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으로 가득찬 도시
지루한 펜데믹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캘리포니아의 초여름. 이곳에 알렉산더 맥퀸과 퀴페이의 패션 세계가 펼쳐진다.
천재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과 중국의 국민 디자이너 궈페이의 패션 세계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 County Museum of Art, LACMA)과 샌프란시스코 미술관(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FAMSF)을 수놓았다. 두 전시 모두 미국 서부 지역에선 관람객과 처음 만나는 자리인지라 미술·패션업계와 대중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영감과 창작의 여정을 따라가다
‘앙팡 테리블’, ‘패션계의 훌리건’, ‘전위적이고 창조적인’ 등의 수식어와 함께 패션계의 독보적 존재로 알려진 알렉산더 맥퀸(Alexander McQueen, 1969~2010). 현재 LACMA에서는 2010년 스스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실험적 도전을 멈추지 않은 맥퀸의 디자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LACMA 레스닉 파빌리온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이하는 건 과거 맥퀸이 패션쇼에 사용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QR코드다. 전시 동선을 비교적 느슨하게 구성한 덕분에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마치 런웨이를 누비는 듯한 느낌이다. 리듬에 몸을 맡기며 걷다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건 그의 유작 컬렉션 ‘Angels and Demons’(2010)의 황금색 자카드 재킷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그림 속 천상의 천사와 타락한 천사의 날개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재킷은 맥퀸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울 때 탄생한 결과물이라 느낌이 남다르다. 더욱이 그 옆에 16세기 르네상스 예술가 얀 만데인이 대리석으로 조각한 천사상까지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고뇌하게 한다.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와 걸음을 조금만 옮기면 흰색 무대 위에서 달리기를 하는 듯한 역동적 몸짓의 마네킹을 만난다. 이는 시드니 폴락의 영화 <그들은 말을 쏘았다>(1969)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한 컬렉션 ‘Deliverance’(2004)다. 경제공황 시절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젊은이들이 상금을 손에 쥐기 위해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을 춘 댄스 마라톤을 담아낸 작품은 삶의 비전과 목적을 상실한 막막함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는 데 의의가 있다. 실제 이 작품은 영화 클립과 당시 맥퀸의 런웨이 사진을 병치해 보는 이의 시선을 한참 머물게 한다.


Photo: Drew Altizer. Courtesy of the FAMSF
증오와 상처로 얼룩진 모두에게 치유를
배우 장쯔이와 판빙빙, 팝 가수 리애나 모두 그의 옷을 입고 레드 카펫을 걸었다. 또 새로운 중국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려 야심 차게 준비한 2008 베이징 올림픽 공식 행사의 여성 의상도 그가 디자인했다. 그는 바로 중국의 국민 디자이너 궈페이(Guo Pei, 1969~)다. 궈페이는 특유의 상상력에 정교한 공예와 호화로운 중국 전통 자수, 틀을 벗어난 봉제 테크닉, 중국 황실 유산과 유럽 궁중 문화 등을 덧입혀 예술의 경지에 이른 컬렉션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는 디자이너다.
지금 FAMSF에서 열리고 있는
‘1002 Nights’ 컬렉션의 푸른빛 도자기가 떠오르는 드레스 ‘Porcelain’도 눈에 띈다. 과거 유럽으로 수출된 중국 도자기들이 곁에 있어서일까? 드레스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선이 고운 중국 청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Amazing Journey in a Childhood Dream’ 컬렉션에서 선보인, 촘촘한 오리가미(종이접기)를 연상시키는 중국식 극장 복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어린 시절 작가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모티브가 된 복장은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디자인한 컬렉션이라 그런지 동심의 천진한 상상력을 더 넣은 모양새다. 여담이지만, 문화혁명이라는 정치적 상황을 관통한 어린 시절, 궈페이는 외할머니에게 들은 중국 고전과 황실 이야기를 통해 상상력을 키웠다고 한다.
미국에서 처음 열리는 회고전을 앞두고 궈페이는 “관람객은 아트 피스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가의 성장 배경에도 상당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제 작품은 조국이 제게 미친 영향의 산물입니다. 아름다운 중국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오해와 편견의 중국이 아닌, 다른 모습의 중국을.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최근 미국에선 코로나19 확산으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 범죄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 전시가 증오와 상처로 얼룩진 모두에게 미약하나마 치유의 장이 되길 바란다.
에디터 박이현(hyonism@noblesse.com)
글 김문영(미술 저널리스트)
사진 제공 LACMA, FAMS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