이블에 놓인 오일 램프에 붙을 붙이는데, 이렇게 하면 집안에 행운이 깃든다고 한다. 우리와 비슷한 건 스리랑카에도 세뱃돈이 존재한다는 점. 신년이 되면 스리랑카식 절을 하고 약간의 돈을 주고받은 후 그 돈을 은행에 넣는 것이 풍습이다. “전통적 종교 축제와 오랜 식민지 생활에서 얻은 서양 풍속이 혼합된 스리랑카의 국가적 공식 신년 의식은 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 회교 모스크에서 시작합니다. 스리랑카에서는 어디서든 코끼리를 볼 수 있어요. 행사에도 역시 코끼리가 등장하죠. 코끼리에게 가장 멋지고 화려한 옷을 입힌 후 사원에서 나와 거리 행렬을 시작하면 사람들은 흰옷을 입고 그 행렬을 환영하며 북소리에 맞춰 춤을 춥니다. 거리 곳곳이 온통 사람들의 웃음과 환호로 가득하죠.” 고향 캔디(Kandy)의 새해 풍경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동심 어린 웃음을 짓는 그녀를 보며, 태양의 길 적도에 위치한 스리랑카의 새해 풍경은 그동안 우리가 상상하던 스리랑카보다 어쩌면 더 화려하고 시끌벅적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1 굴덴 사리바스 부인이 준비한 술탄 딜라이트는 옛 오스만제국의 난폭한 황제 무라드 4세가 즐겨 먹은 요리다. ‘휭카 베엔디(Hunkar Begendi)’, 즉 ‘술탄의 기쁨’이란 의미의 이 요리는 사냥에서 돌아온 밤 황제 무라드가 즐겨 먹었다고 해, 지금도 ‘술탄’을 요리 이름으로 사용한다. 양고기와 버터가 듬뿍 들어가 다소 느끼하지만, 채소를 함께 곁들이면 담백한 식사도 가능하다.
2 터키인은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그녀는 미국 워싱턴의 금융기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아들 알리의 사진을 내밀며(왼쪽에서 세 번째 액자) 가족의 소중함에 관해 이야기했다.

수천 년 문명의 요람 터키, 굴덴 사리바스 주한 터키 대사 부인
서울 성북동에 있는 주한 터키 대사관 관저는 건물보다 자연경관 관람에 더 신경을 쓴 듯한 공간이다. 1층 테라스는 통창으로 만들어 초겨울의 북한산 자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고, 건물 밖 초록 정원은 쭉쭉 뻗은 나무로 가득해 식물원에라도 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주한 터키 대사 부인 굴덴 사리바스(Gulden Saribas)는 무릎까지 떨어지는 깔끔한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촬영팀의 관저 방문에 다소 들뜬 듯 발걸음이 빨라지기도 했다. 미리 준비해둔 요리를 다시 한 번 살피거나, 사진 찍을 장소를 고르느라 분주해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절대 놓치지 않는 건 자신의 옷매무새를 다듬는 일. 원피스의 주름이 한 올 한 올 펴질 때마다 어떤 우아함이 그녀를 따른다.

굴덴 사리바스 터키 대사 부인과 남편 나지 사리바스(Naci Saribas)는 1980년대 초반 이스탄불에서 만났다. 나지 사리바스는 당시 젊은 외교관이었고, 그녀는 토목공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둘은 서로 뜨겁게 사랑하다가 금세 결혼했고, 이후 나지 사리바스 대사의 첫 근무지인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미국,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벨기에, 카타르, 호주 등을 거쳐 한국에 들어왔다. 그녀는 한국 생활 초창기의 다양한 일화를 소개하며 여러 번 한국과 터키의 ‘유사성’을 강조했다. “터키와 한국은 닮은 점이 참 많아요. 언어가 같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것도 그렇고, 웃어른과 조상을 공경하거나 가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도 똑같죠. 심지어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것도 같아요. 바닥에 상을 놓고 밥을 먹는 것이나, 전통적으로 선물을 포장할 때 보자기를 사용한 것도 터키와 한국의 닮은 점이죠. 터키에서도 한국의 보자기와 같은 ‘보흐차’라는 천 조각을 사용한답니다.” 그녀의 말처럼 한국과 터키는 국민 정서나 언어 등이 여러모로 닮았다. 한 예로, 터키인은 자신의 나라를 ‘튀르크’라고 부르는데 이 튀르크는 놀랍게도 옛 고구려와 동맹을 맺은 나라 ‘돌궐’의 다른 발음.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인 돌궐은 위구르에 의해 나라가 멸망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고구려와 의지하며 격정의 세월을 보냈다.

그녀가 터키인들이 연말에 가장 즐겨 먹는다고 소개한 요리는 양고기와 우유, 가지, 밀가루, 버터, 치즈, 토마토, 소금, 후추 등을 넣어 만드는 술탄 딜라이트(Sultan’s Delight)와 파바콩에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뿌려 만드는 파바(Fava), 터키식 페이스트리의 일종인 귈 뵈레이(Gul Borgi)다. 특히 이 중 ‘술탄 딜라이트’는 황제를 뜻하는 술탄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터키의 오스만제국 술탄 가운데 가장 악독했다는 무라드 4세가 즐겨 먹은 고급 요리. “사실 터키는 무슬림 국가이기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같이 크리스마스나 연말에 즐기는 요리가 따로 없습니다. 다들 평소 잘 먹지 않는 고급 요리를 가족들과 만들어 먹습니다. ‘술탄 딜라이트’는 그런 연말에 해 먹기 좋은 요리죠.”

그녀에게 한국인에게 꼭 소개하고 싶은 터키의 연말 여행지에 대해 묻자, 다소 역사학적인 대답이 나온다. “터키는 문명의 요람이라 불리는 나라예요. 세계 최초의 도시 ‘자탈호유크’를 비롯해 수메르, 히타이트, 리디아, 비잔틴, 셀주크, 오스만에 걸친 수많은 제국의 역사가 층층이 잠재돼 있죠. 또한 수천 년 전부터 지리적으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문명의 교차로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보고 듣고 공부할 것으로 가득하답니다.” 그녀는 올겨울 터키를 처음 찾는 한국인들을 위해 이라는 이스탄불의 맛집을 총망라한 마술 같은 책을 추천했다. 맛집 찾아다니기를 평소 신앙처럼 여기는 한국인을 위한 특별한 배려. 그런데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온 국가 터키에 가서도 우린 ‘식후경’을 해야 할까?

에디터 김이신 (christmas@noblesse.com) 이영균 (youngkyoon@noblesse.com)
사진 안지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