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미장이
철학자 아서 단토는 숀 스컬리를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거장 중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숀 스컬리는 2014년 11월 상하이, 2015년 3월 베이징, 6월 베니스에서 잇따라 열린 개인전을 통해 추상미술의 본질을 꿰뚫는 탐색을 선보였다. 뉴욕 작업실에서 그를 직접 만났다.

Wall of Light Mediterranean, 알루미늄에 유채, 216×190cm, 2011 / ⓒ Sean Scully

Diagonal Inset, 캔버스에 아크릴릭, 243.8×243.8cm, 1973 / ⓒ Sean Scully
국제 미술계의 거장 숀 스컬리는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추상화가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그를 “회화로 인류에게 유쾌함을 선사하고 인간 본성의 중요 가치를 탐색한 역사적 예술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새로운 종류의 추상을 대표한다. 중국에서 열린 순회전 제목 ‘Follow the Heart’처럼, 그의 작품에는 ‘마음을 따르는’ 정서가 가득하다. 그는 색과 선에 관한 칸딘스키의 사색을 계승했을 뿐 아니라, 몬드리안이 창조한 추상화의 규정에서 돌파구를 찾아냈으며, 어떤 면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탐색보다 몇 걸음 더 나아가기도 했다. 그는 평범하고 트렌디한 예술을 경시하고 언제나 고독 뒤에 숨은 영광을 강조했다. 말 그대로 그의 작품에는 예술을 향한 진심이 담겨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고전적 진심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존재는 더욱 희귀하다. 저명한 철학가 아서 단토는 1989년 숀 스컬리를 만난 후 자진해서 그의 수호자가 되었다. <예술의 종말>에서 단토는 앤디 워홀의 작품을 예로 들며 고전적 의미에서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했지만, 숀 스컬리의 작품에서는 예술의 희망을 보았다고 언급했다. 독일의 저명한 철학가 하버마스 역시 그의 작품에서 집요함을 보았다. “숀 스컬리는 화면 영역에서 회화의 해방을 거부하고, 회화의 경계에 남아 있다. 경계가 있어 화면 기호의 의미 세계가 사물과 사건으로 구성된 실제 세계에서 분리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작년 겨울과 올해 봄,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을 순회한 전에서는 유화, 파스텔, 소묘, 사진 등 각 시기를 대표하는 주요 작품 100여 점을 소개했다. 폭 8m의 대형 회화 ‘Night and Day’, 1980년대 미니멀리즘의 구태를 깬 명작 ‘Backwards Forwards’도 포함되었다. 그가 중국에서 영감을 받아 특별히 제작한 조각 ‘Chinese Stuffing’도 눈길을 끌었다. 이 작품에는 중국이라는 국가에 관한 작가의 직관적 체험이 담겨 있다. 하나 또 하나의 상자, 한 덩어리 또 한 덩어리의 철근 골격에서 강한 억압감이 느껴진다. 숀 스컬리는 ‘Night and Day’에서 다시 한 번 검은색을 향한 사랑을 표현했다. “나는 놀라운 에너지를 지닌 검은색을 정말 좋아한다. 내게 깊은 영향을 준 스페인 회화에서 검은색은 사람을 복종하게 하는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다. 벨라스케스, 고야, 피카소의 작품은 모두 이 점을 증명한다. 나는 어린 시절 천주교 신도들이 매일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고 하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도 언제나 그것을 준비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다른 거장과의 관계가 직접 나타나기도 한다. 그는 고흐를 향한 열렬한 사랑과 존경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 고흐를 낭만화한 것과는 다른, 지적 직관(intellectual intuition)의 창작 방식을 택했다. 그에겐 사물과 인간에 관한 지적 직관이 있는데, 이러한 직관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이성적 추상과 직관적 감성이 함께 깃들 수 있었다. “나는 아주 단순한 사물에 깊은 감정을 담으려 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이 있는 감동을 만들어낸다.” 그는 대상의 본질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느낀 후, 자신만의 예술 언어로 그 대상과 대화한다. 이것이 그의 창작을 위한 출발점이다. 이런 지적 직관은 기술도 아니고, 연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숀 스컬리가 습득한 방법은 그의 인생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런던에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이런 직관을 완전히 습득하지 못했다. 런던에서 제작한 초기 작품을 살펴보면 그가 추상적 언어를 탐색하고 다양한 시도를 진행했으며, 이를 끊임없이 다듬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제작한 작품에 풍부한 선학적 의미가 담기기 시작했고, 동시대의 미니멀리즘 회화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모두 매우 출중한 작품이지만 그는 여전히 추상미술의 규칙 안에서 작품을 창작했다. 1990년대에 멕시코를 방문하면서 작업한 ‘Wall of Light’ 연작을 통해 자신만의 예술 언어가 완전히 성숙했음을 세상에 알렸다. 그는 멕시코에서 순식간에 발생하는 벽의 ‘변용’을 체험했다. 그가 본 것은 단순한 반사광이 아니라, 벽이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그는 붓으로 이 빛을 그렸다. 이렇게 지적 직관을 완벽히 체득하자 그는 더 이상 화폭 앞에서 규칙과 규정을 생각하지 않게 됐으며, 붓을 든 그의 손놀림은 무척 단호했다.
숀 스컬리는 작품 하나를 그릴 때 온 정신을 집중해 하루에 완성한다고 한다. ‘그림은 동일한 상태에서 완성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즉흥곡을 만드는 것과 유사한 창작 방식이다. 반드시 그 순간에 우주와 생명의 깊은 곳에서 동시에 솟구쳐 오르는 오묘함을 포착하고 그 신비한 메시지를 화폭에 담아내야 한다. 숀 스컬리는 이렇게 말한다. “추상미술은 최면적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매번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것은 탈옥과 같다. 나는 이런 자유의 느낌을 정말 사랑한다.” 그의 작품은 더욱 크고, 알지 못하는 세계를 지향한다. 그는 색채를 사용해 평범한 사물이 신성한 빛을 발하게 한다. 숀 스컬리의 또 다른 친구인 U2의 보컬 보노는 그를 ‘영혼의 미장이’라고 부른다. 숀 스컬리 역시 흑백을 포함한 색을 그가 사용하는 건축 재료인 ‘석판’이라고 부른다. 숀 스컬리는 미장이처럼 화폭에 한 바닥 또 한 바닥 정신과 빛의 벽을 세운다. 그는 여전히 영원과 숭고함을 추구하며, 예술의 원시적 에너지로 응답한다. ‘Wall of Light’ 연작은 그의 작품 세계를 드러내는 매우 뛰어난 은유다. 빛과 정신으로 만든 벽, 이 벽은 정신세계에 대한 평범한 세계의 침입을 막아낸다.
“이 경박한 세계에서 평범함과 싸우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행동할 수 있다. 철학자는 언어의 힘을 빌려 사물에 이름을 부여한다. 회화는 사물을 자유롭게 사색하고 상상하도록 하지만, 이것을 명명할 필요는 없다. 회화는 언어가 필요 없는 행위다. 한 번도 자신을 설명한 적이 없다. 이것이 예술의 신비이자, 동시에 매우 어려운 점이다. 그래서 예술은 영원하다. 평범함의 예술처럼, 어떤 것은 매우 쉽다. 하지만 5년, 10년이 지난 후에는 누구도 평범한 예술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예술의 어려움이 그 존재와 연속성을 보장하는 것이다.” 예술의 종결과 미결 사이에서, 숀 스컬리는 오늘도 투쟁하고 있다.
Chinese stuffing, 혼합 재료, 15.24×6.1×3.66m, 2014. 중국 상하이와 베이징에서 열린 개인전 전경. / ⓒ Sean Scully

Figure in a Room, 캔버스에 유채, 170.8×164.5cm, 1967 / ⓒ Sean Scully

Doric Hera, 알루미늄에 유채, 279×406.5cm, 2011 / ⓒ Sean Scully
사실주의 회화를 경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주의 회화는 아주 경박해질 수 있다. 빨리 그릴 수 있고, 아트 마켓에서 잘 팔 수도 있다. 반면 누군가 추상회화를 한 점 갖고 싶게 하는 건 무척 어렵다.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는 수많은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않은 예술가야말로 역사 속에 영원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나는 그렇게 남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 붓질과 붓질의 순서를 계획하는가?
나는 물리학자가 어떤 공식이 정확하고 완벽하다는 걸 아는 것처럼 내 작품의 다음 획에 대해 알고 있다. 언젠가 TV에서 운동선수가 3단 점프를 하는 모습을 봤다. 그는 달리고, 도약하고, 세계기록을 깼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기록을 경신했다. 그는 그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완벽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시간을 되풀이할 수 없었다. 내 작업도 마찬가지다.
작품을 창작할 때는 많은 체력이 필요하다.
가라테를 20여 년간 했다. 나이가 들수록 기운이 생기는 것 같다. 왜인지 나도 모르지만, 작품 활동을 하면서 체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작품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축복이자, 하나의 사명이며, 마라톤과 같다. 반드시 집요하게 창작을 해야 한다. 그래야 당신이 진정한 일을 하고 있다고 다른 사람이 느낄 수 있다.
도시를 옮기며 작품 세계가 변했다. 당신에게 뉴욕이란 도시는 어떤 의미가 있나?
뉴욕의 문화는 질투와 경쟁으로 이루어지는데, 나는 경쟁을 좋아하는 예술가가 아니다. 뉴욕이 개방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편협한 사회인 데다 배타적이고 침략성이 강한 도시다. 하지만 도망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더블린에서 태어났지만 내 예술 세계의 일부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만들어줬다. 난 투사로서 전투가 끝나기 전엔 이 전쟁터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했고, 뉴욕에서 중요한 추상화가가 되었다.
뉴욕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내가 뉴욕에서 생존하고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유럽, 그중에서도 독일과 관련이 깊다. 나는 문화와 예술, 철학 분야에서 독일이 미국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일 지식인의 지지를 얻었다면, 뉴욕의 다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관계는 나를 심리적으로 지지해주었다.
앤디 워홀의 작품을 보고 ‘예술의 종말’을 논한 세계적 철학가 아서 단토와 막역한 사이였다.
아서 단토는 좋은 친구였다. 그는 니체를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예술계에서는 그와 논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내 작품의 수호자가 된 건 내게 큰 행운이었다.
앤디 워홀을 어떻게 평가하나?
솔직히 난 그의 작품을 견딜 수 없다. 하지만 작품 속 그의 천재성은 인정한다. 그는 ‘평범함의 대가(master of banality)’다. 전에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 당시 학교는 앤디 워홀의 작품 2점을 구매해 자랑스럽게 로비에 걸어놓았다. 강연 중 아무 거리낌 없이 “내가 말하려 하는 주제는 예술의 평범함과 내용이 없는 공동의 예술”이라고 말하면서 앤디 워홀의 작품을 가리켰다. 그 말에 몇몇 사람은 화를 냈지만, 내가 또 뭘 할 수 있었겠나?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예술가가 되기 위해 어떤 자질이 필요하다고 얘기하는가?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꽃이 되고 싶은가, 벌이 되고 싶은가? 벌이 되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선 안 된다. 여긴 네가 있을 곳이 아니다. 너는 한 송이 꽃이 되어야 한다. 꽃은 어디든 날아다닐 수 없지만, 그 자체로 사람을 끌어들이고 다른 사람이 동경하게 한다.” 이러한 자신감은 한 사람의 에너지와 세상을 향한 사랑에서 나온다. 신비하고 복잡해 설명하기 어렵다.
예술가로서 당신의 사명은 무엇인가?
이 세상을 융합하는 것! 문학, 연극, 무용, 회화 등 모든 것을 연결해 더는 전쟁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는 한 번도 추상회화에 헌신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추상미술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나는 상아탑 속의 왕자가 아니다. 사람들이 추상미술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글도 쓰고 강연도 하면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5월 9일부터 11월 22일까지 팔라초 팔리에르(Palazzo Falier)에서 열리는 개인전 전경 / ⓒ Sean Scully

Light in August, 리넨에 유채, 228.6×304.8cm, 1991 / ⓒ Sean Scully
에디터 김재석 (jskim@noblesse.com)
글 선치란(沈奇嵐) 사진 민혜령(인물)