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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을 꿈꾸는가

LIFESTYLE

최근 비밀리에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이 연구에 따르면 영생이나 인간 창조가 빠른 시일 내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지난 5월 9일,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150여 명의 과학자가 모여들었다. 최고의 대학에 유수의 과학자들이 찾아왔다는 점에서 중요한 이야기가 오갔을 것이 짐작됨에도 모임의 이유는커녕 모였다는 사실조차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주최 측은 언론 취재를 막고 보도자료를 내지도 않았으며, 참석자들에겐 논의 내용을 언론이나 SNS에 올리지 말라고 주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미국 로스앨러모스에서 100명이 넘는 과학자가 극비리에 진행한 ‘맨해튼 프로젝트’와 흡사한 형국이다. 하버드 대학교 모임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4일 뒤인 13일자 <뉴욕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서다. 이들의 목표는 인간의 생명 정보가 담겨 있는 유전체(게놈)를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유전체를 분석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이젠 ‘창조’하겠다는 뜻이다. 더구나 최적의 유전체를 합성해 난자에 넣으면 ‘인조인간’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일었다. 쏟아지는 뉴스에 금세 묻혀버렸지만 언젠가 세상을 크게 뒤흔들어놓을 소식이었다.
간단한 질문 하나로 시작하자. 과학자들이 인간 유전체를 합성하려는 이유는 뭘까? 유전체를 원하는 대로 합성할 수 있다면 실험에 필요한 인간 세포를 제때 공급해 백신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고, 암에 저항하는 세포를 만들어내는 등 생명과학과 의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은 세계적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를 통해 지난 6월 3일 공개됐다. 제프 뵈크 미국 뉴욕 랭곤 의료센터 교수를 주축으로 한 과학자 25명은 하버드 대학교 모임에서 논의한 내용을 기고문으로 소개하며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를 지휘한 조지 처치 교수

이번 프로젝트가 주목받는 건 그 중심에 DNA 연구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조지 처치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자들에게 보낸 초청장에 ‘10년 안에 인간 세포의 모든 유전체를 합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처치 교수는 2013년 독일 잡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네안데르탈인의 DNA를 추출한다면 이론적으로 복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혀 이슈가 된 바 있다. 이 발언이 ‘그가 네안데르탈인 복제를 위해 대리모를 구하고 있다’는 식으로 와전되며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일련의 사건은 세계 DNA 연구 분야에서 그의 입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대변한다. 동시에 이번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점치는 이유기도 하다. ‘제2의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2)’ 또는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HGP-Write)’라 불리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총 30억 달러(약 3조4200억 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과학자들은 우선 올해 1억 달러 규모의 국제 컨소시엄을 구성해 프로젝트에 착수할 예정이다. 인간 유전체의 비밀을 밝히려는 연구는 오래전부터 꾸준히 진행해왔다. 질병 예방과 치료를 위해 1990년 시작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HGP)’를 통해 과학자들은 13년 만인 2003년 인간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유전체는 한 생명체의 유전정보 전체를 뜻한다. 유전정보는 DNA 속에 담겨 있는데 DNA를 구성하는 A, G, C, T 네 가지 염기의 배열 순서와 그 수에 따라 달라진다. DNA는 A와 T, G와 C 염기가 각각 쌍으로 결합돼 있다. 즉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인간 DNA 속 30억 쌍에 이르는 염기 서열을 읽어내 지도처럼 만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염기 서열이 99.9% 동일하지만 0.1%의 차이 때문에 피부색, 외모, 질병에 걸릴 가능성 등이 달라진다. 애초에 과학자들은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마치면 다양한 질병과 관련된 변이를 확인해 질병을 정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개인마다 염기 서열에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했다. 이에 개개인의 유전체 지도를 만드는 ‘개인 게놈 프로젝트(PGP)’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그사이 염기 서열 분석 기술도 함께 발전하면서 한 사람의 유전체 지도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은 1000달러 수준으로 낮아졌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에 27억 달러가 든 것과 비교하면 획기적인 수준이다. 개인 게놈 프로젝트가 활성화되면 자신에게 맞는 치료를 하는 ‘정밀 의학’ 시대가 도래할 전망이다.
인간 게놈 합성 프로젝트는 정밀 의학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백신 개발을 위한 세포를 만들고 암 저항성 세포를 개발할 수 있다면 장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것 같던, 몸이나 장기를 바꿔가며 영생하는 주인공이 현실에 등장하는 것도 이론적으로 가능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프로젝트의 내용이 공개되자 각계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우선 윤리적 문제가 대두됐다. 초청을 받고도 참석을 거절한 드루 엔디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의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며 “이러한 논의를 비밀리에 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뭔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에 처치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는 인간을 만들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세포 전반에 걸쳐 유전체 합성 능력을 키우는 데 있다”고 해명했다. 비공개로 진행한 것도 모임에서 다룬 논문이 학술지 발표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윤리적인 문제도 처음부터 논의했고 추후 공개적으로 대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윤리적 문제는 둘째치고 기술적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올해 3월 미국 크레이그 벤터 연구소는 DNA를 인공으로 합성해 염기쌍 53만1000개를 지닌 인공 미생물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인간 세포는 훨씬 복잡하다. 각 염기 서열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 여전히 알지 못하고 30억 개에 달하는 염기쌍을 이어 붙이는 기술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결국 시간문제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기술적 한계와 이론에 그친 개념들을 급격히 발전시킬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번 프로젝트는 모든 인간을 병과 죽음에서 자유로운 유토피아로 인도할까? 혹은 모든 인간 윤리가 뒤죽박죽된 디스토피아로 내몰까? 10년 뒤면 우리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 이기원 (lkw@noblesse.com)
글 | 이재웅(동아사이언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